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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star

유아인답다는 것

좋아하고 미워하고 놀면서 싸우기

EDITOR 김지영 기자

2019. 01. 10

최근 ‘뉴욕타임스’가 발표한 ‘2018년 최고의 배우’ 12인에 유아인이 선정된 건 행운이 아니다. 누구도 모방하기 힘든 연기 세계를 보여주는 배우 유아인, ‘유아인다움’에 관한 이야기.

유아인(33)에게 2018년은 평생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듯하다. 5월 개봉한 영화 ‘버닝’(감독 이창동)으로 칸 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데 이어 12월 6일에는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THE BEST ACTORS OF 2018(2018년 최고의 배우)’ 12인에 아시아 배우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버닝’에서 카리스마와 거리가 먼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 종수 역을 연기한 유아인에 대해 “빈틈없이, 완벽하게,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연기했다”고 극찬했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잠시 잊고 있던 유아인 특유의 강한 카리스마가 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에서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 2018년 11월 28일 극장에 걸린 지 보름 만에 3백만 관객을 돌파한 ‘국가부도의 날’은 외환위기를 소재로 한 영화다. 

등장 인물들 가운데 유아인은 모두가 경제 성장을 낙관하던 그때, 국가부도가 임박했음을 직감하고 증권회사를 나와 위기에 베팅하는 금융맨 윤정학을 연기했다. 극의 중심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인물이지만, 영화를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어 흥미를 배가시키는 중요한 역할이다. 언론시사회를 함께 보고 사흘 만에 다시 만난 그는 “영화가 다소 생소한 경제 이야기임에도 현실감과 재미의 균형을 살려 깔끔하게 풀어낸 느낌이어서 만족스러웠다”고 말문을 열었다.

여러 작품의 러브콜을 받은 걸로 아는데 이 영화에 출연한 이유가 뭔가요. 

이야기 자체가 주는 공감대가 컸던 것 같아요. 지금 이 시대에 되새겨볼 만한 일이기에 그 이야기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당시 찍고 있던 ‘버닝’ 촬영을 마치고 바로 참여해야 하는 스케줄이었음에도 이번 영화를 함께한 선배님들이 현장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계셔서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임할 수 있었어요. 

외환위기 당시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피부에 와 닿진 않았을 것 같아요. 

저한테는 생소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서 더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연기를 통해 설명하고 전달한다면 제 또래나 더 어린 세대 관객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상황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나요.

없어요. 뉴스 화면으로 본 것이 다예요. 

그때 유아인 씨의 부모님은 피해가 없었나 봐요. 

IMF 사태로 인한 타격은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미 그 이전에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부도가 난 상황이었거든요. 그때는 제가 어려서 구체적인 상황을 알진 못했어요. 큰집에 살다 작은 집으로 이사해서 ‘아버지가 좀 힘드신가 보다’ 하고 느낌으로 짐작만 했을 뿐이죠. 게다가 어릴 때는 돈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니까 경제적으로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이번 영화를 통해 부모님을 이해하는 마음이 커진 느낌이에요. 허준호(파산 위기에 직면한 공장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가장 갑수 역) 선배님이 극에서 처한 상황을 보면서 부도 당시 제 부모님 심정은 어땠을까 싶더라고요. 

영화에서 맡은 윤정학은 이재에 굉장히 밝은 인물이에요. 유아인 씨도 금전 관리를 직접 하나요. 


직접 하지만, 딱히 관리랄 것도 없어요. 가끔 재테크에 도움을 주시는 분이 있어요. 소속사에서 도움을 줄 때도 있고요. 재테크를 하지 않을 때는 있는 대로 쓰고, 하고 싶은 일에 투자도 하면서 살아요.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써볼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되고요. 

돈을 좋아하는 편인가요. 

돈은 좋아하고, 미워하고, 같이 놀면서 싸우는 상대죠. 하하하. 매일 쳇바퀴를 굴리는 느낌이에요. (돈에서) 벗어나기 힘드니까요. 사회 활동하는 사람이 순교자처럼 돈에 초연해서 살 수는 없죠. 심지어 종교단체도 돈을 좋아하는걸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살다 보니 저는 돈을 추구하기도 하고, 그 때문에 괴롭기도 하고, ‘내가 지금 뭐하고 사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도저히 실마리를 풀 수 없는 답답한 경우에 직면하기도 하고요. 그 모든 부분이 이번 영화에 녹아 있지 않나 싶어요. 

