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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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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캐슬’의 ‘연기 퀸’ 염정아

EDITOR 김지영 기자

2019. 03. 04

“핏줄까지도 연기를 한다”는 호평을 받으며 ‘SKY캐슬’의 인기를 이끈 염정아. 실제 초등생 남매를 키우는 엄마로, 극 중에서 선악을 넘나들며 현실 엄마의 민낯을 보여준 그가 화제의 장면 뒷얘기, 28년 연기 인생을 들려줬다.

 “정말 얼떨떨해요. 이렇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수험생과 엄마 이야기라 시청 층이 제한적일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고, 심지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도 엄청난 환대를 받았어요. 드라마 종영 직전 발리로 화보 촬영을 다녀왔는데 현지 소녀 팬들이 저를 보려고 공항에 나와 있었거든요. 배우 생활을 20년 넘게 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최근 두 달 동안 신드롬에 가까운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SKY캐슬’의 헤로인 염정아(47)는 촬영을 마친 소감을 묻자 달뜬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SKY캐슬’은 대한민국 입시 현실과 일그러진 모성을 적나라하게 그린 드라마로 28년 차 배우 염정아의 필모그래피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이 작품에서 그는 ‘선지 파는 가난뱅이 아버지를 둔 곽미향’이라는 과거를 숨긴 채 잘나가는 대학병원 정형외과 의사의 아내이자 두 딸의 엄마로 살아가는 한서진 역을 맡아 “핏줄까지 연기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혼신을 다해 열연을 펼쳤다. 한서진은 방영 후반 “딸 예서를 서울대 의대에 합격시킬 수만 있다면, 광화문 한복판에서 조리돌림을 당해도 좋다”는 각오로, 시험지 유출에 살인까지 저지르는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의 악행을 눈감아주려 하지만 미워할 수만은 없는 캐릭터였다. 배경과 스펙을 중시하는 시어머니의 눈에 들기 위해 신분 세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처지와 딸을 통해 짓밟힌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욕망, 비윤리적인 행위와 타협해야 하는 순간마다 흔들리는 일말의 양심을 시청자들이 지켜봤기 때문이다. 

염정아는 ‘SKY캐슬’을 통해 데뷔 후 처음 유행어도 낳았다. 한서진이 김주영을 부르는 호칭인 ‘쓰앵님(선생님)’과 격하게 화가 났을 때 내뱉는 ‘아갈머리’가 그것. 특히 아갈머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장면은 이른바 ‘아갈대첩’으로 불리며 재미있는 패러디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한서진 덕분에 그는 ‘갓블리’ ‘염드리 헵번’ 등의 애칭도 얻었다. 

드라마 촬영이 끝난 뒤 어떻게 지내셨어요. 


촬영하는 동안에는 쉬지를 못했는데 발리로 화보를 찍으러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콧바람도 쐬면서 좀 쉬었어요. 귀국 후에는 명절 연휴를 보냈고요. 이번 연휴에도 여느 때처럼 시댁에 인사 가고, 친정에 인사 가고 그랬어요. 2월 10일부터는 3박 5일 일정으로 ‘SKY캐슬’ 식구들과 태국 푸껫에 포상 휴가를 다녀오고요. 



이번 드라마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뭔가요. 

젊은 팬들이 많이 생긴 거요. 그 자체로 무척 든든하고 힘이 나요. 젊은이들은 엄마 팬들과 달리 현장까지 응원을 오고 적극적으로 “좋아한다”고 표현해주거든요. 지난해 개봉한 영화 ‘완벽한 타인’ 때부터 젊은 팬이 생기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 확실히 알았어요. 유튜브에 제 패러디 영상이 엄청 늘고, 제가 예전에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와 ‘전우치’라는 영화를 찾아 보는 분들이 많아졌더라고요. 

진진희 역을 한 오나라 씨도 염정아 씨의 오랜 팬이라고 하더군요. 

나라가 저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 얘기를 했어요. 촬영을 함께하다 보면 팬심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이 드라마에 출연한 동기가 뭔가요. 

여성 캐릭터들이 주축인 드라마고, 조현탁 PD님이 2016년 저와 함께 작업한 ‘마녀보감’ 이후 처음 선보이는 작품에 출연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어요. 다양한 색깔을 지닌 한서진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어요.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40대 여배우들이 끌고 가는 흔치 않은 작품이었어요. 어떤 각오로 시작했나요. 

처음부터 저희는 파이팅이 넘쳤어요. 잘되든 안되든 40대 여배우들이 만들어간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잘해내겠다는 의지를 다졌죠. 이 작품이 정말 운 좋게 잘된다면 당장 다음 작품에 설 자리가 생기고 중년 여배우들을 필요로 하는 콘텐츠가 더 많이 탄생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한서진은 선과 악을 넘나드는 이중적인 인물임에도 의협심 강한 엄마 이수임(이태란)보다 더 큰 공감을 이끌어냈어요. 그 비결이 뭘까요. 


