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interview #gender_equality

‘평등을 일상으로’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EDITOR 김지영 기자

2019. 05. 02

독박 육아, 경력 단절 등 여성들이 짊어진 고충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몰카’ 성범죄 등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 방법이 없을까. 소관 부처의 수장이자 인권 변호사 출신인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그 답을 구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지역감정이나 세대 간 갈등과는 또 다른 젠더 이슈로 양분돼 있다. 남성과 여성이 학교나 직장 혹은 가정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과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각종 범죄 형태로 해소하며 서로를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서다. 최근 클럽 버닝썬에서 벌어진 성범죄와 정준영 등 일부 연예인들이 불법 촬영한 성관계 영상을 유포한 사건, 이들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사용한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 등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더 큰 갈등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재취업의 어려움을 겪다 보니 2030세대를 중심으로 결혼 자체를 꺼리거나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경향도 갈수록 짙어지는 추세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현안들을 해결해야 하는 주무 부처 여성가족부는 그동안 다양한 해법 마련에 속도를 내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난해 9월 취임한 진선미(52) 장관이 있다. 전북 순창 출신으로 성균관대 법학과 졸업 후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진 장관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호주제 위헌 소송변호인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인권 변호사로 명성을 떨쳤다. 그가 참여한 호주제 위헌 소송을 비롯해 트랜스젠더 하리수의 성명권 분쟁과 배우 최진실 친권 소송,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철거민을 위한 소송 등은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를 이끄는 데 일조했다. 

2012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2016년 재선에 성공한 그는 지난해 장관이 되기 전까지 6년간 국회 아동·여성 대상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 위원,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 간사 등을 지내며 약자의 편에서 목소리를 높여왔다. 2005년 호주제 폐지, 2015년 음란 사이트 소라넷 폐지에 기여한 공로로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로의 진입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 진 장관을 4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났다.

어릴 때부터 정치인을 꿈꿨습니까. 



지금 모습으로는 연상이 잘 안 되시겠지만 학창 시절엔 굉장히 수줍음 많은 모범생이었어요(웃음). 장래 희망이 시시각각 바뀌었는데 정치인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순창문화원장까지 지내신 아버지가 중3 때 돌아가셔서 학교 등록금이 밀릴 정도로 가정 형편은 어려웠지만 오빠 네 명에게 사랑을 받는 막내였어요. 어머니는 사내아이들 사이에서 자라는 딸에 대한 우려가 많았어요. 제가 남자처럼 크는 걸 경계하며 남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늘 조신하라고 강조하셨죠. 여성은 여성다워야 하고 남에게 흠잡힐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의식이 강한 분이시거든요. 

보수적인 가풍 속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지는 않았나요. 

어릴 땐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었어요. 제가 자란 시골 마을에서 ‘아비 없는 자식’이란 소리 듣지 않으려고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어른들에게 잘 보이려는 성향이 있었죠. 그러다 변호사가 되면서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고 다양한 고민들을 하면서 제 자신이 굉장히 억압된 삶을 살아왔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법학과에 진학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당시는 법대에 가는 여학생이 드물던 시절이었는데요. 

집안이 여유롭지 않으니까 등록금이 저렴한 교대에 진학할 생각도 있었는데 큰오빠의 영향으로 법대에 들어갔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사회라고 했더니 큰오빠가 법대 진학을 권했어요. 큰오빠는 제 대학 선배고 법조인 선배이기도 해요. 판사를 하다 지금은 전북 전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계세요. 

학교에서는 진로 지도를 어떻게 해줬나요. 

교장 선생님이 고3 여름방학 때 교장실로 저를 불러 희망 대학을 물으셨어요. 이화여대나 연세대라고 답했더니 당황하시는 기색이 역력했어요.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제가 처음이었거든요. 시골에 있는 작은 학교라 과목마다 선생님을 둘 형편도 아니었어요. 음악 선생님이 국토지리까지 가르치실 정도로요. 지역 격차, 빈부 차, 성차별을 그때부터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그 당시의 경험이 변호사로서의 제 열정과 의지에도 영향을 미쳤고요. 

처음 변호사가 됐을 때 가졌던 마음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신지요. 

