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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손미나의 우리 길 걷기 여행 부여 백마강길 with 루이스 주한 우루과이 대사

editor 손미나

입력 2018.10.25 17:19:27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여행의 목적지는 이런저런 상황과 우연이 겹쳐 정해지는데, 돌아보면 그것이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11월 걷기 여행의 동행자는 루이스 페르난도 이리바르네 레스투차 주한 우루과이 대사. 1996년 외교관이 돼 스페인·벨기에 등 주로 유럽에서 일해온 그에게 한국은 대사로서 첫 부임국이다. 루이스 대사는 한국의 미디어를 공부하면서 85년의 역사를 가진 여성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게다가 그 ‘여성동아’가 일제강점기에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정간되기도 했으며 꾸준히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 점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국 부임에 이어서 완벽한 행운으로” ‘여성동아’와 함께하는 한국의 걷기길 여행에 초대된 그는, 눈이 부시게 푸른 날 아침, 운동화를 신고 부여로 달려왔다.

백마강길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사비성(부여)을 관통하는 백마강을 따라 걷는 숲길이다. 

왕흥사지, 낙화암, 고란사, 부소산성 등 백제 역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6세기 백제 위덕왕이 죽은 아들을 위해 지은 왕흥사는 백제 금속공예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정교한 금은동 사리함이 나온 곳이다. 그 수준으로 보아 절집도 매우 훌륭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직사각형 모양의 터만 백금빛 갈대숲이 호위하듯 감싸고 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이번 부여 백마강길 여행에는 드론도 합류했다. 가을 하늘에서 본 백마강.

이번 부여 백마강길 여행에는 드론도 합류했다. 가을 하늘에서 본 백마강.

백마강은 부여군을 흐르는 금강의 또 다른 이름으로 16km에 이른다. 백마강은 일본, 신라, 당나라, 서역에 이르는 백제 교역의 중심이었고, 660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패망하는 순간을 낙화암에 부딪쳐 흐르며 지켜보았다. 

이런 역사를 알고 나면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아도 배호의 ‘추억의 백마강’ 노랫말이 각별해진다. 더구나 가을 백마강에서 듣는다면야. 이런 게 유행가의 힘이다. 

사라진 나라 백제의 흔적에 떠도는 고요하고 미묘한 소회는, 유행가 가사처럼 외국인이 제대로 느끼기가 쉽지 않다. 내 어깨가 무거워진다. 그래도 이번 여행으로 루이스 대사가 백제를 이해하게 된다면 그가 한국 속으로 아주 깊이 들어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루이스 대사가 늦가을 부여를 찾은 이번 여행이 특별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서울과 가까이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 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깨끗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곳에 올 수 있어서 행복하고요. 완벽한 날이에요.”


신라 선화 공주는 백제 청년 서동이랑 사귄대요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밤에 본 궁남지.

밤에 본 궁남지.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백제 시대에 만들어진 궁남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이다. ‘삼국사기’에는 ‘무왕 35년(634년) 궁궐 남쪽에 연못을 파서 물을 20여 리나 끌어들였다. 네 언덕에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신선의 세계를 모방하였다. 봄에는 왕비가 큰 연못에 배를 띄웠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 무왕과 그 왕비가 누구인가. 바로 ‘서동 왕자와 선화 공주의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가난한 백제 청년 서동이 선화 공주가 연애한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바람에 선화 공주가 신라에서 쫓겨나자 공주와 결혼했다는 설화를 들려주자, 루이스 대사는 “서동이 어떻게 왕권을 잡아 무왕이 됐는지” 궁금해했다. 백제와 신라의 문화 양식이 비슷하여 생겨난 허구라고 말해야 할까. 러브 스토리는 러브 스토리일 뿐입니다.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백화정.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백화정.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궁남지의 수로에 놓인 돌다리.

궁남지의 수로에 놓인 돌다리.

백마강길의 시작점이자 종점인 구드래나루터에서 백마강을 즐기는 방법은 강을 조망하며 걸어서 부소산성에 이르거나, 황포돛배를 타고 낙화암을 바라보며 고란사에 도착하는 것이다. 낙화암에 오르니, 조금 더 높은 곳에 작은 정자가 있다. 백제 패망 때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는데, 그 이름이 ‘백화정’이다. 

해가 저무는 백마강은 너무 아름답고 너무나 조용히 비어 있어서 비로소 국사책에서 읽었던 사실들이 무대 위의 비극처럼 생생해진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백제 말기 또는 고려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 고란사에는 고란약수가 있는데, 한잔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고 한다. 루이스 대사도, 나도 사진 촬영을 핑계로 여러 잔 마셨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삼충사는 백제를 끝까지 지킨 충신 성충, 흥수, 계백을 모신 사당. 루이스 대사는 영문으로 된 설명을 꼼꼼히 읽고 역동적인 백제의 역사를 더 공부해보겠다고 말했다.


부여에서 얻은 자연의 맛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연잎밥 정식
부여 궁남지는 국내 최대 연꽃 서식지로 유명하다. 덕분에 이곳에서는 연잎차, 연잎밥 등 연을 주재료로 한 정갈한 음식이 발달해 있다. 어린 연잎을 건조해 우려낸 연잎차는 한 모금 머금는 순간 입 전체에 은은한 향이 퍼진다. 연잎에 찹쌀과 각종 곡식을 넣고 쪄낸 연잎밥은 영양이 풍부하고 항균 효과뿐 아니라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행작가 손미나가 추천하는 부여 백마강길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총 24km, 10시간 소요
부소산길(낙화암, 고란사) 1.9km-백제보길(백제보) 5.5km-천정대길(천정대) 2.9km-문화단지길(백제문화단지) 1.4km-왕흥사지길(왕흥사터) 1.9km-부산길(부산) 1.3km-희망의 숲길(수북정) 1.3km-선화공원길(신동엽시인의 비) 2km-궁남지길(궁남지) 3.6km-구드래조각공원길(구드래조각공원, 구드래나루터) 2.7km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손미나 작가와 루이스 주한 우루과이 대사는 부여 백마강길 걷기에 두루누비(durunubi.kr) 사이트를 활용했습니다.


여성동아 2018년 11월 6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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