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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trails #galmaetgil

부산 갈매기를 따라 섬으로 걸어 들어갔다

손미나의 우리 길 걷기 여행, 가덕도 갈맷길

EDITOR 손미나

2018. 05. 31



기어이, 남쪽 끝 1백10년 된 등대에 올라 맞은 남태평양의 바람


아주 특별한 친구와 부산행 기차를 탔다. ‘인생학교’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운영하는 로렌스 씨가 한국 ‘인생학교’ 교장인 나를 만나러 왔다. ‘인생학교’는 어른들의 힐링을 고민하기 위해 작가이자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이 처음 문을 연 곳으로, 삶을 바라보는 가치를 서로 나누고 있다. 그에게 부산 갈맷길 걷기 여행을 제안했다. 걷기와 자전거타기를 열렬히 사랑하는 로렌스 씨는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고, 나는 당신이 알고 있는 부산이 아니라는 말로 그의 호기심을 살짝 건드려주었다. 그 번잡하고 현대적인 도시에서 섬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행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부산, 가덕도로 떠났다. 


부산의 끝 가덕도에서도 남쪽 맨 끝 산꼭대기에 등대가 있다. 기어이, 아슬아슬 매달린 듯 서 있는 새하얀 등대 꼭대기까지 걸어갔다. 1909년 불을 밝힌 뒤 지금까지 근대와 현대, 한국과 일본, 유럽의 건축 양식을 바다 위에서 온전히 비추고 있다. 로렌스 씨와 나는 우여곡절 끝에 겨우 등대까지 갔는데, 그 바다 남태평양,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참고로, 부산지방해양수산청 홈페이지에 미리 등록만 하면 등대 체험은 누구나 가능하다.

갈맷길 5코스의 시작은 낙동강 하굿둑을 좌우에 둔 작은 습지섬 을숙도다. 로렌스 씨도 그랬지만 만약 부산을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거대한 첨단 도시로 알고 찾아온 여행자라면 이 많은 섬과 습지와 바다와 강, 철새가 어우러지는 매력적인 풍경들로 부산의 기억을 다시 써가게 될 것이다.



어서 오이소!

눌차도는 가덕도 걷기 여행의 관문과도 같은 또 다른 작은 섬이다. 가덕도 내항을 가로막고 서서 드센 파도를 피해 찾아온 배들을 품어주던 곳이기도 하다. 둥글게 휜 가덕도의 마을이 한눈에 가늠되는 천가교를 따라 걸으면 벽화로 담장을 꾸미고 길을 내어 사람들이 지나도록 한 정거마을에 이른다. ‘인생학교’ 교장이 된 로렌스 씨와 내가 어른들의 그림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의미를 묻고 생각을 나누느라 걷다가 또 멈춘 곳이다.

가덕도는 굴 유생이 조가비에 붙도록 하는 채묘업이 성해서 거대한 조가비 벽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푸른 하늘에 흰 조가비라니, 세상에서 가장 멋진 포토월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들 아래 해저터널이 있다
문명은 때로 꿈을 건설한다

가덕도에서 가장 높은 연대봉 정상에 서거나 가덕도 등대에 오르면 바다 저 건너 길게 능선을 드리운 거제도를 만날 수 있다. 낮에는 눈이 시린 듯 아름답고, 밤에는 몽환적이다. 눈에 보이는 그만큼 부산과 거제도는 실제 가까워졌다. 가덕도에서 출발해 대죽도와 저도를 이어 거제도에 안착하는, 사이좋게 이름 한 자씩 나눠 가진 거가대교 덕분이다. 그런데 다리가 바다 위에 덩그러니 떠 있으니 좀 이상하지 않은가. 열정 넘치는 부산 갈맷길 해설사는 가덕도와 대죽도 사이는 해저터널로 연결돼 있고, 그 기술을 네덜란드에서 들여왔단다! 국토의 4분의 1이 바다보다 낮은 나라니, 해저터널 쯤이야,라며 로렌스 씨는 어깨를 으쓱하고 만다. 그러나 그는 다음 날 부산 시내에서 자전거를 빌려 거제도까지 다시 달려가고야 말았다.

가덕도에서 가장 큰 항구 대항에 이르면 갈맷길 코스의 남쪽 끝에 다다른 것이다. 엄연히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속해 있으나 굳이 ‘어촌체험마을’이라는 이름이 필요 없는 진짜 소박한 어촌이다.

어음포를 지나면 갈맷길은 산길로 이어진다.

어음포를 지나면 갈맷길은 산길로 이어진다.

가덕도를 걷다 보면 예고 없는 놀라움과 의외로움을 무시로 맞닥뜨리게 된다. 추억이 방울방울 되살아나는 천가초등학교의 예쁜 교정, 서로 바라보고 해로하는 암수 은행나무, 그 아래 몹시 단호한 척화비. 

19세기 대원군에 의해 가덕도에도 세워져 ‘서양과 싸우지 않음은 곧 나라를 팔아먹는 일’이라고 적어놓았다. ‘인생학교’ 교장인 나와 로렌스 씨는 국운이 절박한 시대, 개인의 삶은 어떠했을지 생각해보았다.

역사적 비극을 지하 벙커처럼 품은 섬 가덕도. 대조적으로 너무 아름다운 자연 때문에 누구나 철학자가 되어 걷는 길이다.

대한해협과 진해만 사이 가덕도는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끊임없이 일본의 침략에 시달렸다. 외양포 포진지는 20세기 일본군 주둔의 흔적이고, 바닷길이 아름다운 대항새바지 해안에는 일본군이 파놓은 인공 동굴도 있다. 갈맷길에서 잠시 벗어나, 이르는 길이 아름다운 국군충혼묘지에도 들러본다. 이 섬에서 나고 자랐으나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을 기리는 곳. 우리가 알지 못했던 부산, 가덕도를 다시 만났다.

가덕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갈미삼합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이루는 그 기막힌 ‘케미’ 덕분에 낙동강 하굿둑 일대에서는 해산물이 넉넉히 거둬진다. 그 가운데 이곳에서만 맛보는 갈미조개는 눈이 절로 번쩍 뜨일 만큼 맛있어 꼭 맛보기를 권한다. ‘갈매기 부리를 닮았다’고 해서 갈매기의 사투리가 합해진 갈미조개는 샤브샤브로도 좋지만, 역시나 철판 위에 얇게 썬 삼겹살을 벽처럼 두르고 가운데 조개를 넣어 구운 뒤 묵은지를 곁들인 갈미삼합이 제격이다.

손미나가 추천하는 갈맷길

5-2 구간(22.8km 10시간) 
천가교 ~ 천가초등학교 ~ 소양보육원 ~ 연대봉 ~ 대항선착장 ~ 대항새바지 ~ 어음포 ~ 동선방조제 ~ 
정거생태마을 ~ 천가교 

5-1 구간(22.0km 6시간) 
낙동강 하굿둑 ~ 명지오션시티 ~ 신호대교 ~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 ~ 천가교


손미나 작가와 로렌스 씨는 갈맷길 걷기에 두루누비(durunubi.kr)
사이트를 활용했습니다.

기획 김민경 기자 작가 남기환 사진 김성남 조영철 기자 동영상 연출_김현우 PD 디자인 김영화
제작지원 한국관광공사 매니지먼트 곽상호 스타일리스트 최소영 어시스트 마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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