제가 한결같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모성이었어요. 그 부분이 많은 공감을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예서야, 네 인생을 엄마는 포기 못해!’라는 대사가 제 마음에도 깊이 와 닿았어요. 

연기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속상했던 부분을 떠올린다면. 

예서가 김주영한테 홀랑 넘어가서 엄마 말을 잘 안 들으려고 할 때요. 김주영이 예서에게 “네 인생의 주인공은 너야. 널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은 너야”라고 속삭이면서 엄마 말을 듣지 않도록 주지시키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말리는데도 집 밖으로 뛰쳐나간 예서를 김주영이 품에 안으며 저를 쳐다볼 때 너무 속상했어요. 한서진을 연기하면서 가장 허무했던 지점이기도 해요. 그리고 혜나가 죽은 후로는 저도 너무 힘들었어요. 남편(정준호)한테 혜나가 당신의 친딸이라고 털어놓지 못한 게 후회되기도 하고, 김주영이 죽게 한 걸 알면서도 예서를 지키려다 우주를 억울한 살인자로 만들자 경찰서에 가서 모든 것을 털어놓기 전까지요. 이걸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고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돼 감독님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요. 

캐릭터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연기했군요. 연기 연습은 어떤 식으로 했나요. 

저는 전체 대본을 여러 번 읽은 다음 제 대사를 외워요. 감정을 담아 소리 내어 연습하진 않아요. 그냥 대사를 읽으면서 외운 다음 현장에 가서 감정을 넣어요. 그중에서도 제가 절대 놓치면 안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모든 인물과 대립각을 세우는 캐릭터여서요. 주변 인물과 동맹을 맺었다가 적이 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이번 드라마를 촬영하는 동안에는 대본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어요. 대본을 받을 때마다 전사(앞서 벌어진 상황)를 적어놓아야 했고요. 매 신마다 지난 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간단하게라도 기록해놓지 않으면 감정선을 놓칠 것 같더라고요. 원래는 전사를 잘 적지 않아요. 미리 설정해놓으면 그 틀에 갇혀 연기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감정을 풀어내는데 이번처럼 매번 전사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에요. 

집에서는 한서진의 감정선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영화를 찍을 때는 매일 그 현장에 있는 게 아니어서 극과 현실을 철저히 구분해 연기에 몰입해요. 근데 이번 작품을 찍는 동안에는 갈수록 촬영 분량이 많아져 방영 후반부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한서진으로 지냈어요. 아이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집에서도 대본을 손에서 놓지 못했죠.

염정아는 2006년 한 살 연상의 정형외과 의사 허일 씨와 결혼해 초등학생인 1남 1녀를 슬하에 두고 있다. 리얼한 연기 때문에 한서진과 실제 성격이 흡사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는 자신이 사는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 엄마들 사이에서 ‘털털한 왕언니’로 통한다. 그 스스로도 “나는 곽미향처럼 야망이 있거나 주도면밀하지 못하다. 계산적이지도, 똑똑하지도 않다”고 밝혔다.

정준호 씨가 연기한 정형외과 의사 강준상과 실제 남편의 캐릭터가 닮았다고 들었어요. 

안경과 콧수염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걸 거예요. 남편은 제가 촬영할 때 연기에 몰두하도록 많은 배려를 해줘요. 이번 드라마를 찍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자기가 건사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촬영에 집중하라고 응원해줬어요. 남편도 드라마 애청자였지만 제 연기에 방해가 될까 봐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어요. 그런 외조가 큰 힘이 됐죠. 

아이들도 ‘SKY캐슬’을 즐겨 봤다죠. 

내용을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재미있어했어요. 주변에서 다 엄마를 알아보고 ‘SKY캐슬’ 얘기를 하니까 마냥 신기해하더라고요. 친구들의 부탁으로 처음으로 제게 사인을 받아가기도 했고요. 

인터뷰에 앞서 ‘여성동아’ 스페셜리스트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염정아 씨의 자녀 교육법을 가장 궁금해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올해 초등학교 4학년, 5학년이 돼요. 제겐 아직 먼 이야기 같아 대학 입시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학종’ ‘수시’ ‘정시’에 대해서도 이번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처음 알았어요. 우리나라 입시 문제가 생각보다 많이 심각하다는 것도요. 앞으로 저도 겪어야 할 일들이라 두렵고 겁나요.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이제부터 진지하게 고민해보려고 해요.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지 않나요. 

여느 엄마들처럼 학원에 보내고 학습지를 시키는 정도예요.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스타일이 못 돼요. 지금은 극 중 진진희처럼 아이들을 어떻게 케어하는 게 좋은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저도 수험생 엄마가 될 테니 입시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방향 설정이 필요하겠죠. 그때는 이번 드라마가 좋은 지침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가 만약 서울대 의대에 갈 실력인데 성격이 예서 같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가만히 두고 보진 않을 것 같아요. 예서를 그렇게 만든 게 한서진이거든요. 예서는 네 살 때부터 하루에 4시간밖에 안 잤다잖아요. 그게 말이 돼요? 

