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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듯 새로운 정우

editor 김지영 기자

작성일 | 2018.03.21

정우가 영화'흥부'로 관객과 만났다. 난생처음 사극이라는 배에 두려움을 안고 올라탄 그에게 노 저을 용기를 불어넣는 이는 가족과 선배 연기자고 고 김주혁이었다.
익숙한 듯 새로운 정우
복을 부르는 이름이 정말 있는 모양이다. 2013년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로 데뷔 12년 만에 스타 대열에 합류한 배우 정우(37)가 바로 그런 경우다. 2001년 ‘김정국’이라는 본명으로 영화 ‘7인의 새벽’에 ‘양아치3’ 역으로 출연하며 데뷔한 그는 오랫동안 단역을 전전하다 어머니가 작명소에서 지어온 ‘김보승’으로 개명했다. 하지만 김보승이라는 이름도 그다지 신통치 않아 2년 뒤 정우로 다시 바꿨는데 그러고 나서야 일이 잘 풀렸다고 한다. 원작자 겸 주연 배우로 참여한 영화 ‘바람’(2009)으로 2010년 대종상 신인남우상을 받은 건 서막에 불과했다. 2013년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으로 KBS 연기대상 신인연기상을 받고, 그해 ‘응사’에서 연기한 의대생 ‘쓰레기’ 역으로 2014년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이후 그는 영화 ‘쎄시봉’(2015), ‘히말라야’(2015), ‘재심’(2017)을 연달아 흥행 궤도에 올려놓았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2월 14일 그가 또 한 편의 주연작 ‘흥부’를 스크린에 걸었다. 고 김주혁의 유작이기도 한 이 영화에서 정우는 어릴 적 홍경래의 난으로 헤어진 형 ‘놀부(진구)’를 찾기 위해 조선 팔도를 들썩이게 하는 글재주로 소설을 써서 이름을 알리는 작가 연흥부 역을 맡았다. 영화는 연흥부가 남보다 못한 형제 조혁(김주혁)과 조항리(정진영)의 이야기를 소설로 풍자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린다. 개봉을 일주일 앞둔 2월 7일, 정우는 한량에서 혁명가로 변신하는 영화 속 연흥부처럼 다채로운 감정을 안고 기자와 마주했다.


익숙한 듯 새로운 정우
언론시사회 직후에 열린 기자간담회 분위기가 침울했어요. 

김주혁 선배 생각이 나서 다들 마음이 안 좋았던 것 같아요.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영화 촬영을 함께했거든요. 저도 영화 외적인 감정이 몰려와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보기가 힘들었어요. 마음을 추슬러야지, 하고 다잡으려고 해도 잘 안 되더라고요.

사극에 도전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어떤 면에 매료돼 출연을 결정했나요. 

사극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어요. 기회가 주어지면 꼭 해보고 싶었는데 그러던 와중에 시나리오를 받고 보니 사극이더라고요. 게다가 제목이 ‘흥부’여서 친근하게 다가왔고 시나리오를 읽고 난 후에는 그동안 알고 있던 고전소설 ‘흥부’가 아니어서 흥미로웠어요. 영화 속에 또 다른 흥부전을 담은 작가의 독특한 발상에 끌렸죠. 다만 제가 맡은 흥부가 감정의 폭이 넓은 캐릭터여서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됐어요. 같은 배역이라도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무게감이 달라지는데 저와 함께 극을 이끌어가는 조혁 역을 주혁 선배가 하신다는 말을 듣고 도전할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김주혁 씨와 원래 친했나 보군요. 

작품을 같이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알고 지낸 지가 꽤 됐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좀 더 친밀해졌고요. 주혁 선배는 촬영 현장에서 특별한 조언보다 응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정진영 선배와 함께 후배들과 스태프들이 촬영 현장에 편하게 녹아들 수 있도록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시고요. 참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은 분이셨죠. 

놀부 진구 씨와의 ‘남남 케미’도 좋았다는 평이 많아요. 

진구 씨와는 ‘쎄시봉’을 같이하면서 친해졌어요. 진구 씨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진짜 상남자죠. 자주 만나진 못해도 힘내야 할 일이 있을 때 서로 연락하고 지내요. 기회가 된다면 다른 작품에서 좀 더 길게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배우예요. 

영화는 장기간 찍으니 체력 관리가 중요할 것 같아요. 

예전에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는데 요즘은 만보기 차고 음악 들으며 걷는 걸 좋아해요. 촬영할 때는 운동보다 ‘밥심’이죠. 촬영이 없는 날에는 잠을 많이 자두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촬영 끝나고 술자리도 종종 가졌을 듯해요. 

제가 술을 잘 못 마셔요. 맥주는 좋아하는데 마셔봐야 500cc 내외예요. 

무슨 재미로 사나요(웃음). 

하하하. 쉴 때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고, 걸으면서 체력을 보충하고, 가끔 등산도 하고, 음악을 좋아해서 자주 들어요. 폭음을 안 할 뿐 나름 바쁘답니다. 담배도 피웠는데 작년에 끊었어요. 금연 이후 살이 쪘다가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다시 빠졌어요. 영화 중반 이후에 나오는 중요한 신을 찍다 보니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절로 다이어트가 되더라고요(웃음). 