극 중 윤정학이 다른 사람들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돈을 많이 벌었다고 좋아하는 젊은이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이 바로 그런 인간적인 고뇌가 드러난 지점이 아닌가 싶어요. 

그렇죠. 자기 자신의 뺨을 때린 것일 수도 있어요. 자기 욕망을 성취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이 결핍되는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하잖아요. 국민들을 성취보다 결핍의 시간으로 내몰고, 상처의 현장으로 진입하게 한 것이 IMF 경제위기였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IMF 사태 이전에 아무 문제 없다가 갑자기 상황이 돌변한 것은 아니기에 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저는 (먼저 위기를 감지하고 대응방안을 강구하는) 정학의 처신이 굉장히 인간적이라고 느꼈어요. 

이 영화에 IMF 수혜자인 윤정학을 넣은 궁극적인 이유가 뭘까요. 

영화적으로만 보자면 정학은 관객을 이야기에 진입시키는 인물인 것 같아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바람잡이 같은 역할이죠. 자신의 얘기에 귀 기울일 만한 투자자들을 모아 나름의 논리로 위기 상황임을 설파하고 위험 요소에 투자하도록 하잖아요. 또한 정학은 권력자들의 극단적인 충격 여파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소시민, 세상의 움직임에 의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죠. 인간적인 눈물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에요. 

투자자들을 모아놓고 열변을 토하는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어려운 경제 용어가 많은 그 장면을 위해 많은 준비와 연습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촬영 당시 국내에 비트코인 투자가 유행했어요. 그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 인터넷을 이용할 땐 일부러 비트코인 창 하나를 띄워놨어요. 그리고 ‘버닝’ 촬영이 끝나자마자 이번 작품에 합류해 적응하기 힘든 면이 있었어요. 특히 이번 작품에서 무척 중요한 ‘정학의 투자유치 연설’ 장면이 두 번째로 찍는 신이어서 저로서는 부담이 컸어요. 그래서 예정돼 있던 촬영 일정을 하루 미루고 친구들을 불러서 그 연설 장면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연습했어요. 

어떤 친구들인가요. 

성별도, 연령도 다양해요. 주변에 아티스트 친구들이 많아요. 장사하는 친구도 있고, 백수도 있고, 한량도 있죠. 그 친구들에게 일일이 의견을 구했어요. 처한 상황은 제각각이지만 보통 삶을 사는 친구들이어서 그들의 얘기가 촬영에 임할 때 큰 도움이 됐어요. 

비트코인에 투자했나요. 

일찍 사뒀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어요. 하하하. 제 주변에 세상 이치에 밝은 아티스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4~5년 전부터 지인들에게 “비트코인에 투자하라”는 말을 수없이 했어요. 근데 아무도 사지 않아서 비트코인 주가가 엄청 올랐을 때 그 친구가 꼭 정학이처럼 안타까워했죠. 뒤늦게 사려 했더니 주변 사람들이 만류했어요(웃음). 

작품을 준비하면서 참고한 것이 있다면요. 

유튜브에 들어가 IMF 때의 시대적 상황을 담은 뉴스나 다큐멘터리 영상을 많이 봤어요. 1990년대 후반에 유행한 복식과 헤어스타일, 말투 등을 익히려고요. ‘최진실의 진실’이라는 다큐멘터리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 거기에 나오는 거리 풍경이나 패션 스타일이 어떤 경제 뉴스보다 당시의 감각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됐고, 최진실 선배님의 고군분투했던 삶이 배우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스튜디오 콘크리트’라는 아티스트 크루를 이끌며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동명의 문화복합공간도 운영하고 있더군요. 어떻게 그 일을 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2014년에 크루를 결성해 2015년 그 공간을 열었죠. 처음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을 발굴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갤러리 비즈니스와 아트 디렉팅을 할 요량이었어요. 근데 그런 활동으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는 힘든 부분이 있어서 패션 비즈니스로 풀어내기도 하고, 미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과도 작업하게 됐어요. 아직 본전치기 수준이어서 ‘비즈니스’라고 하기는 힘든데, 그 일을 하면서 제가 맡은 캐릭터에 대한 접근 방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개인적으로 수집하는 것이 있나요. 

