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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joelkimbeck #column

Resuscitation

조엘 킴벡의 칼레이도스코프

joelkimbeck

작성일 | 2017.10.19

Resuscitation

2018 S/S 뉴욕 패션 위크 캘빈 클라인 쇼.

起 死 回 生
기사회생(起死回生)이란 단어는 죽음에 이르렀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난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패션계에는 기사회생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화려함을 목숨처럼 여기고 절대 비굴하게 보여선 안 되는 것이 이곳의 생리이기에 디자이너나 브랜드들은 파산의 문턱을 넘나드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그간 쌓아온 유산과 이미지를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망하는 한이 있어도 초라하게 퇴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이 매 시즌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자구책을 강구하는 모습을 보면, 우아한 자태로 호수 위에 유유히 떠 있는 듯하지만 물 밑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발길질을 하는 백조가 연상된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뉴욕 패션 위크에서도 죽음의 문턱까지 도달했다가 화려하게 부활한 디자이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도 그중 한 명이다.  

벨기에 출신인 라프 시몬스는 디자이너 질 샌더의 은퇴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던 브랜드 질 샌더의 책임 디자이너로 발탁돼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프랑스의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 디올의 수장을 맡으면서는 질 샌더에서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평이 대세였고, 전임자였던 존 갈리아노 시절이 디올의 최고 전성기였다는 수근거림 속에 절치부심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가 디올의 디자이너 자리에서 물러나자 사람들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입을 모아 “디올은 라프 시몬스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고 위로하듯 말했다.

말이 나온 김에 존 갈리아노의 이야기를 하자면, 디올의 디자이너로 패션계에 한 획을 그었던 그는 2011년 유대인 비하 발언이 문제가 돼 디올을 떠난 후 한동안 회한의 시간을 보내다가 2014년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디자이너로 복귀해 착실히 과거의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존 갈리아노가 합류한 후 메종 마르지엘라로 간판을 바꾼 이 브랜드는 지난 2년간 매출이 30% 이상 상승했고, 한때 패션계에서 영원히 퇴출될 뻔한 존 갈리아노는 기사회생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다시 라프 시몬스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디올을 떠난 후 그는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 캘빈 클라인으로부터 러브 콜을 받았다. 캘빈 클라인은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이 은퇴한 이후 여성복은 프란시스코 코스타가, 남성복은 이탈로 주첼리가 나눠 맡았지만 예전 같은 명성은 이어가지 못했다. 영국 출신 디자이너 케빈 캐리건을 영입해 다시 한 번 도약을 시도했으나 그 역시 영광을 보지 못하고 빛이 바랬다. 

지난 2월 열린 라프 시몬스의 캘빈 클라인 데뷔 컬렉션은 패션 피플들의 기대감을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 성공적이었다. 캘빈 클라인의 패션쇼가 뉴욕 패션 위크에서 주목받았던 때가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시점에서, 라프 시몬스라는 카드로 다시 한 번 뉴욕 패션 피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Resuscitation

2018 S/S 뉴욕 패션 위크 헬무트 랭 쇼와 캘빈 클라인 쇼에 등장한 셰인 올리버.

Resuscitation

2018 S/S 뉴욕 패션 위크 헬무트 랭 쇼와 캘빈 클라인 쇼에 등장한 라프 시몬스.


디자이너들은 화려한 데뷔 이후 그다음 컬렉션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진짜 실력은 두 번째 쇼에서 드러난다는 것이 패션계의 중론이다. 지난 9월 8일 열린 라프 시몬스의 캘빈 클라인 쇼는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첫 작품에서 성공한 후 내놓은 두 번째 작품이 흥행이나 완성도에서 첫 작품에 비해 부진한 상황)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낸 멋진 무대였다. 첫 번째 시즌에서는 앞으로의 포부를 드러내는 듯한 거대한 콘셉트가 느껴졌다면, 이번 컬렉션에서는 당장 입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아이템이 가득했다. 특히 라프 시몬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캘빈 클라인이라는 패션 브랜드와 앤디 워홀을 비롯한 팝아트 작가들의 작품을 맛깔스럽게 접목하는 실력을 발휘했다.

쇼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프레스와 바이어들에게 쇼 다음 날 바로 공개되는 리시(Resee) 현장을 방문해서 직접 손으로 소재를 만져보고 눈으로 컬러감과 피팅감을 느껴보니 확실히 데뷔 시즌보다 웨어러블한 아이템이 즐비했다. 라프 시몬스가 그간의 슬럼프를 딛고 일어서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브랜드를 만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라프 시몬스와 캘빈 클라인 모두 기사회생에 성공한 것이다.

이번 시즌 뉴욕 패션 위크의 또 하나 큰 화젯거리는, 하위문화와 젠더리스를 기반으로 뉴욕 스트리트 스타일을 대변하며 승승장구했던 브랜드 후드바이에어의 몰락과 그 디자이너들의 새로운 도전이다. 후드바이에어는 스트리트 신의 브랜드가 럭셔리 브랜드로 전환하는 시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브랜드 중 하나다. 한동안 꺾이지 않을 듯한 인기를 자랑하던 이 브랜드는 갑자기 뉴욕 쇼를 연기하더니 파리 컬렉션 진출을 선언했다. 그리고 얼마 안 돼 파리 컬렉션까지 취소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공식적인 이유는 휴지기를 갖겠다는 것이었다. 후드바이에어를 이끌어온 두 디자이너 레이라 웨인라우브와 셰인 올리버는 휴지기 동안 개인 활동에 전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레이라 웨인라우브는 영화를 제작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논란이 된 인물은 헬무트 랭의 새로운 멤버로 이번 뉴욕 패션 위크에 컬렉션을 선보인 디자이너 셰인 올리버다. 후드바이에어의 팬들은 주목받고 있는 번듯한 자신의 브랜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콜래보레이션도 아니고 다른 이가 디자이너로 있는 브랜드에서 컬렉션을 선보인 셰인 올리버의 행보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패션계 소식통들의 전언에 의하면 후드바이에어는 브랜드의 성공과는 별개로 내부적으로는 여러 문제가 많았으며, 그럼에도 브랜드를 접는 것보다는 휴지기라는 표현 하에 다른 활로를 모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논란도 하나의 관심의 표현이기에, 그간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헬무트 랭 쇼가 이렇게 회자되는 건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자신의 잘나가던 브랜드를 뒤로한 셰인 올리버가 과연 기사회생이 가능할지는 두 번째 시즌을 보면 명확히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조엘 킴벡

Resuscitation

● 뉴욕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줄리아 로버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현재 브랜드 컨설팅 및 광고 에이전시 ‘STUDIO HANDSOME’을 이끌며, 브랜드 컨설팅과 광고 만드는 일을 한다. 〈레드 카펫〉을 번역하고 〈패션 뮤즈〉를 펴냈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에 칼럼을 기고한다.



director Kim Myung Hui designer Choi Jeong Mi
사진 R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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