연흥부도, ‘응사’의 ‘쓰레기’도 위트가 있는 캐릭터잖아요. 평소 성격도 그런가요. 

장난기도 많고 농담하는 걸 좋아해 친한 사람들과 만났을 땐 풀어져 있는 편이에요. 낯을 안 가릴 거같이 생겼다는데 낯가림이 좀 있어요. 친해지면 스스럼없이 지내고요.

부산 태생인 정우는 연극배우였던 아버지, 서점을 운영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그를 극장에 데려가 영화를 자주 보여주고, 어머니의 책방은 그에게 글의 묘미를 일깨웠다. 그 영향으로 그는 재미있는 일을 글로 기록하고, 틈틈이 습작하는 취미를 단역 때부터 지금까지 즐기고 있다.

영화 ‘바람’의 원작이 정우 씨가 평소 틈틈이 써온 스토리를 모아 완성한 거라고 들었어요. 글을 쓰는 습관이 작가 연흥부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는지요. 

제가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연흥부라는 캐릭터가 글쓰기를 즐기는 인물이니 연기하면서 도움이 된 부분이 있을 거예요. 붓을 쥐고 심혈을 기울여 글씨를 쓰는 장면도 직접 연기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던데 그땐 대역을 썼어요. 제가 정말 악필이거든요(웃음). 

영화를 찍은 후 글쓰기에 대한 마음가짐이 전과는 다를 것 같아요. 

연흥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로 세상을 바꾼 자’잖아요. 글이라는 게 무섭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님’에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되니까 그만큼 글쓰기가 조심스러운 작업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요. 

배우를 꿈꾼 건 언제부터인가요. 

초등학생 때부터 영화를 보면서 막연하게 연기하는 사람을 동경했어요.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는 걸 힘들어하면서도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배우로 진로를 정해 연기 학원을 다녔죠. 대학에 들어가서 연기 전공하고 오디션 보고 그러면서 배우가 됐고요. 

대중에게 정우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동안 어떻게 견뎠나요. 


처음 연기 지도를 받을 때 선생님이 자신감을 키워주려고 “거울에 비친 자기 눈을 응시하며 ‘나는 할 수 있다’를 세 번 외쳐보라”고 하셨어요. 그 조언 덕분에 긍정적인 마인드가 생겨 힘들 때도 잘 버티지 않았나 싶어요. 또 제 작품을 본 관객들이 감동 어린 표정을 지을 때도 큰 힘을 받아요. ‘바람’이라는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 1천 석 가까이 되는 객석을 채운 관객들로부터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느꼈거든요. 한동안 그 기억이 저를 버틸 수 있게 다잡아줬죠.

2013년 ‘응사’를 마치고 그는 한 인터뷰에서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사람으로 ‘가족’과 함께 ‘배우 봉태규’를 꼽았다. 봉태규는 그에게 경사가 있을 때 가장 먼저 전화해 진심으로 기뻐해 주고, 힘든 일이나 괴로운 상황이 닥쳤을 때는 일부러 연락하지 않는 속 깊은 동생이라는 설명과 함께. 4년 여가 지난 지금은 두 사람이 더 늘었다. 2016년 1월 그와 웨딩마치를 울린 배우 김유미(39)와 그해 12월 태어난 딸이다. 정우와 김유미는 2013년 영화 ‘붉은 가족’에서 호흡을 맞추며 사랑에 빠져 부부의 연을 맺었다.

결혼한 후 삶에 안정감을 느낀다는 배우도 있고, 자신의 섬세한 연기가 무뎌질까 경계하게 된다는 배우도 있어요. 정우 씨는 어느 쪽인가요. 

예나 지금이나 가족은 저를 지탱해주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안정감을 느끼는지는 결혼 생활을 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내와 딸은) 존재만으로도 심적으로 큰 힘이 되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배우에겐 자산이 될 것 같아요. 

저도 가정을 가진 대부분의 남자들이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은 감정을 맛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감정들이 연기를 통해 승화될 만한 경지에 이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배우에겐 모든 경험이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꿈을 꿔라’를 꼽았어요. 정우 씨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모든 사람이 꿈꾸는 대로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꿈 없이 살아가는 건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항상 꿈을 꿉니다. 어릴 땐 배우를 꿈꿨고, 그 꿈을 이루고 나서는 막연히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연기 잘하는 배우가 좋은 사람인가 하는 물음을 제 자신에게 던졌을 때는 그렇다고 확신할 수가 없더군요. 지금은 그 답을 찾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배우를 선망하는 청소년이나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면 좋겠어요.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요. 저도 제가 걸어온 삶에 후회는 없지만 좀 더 많은 경험을 할 걸 그랬다 싶긴 하거든요. 남과 비교해 자신의 진로를 정하지 말고 자신이 진정 좋아하고 행복해할 수 있는 꿈을 꾸라고 응원하고 싶어요.


익숙한 듯 새로운 정우
designer 김영화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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