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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tar #interview

현빈의 스펙트럼

EDITOR 조윤

2018. 10. 29

사기꾼, 인질범, 좀비로부터 조선을 구하는 왕자. 최근 1년간 스크린에서 보여준 현빈의 스펙트럼은 이렇게나 넓다. 이제 그는 이름만으로도 설득력을 갖는다.

현빈(36)의 행보가 심상찮다. 그는 한때 겉으로는 까칠하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한 ‘츤데레 로맨티시스트’의 대명사였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대표작 ‘내 이름은 김삼순’과 ‘시크릿 가든’의 영향 때문이다. 그러나 군 전역 후 2014년 고뇌하는 왕 정조를 연기한 ‘역린’을 기점으로 그는 기존 연기에 머물기를 거부했다. 또한 ‘공조’에서는 북한 형사, ‘꾼’에서는 사기꾼, ‘협상’에서는 인질범을 연기했다. 

도전을 배우 인생의 목표로 삼은 듯한 그가 선택한 이번 작품은 ‘야귀(夜鬼) 액션 블록버스터’다. 10월 25일 개봉하는 영화 ‘창궐’은 ‘조선시대 야귀(좀비)’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룬 작품으로, 현빈은 야귀를 이용해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절대악 병조판서 김자준(장동건)에 맞서 혈투를 벌이는 왕자 이청으로 변신했다. 본 적 없는 새로운 장르와 끊임없이 도약하는 배우가 만나 향연이 펼쳐진다. 이제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배우 현빈을 만났다.

‘창궐’은 굉장히 독특한 장르예요. 작품을 선택한 계기가 뭔가요.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야귀라는 새로운 크리처(기묘한 생물)의 만남이 아주 흥미로웠어요. 또 제가 연기한 이청이란 인물이 자유분방한 장수에서 나라와 민초를 구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왕자로 성장해가는 스토리에 매력을 느꼈어요. 

‘창궐’뿐 아니라 남녀의 영혼이 바뀌는 설정을 그린 ‘시크릿 가든’, 곧 방영될 증강현실을 소재로 한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등을 선택한 걸 보면 가상현실이나 판타지 장르에 관심이 많은 듯해요. 

특별히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새롭고 신선한 걸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번 도전했어요. 이런 독특한 소재를 다룬 작품을 촬영할 때는 더 힘들어요. 컴퓨터 그래픽(CG)이 많으니까요. 허공에 대고 연기할 땐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웃음). 



‘창궐’을 국내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 영화인 ‘부산행’과 비교하는 이들이 많아요. 

‘부산행’은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데 비해 ‘창궐’은 공간이 좀 더 광범위하죠. 크리처들의 성격과 행동도 달라요. 야귀에게 좀비라는 말을 안 쓰는 이유 중 하나가 밤에만 활동하는 특성 때문인데요. 그게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과도 잘 어울려요. 저는 굳이 ‘부산행’과 비교하지 않지만 감독님이나 제작진은 기존 작품보다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고민이 컸을 거예요. 

야귀 분장이 워낙 독특해서 촬영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촬영장 세팅을 바꿀 때 조명이 잠시 어두워지는 순간이 있는데 분장을 한 채 군데군데 쉬고 계시는 야귀 배우분들을 보고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죠. 그러고선 금방 웃으며 인사했지만(웃음). 

이른바 ‘좀비 액션’은 처음일 텐데 이전 영화에서의 액션 연기와 다른 점이 있나요. 


이청의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야귀들을 죽여야 하기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죠. 저는 야귀를 물리치려고 야귀의 ‘몸’을 치는데, 야귀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인간의 목을 물려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얼굴’부터 내미니까 연기할 때 힘들었어요. 계속 무거운 장검을 들고 다녀야 해서 허리도 무척 아팠고요. 감독님은 대부분의 액션 장면을 컷을 나누지 않고 하나의 시퀀스로 가기를 원하셨어요. 그런데 OK가 안 나니 힘들었죠. 액션 신을 정말 많이 찍은 것 같은데 영화에서는 왜 이렇게 짧게 나오나 싶던데요(웃음). 

영화 후반부 지붕 위에서 장동건 씨와의 액션 신이 압권이에요. 