그림을 좋아해서 한동안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전시도 하고 친분도 다졌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진 못하고 있어요. 15년을 혼자 살다 보니 살림살이가 너무 많이 늘어서요. 미니멀리즘을 추구해보려고 살림살이를 줄여가고 있거든요. 정학이처럼 집의 규모를 매해 조금씩 넓혀가는 재미로 살았는데 이제는 거기서 벗어나는 과정에 있어요. 제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 욕망이나 성취들을 버리고 있다고 할까요. 그게 다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끌고 가면서 얻은 깨달음이죠.

사실 유아인 씨 정도면 자신을 중심축으로 하는 작품이 많이 들어올 텐데 ‘베테랑’도, ‘버닝’도, 이번 영화도 예상 밖의 선택이라는 평이 많아요. 그래서 ‘유아인은 항상 독특해 보이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요. 

‘유아인 정도면’의 그 ‘정도’에 대한 해석이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그런 다양한 해석을 통해 제 느낌을 전달할 수 있고 다양하게 해석되는 배우이고 싶은 거지, 어떤 잣대에 맞추고 싶진 않아요. 그 정도의 자유로움은 갖고 싶고, 마음에 닿는 선택을 하고 싶어요. 그것이 독특하다면 독특한 거고, 다른 해석이 가능하게 하는 힘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그 독특함은 보편적인 기준에서 볼 때의 독특함이잖아요. 저는 모든 창작자들이 그런 독특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선택에 대해 ‘멋 내려고 한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해요. 

멋 내려고 하는 측면도 있죠. 작품 선택을 통해 멋 내려는 건 아니고, 작품에선 제 모습이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떤 느낌을 만드는 게 중요한 작업이거든요. 그게 제가 추구하는 ‘멋’이고 ‘재미’예요. 개인적으로 재미를 추구할 때도 있고 독특함을 추구할 때도 있지만, 결국은 저라는 인물이 그리는 형태와 그 흐름 자체가 재미있기를 바라죠. 그리고 제가 조금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측면이 있어요. ‘마음대로’가 참 쉬운 말인 것 같지만 우리의 선택 기준은 보통 자기 마음이 아닌 보편적으로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 타인이 만들어낸 기준에 닿아 있을 때가 많잖아요. 저는 제 일을 통해 그렇게 살지 않고 자기 마음에 가까운 선택을 하면서 살아도 이런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또 옷도 좋아하고, 멋 내는 것도 좋아해요. 이왕이면 멋있게 보이고 싶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멋만 추구하는 배우는 아니잖아요. 돌발 행동도 많이 하고요. 하하하. 

SNS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어요. 글 쓰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더군요. 어릴 때 꿈이 작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요. 

과찬이세요(웃음). 그냥 저답게, 제 수준에서 표현하려고 하는 것뿐이에요. 절대적인 수준에 도달하지 않았기에 표현을 삼가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통해 제 정체성을 찾아가고 제 자신을 정립하는 거죠. 제 초등학생 때 장래 희망은 ‘화가’였어요. 인터넷 문화가 한창 확장되던 시기에 사춘기를 겪으면서 표현의 욕구가 생겨나고, 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어요. 19세 때 배우로 데뷔하면서 또 다른 표현의 욕구들이 생겨났을 거고요. 그 욕구를 풀어내는 방식 중 하나로 글이라는 매개를 통해 제 생각을 실험적으로 던져도 보고, 제 안에 내재된 다양한 캐릭터들을 스스로 억압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조화롭게 키워나가려고 하는 거예요. 보다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 자기답지 못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시행착오도 겪고 두드려보기도 하면서 좀 더 ‘나답게’ 사랑을 베풀고 갈구하며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책을 낼 계획은요. 

제 SNS를 보고 출판 제안이 많이 들어왔는데 책을 내는 게 제 꿈은 아니에요. 그냥 글로 제 자신을 표현하며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고, 그 표현이 어디에 담기든 그것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꿈입니다.
 
오래전 촬영 중에 입은 부상으로 지금도 어깨 상태가 안 좋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나요. 

어깨 재활 치료와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고 있어요. 어깨 때문에 많이 움직일 수 없을 때는 도수 치료도 병행하고요. 배우라는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완벽한 회복은 기대하기 힘들죠. 몸 쓰는 것이 제 일이니까요. 지극히 개인적인 불편함을 케어하는 과정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드러내는 것이 제게는 큰 고충이지만, 다른 오해가 없도록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고 애쓰고 있어요.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나침반 같은 좌우명이 있다면요. 


좌우명은 없고 키워드는 있어요. 모든 면에서의 ‘균형’요.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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