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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의 결정적 순간

EDITOR 김지영 기자

입력 2018.07.02 17:00:01

정해인의 연기 인생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 확실하다. 이제 막, 인생의 중요한 한 단계를 뛰어넘은 그와 만났다.
정해인의 결정적 순간
어릴 때부터 배우를 꿈꾸고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어도 배역을 따기가 쉽지 않은 게 연예계의 현실이다. 첫 주연작으로 스타덤에 오르기란 더 힘들다. 이 어려운 일을 해낸 이가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밥잘예’)의 훈남, 정해인(30)이다. 데뷔 4년 만에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이 작품에서 그는 친누나의 절친 윤진아(손예진)를 사랑하는 서준희 역으로 단박에 대세 배우로 떠올랐다. 

이를 순전히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해인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지인들은 지난 4년간 그가 쌓은 필모그래피에 그 답이 있다고 말한다. 2014년 드라마 ‘백년의 신부’로 데뷔한 후 꾸준히 스크린과 TV를 오가며 비중을 따지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해 연기 내공을 다져왔기 때문이다. 그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과 ‘도깨비’에서 각각 혜리와 김고은의 첫사랑으로 눈길을 끌고,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선 억울한 누명을 쓴 유 대위 역으로 존재감을 빛냈다. 까다로운 안목을 지닌 안판석 PD가 그를 서준희 역에 기용한 것도 이렇듯 ‘준비된 주연’이었기 때문이다. 

훈훈한 매력으로 여심을 사로잡은 ‘서준희’ 정해인은 최근 한국기업평판연구소의 브랜드 평판 조사에서 배우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정해인은 현재 6개 브랜드의 CF 모델로 활동 중이다.


정해인의 결정적 순간
그야말로 대세가 됐어요. 인기를 실감하나요. 

‘밥잘예’가 많은 사랑을 받은 게 피부로 느껴져요. 동네 주민들이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면 드라마 잘 봤다고 인사하고, 꼬맹이들도 저를 보면 “준희 형아”라고 부르더라고요(웃음). 

촬영이 끝나서 시원섭섭한가요. 

끝나지 않길 바라던 드라마가 끝나니 마음이 헛헛해요. ‘밥잘예’를 생각하면서 지금도 울컥울컥할 때가 많아요. 아직도 서준희로 살고 있는 느낌이에요. 

그 이유가 뭘까요. 

종영 후에도 밀린 광고를 찍고 계속 관련 일정을 소화하느라 캐릭터를 덜어낼 시간이 없었어요. ‘밥잘예’가 일본에서도 방영이 확정돼 3박 4일간 그곳에서 홍보 활동을 하고 어제(5월 23일) 귀국했어요. 

서준희의 어떤 점이 기억에 남나요. 

캐릭터 자체가 저와 닮은 점이 많아요. 어른스럽고 진지한 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면도 흡사하고 대사에도 실제 제가 하는 말들이 들어 있었어요. 작가님이 저를 알고 대본을 쓰셨나 할 정도로 소름 돋을 때가 있었어요. 특히 제주도에서 윤진아와 재회하면서 했던 “내 우산 어딨어?”라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정해인의 결정적 순간
여러 의미를 함축한 시적인 대사거든요. 왜 진아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여러 이유 없다. 윤진아라서 좋다”고 했던 대사도 무척 공감이 갔고요. 

3년 만에 다시 만난 진아에게 다른 남친이 생겼다는 걸 진아 동생의 결혼식장에서 확인했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요. 

분노가 치밀고 울화통이 터지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그날 밥 먹은 게 얹히고 표정 관리가 안 되더라고요. 서준희는 결혼식에 꿋꿋이 참석하지만, 저라면 다른 남자가 진아의 볼을 만지는 걸 보자마자 결혼식장에서 뛰쳐나왔을 거예요. 너무 괴로워서 같은 공간에 있지 못할 것 같아요. 

촬영 현장의 작업 환경이 굉장히 좋았다고 들었어요. 

16부작 미니시리즈를 할 땐 보통 밤샘 촬영이 많은 편이에요. 그런데 이번 작품을 찍는 동안에는 촬영을 12시간 넘게 한 날이 손에 꼽힐 정도예요. 잠을 푹 자면서 미니시리즈를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못해도 하루에 7~8시간은 잔 것 같아요. 촬영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촬영 감독님이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우리가 촬영한 시간을 계산해보니 하루 평균 9시간 정도더라”고요. 이건 직장인의 근무시간이잖아요. 정말 놀라웠어요. 

그 비결이 뭔가요. 

그건 정말 안판석 PD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PD님은 꼭 필요한 분량만 찍으세요. 필요하지 않은 컷들은 찍지 않으시죠. 배우들은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듯 촬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심지어 촬영한 시간과 방송된 시간이 같은 신도 있어요. 감독님은 머릿속에서 이미 그 신에 대한 분석과 편집을 끝내셨던 거예요. 

