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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위안부 기록자 재일교포 김영, 또 다른 절반의 이야기

EDITOR 이혜민 기자

입력 2018.12.24 17:00:01

재일교포 르포 작가 김영 씨는 18년에 걸쳐 북한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알려왔다.
북한 위안부 기록자 재일교포 김영, 또 다른 절반의 이야기
우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백40명(2018년 10월 26일 기준)이다. 10월 26일 하점연 할머니가 별세해 생존자는 27명으로 줄었다. 한반도에는 또 다른 위안부들이 존재한다. 바로 북한 위안부들이다. 이들의 존재는 2000년 12월 8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 일본 네트워크 등이 일본 도쿄에서 주최한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이하 법정)’에 참석한 북한 위안부 김영숙·박영심 할머니 2명이 증언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민간 법정이지만 8개국 1천여 명의 시민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한 공동검사단이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일본군 위안부 관련자 8명을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기소하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됐다. 2000년 법정 이후 북한 위안부 실태는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박영심 할머니가 2006년 8월 사망한 사실이 북한의 조선일본군위안부 및 강제연행피해자보상대책위원회(조대위)를 통해서 확인됐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에 김영(59) 재일동포 작가가 방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김 작가는 11월 15일 일본군 ‘위안부’연구회 심포지엄·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월례 세미나, 11월 16일 정대협 창립 28주년 기념 심포지엄 세 곳에서 단독 발표자로 나서 북한 위안부의 피해 실태를 알렸다. 아울러 위안부로 생활하면서 임신을 하자 태아를 꺼낸 뒤 임신하지 않도록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다고 고백한 리경생 할머니, 팔에 문신을 새기려는 군인에게 저항하다가 총으로 눈을 맞아 왼쪽 눈을 실명한 김도연 할머니의 사연도 공개했다. 김 작가가 실제로 만난 북한 위안부 피해자는 4명(김영숙, 리계월, 리상옥, 박영심 할머니)이다. 김 작가는 이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데서 더 나아가 2003년부터 2018년까지 총 다섯 차례 방북해 위안부 실상을 조사해왔다. 발표 일정을 모두 마친 그를 서울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부근에서 늦은 밤에 만났다.  


북한 위안부 기록자 재일교포 김영, 또 다른 절반의 이야기
북한 위안부의 존재를 알게 된 경위가 궁금합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며 재일교포의 정체성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1980년대 재일동포 여성 4명이 조선여성사독서회를 만들었고요. 한 달에 한 번 만나서 재일 조선인,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해 독서회통신에 실었죠. 회원 수가 20여 명까지 늘어났는데,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과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에 속한 사람들이 이렇게 일을 도모한 건 이례적이었어요. 위안부 문제는 한겨레신문에 위안부 기사를 연재하던 윤정옥 이화여대 교수님을 독서회에 초청해 강연을 들으면서 알게 됐죠. 1988년이었어요. 

북한 위안부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대학을 졸업한 후 선배와 요코하마에 사는 재일동포 여성들을 5년 동안 취재해 ‘바다를 건넌 조선인 해녀’라는 책을 펴냈어요. 이런 경험이 있어선지 위안부도 조사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죠. 제가 국적이 조선적(광복 후 일본 정부가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에게 부여한 외국인 등록상 명칭. 1965년 한일협정 체결 후 조선적인 재일동포들은 한국 또는 일본 국적을 취득했는데, 일부는 조선적을 유지함)이라 북한에 쉽게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법정을 준비하는 재일동포 중 조선적 국적자는 저밖에 없었죠. 

북한에 들어가 조사하는 것이 수월했나요. 

글쎄요. 2000년 법정 증언을 준비하기에 앞서 7명이 위안부 피해자의 실태를 알기 위해 방북 조사를 신청했는데 북한 정부는 일본인 6명의 방북을 허용하고, 저의 신청은 거절했어요.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북한에서 조선적인 저만 오라고 합니다. 

2000년 법정 당시 박영심 할머니의 기소장을 만드셨다고요. 


저는 일본분들이 북에서 촬영해온 박영심 할머니의 증언 영상을 보면서 피해 사실을 정리했죠. 기소장 문구는 북측 분들과 상의하면서 조금 다듬었고요.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신뢰가 쌓인 것 같습니다. 

조사 초기 일본 기업인 도요타재단이 연구비를 지원한 사실은 좀 의외예요. 

도요타재단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군대와 성폭력’ 연구비를 지원했어요. 그걸로 2003년과 2005년 방북 조사 비용을 충당했죠. 이후로는 일본 기업에서 이런 연구를 지원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세 번째 방북 조사 때부터는 자비를 들였어요. 방북할 때마다 북한에 7박 8일씩 머무르는데 매번 30만~40만 엔(약 3백만~4백만원)을 썼지요. 생업이 있으니 비용 마련이 어렵진 않았어요. 


현재 병원으로 사용되는 방진 위안소.

현재 병원으로 사용되는 방진 위안소.

북한 위안소는 어떤 형식으로 운영됐나요. 

군이 배치된 곳에 위안소가 있었어요. 지금까지 알려진 곳으로 함경북도 방진 위안소와 경흥 위안소가 있는데, 방진 위안소는 현재 병원으로 사용 중입니다. 올해 경흥 위안소 터에 다녀왔는데 경흥은 일본군 국경수비대가 주둔했던 곳입니다. 북한 주민에 따르면 이곳에는 10대 후반의 여성들이 있었고 방마다 여자 사진이 붙어있었다고 합니다. 

북한 위안부의 상황은 어떤가요. 


북한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도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서는 우선 배급을 하고, 의료지원을 해줬어요. 북한 정부에 위안부 2백19명이 피해 사실을 신고했는데 그중에 공개 증언자는 52명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다 돌아가셔서 현재로서는 증언을 듣기 어렵습니다.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은 남한 할머니들에 비해서 피해 사실을 공감해줄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은데 바로 이 점이 남과 북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북한 위안부는 남한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꾐에 넘어가 위안부가 된 경우가 많은데요. 북한 정부는 이 할머니들이 납치, 유괴와 같은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위안부가 됐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니 그와 다른 방식으로 위안부가 된 할머니들은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북한의 위안부 조사 상황은 어떤가요. 

열악해요. 북한 위안부 증언은 조대위가 출간한 책 ‘짓밟힌 인생의 외침’에 40명의 피해 사례가 적혀 있고, 노동신문 등에 12명의 피해 사실이 기록돼 있을 뿐이죠. 

북한 위안부를 조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부담스럽지 않았나요. 

별로 부담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한국에 와서 기자님들이 저를 열심히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어요(웃음). 그동안 북한 위안부 선행 연구가 너무 부족해 연구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아무리 작은 거라도 중단하지 말고 계속하자’고 생각했죠. 북한에 갈 때마다 ‘이번 방북이 마지막이겠구나’ 생각했는데, 관련 증언이나 자료가 나오면 마음이 바뀌어서 또 갔어요. 이 문제를 기억해 정리하는 작업은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사진 홍태식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김영


여성동아 2018년 12월 6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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