힘들게 찍은 장면 중 하나예요. 화려한 만큼 위험하기도 했죠. 창덕궁 인정전 내부를 그대로 재현한 곳에서 촬영했는데, 심지어 기와지붕의 기울기까지 창덕궁과 똑같다고 하더군요. 액션 신을 찍다 보면 기왓장이 떨어지기도 하고, 표면이 울퉁불퉁한 기왓장 위를 뛰어다니며 연기하다 발목에 부상당할 위험도 많았죠. 그래도 액션 연기를 하면 성취감이 느껴져요. 현장에서 대충 편집한 것만 봐도 관객들에게 선사할 새로운 볼거리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해요. 액션 신은 앞뒤 줄거리를 몰라도 흥미롭잖아요.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장동건 씨와 함께 연기한 소감은 어떤가요. 

10대 시절 ‘마지막 승부’ ‘우리들의 천국’ 등 선배님이 출연한 작품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같이 작업하면 어떨까, 기대가 컸어요. 친분이 있어 연기할 때 불편할 수도 있었지만, 수염 붙이고 한복 입고 카메라 앞에 서니 전혀 다른 인물로 보이더라고요. 선배님 연기는 모든 걸 압도하는 놀라운 지점이 있어요. 물론 액션 신에서는 서로 살살 하라며 장난을 치기도 했죠. 김자준은 한 팔로 대충 휘두르기만 해도 되는 것 같은데 저는 끊임없이 다양한 동작을 해야 하니 억울했어요. 반대로 계속 인조 수염을 붙여야 하는 선배님은 저를 보며 억울해하셨고요(웃음). 

서로 연기에 대한 조언도 해줬나요. 

그러지는 않았어요. 배우 간에 상대방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그 캐릭터를 본인만큼 깊게 고민할 수는 없으니까요. 

영화 ‘공조’ 이후 다시 만난 김성훈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서로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서로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지도 알죠. 단점은 욕심이 점점 커진다는 거예요. 감독님은 ‘공조’ 때 네가 이만큼 소화했으니 이번엔 이만큼 더 해보라며 계속 욕심을 부리시더군요(웃음). 그래도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았어요. 

영화가 4대륙 19개국에서 같은 시기에 개봉해요. 해외 관객은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우리가 할리우드 좀비 영화를 볼 때처럼 해외 관객분들도 이질적이면서 신선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요. 서양 좀비와 다른 면을 긍정적으로 봐줄 거란 기대가 커요.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스케일이 크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국내외 관객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한복 입은 조선인들이 야귀와 싸우는, 그동안 보지 못한 액션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개성이 강한 다양한 캐릭터를 보는 것도 관람 포인트고요. 

‘예술성보다는 상업성이 강한 작품 위주로 출연한다’는 비판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메시지나 여운이 강한 작품도 좋아해요. 제가 그런 작품을 안 한 것도 아니고요. 굳이 예술성과 상업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작품을 나누지 않을 뿐이죠. 저예산 예술영화든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든 영화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다양하거든요. 예술영화가 정답이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봐요. 관객들이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2시간 동안 날려버릴 만한 오락영화도 충분히 가치가 있죠. 일상에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에게 영화에서마저 메시지를 던지는 게 어떨 땐 강요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영화 ‘협상’ 개봉 한 달 만에 ‘창궐’이 개봉했고, 현재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도 촬영 중인데요. 쉬는 것보단 일하는 걸 즐기는 편인가 봐요. 

그렇지 않아요. 쉬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들어요. 다만 배우는 작품을 하지 않는 시간조차 체력을 회복하고, 다음 작품을 선정하고, 작품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야 하죠. 성격상 작품을 결정하면 모든 신경을 그쪽으로만 쏟아요. 필요한 것들을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야 할 일들이 생기죠. 이번 작품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뒤에는 검술도 배우고 승마도 하고, 청나라말도 배우면서 두세 달이 지났어요. 그런 시간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즐겨요. 

도전을 즐기는 성격인 듯해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그저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재미있는 역할을 선택할 뿐이에요. 멜로도 다시 해보고 싶어요. 지금 제 나이에 맞는 현실적인 멜로 같은 게 괜찮겠네요. 아니면 반대로 더 센 액션 작품도 해보고 싶고요. 다만 전작들과 다른 소재, 해보지 않은 캐릭터를 다루려고 해요. 한국 영화의 장르적 다양성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올 한 해는 그 어느 때보다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했는데 소감이 어때요. 

배우가 제 직업이니까 대중들에게 계속 얼굴을 보여드려야 하는 게 맞지만, 한 달 간격으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조금 고민됐는데요, 배우에게 그런 게 무슨 문제겠어요. 고정된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아니라, 다작을 하더라도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려고요. 소진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기획 이혜민 기자 디자인 박경옥
사진제공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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