제주도 바닷가에서 찍은 엔딩 신이 훈훈하게 마무리돼 다행이라는 평이 많더군요. 

실제로는 무척 춥고 길도 가팔랐어요. 제가 넘어지는 장면도 연기가 아니었어요(웃음). 모든 세팅을 다 해놓고 석양이 질 때쯤 촬영했는데 그 기다림이 무척 힘들었어요. 이걸 마치면 이별이구나 싶어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의 마음이 무거웠죠. 예진 누나도 그 신을 앞두고 눈시울이 붉어지더라고요. 감독님도 눈물을 흘리실까 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글라스를 끼고 오셨고요. 

가장 설렌 장면을 꼽는다면요. 

호프집 테이블 아래로 진아의 손을 잡았을 때요. 준희와 진아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어서 굉장히 설레고 떨렸어요. 

어떤 여성에게 끌리나요. 

겉치장을 중시하는 사람은 별로예요. 꾸밈이 없고 소탈한 사람에게 끌리더라고요. 그리고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좋아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용기가 있는 사람요. 

연애 상대로 연상은 어때요. 

사랑이라면 연상이든, 연하든 나이 차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 같은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요. 

아직 못 해봤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고 한 수 배웠어요. 연인끼리 잘 지내려면 상대방을 항상 존중하고 대화를 많이 해야겠구나 싶었어요. 사랑하는 사이라도 눈빛만 보고 상대의 마음을 읽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인터뷰를 준비하다 보니 ‘정약용 선생의 6대손’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인가요. 

맞습니다. 진짜 직계 후손이에요. 하하하. 그 때문에 점점 더 책임감을 갖고 일하게 돼요. 정약용 선생님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제가 그분께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조심스러워요. 예술적인 기질이 뛰어나 노래도 잘 부르시고 그림도 잘 그리신 걸로 알고 있어요. 과학적인 업적도 엄청난데 제가 하는 일은 그분의 발끝도 못 따라가죠. 그래서 많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좋은 부담감으로 갖고 있으려고요. 

20대 중반에 지금의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에 연습생으로 들어갔더군요. 스타트가 늦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2013년에 오디션을 몇 차례 보고 연습생으로 발탁됐어요. 그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는데 두렵기보다는 제게 소속사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쁘고 설레었어요. 

지난번 기자간담회 때 “매일 꿈을 꾼다”고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데뷔 초에는 어떤 꿈을 꿨나요.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요.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기를 원해요. 일을 할 때나 안 할 때나, 친구들과 놀 때나 이렇게 인터뷰를 할 때나 제가 사는 ‘오늘’은 저한테 주어진 소중한 하루이기에 이걸 귀하게 써야 편하게 잠자리에 들 수가 있거든요. 

오늘을 행복하게 보내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나요.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돼요. 그럼 엄청 행복해져요. 많은 분들이 먼 훗날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내일도 희생하며 버티는데 저는 그날그날이 행복하면 좋겠어요.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스트레스도 덜 받아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은 어떤 건가요. 

오늘 촬영이 잘 마무리된 것 같다는 생각으로 집에 가서 맥주 한잔 마실 때가 참 행복하더라고요. 그리고 샤워하고 나서 침대에 누웠을 때, 맛있는 거 먹을 때도 행복해요. 요즘은 제가 번 돈으로 부모님께 뭔가 해드릴 수 있다는 게 어마어마한 행복임을 느끼고 있어요. 전에는 부모님과 식당에 가면 의당 부모님이 계산하시고 저는 그 옆에 멀뚱히 서 있었는데, 요즘은 제가 계산하려고 하면 아버지가 “그래, 잘 먹었어” 하세요. 하하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걸 사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해요. 

살면서 행복하지 않을 때는 언제였나요. 

군대에 있었을 때요. 대학에서 1년 동안 학교생활을 재미있게 하고 군대에 갔는데 제 의지와 상관없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았어요. 행복하려고 노력해도 몸이 고되니까 안 되더라고요. 그때 제 스스로 많이 나약해졌던 것 같아요. 군대도 작은 사회니까 계급이 올라갈수록 몸이 편해지고 누릴 수 있는 게 많아지긴 하더라고요. 어떤 불행도 결국 다 지나간다는 걸 그때 알았죠. 

이번 작품에서 처음 주연을 하며 배운 것이 있나요. 

현장에서 어떻게 임해야 하고 연기 외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뭔지, 또 주연 배우는 감독님과 함께 현장 스태프들과의 조화를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밥잘예’의 서준희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 앞으로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방해가 되진 않을까요. 

그건 제가 작품을 해나가면서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매 순간 감사한 마음으로 도전하면서 제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갈 겁니다(웃음).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FNC엔터테인먼트 드라마하우스 콘텐츠케이 질스튜어트액세서리


여성동아 2018년 7월 6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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