극에서 여러 사람과 호흡을 맞췄는데 특히 케미가 좋았던 상대를 꼽는다면요. 

예서요. 다른 배우들과도 호흡이 잘 맞았지만 특히 예서랑 있을 때 한서진이 밑바닥 감정까지 다 드러내게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속을 다 보이지 못했거든요. 

날 선 연기 대결을 펼친 김서형 씨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드라마 흐름상 굉장히 중요한 신들이어서 매번 엄청 집중해서 찍었어요. 그러고 나면 지쳐서 서로 “기 빨린다”는 말을 주고받곤 했죠. 

김서형 씨를 부르던 호칭 ‘쓰앵님’이 유행어가 됐어요. 

의도한 건 아니에요. 쓰앵님이 제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어요. 저는 촬영할 때 “선생님”이라고 말했거든요. 근데 방송을 보니 정말 ‘쓰앵님’으로 들리더라고요. 하하하. 

제작 과정을 담은 메이킹 영상을 봤어요. 계속 “내복 입었냐?”고 물어보며 아역 배우들을 챙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세트 안이 되게 추웠어요. 내복을 입으면 집중도 더 잘되고 건강에도 좋을 것 같은데 요즘 아이들은 안 입더라고요. 저도 젊었을 때는 내복을 입고 다닌 기억이 없긴 해요. 

요즘은 내복을 입나요. 

제 의상 콘셉트가 모나코 왕과 결혼한 할리우드 배우 그레이스 켈리였어요. 시놉시스에 나온 인물 설명이 ‘그레이스 켈리보다 진주가 잘 어울리는 여자’였거든요. 하지만 저는 내복과 핫 팩 없으면 촬영 못 해요. 두 가지는 필수였어요. 내복 두 벌을 겹쳐 입고 그 사이에 핫팩을 붙였죠. 그래야 옷을 갈아입을 때 핫팩이 쓸려 나가지 않아요. 소화해야 하는 분량이 많을 땐 하루에 옷을 17번 갈아입고 촬영한 적도 있거든요. 

촬영 분량이 유난히 많았어요. 체력 관리를 어떻게 했나요. 

운동을 해야 하는데 못 했어요.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구부정해진 느낌이었어요. 커피도 시도 때도 없이 마시고요. 대신 영양제를 잘 챙겨 먹고, 원래 건강한 편이라 크게 아픈 적은 없어요. 이제 긴장이 풀려 아플지도 모르겠지만요. 하하하.

염정아는 중앙대에서 연극영화학을 전공했다. 미스코리아 선에 당선된 1991년 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해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TV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거의 매해 작품에 출연하는 성실함을 보였다. 그리고 드라마 ‘형제의 강’ ‘야망의 전설’ ‘로열패밀리’, 영화 ‘장화, 홍련’ ‘범죄의 재구성’ ‘카트’ ‘완벽한 타인’ 등 많은 작품에서 호평을 받았다. 

30년 가까이 연기를 했으니 나름의 연기 철학이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늦게 연기에 재미를 느꼈어요. ‘장화, 홍련’(2003) 때인 것 같아요. 연기에 대한 칭찬을 받으면서 더 흥이 났어요. 육아하면서 쉴 때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연기를 하고 있는 지금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저는 제가 연기하는 게 불편하면 보는 사람도 불편할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연기, 내 마음에 와 닿는 연기를 하려고 해요. 그렇지 않으면 가짜 연기죠. 그래서 캐스팅이 된 후에는 그 인물을 먼저 제 자신에게 이해시킨 후 연기에 몰입해요. 

지난해 개봉된 영화 ‘완벽한 타인’에 이어 이번 드라마도 인기몰이에 성공했고, 최근작인 ‘뺑반’도 큰 관심을 받았어요.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차기작에 대한 부담이 클 것 같아요.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이번 드라마가 잘돼서 기회가 많아진 것이 기분 좋긴 하지만 앞으로도 저는 그저 하던 대로 할 겁니다. 

닮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요. 

김혜수 언니요. 언니가 후배를 아끼는 마음은 정말 감탄스러워요. ‘어떻게 저렇게 표현할까’ 싶을 정도로 사랑이 많아요. 언니는 시상식에서 후배들이 상 받을 때마다 진심으로 기뻐해주세요. ‘저런 여유가 어디서 나올까’ 싶어요. 저도 배우고 싶은데 쉽지 않거든요. 저 살기 바빠서 다른 사람을 그렇게 진심으로 축하해준 적이 있나 싶어요.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같이한 후배들이 다 잘돼서 너무 좋아요. 어느 캐릭터 하나 버릴 것 없이 아역까지도 다 잘돼서 흐뭇해요.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요. 


이제 곧 꼬맹이들이 봄방학에 들어가요. 새 학기가 되기 전에 하루, 이틀이라도 아이들과 놀려고 해요. 그동안 너무 못 놀아줬어요.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아티스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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