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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열음

editor 안미은 기자

2018. 03. 28

데뷔 5년차에 여유와 열정이 마치 천성처럼 보이는 배우 이열음. 여배우의 딸이 가진 아우라란, 눈부신 빛이 아니라 흐르는 물에 가까운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시스루 터틀넥 톱 그레이양. 볼드 이어링 삿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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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 레더 톱 쁘렝땅. 플리츠 롱 스커트 칼라거펠트. PVC 이어링 1064스튜디오. 레더 코르셋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왼쪽) 플라워 자수 시스루 블라우스 올라카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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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배우가 진짜 있을까? 자신의 꼬리표를 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배우 윤영주의 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세상에 태어난 이열음은 그저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열심히 하면 언젠가 인정받는 날이 올 거라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열여덟 살에 데뷔해 연기를 배우고 오디션을 보러 다닌 지난 5년의 시간. 이젠 어엿한 그만의 필모그래피가 쌓였다.

목소리가 독특해요. 

허스키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요.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말했어요. 호소력 짙은 목소리라고. 연기할 때 감정을 더 꾸밈없이,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 저는 좋아요. 

우리도 솔직하게 대화할까요. 

그러면 너무 좋죠. 



어제 한국에 도착했죠. 발리 여행은 어땠어요. 

너무 추워서 따뜻한 나라를 찾은 거예요. 4박 5일 일정이었는데, 돌아오니까 한국 날씨가 많이 풀렸더라고요. 오랜만에 친구들과 여행 가서 신나게 먹고 마시고 쉬다 왔어요. 어제는 발리의 타오르는 노을을 보고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서울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뭐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거? 연기를 하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본래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여행지에선 모두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잖아요. 그런 게 신기해요. 

혼자 여행도 해봤나요. 

딱 한 번요. 스무 살 되자마자 부산으로 훌쩍 여행을 갔어요. 가서 바다만 실컷 보다 돌아왔죠. 십대 때 했던 복잡한 생각과 감정들은 파도에 흘려보내고 이십대를 차분하게 시작하고 싶었어요.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SBS 드라마 ‘이혼 변호사는 연애 중’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이십대를 희망차게 시작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은 예감이 맞아떨어진 거네요. 십대 때와는 또 다른 성숙한 연기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잖아요. 올 2월엔 OCN 드라마 ‘애간장’에서 첫사랑 한지수 역을 맡아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어요. 

그랬나요? 설정이 독특했어요.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한 남자가 10년 전으로 돌아가, 10년 전 자신과 첫사랑 사이에서 삼각관계에 빠지는 이야기거든요. 지수는 한없이 맑고 순수한 아이예요. 물처럼 투명하죠. 의도치 않게 두 남자의 애간장을 태우긴 하지만(웃음). 그동안 전작에선 어둡고 센 역할들을 맡았는데 오랜만에 제 나이답게 편안하게 연기했어요. 비슷한 또래 배우들끼리 모이다 보니까 촬영장은 그야말로 시끌벅적 시골 장터 같았죠. 종종 북적이던 그때가 그리워지기도 해요. 

실제 연애할 땐 어때요. 애간장 좀 태우는 편인가요. 

전혀 안 그래요(웃음). 오히려 끌려다니는 타입이죠. 

데뷔를 2013년에 했잖아요. 

열여덟 살이었어요. jtbc 일일드라마 ‘더 이상은 못 참아’로 데뷔했을 때가. 처음이다 보니까 모르는 것 투성이였어요. 타이트 샷을 찍을 때 다른 카메라를 쳐다봐서 감독님께 혼나기도 하고요. 마음처럼 연기가 되지 않는 날엔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런데도 현장만 가면 즐겁더라고요. TV에서 보던 대선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지금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감이 넘치네요. 확실히 일에 대한 여유가 생겼나 봐요. 

