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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신 스틸러 민진웅

EDITOR 김지은

입력 2019.03.21 17:00:01

가상현실 게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주연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여준 남자가 있다. 현빈의 남자, 서 비서로 열연한 배우 민진웅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신 스틸러 민진웅
“CG 작업이 많은 드라마다 보니 상상력을 많이 필요로 했어요. 대본을 보면서도 이건 어떻게 표현될까 궁금할 때가 많았거든요. 내가 상상하던 천둥번개와 먹구름, 다른 배우나 스태프가 상상하던 천둥번개와 먹구름, 그리고 실제 드라마로 표현된 것들은 모두 다를 수 있으니까요. 1회가 방영되던 날, 처음으로 시청자 입장에서 드라마를 봤는데 정말 재미있고 신이 나더라고요. 저 멀리서 포탄이 날아와서 ‘뻥~!’ 터지는데, 와 대본에 쓰인 게 이렇게 표현되는구나, 신기했죠.” 

TV 또는 영화로만 만나던 인물을 실제로 봤을 때 전혀 다른 인물을 만난 듯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만, 늘 만나왔던 그 사람 그대로가 눈앞에 있는 듯 편안하고 친근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끝난 뒤 배우 민진웅(33)을 만났을 때 느낌은 후자였다. 화면을 통해 가늠했던 것보다 훨씬 큰 키에 소년 같은 말간 표정이 기대 이상으로 매력적이라는 점을 빼고는 말이다. 

그를 설명하려면 아직은 이름 석 자보다 극 중 유진우(현빈)의 충복으로 활약한 ‘서정훈 비서’를 떠올리는 쪽이 더 쉽다. 서정훈은 서글서글하고 명랑 쾌활한 성격으로 진우의 신경질과 변덕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스타일. 진우가 유일하게 긴장을 풀고 진심으로 편안하게 대하는, 진우의 수행비서이자 유일한 동맹이다. 끝까지 진우의 곁을 지키다 종래에는 그 손에 죽임까지 당하는 비운의 남자로 열연을 펼친 민진웅과 현빈이 선보인 ‘브로맨스’는 보는 이들의 눈시울마저 뜨겁게 만들 만큼 애틋했다는 평을 받았다. 

“연기에 대한 부담은 없었어요. 저는 그냥 선배님들이 주시는 대로 받기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파트너 복이 정말 많았죠.” 

올해로 데뷔 5년 차. 영화 ‘패션왕’을 시작으로 드라마 ‘혼술남녀’, 영화 ‘성난 변호사’ ‘검은 사제들’ ‘동주’ ‘7년의 밤’ ‘말모이’ 등으로 소소하게 얼굴을 알려왔지만 이번 작품은 그에게 ‘신 스틸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존재감 확실한 배우로 얼굴 도장을 찍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사실 촬영은 숱한 돌발 상황과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게임 속 가상현실이라는 낯선 소재를 드라마화하는 것은 베테랑 배우들에게도 결코 녹록지 않은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연기 경력이 그리 길지 않은 그에게는 더더욱 낯설고 어려운 순간이 많았을 터. 그런 점에서 7개월여를 함께한 동료들은 모두가 그의 스승이었다.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 안긴 배우 현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신 스틸러 민진웅
“누구랄 것도 없이 자기 일처럼 챙기고 나서줬어요. 제가 연기 때문에 고민할 때면 배우는 물론 스태프까지 함께 모여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거나 전화를 주고받으며 격려해주셨죠. (현)빈 형뿐만 아니라 희주 역을 맡은 (박)신혜도, 정세주 역의 (박)찬열도, 차형석 역의 (박)훈 형도, 박선호 역의 (이)승준 형도 저에겐 너무나도 고마운 선생님입니다.” 

특히 그의 연기 파트너였던 현빈은 멀리서 알던 모습보다 더 멋지고 훌륭한 배우이자 형으로 남겨졌다. 드라마에선 그가 현빈을 보필하는 역할이었지만 촬영장에선 오히려 현빈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는 것. 

“촬영을 하다 보면 다시 한 번 찍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신이 있잖아요. 한 번은 타이밍을 놓쳐서 말을 못 하고 그냥 넘어갈 뻔한 적이 있었는데 형이 눈치를 채고는 ‘다음부터는 모니터링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시 찍고 싶은 장면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제 입장에선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니까 ‘어떻게 그래요?’ 했더니 형이 ‘그러면, 신호를 정하자!’ 그러더라고요. 제가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면 형이 ‘한 번 더 갈게요!’라고 말해주는 걸로요. 정말 든든했어요.”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알지 못하는, 일종의 전우애 같은 감정이 배우들 사이에 끈끈하게 남은 건 촬영이 진행된 7개월간 그들만이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많이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몇 시간을 공들여 촬영한 신이 편집 후엔 고작 몇 초의 찰나로 스쳐 지날 때면 고생스러웠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며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가상현실을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이나 물체를 ‘있는 것처럼’ 연기해야 하는 신, 한 장면을 여러 컷으로 분할해서 사용해야 하는 신도 부지기수였다. 잠시 긴장의 끈을 놓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누군가 다칠 수 있는 액션 신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도 30합이 넘는 액션 신을 한 번에 소화해낸 현빈은 배우로서,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안긴 사람이었다. 