사법시험 합격 후에도 판사나 검사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법무법인 덕수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자연스럽게 변호사로 취직하게 됐어요. 그곳엔 동성동본 금혼, 호주제 등 성차별적인 법조문을 찾아내 문제를 제기한 이석태 대표변호사를 비롯해 사회의 소수자나 약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려는 변호사들이 많았어요. 그런 분들과 변호사로 새 삶을 시작하면서 저도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우리 사회에 구조화된 성차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정치에 뜻을 두게 됐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때처럼 이돈명 변호사의 “법이 따뜻한 한 그릇의 밥일 수 있다”는 말씀을 늘 되새기면서 제가 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늘 마음에 새기는 문구는 ‘불이(不二)’예요. 겉으론 별개인 것 같지만 그 근간에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의미로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제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수자 편에 서면 비난받는 일도 빈번하지만, 그럼에도 항상 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1998년 결혼했지만 호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혼인신고를 미뤘더군요. 그 이유가 뭔가요.

성균관대 법대 신입생 시절 6세 연상의 복학생인 남편(이상문 한양네비콤 대표)을 만나 14년 열애 끝에 사법연수원을 마칠 무렵 결혼했는데,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제가 남편을 호주로 하는 게 당연시되는 혼인신고를 하는 게 마음에 걸렸어요. 결국 18년 동안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다가 호주제가 폐지된 이후인 2016년 혼인신고를 했죠.

남편은 장관님께 어떤 존재인가요.

인생의 동반자이자 솔메이트예요. 제 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기와 빛나는 시기를 다 지켜본 사람이거든요. 1990년부터 수많은 일을 겪었는데, 제 남편은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회사와 직원들의 삶을 유지하는 데 노력했고 제가 힘들 때도 묵묵히 옆자리를 지켜준 ‘키다리 아저씨’예요. 부산 남자와 전북 순창 여자의 만남이라 처음엔 양쪽 집안에서 다 저희 결혼을 반대했어요. 함께하는 삶 속에서 사회적 인습, 선입견을 겪으며 모두 극복해냈죠. 시어머니가 경남 함안 분인데 2015년 돌아가실 때까지 저를 ‘예삐’라고 부르셨어요. 아들만 둘이라 막내며느리인 저를 무척 예뻐하셨거든요. 인습도 인간관계를 통해 극복이 가능하더라고요. 살면서 배운 게 많아요.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배려하면서 모든 갈등을 풀면 좋겠어요.

워킹맘의 고충도 잘 헤아리고 계실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맘’은 아니에요. 변호사로 일할 때 아이가 유산됐어요.

죄송합니다. 그런 일을 겪으신 줄은 몰랐어요.

괜찮아요. 그렇게 내밀한 부분까지 알긴 어렵죠. 아이를 두 번 정도 잃은 경험이 있어서 아이의 소중함을 더욱 절감하고 있고, 아이들을 보면 남 같지 않아요. 조카들을 보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저는 제 자신이 다른 사회적 아이들을 키운다는 마음 자세로 여성가족부의 관련 정책들을 챙기고 있어요.

여성가족부의 수장으로서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정책을 이끌고 계십니까.

여성가족부가 ‘여성만’을 위해 일한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어 정말 안타까워요. 저는 성평등이 남녀 갈등이나 투쟁이 아닌, 남녀가 함께 발전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고 싶어요. 이 같은 인식을 모든 국민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제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부장제 같은 낡은 규범은 사라지고 있지만, 평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관계 맺는 건 여전히 서툴고 낯설어 해요. 각계각층 국민들을 직접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족의 개별성을 존중하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틀을 새롭게 마련해 누구나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요. 특히 그동안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던 가족이 일상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포용하는 사회문화 조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죠. 앞으로도 여성가족부는 ‘평등을 일상으로’라는 슬로건처럼 우리 사회가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일에 앞장서면서 모든 국민에게 ‘내 편’이 돼주는 부처가 되려고 해요.

