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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politics #singer

허경영 씨 농담도 잘하시네요

editor 정희순

2017. 04. 18

처음엔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고 보니 궁금증이 ‘풀렸다’기보다 ‘사라졌다’. 허경영과의 만남은 그랬다.

2012년 그는 한 인터넷 방송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 정부는 5년을 가지 못한다고 본다.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일어나고 대통령은 그걸 개헌 정국으로 덮으려고 할 거다”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그의 과거 발언은 현실화됐고, 사람들은 그를 ‘허스트라다무스’라 불렀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엔 ‘신선한’ 바람이 불었다.

이름하여 ‘허경영 신드롬’이다. 우스꽝스러운 기행과 허무맹랑한 공약으로 눈길을 끌었던 허경영(67)이 지난 3월 1일 또 한 번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의 의사와는 달리, 그는 선거에 출마할 수 없는 상태다. 2008년 12월에 공직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2020년 6월 이후에나 공직 선거 출마가 가능하다.

재밌는 건 그의 출마 소식을 대하는 대중의 반응이었다. 그의 출마 소식을 전한 기사에 누리꾼들은 ‘그를 뽑겠다’는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물론 거기엔 ‘ㅋㅋㅋ’가 항상 따라다녔지만 말이다. 그의 대선 출마는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허경영 신드롬’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터넷 대통령’으로 군림하는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흔쾌히 “저희 집으로 오세요” 하며 주소를 알려줬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서울 도심에서 차로 40여 분 거리인 경기도 장흥에 위치한 한 한옥.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이 집의 현관문 위쪽에는 ‘하늘궁’이라는 글자가 멋들어지게 쓰여 있었다. 공식 석상에 나올 때마다 늘 슈트에 빨간 타이를 하고 있는 허경영은 그날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집이 참 운치 있네요. 이 집은 언제 마련하셨나요.

10년 전부터 준비해 이곳에 1만 평(3만3057㎡) 정도의 땅을 샀어요. 여기 들어온 건 1년 정도 됐죠. 이곳이 마음에 들어 자리를 잡았는데,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 여길 보시고는 “세계 최고의 재벌이나 황제가 나올 자리”라고 하시더라고요.

1만 평요? 이 땅을 다 어디에 쓰시려고요. 
‘허경영 빌리지’를 지어 국제적인 관광 명소로 만들 계획이에요. 저를 만나기 위해 세계인들이 이곳을 방문할 텐데 지금의 이 집에는 1백 명 정도밖에 들어올 수 없잖아요. 좀 더 큰 공간이 필요하겠다 싶어 집 옆에 여러 채의 빌딩 올리는 걸 구상 중이에요. 10년 안에 이곳을 관광의 메카로 만들어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을 벌어들이는 게 목표죠. 앞으로 이곳은 ‘허경영의 메카’가 될 거예요.



▼하늘궁이라는 건 무슨 뜻인가요.
우주에는 수많은 별이 있고, 그 많은 별을 통제하는 또 하나의 별이 있는데 그곳이 하늘궁이에요. 세계 통일의 목적을 이루고자 그곳에서 제가 이리로 보내진 거죠.

여전했다. 2007년 대선 당시 기호 8번으로 출마한 그는 ‘8번 찍으면 팔자 핍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자신을 IQ 430의 천재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각종 쇼와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축지법과 공중부양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시범을 보여달라는 주문엔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거절했다.

그래서 실제로 그가 이런 초능력을 가졌는지를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장 궁금했던 건 그의 경제력 부분이었는데, 그는 “내 이름으로 된 자산은 30억원 정도고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의 규모는 수백억원이다”라고 주장했다.

수입에 대해 물었을 땐 잠시 망설이더니 “대통령 월급의 10배 정도”라고 설명했다.대체 돈을 어디서 그렇게 벌었냐고 묻자 그는 국내 굴지의 재벌 기업 창업주의 이름을 대면서 “그의 숨겨진 양아들이었고 그로부터 상속을 받았다”고 말했다.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다.

