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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녀들은 명절 보이콧을 선언했을까

EDITOR 조윤

입력 2019.02.04 08:11:26

여자들은 언제까지 명절에 허리 한 번 못 펴고 전을 부쳐야 할까. 미움 받을 각오로 명절 보이콧을 선언한 주부 4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왜 그녀들은 명절 보이콧을 선언했을까
‘명절을 없애주세요.’ 명절만 되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단골로 올라오는 내용이다. 조상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온 가족이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명절의 본래 의미는 퇴색되고 무거운 의무만 남았다는 게 주된 이유다. 특히 여성에게만 크게 지워지는 가사 노동의 문제는 수십 년을 이어온 고질병. 지난해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1천1백70명을 대상으로 명절 성차별 사례를 조사한 결과 남녀 모두 ‘여성만 하게 되는 가사 노동(53.3%)’을 첫손에 꼽았다. 

결혼 5~7년 차 봉주영, 최인성, 홍현진, 이주영 등 네 명의 워킹맘은 이 같은 명절의 오래된 가부장적 관습을 바꾸고자 앞장선 이들이다.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도리, 여성의 희생만으로 유지되는 명절을 ‘보이콧’하고 나섰다. 동시에 지난해부터는 온라인 채널 ‘마더티브’를 운영하며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키고 싶은 엄마들’을 위한 결혼과 육아 관련 콘텐츠를 제작해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이들이 꿈꾸는 모두가 함께 행복한 명절은 어떤 모습일까.


안 먹어본 사람 없다는 ‘명절 고구마’

왜 그녀들은 명절 보이콧을 선언했을까
봉주영- 결혼 7년 차. ‘가족사랑은 열렬하게, 가사분담은 공평하게’를 외치는 당당한 며느리.
최인성- 결혼 5년 차. 가정의 평화 이전에 나의 행복이 있다고 믿는 똑소리 나는 며느리.
홍현진- 결혼 7년 차, 이유 없는 희생은 No! 가족의 평등한 행복을 꿈꾸는 과감한 평화주의자.
이주영- 결혼 6년 차. 착한 며느리를 꿈꾸지만 할 말은 하는 상냥하고 쿨한 며느리.

봉주영(이하 봉봉) 결혼 후 처음 시집에 갔을 때 시어머니께서 저를 위해 앞치마를 사놨다며 주시더라고요. 정말 딱 제 것만요. 남편 목에 걸어줘버렸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한복에 기름 튀니 입으라며 기어코 다른 앞치마를 갖다 주셨어요. 내가 시집에서 이런 존재구나 싶었죠. 그날 친정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했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홍현진(이하 홍) 시집에서 자고 있는데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시어머니께서 방문을 열고 일어나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들과 손주는 더 자라”는 말씀과 함께. “네? 저요?” 하면서 남편을 끌고 나왔죠(웃음). 

최인성(이하 인성) 저는 동서나 올케를 모두 “누구누구 씨” 하고 이름으로 불러요. 그런데 어느 날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모두 올케 혹은 동서로 불러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예쁜 이름으로 불러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이름으로 부르는 게 더 편해요”라고 말씀드려 설득했죠. 

이주영(이하 주영) 결혼 전엔 착한 며느리로 인정받고 싶은 로망이 있었어요. 저는 남편에 비해 요리와 집안일을 잘 못하는데 시집에 가면 잘하는 척 했죠. 그러다 4년 전 추석 아침, 임신 중인데도 어머니께서 요리를 가르쳐준다며 저만 부르시더라고요. 남편이 도와줄까 말까 망설이는 걸 보고 문제를 깨달았죠. 서로가 본모습을 속이고 가부장적인 명절 프레임에 갇혀 움직이고 있단 걸요. 시어머니께 살림에 서툴다고 고백했어요. 명절에도 남편이 요리를 하고 제가 애를 보기로 했죠. 그날 시어머니께선 충격을 받아 밤새 잠을 못 이루셨다는 후문이…(일동 웃음).

봉봉 명절에 시집에 가면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소파로, 여자들은 부엌으로 향하는 분위기였어요. 한번은 남편과 함께 전을 부치고 있는데 아버님이 목욕탕에 같이 가자며 남편을 부르시는 거예요. 눈치를 줘봤지만 남편은 제 옆에 애를 두고 목욕탕에 다녀오더라고요. 아이가 인지력이 생겼을 때쯤 이런 모습을 보고 배우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올해부터 설에는 시집 먼저, 추석에는 친정 먼저 가기로 남편과 합의했어요. 아직 시부모님이 모든 걸 공감해주지는 못하지만 이제부터 정말 뭔가 바꿔야 하는 중요한 시기예요. 