아무래도 연차가 쌓이다 보니까. SBS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을 촬영할 때였어요. 희귀병 때문에 죽어가는 가영이를 연기했는데요. 마지막 신을 앞두고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몇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천장을 비추는 조명 불빛,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 그런 장면들이 슬로모션처럼 각인되더라고요. 그때 느꼈어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구나, 다시 태어나도 꼭 이 일을 해야지. 작품을 하면 할수록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믿음이 생겨요. 

배우 윤영주 씨의 딸로도 잘 알려져 있죠. 어머니 끼를 물려 받았나봐요. 

그럴 거예요. 딸은 엄마의 행동을 본능적으로 따라 하잖아요. 엄마처럼 되고 싶어서 화장대에서 새 화장품을 꺼내 망가뜨려놓기도 하고요. 제겐 연기가 그랬어요. TV에 엄마가 나오면 혀짤배기 소리로 주절주절 대사를 따라 하곤 했대요. 정작 저는 너무 어릴 때라 기억나진 않지만. 

배우가 된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놀라진 않으시던가요. 

오히려 잘 생각했다고 등을 두드려주시던데요. 배우는 내면과 외면을 가꾸는 아름다운 직업이라고요. 

어머니 얘기가 나오니까 목소리 톤이 높아졌어요. 그만큼 친구처럼 편하게 지낸다는 말이겠죠. 

제가 외동딸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형제자매 없이 혼자 자라서 엄마에게 의지를 많이 했어요. 제 정신적 지주이자 가장 친한 친구예요. 

반대로 어머니 그늘에 가려져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지금 당장 하고 싶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어요. 남들의 시선은 그리 중요하지 않달까요. 지금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솔직해지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모녀가 작품에서 만나는 것도 색다른 경험과 추억이 되겠어요.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그려온 저만의 ‘빅 픽처’예요. 언젠가 엄마랑 작품에서 꼭 만날 거예요. 모녀 사이도 괜찮고요. 옆집 아줌마랑 티격태격하는 말썽꾸러기 이웃집 딸도 재밌을 것 같은데요? 

단단해 보이는 열음 씨에게도 고민이나 걱정거리가 있겠죠. 

이별하는 게 힘들어요. 정든 회사 식구들을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거든요. 담담히 웃으면서 새로운 시작을 축하해주고 싶은데 눈물이 앞을 가려요.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캐릭터에 흠뻑 빠져 있다가 나오면, 공허해져요. 그럴 땐 뭔가를 닥치는 대로 해야 하죠. 예를 들면 먹는다거나. 

먹는 걸로 마음을 달래는 타입이군요. 

네(웃음). 폭식까진 아니고.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요. 맛있는 거 만들어 먹으면서 기분을 풀곤 해요. 

새롭게 배우고 싶은 거 있어요? 

도자 공예요. 제 손으로 만든 컵과 그릇을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집으로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담아 대접할 수도 있고요. 아, 또 얘기가 요리로 샜네요(웃음). 

이제 곧 벚꽃이 흩날릴 거예요. 밖에 나가서 놀기도 해야죠. 

그러고 보니 지금껏 벚꽃 구경을 제대로 못 했네요. 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가다가 엄마가 “열음아, 저기 꽃 좀 봐. 너무 예쁘지 않니?”라고 할 때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요즘은 옛날엔 몰랐던 일상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느껴져요. 저도 나이를 먹나 봐요. 올봄엔 꼭 도시락 싸 들고 벚꽃 구경 갈게요.

진주 장식 데님 재킷 에센셜. 와이드 데님 팬츠 힐피거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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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톱 노스프로젝트by플랫폼플레이스. 레이스 장식 미디스커트 시스템. 슬링 백 샌들 레이첼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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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딩 점프슈트 손정완. PVC 파나마 해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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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 김희준 designer 김영화
제품협찬 1064스튜디오, 그레이양 올라카일리, 노스프로젝트by플랫폼플레이스, 레이첼콕스, 삿치, 손정완, 시스템 쁘렝땅, 에센셜, 칼라거펠트, 힐피거컬렉션 헤어 윤성호 메이크업 이숙경 스타일리스트 장지연 어시스트 전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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