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성동아 로고

Fashion #joelkimbeck #column

Power of Typography

상주곶감의 조형적 아름다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엘 킴벡

입력 2018.07.16 17:00:01

조엘 킴벡의 칼레이도스코프

Power of Typography

뉴욕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네스 팰트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작업해왔다. 현재 브랜드 컨설팅 및 광고 에이전시 ‘STUDIO HANDSOME’을 이끌고 있다.


Power of Typography
혹시 ‘신흥 호남 향우회’ 사건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때는 팝 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인기 절정을 구가하던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발매하는 곡마다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고 날마다 스캔들을 양산해내던 시절이라 그녀 주변엔 늘 파파라치들이 따라다녔는데, 마침 그때 ‘신흥 호남 향우회’라는 한글 프린트가 선명한 그린색 튜브 톱 원피스를 입은 사진이 찍혔다.


‘신흥 호남 향우회’ 사건을 불러 일으킨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원피스.

‘신흥 호남 향우회’ 사건을 불러 일으킨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원피스.

유명 스타가 입은 드레스에 떡하니 한글이 적혀 있는 것도 신기한 일인데, ‘신흥 호남 향우회’라니. 대체 스피어스는 그 단체와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 궁금증이 발동한 한국의 네티즌 수사대는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입은 드레스의 정체를 파고들기 시작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영감을 받은 이탈리아 패션 디자이너 듀오 ‘돌체앤가바나’의 작품이란 소문이 돌았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게 ‘신흥 호남 향우회’ 사건의 전말은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하지만 2013년 일본 아이돌 출신의 모델 아가리에 히카리가 발매한 세미누드 사진집에 스타일은 좀 다르지만 똑같은 글씨가 새겨진 드레스가 다시 등장하면서 ‘신흥 호남 향우회’는 다시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고, 급기야 한국의 한 공중파 아침 프로그램이 디자인의 출처를 찾아나섰다. 이 방송은 ‘호남 신흥 향우회’라는 단체를 찾긴 했지만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드레스나 아가리에 히카리의 티셔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과연 누가 이 한글 프린트 의상을 만들었으며, 하필이면 왜 한국 사람이 봐도 생소한 ‘신흥 호남 향우회’라는 문구를 넣었을까. 생각건대 디자이너가 특별히 한국이나 한글에 대한 애정이 높아서라기보다는, 알파벳과는 다른 한글 서체가 주는 생소함에서 비롯된 매력을 디자인적으로 풀어낸 것이 아닐까. 

‘신흥 호남 향우회’ 이야기를 꺼낸 건, 최근 유명 브랜드에서도 한글 서체를 활용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가 2018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한글 폰트 의상이 그것이다. 라프 시몬스는 지난 시즌 영문으로 발표한 로고 티셔츠를 이번 시즌 한글 버전으로 바꾸어 출시했는데 마치 한국에서 짝퉁으로 만든 티셔츠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글 폰트가 임팩트 있게 다가온다. 특히 앞면에 굵직하게 쓰인 ‘아메리카’라는 한글은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하다.

가방 브랜드 이스트팩과 협업한 라인의 백팩에서도 한글 폰트를 발견할 수 있다. 백팩의 안감에 굵은 궁서체로 선명히 프린트된 ‘자연이 빚은 명품 상주곶감’은 마치 시골에 사는 할머니가 상주곶감을 싼 보따리 천으로 안감을 덧대어준 것은 아닌지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리얼하다. 라프 시몬스와 아디다스의 협업 제품인 라프 시몬스×스탠스미스 신발에서도 ‘상주곶감’ ‘삼도농협’이라는 프린트가 발견되는 것을 보면, 그가 요즘 한글 서체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라프 시몬스는 경상북도의 상주곶감을 먹어본 적은 있을까? 먹어보지는 못했더라도 상주곶감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 것일까?


폰트의 조형미에 매료된 디자이너들

Power of Typography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이른바 까막눈의 상태에서 보자면 그 언어가 지닌 이국적인 느낌 혹은 언어의 폰트가 보여주는 조형적인 미에 매료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 꼼데가르송,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와의 콜래보레이션으로 최근 젊은 층에서 큰 인기를 모으며 주목받고 있는 러시아 출신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의 로고 티셔츠들은 생소한 러시아의 키릴어 폰트를 전면에 프린트해 보는 이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키릴어에서만 쓰이는 생소한 알파벳들로 나열된 디자이너의 로고를 보고 있자면, 뭔가 조형적으로 낯설어서 새롭게 다가온다. 서구의 디자이너들이 한글 폰트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폰트와 폰트가 겹쳐진 듯한 한글 받침의 독특한 조형미도 디자이너들이 한글 서체를 사랑하는 이유일 것 같다. 

최근 스트리트웨어가 패션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티셔츠나 후드 티 같은 아이템들이 브랜드 주력 상품이 됐고, 이들 아이템의 앞면 혹은 뒷면에 새겨지는 프린트가 상품의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된다. 

베트멍의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 역시 단순한 패턴의 의상에 의외의 프린트를 새겨 넣으면서 자신들만의 아이덴티티를 표출해왔으며, 그가 디자인을 맡고 있는 발렌시아가 역시 티셔츠와 스웨트셔츠 또는 후드 티에 브랜드 로고 혹은 시즌의 메시지를 담은 프린트를 적용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구찌 역시 브랜드의 유구한 아카이브에서 꺼낸 로고 폰트를 디자인에 과감하게 적용하고 있으며, 최근 루이비통의 새로운 남성복 디자이너로 임명된 오프화이트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역시 매 시즌 자신의 컬렉션 메시지와 부합하는 다양한 문자를 전면에 내세운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오프화이트의 경우는 다양한 폰트와 함께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용인된 화살표와 대각선 스트라이프의 주의 표시 혹은 폴리스 라인 등 다양한 기호와 표식을 브랜드의 로고로 사용하는 대담한 발상으로 짧은 시간에 큰 인기를 누리며 성장했다. 또한 브랜드 전체 아이템 이름을 따옴표 안에 넣어서 폰트로 표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가방은 ‘BAG’으로, 양말은 ‘SOCKS’, 모자는 ‘CAP’으로 표시해 로고로 형상화하는 고난도 타이포그래피 테크닉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이러한 트렌드에 힘입어 타이포그래피를 전면에 내세운 다양한 브랜드가 젊은 층에서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고. 이번 시즌 프랑스의 캐주얼 브랜드인 메종키츠네와 협업한 아더에러를 비롯해, 배우 유아인이 참여했다고 알려진 티셔츠 브랜드 ‘베아크(VEAK)’, 인기 TV 프로그램 ‘도시어부’의 ‘Belive me, Trust me, Follow me’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비토우(Be.T.ow)까지 로고 혹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각양의 타이포그래피로 전면에 내세운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들이 출사표를 냈다. 

사실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가 있다. 론칭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나이키, 루이비통 등 수많은 브랜드들과의 콜래보레이션으로 존재감을 확장해가고 있는 슈프림(Supreme)이야 말로 패션에 있어서 타이포그래피의 파워가 얼마나 중요하며 또 대단한지를 알려주는 좋은 예이자 이정표다.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REX 디자인 최정미


여성동아 2018년 7월 655호
좋아요

Print Edition

How to be a woman

생각하는 여자가 읽는 매거진!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번호목차이번 호 구입하기

독자알림

더보기

Follow up on SNS

여성동아 에디터가 핫뉴스, 최신 트랜드와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전해 드립니다.

  • 여성동아 페이스북
  • 여성동아 인스타그램
  • 여성동아 유튜브
  • 여성동아 네이버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