시집은 원주, 친정은 부산이라 기차와 버스로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아이가 태어난 후부턴 시집에만 가게 됐죠. 평등하지 못한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계속 생각하다 작년 추석에 ‘명절 보이콧’을 해버렸어요. 양가에 다 안 가고 ‘호캉스(호텔로 떠나는 바캉스)’를 떠났어요. 올해부터는 설에는 시집, 추석에는 친정에 가겠다고 어른들께 이야기를 드려놓은 상태예요. 후폭풍이 있기는 하겠지만 감당해나가려고 해요. 

인성 처음 시집에서 명절을 지낼 때 차례 상에 술 올리는 손주들을 보며 시어른들이 크게 감격해하시더라고요. 한편으로 아이들을 직접 돌봐주시는 친정 부모님은 이런 모습을 못 보겠구나 싶어 안타까웠죠. 마침 시집에선 명절 전날 밤에 차례를 지내니 앞으론 명절 당일에는 친정에서 차례를 지내기로 남편과 합의했어요. 친정에선 굳이 오지 말라고 하실 것 같지만요.


“다들 그렇게 사는데 당신만 너무 예민한 거 아냐?”

주영 조화롭게 살려면 어느 정도 불화는 불가피하다고 봐요. ‘서로를 포기한 평화냐,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불화냐’ 하는 건 개인 선택이에요. 누군가는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거니 넘어가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죠. 그런 생각도 또한 존중해요. 다들 경중의 차이만 있지 자신이 처한 위치를 조금씩 바꿔가는 것 같아요. 제 친구는 명절 전날부터 시댁에 가던 걸 당일에 가는 걸로 바꾸는 걸로 합의를 봤다 하더군요. 그렇게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법’을 만들어가는 거죠. 

인성 우리나라는 며느리의 도리라는 걸 당연시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 문제를 고치려 하면 대가가 안 따를 수 없어요. 친정 부모님께서 “너만 참으면 된다”고 하시지만 계속 똑같이 하면 나는 진짜 나로서 살 수가 없는 거예요. 

봉봉 “너 너무 심한 거 아냐”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처음엔 남편한테 돌려서 말하기도 했죠. 그러면 “나도 처가에 가면 불편해. 하지만 하루, 이틀은 참을 수 있어”라고 말해요. 전 하루 일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명절마다 감당해야 하는, 남성과 전혀 다른 여성으로서 감정의 문제를 말한 건데 말이에요. 

명절 보이콧 한 이야기를 하면 여자들은 ‘대단하다’고 하고 남자들은 ‘남편이 불쌍하다’는 반응이에요(웃음). 제가 명절 노동에서 빠지면 시어머니가 할 일이 늘어나니 죄송한 마음도 있어요. 저도 그런 걱정이 있었는데 웹툰 ‘며느라기’ 를 보고 상황을 변화시킬 용기를 얻었죠. 이후 저의 케이스를 보고 다른 친구도 용기를 얻어 ‘너만큼은 아니지만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해봤다’ 라거나 ‘오늘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바꿔보자 해봤다’라는 등의 이야기가 들려와요. 그렇게 며느리들끼리 서로서로 용기를 주고 얻으면서 작더라도 변화를 꾀하고 있어요.


“명절 시월드가 불편한 진짜 이유는…”

왜 그녀들은 명절 보이콧을 선언했을까
며느리들이 시집에 가면 불편한 이유는 시부모님이 나쁜 사람, 시월드가 막장이어서가 아니에요. 명절에 온 가족이 모였으면 싶고, 오랜 시간 같이 있고 싶은 평범한 마음이 며느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거예요. 사회가 달라지고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 하지만 소위 밖에서 아무리 잘 나가는 며느리라 하더라도 가정에선 그저 평범한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잘 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어른들의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여성들 스스로도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어릴 적 엄마가 하시는 걸 보며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짐하고도 정작 며느리가 되면 그대로 답습하게 되죠. 명절엔 밥 때가 되면 눈치, 설거지거리가 나오면 눈치, 아무것도 안 해도 눈치가 보여요. 제가 안 해서 시어머니가 시아버지께 일을 시키면 그게 또 눈치가 보이고요. 며느리는 명절이 눈치보기의 무한 반복이죠. 

주영 문제를 제기하면 어른들은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부정당하는 느낌을 가지시는 듯해요. 그래서 같은 여성인 시어머니도 며느리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죠. 같은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부모님 세대의 사고방식은 20세기에 더 가깝기 때문에 우리가 가 닿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봐요. 