▼허경영 전 총재를 인터뷰하게 됐다고 하니 주변에서 하나같이 “그분 대체 뭐 하는 분이야?” 하고 묻더라고요. 
사람들이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해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으니까. 간혹 저를 종교인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정치인이에요. 여러분을 위해 기존의 잘못된 정치 시스템을 바꾸는 게 제가 이곳에 온 이유죠. 이 세계는 정치 시스템이 정말 잘못돼 있어요.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몇몇 사람들이 가진 재화는 어마어마한데 다른 한쪽에선 굶어 죽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계속 대선 후보에 출마하시는 이유도 그건가요. 얼마 전에도 출마 선언을 하셨던데요. 물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선 ‘안 된다’고 했지만요.
그런 셈이죠. 대한민국을 통일하고 전 세계를 통일한 후 황제의 자리에 올라갈 거예요. 대통령은 세계를 통일하려는 꿈을 이루는 수단일 뿐 그 자체가 제 목적이라고 볼 순 없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나면(대통령이 파면되기 전날 인터뷰를 진행했다) 황교안 총리가 저를 복권시켜줄 거예요.

그의 발언은 이렇게 항상 아슬아슬하다. 따지고 보면 그가 이번 대선에 출마할 수 없는 것도 과거 그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박근혜 결혼설’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2007년 대선 당시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 계셨을 때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의 혼담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허경영-박근혜 결혼설’에 불씨를 지폈다.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선 그를 고소했고, 그는 계속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심까지 갔지만 결국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으로 그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감옥에서 1년 6개월가량을 지내셨는데 그곳 생활은 어땠나요.
사람들은 감옥에서 괴로웠겠다고 하는데 오히려 편하더라고요. 그만한 낙원이 또 있을까 싶어요. 그곳에선 어떤 고민이나 욕심도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으니까요.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국민에게 고맙고 또 미안하더라고요.

▼그곳에서 정책 연구도 좀 하셨나요.

아니요. 제가 내는 정책은 이미 다 제 머릿속에 있는 것들이에요. 이미 저는 향후 대통령이 되면 펼칠 정국 구상도 다 끝냈어요. 그걸 끄집어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만 남은 거죠.

그에게 정책 연구에 대해 물어본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들어 허경영이 냈던 과거 공약들이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 17대 대선에서 그가 내세웠다 “실현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공약들 중 일부는 10년이 지난 지금 현실화됐다.

대표적인 것이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하겠다던 노인 수당과 각 지자체의 출산장려금 등이다. 이번에 대선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들이 과거 허경영의 공약과 일맥상통한다는 분석도 많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모병제 도입’ 주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의 ‘국회의원 100인 축소’ 주장이 대표적이다.

▼과거 내세웠던 공약들이 재조명되고 있어요. 감회가 어떠세요.

출처가 분명한데 마치 자신들이 최초로 내세웠던 것인 양 제 공약을 가져다 쓰는 걸 막기 위해 제 공약들은 지적재산권 등록을 해뒀어요. 자고로 정치는 미래를 보며 나아가야 해요. 시대를 앞서가야 하는 거죠. 당시엔 ‘미친 공약’이라고 무시당했던 제 공약이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게 한편으론 안타까워요.

뭐니 뭐니 해도 화제를 모은 건 2012년 그가 한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말이다. 당시 그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 정부는 5년을 가지 못한다고 본다.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일어나고 대통령은 그걸 개헌 정국으로 덮으려고 할 거다”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그의 과거 발언은 박근혜 정부 4년 차에 들어서 현실화됐고, 사람들은 그를 ‘허스트라다무스’라 불렀다. 그에게 정말 예지력이 있는 건지 어쩌다 한 번 얻어걸린 건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쨌거나 ‘허경영의 과거 발언’이 한동안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차트를 장식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대통령은 못 되어도 ‘소통’령은 가능


그가 차트를 장식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만기 출소한 이후에는 ‘만년 대선 후보’에서 ‘가수’로 전업했다. 본좌엔터테인먼트라는 연예 기획사를 설립하더니 첫 번째 싱글 앨범 를 발표했다. ‘Call Me’는 음악성을 따지기 무안할 정도로 조악한 곡이지만, ‘내 눈을 바라봐’ ‘허경영을 불러봐’라는 구절을 반복적으로 담은 중독성 있는 가사가 화제를 모으며 그는 각종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석권했다. 그의 발언과 노래 가사는 온라인상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출소 후엔 가수로 앨범도 내셨더라고요.

제 정책과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이죠. 데뷔곡인 ‘Call Me’는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인기가 어마어마했죠. 이것만 봐도 제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지 않나요? 그 이후로도 7~8곡 정도 더 냈어요. 2009년에 “허경영을 불러봐” 하면서 제 노래를 따라 했던 초등학생들이 이제는 투표권이 있는 20대가 된 거예요.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저를 제외해서 그렇지, 아마 그 후보군에 제가 포함되면 80% 이상의 사람들이 저를 지지한다고 답할 거예요. 