“빈이 형이랑 같이 촬영한 신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특히 마지막 회에서 게임 속 제 존재가 버그로 인식돼 삭제당할 때는 정말 감정이 북받쳐 오르더라고요. 형이 저를 안고서 찌르려다 못 찌르고 머뭇머뭇 하는 장면이었는데, 얼굴을 볼 순 없지만 그 호흡이 하나하나 다 느껴지니까 울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덩달아 눈물이 차오르더라고요. 다행히 촬영감독님이 앵글을 잘 잡아주셔서 위기를 모면하긴 했지만요.” 

‘형’이라 스스럼없이 부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긴 했지만 실제 연기 경력으로만 따지면 현빈은 민진웅과 네 살이라는 나이 차가 무색할 만큼 대선배에 가깝다. 배우로서, 어쩌면 그의 곁이라 더 감추기 어려웠을 마음 속 조바심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극복했다기보다 극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거예요. 조바심을 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누군가와 저 자신을 비교하게도 되고요. 그런데 다행인 건 제가 자신에게 굉장히 차갑고 냉정한 편이라는 거예요.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저 스스로에게 빨리 현실을 깨닫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다독이거든요. 이건 워낙 어릴 때부터 제가 스스로를 컨트롤해온 방법인 거 같아요.”


법대 다니다 한예종 입학한 ‘뇌섹남’, 최고의 연기 스승은 연인 노수산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신 스틸러 민진웅
그래서일까. 그는 스물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데뷔한 것에 대해서도 “너무 이른 것은 아니었나 자문해보곤 한다”고 했다. 

“5년 전 현재 소속사에서 배우 데뷔를 제의해왔을 때 거절할까도 생각했었어요. 데뷔가 너무 이른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학교 졸업반이긴 했지만 ‘연극을 했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정도의 이력이 전부였으니까요.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나가려고 준비하는 단계 정도였달까요. 주변에서도 너무 급히 가지 말라고 조언해주시는 분들이 계셨고요. 당시 제 생각은 연극 무대에서 열심히 연기 활동을 계속하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40대가 지나서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작품을 해볼 기회가 올 수도 있겠다는 정도였어요. 더군다나 특별히 외모가 잘생긴 것도 아니고, 주변을 둘러봐도 저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연기하는 친구들이 많고, 그런 면에서 저는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쪽에 속하니까요. 그런데 제가 정말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좋은 제안을 마다할 필요는 없다’면서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네 뿌리가 연극이란 것만 잊지 말아라’고요.”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 얘기했지만 알고 보면 그는 연예계에 숨겨진 또 한 명의 보석 같은 ‘뇌섹남’이다. 지난 1월 말 tvN 예능 프로그램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에 출연한 그를 두고 전현무는 “인터뷰 때 ‘나 머리 별로 안 좋아’라고 말했는데 확인해보니 고등학교 시절 3년 우등상을 받았더라. 수학을 잘하지 못한다고 하더니 이과 전교 1등을 했다더라”며 겸손 뒤에 숨겨진 매력을 소개했다. 실제로 민진웅은 문화·예술계의 카이스트로 불리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 성적우수자 전형으로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수재다. 한예종 입학 전에는 성적우수자 전형으로 단국대 법학과에 입학한 이력도 있다. 법학과 자퇴 이유에 대해 그는 “이과였다가 문과로 가면서 온통 한문이라 읽지 못해서 힘들었다. 옥편을 펴놓고 책을 읽으니까 15페이지를 넘기는 데만 4시간이 소요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람에겐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잖아요. 그 첫 번째가 학교(한예종)에 입학한 거였던 거 같아요. 연기를 꿈꾼 건 스무 살 무렵부터였으니까, 빠른 편은 아니었던 거죠. 그런데 감사하게도 학교에 다니면서 너무 좋은 교수님들, 선배님들, 그리고 작업자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특히 제 동기들, 드라마 ‘리갈하이’에 출연 중인 윤박, 드라마 ‘나쁜 녀석들’과 영화 ‘성난 황소’ 등에 출연한 김민재, 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와 영화 ‘암살’ 등에 출연한 허지원,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출연한 배우 강기둥, 드라마 ‘마성의 기쁨’과 영화 ‘불한당’에 출연한 장인섭 등은 저에게 가장 좋은 스승이자 동료입니다.” 

동기들의 이름과 출연작 하나하나를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에서 숨길 수 없는 뿌듯함이 묻어났다. 스타로서의 인기보다 연기자로서의 기본기, 그리고 스스로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잊지 않는 옹골찬 유대감. 드라마와 영화, 연극판에서 누구나 한 번쯤 얼굴을 보았음직한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서로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어깨가 펴지는 일이다. 

그리고 또 한 명, 그의 연인인 배우 노수산나(33)를 빼놓을 수 없다. 올해로 열애 3년 차인 이들 커플은 서로에게 자타 공인 최고의 지지자이다. 노수산나는 영화 ‘장산범’과 ‘아워 바디’, 드라마 ‘부탁해요, 엄마’ ‘검법남녀’ ‘식샤를 합시다 3’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두 사람은 한예종 선후배 사이다. 

“늘 제 연기를 봐주고 함께 고민하는 친구예요. 촬영 전 마지막 검수를 해주는 분이랄까요.” 

역시나 그에겐 평범함 속에 숨길 수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열애 사실에 대해 특별히 숨길 이유가 없어 자연스럽게 알려지는 대로 두었다”는 말은 어쩌면 그의 일상과 연기 어느 곳에나 적용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평범해 보여 더 특별하고 매력적인 남자, 이것만으로도 대중에겐 배우 민진웅의 행보를 지켜볼 이유가 충분한 듯하다.


기획 김지영 기자 사진 홍태식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화이브라더스코리아 tvN




여성동아 2019년 3월 6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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