봉봉 우리 사회는 며느리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기준이 아주 견고해요. 이 때문에 시부모님은 며느리의 어려움을 이해하면서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 며느리가 관습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보이는 걸 좋아하시지 않는 것 같아요. “명절에 안 와도 된다. 다른 사람들한텐 너 바쁘다고 해줄게”라고 하시는 걸 보면요. 

인성 사위는 백년손님인데 며느리는 결혼한 그날부터 바로 가족이에요. 그건 사실 울타리 안에 함께 있고 싶은 좋은 마음이에요. 어른들이 울타리 밖은 생각 못 하시는 것뿐이죠. 결혼했다고 바로 가족이 되는 게 아니라 서서히 스며들어야 하는 거잖아요.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내 며느리이기 이전에 소중한 남의 집 자식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거기 남편! 뒷짐 풀고 링 가운데로 와”

왜 그녀들은 명절 보이콧을 선언했을까
남편의 가족 사이에 분란을 일으킨 것 같아 미안함이 있어요. 하지만 시집 어른들은 남편이 아니라면 만날 일이 없었을 분들이잖아요. 남편은 중간에 낀 사람이 아니라 문제의 당사자예요. 명절 보이콧을 할 수 있었던 건 5년간 남편과 계속해서 싸우고 타협한 결과예요. 딸에 비해 부모와 소통이 적은 아들로서 부모님께 불합리한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게 어려울 수 있겠구나, 이해되는 면이 있긴 해요. 

인성 시집과 문제가 있을 때마다 어른들은 저를 불러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남편도 제3자가 아니라 가족의 일원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좀 더 적극적이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남성들이 마주하는 문제들도 사회적으로 더 공론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요. 

주영 제가 애를 보고 남편이 요리를 하기 시작했을 때 시어머니께서 남편을 불러 “며느리가 변했다”고 하시더래요. 그때 남편이 적극적으로 해명해줘서 문제를 해결했어요. “아내는 애를 보고 있는 거지 노는 게 아니다. 우린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것뿐이다. 애를 보는 사람이 있어야 음식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고요. 물론 변화 속도에는 차이가 있는 듯해요. 예를 들면 제가 “명절이란 가부장제를 망치로 부숴버리자”고 하면 남편은 “벽돌 한 장씩만 빼야 한다”고 하죠.


모두 행복한 명절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지인들과 ‘명절 없애기 운동본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해요. 명절 치르는 비용도 많이 드는 데다 명절에 과연 행복한 사람이 누군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죽은 사람 차례 지내려다 산 사람 잡는다’는 말이 왜 나오겠어요. 평소 부모님 생신 잔치 등에 명절처럼 온 가족이 모이고 여행도 가고 하면 명절의 부담을 덜 수 있지 않을까요. 명절만 지나치게 빅 이벤트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에요. 

봉봉 하지만 며느리 역할이 정해져 있다면 결국엔 똑같을 거예요. 모두가 즐겁다고 느끼는 명절을 만드는 게 목표가 돼야죠. 우리 집에서 밥 먹는 것처럼 시가, 처가에 갔을 때도 부담 없이 즐거울 수 있는 명절이면 좋겠어요. 

주영 결혼은 개인과 개인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맺는 관계예요. 며느리는 시가의 관습을 따라야만 하는 존재가 아닌 거죠. ‘우리 집은 이렇게 하니 네가 따라’가 아니라 ‘네가 원하는 명절은 뭐니’ ‘집 안에서 치르는 게 좋니, 외식이 좋니’ 등 온 가족이 새롭게 합의점을 마련해야 하는 거죠. 

인성 명절의 형식 자체가 바뀌면 좋겠어요.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 온 가족이 모여야 하는 ‘기-승-전-차례’가 아니라 가족들이 만나 즐겁게 지내면서 조상께 감사한 마음으로 차례도 지내자고요. 

평등하지 못한 관계에 사랑이 있을까요.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남편과 남편 집안에 종속된 존재로 살아가면서는 행복할 수 없어요. 중요한 건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거예요. 명절 보이콧을 하는 가정이 늘고 있어요. 명절이 여행 성수기로 불리는 데다, 명절에 차례 안 지내는 여성들 모임이 있을 정도예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 간에 연쇄 작용이 일어나는 거죠. 조금씩이라도 사회는 변하고 있어요. 

인성 며느리로서 겪어야 하는 불합리함, 불편함을 이제 사회가 공유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 결혼 생활에 있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는 게 중요해요. 참고 살면 언젠간 터지게 돼 있거든요. 처음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가면서 새로운 가족들과 관계를 맺어야 해요. 그럼 결혼 생활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기획 이혜민 기자 사진 홍태식 디자인 김영화 일러스트 고준영


여성동아 2019년 2월 6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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