그는 계속해서 신곡을 발표하는 이유에 대해 “내가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소통의 아이콘”이라 칭했다. 허경영의 다른 말들은 모두 거짓이라 할지라도 이것만큼은 진짜인 듯했다. 인터뷰 도중 그의 휴대전화에는 10여 차례  전화가 걸려왔다. 그때마다 그는 “허경영입니다” 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휴대전화 너머로 앳된 목소리의 아이들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허경영! 허경영! 허경영!” 하고 그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다 ‘내 이름을 세 번만 부르면 자연스레 웃음이 나올 것이야’라는 그의 노래 가사 때문이었다.

▼전화가 계속 오네요(웃음).
오늘이 고등학생들이 전국 모의고사를 치르는 날이에요. 허경영의 이름을 부르면 시험도 잘 볼 수 있다고 하니까 이런 날은 유난히 학생들이 전화를 많이 걸어요. 쉬는 시간마다 전화를 걸어서 자기를 응원해달라고 하는 거죠.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아예 공개하신 거예요.
처음부터 공개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예전에 한 방송사 PD가 자기 딸에게 제 번호를 알려줬는데 그 아이가 그걸 어디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나 봐요. 많을 땐 하루에 5천 통 가까이 문자 메시지와 전화를 받아본 적도 있어요. 결국 휴대전화를 두 대 더 장만해서 하나는 업무용, 다른 하나는 개인용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원래 가지고 있던 건 이렇게 대중 소통용으로 쓰는 거고요.

▼그래도 명색이 정치인인데, 사람들이 코미디언처럼 생각하는 게 서운하진 않으세요.
전혀요. 얼마 전에 식사를 하러 한 식당에 갔는데 저를 알아본 사람들이 단체로 제 이름을 연호하는 통에 난리도 아니었어요. 얼굴 표정에 벌써 ‘허경영 팬’이라고 쓰여 있는 분들이셨죠. 대중이 저를 진지하게 보고 안 보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저는 그저 묵묵히 제 길을 가면 되니까요. 사람들이 제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면 그게 어디 허경영이겠어요? 기성 정치인이나 다를 게 없는 거지.

▼다른 건 몰라도 외모는 정치인 같으세요(웃음). 늘 같은 슈트에 빨간 넥타이를 매시잖아요.   
제 의상은 전체가 ‘태극기’ 콘셉트예요. 넥타이는 태극기의 원 안에 있는 빨강을 형상화한 거고, 슈트는 파랑을 의미하죠. 제 팔다리와 눈썹은 ‘태극기의 괘’라고 생각해요. 한마디로, 제 몸이 움직이는 태극기가 되는 거죠. 산에 오를 때도 늘 이 차림이에요. 어차피 공중부양과 축지법을 쓰니까 구두에 슈트 차림이 그리 고생스럽지도 않아요. 남들 2시간 걸리는 거리를 10분이면 가니까요. 거짓말 아니에요. 한번 보실래요? 
 
그는 ‘알아서’ 인터뷰를 정리하더니 현관 밖으로 나가 하늘궁 앞에서 축지법을 시도한다. 다리 한쪽을 머리 높이로 들고 중심을 잡고 서 있는 게 그가 말하는 축지법이다. 10초도 못 가 비틀거리는 그의 모습에 킥킥거리며 웃었는데, 그사이 그는 들었던 다리를 슬쩍 내려놓고는 너무도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하는 거예요” 하고 말했다.

그러더니 이번엔 공중부양을 보여주겠다며 자세를 잡는다. 마루에 앉아 두 주먹에 몸 전체의 무게를 싣고 1~2초간 엉덩이를 땅에서 들어 올리는 것인데 허경영은 그걸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만 하면 됐다 싶었는지 사진 기자에게 “잘 찍혔어요?” 하고 묻는다.

잠시 엉덩이가 땅에서 떨어졌을 때 그 순간을 잘 포착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허경영의 허풍이 얄밉지가 않다. 그의 꿈인 ‘세계 통일’은 여전히 요원해보이지만, 모두의 ‘웃음 통일’은 이뤄냈으니 행복한 인생으로 봐도 괜찮지 않을까.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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