젠더 갈등이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언제부터 이 문제가 본격화했다고 보시나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시작되면서부터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제가 의원으로 일하던 2015년 초기 소라넷 사이트에 대한 공포가 엄청났어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여성을 취하게 만들어서 강간하는 동영상을 소라넷에 올리는 범죄가 이 사이트 내에서 영향력과 인기를 얻기 위한 놀이처럼 벌어지고 있었거든요. 당시 20대 여성들이 제게 전달한 공포심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어요. 예전에는 음습한 골목에 가지 않고 밤늦게 다니지 않으면 자신을 지킬 수 있었는데 믿었던 남동생, 애인, 전남편, 아들이 장난 삼아 올렸거든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공간과 상대에게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다 보니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어디서도 안심할 수 없게 됐죠. 이런 상황에 대한 공포심과 분노가 폭발하다 보니 결국은 혐오가 혐오를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상호 간에 감정이 점점 격화하는 상황이에요.

갈등 해소를 위해 여성가족부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지난해 20대 남녀의 성평등 인식을 조사해보니 현재 젠더 갈등엔 청년 일자리, 폭력으로부터의 안전 등 다양한 이슈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어요. 특히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최근 빠르게 변화하면서 이에 대한 남녀의 생각과 기대 수준의 차이가 젠더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실정이에요. 여성가족부는 그동안 구조적인 성차별을 해소하려고 성평등 확산 등 제도와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해왔어요. 앞으로 남녀 모두의 목소리를 적극 수렴해 갈등과 논의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힘쓰고 있고요. 특히 2030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들여다보고 문제 해결을 위한 건설적인 의제를 설정하는 청년 참여 플랫폼을 마련해 그들의 의견을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 반영할 거예요.

최근 서울 금천구에서 아이돌보미가 아동을 학대하는 사건이 있었죠. 그럼에도 엄마들은 여전히 아이돌봄 지원 확대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를 충족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됐습니까.

먼저 이번 사건으로 심려를 끼쳐 정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온종일 아이돌봄 수요가 많아 올해 서비스 이용 대상을 전년 대비 2배 이상으로 확대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같아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이돌보미를 뽑는 단계에서부터 업무 모니터링, 재교육, 사후 관리 등 사업 전반을 재점검하고 있으며 재발 방지를 위한 아동학대 예방 대책을 강화할 계획이에요. 아이돌보미에 대한 아동학대 예방 교육을 당장 4월부터 실시하고, 아이돌보미 양성과 보수 교육 과정에서 아동학대 관련 지도를 강화할 겁니다. 또 채용 절차와 결격사유, 자격정지 기준 등도 대폭 강화해나갈 계획이고요. 또한 이용자의 편의 제고를 위해 대기 순번 등 정보를 실시간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내년부터 시행하려고 해요.

최근 연예인 등의 불법 촬영물 유포가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디지털 성범죄가 크게 늘고 있는데도 구속되거나 실질적인 처벌을 받는 건수는 미미한 수준이에요. 이를 근절하기 위한 여성가족부의 대책을 듣고 싶습니다.

지난해 12월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성폭력처벌법’ 개정이 이뤄졌어요. 이제는 동의 없이 촬영하는 행위와 이를 유포하는 행위 모두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져요. 또 영리 목적으로 불법 촬영한 영상을 유포한 경우는 7년 이하의 징역형으로만 처벌할 수 있어요. 이에 따라 앞으로는 불법 촬영, 불법 유포, 재유포, 허위사실 유포 등의 행위는 모두 범죄이며 이를 보는 것도 범죄를 조장하는 행위라는 인식 개선을 추진해나갈 계획이에요. 여성가족부는 현재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통해 상담, 삭제, 수사 등 맞춤형 지원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어요. 또한 성폭력피해상담소·해바라기센터 등과 연계해 심리치료 등 의료비 지원과 무료법률지원사업을 통한 소송 지원 서비스도 계속 추진할 겁니다.

내년 총선에 나갈 거라고 일찍이 밝히셨어요. 그때까지 여성가족부 장관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요.

제 임기 동안 민간 영역에서도 이제 차이가 차별을 낳지 않고 차이가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좀 더 수평적이고 평등한 사회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다른 부처와 연합해 시너지를 내는 여성가족부의 특성상 남이 알아주지 않을지언정, 그리고 당장 표가 나지 않을지언정 저의 여러 노력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어디서나 안전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변화의 기반이 되면 좋겠어요.

홍중식 기자 디자인 김영화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