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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tar #interview

정수정 슬기로운 생활

크리스탈과 지호 사이

editor 김지은

입력 2018.02.19 16:13:14

데뷔 10년 차. 마냥 어린 소녀인 줄로만 알았던 정수정(가수 활동명 크리스탈)은 어느새 사랑과 이별, 인생을 연기하는 어엿한 배우로 성장해 있었다.
정수정 슬기로운 생활
뜻밖이었다. 세상 모르는 철부지를 상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면의 묵직한 무게 추를 만나게 될 줄이야. 뜨거운 관심 속에서 지난 1월 18일 종영된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통해 ‘연기돌’ 반열에 오른 배우 정수정(24) 얘기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정수정은 주인공 제혁의 여자친구, 지호를 연기했다. 아직은 걸 그룹 f(x) 멤버 ‘크리스탈’로 더 유명하지만 지금 그녀는 가수보다 연기자로 쑥쑥 자라는 중이다. 

“2화에서 제혁(박해수) 오빠가 감방생활을 해야 하는 걸로 결정 난 뒤 지호가 접견실로 찾아가 울면서 화내는 신이 있었어요. 감정 소모가 많은 장면이라 걱정됐죠. 촬영 전날 해수 오빠한테까지 연락해 ‘나, 어떡하냐?’ 하소연을 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촬영 당일, 현장에 서니까 모든 것이 실제처럼 느껴져서 완전히 몰입이 되더라고요. 접견실 분위기, 죄수복을 입고 있는 오빠의 모습. ‘아, 내가 이렇게 몰입이 되는구나’ 느낀 건 처음이었어요. 정말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극 중 김제혁은 야구 외엔 모든 게 서툰 인물. 지호는 제혁이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지혜로운 조언을 해준다. 김제혁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의 조언들은 복잡하게 꼬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지호랑 저는 닮은 것 같아요. 밝고 쾌활한 면,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도 굉장히 진득한 캐릭터잖아요. 자기 좋다는 남자는 쳐다도 안 보고 제혁만 생각하는 여자. 저도 그런 거 같아요. 진득함이 있는 게 좋거든요. 그래서인지 지호에게 자꾸 감정이입이 됐어요. 오빠가 헤어지자, 하고 돌아서 나갈 땐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이런 게 선배들이 얘기하는 ‘캐릭터에 빠진다’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정수정이 생각하는 자신과 드라마 속 지호의 싱크로율은 60~70%. 지호에게서 자신도 알지 못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는 건 큰 즐거움이었다. 그런 즐거움을 알게 해준 드라마를 만난 건 어쩌면 그녀에게 내린 천운 아닐까. 

“많은 분들이 드라마를 사랑해주셔서 힘이 나요. 사실 전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너무 재미있어서 좋은 작품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촬영장에서도 선배님들과 제작진, 스태프들로부터 내내 좋은 기운을 받았고요.”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연출을 맡은 신원호 PD의 작품인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무척 재미있게 봤다는 그녀는 “누구나 신원호 PD와 작업을 하고 싶을 것”이라는 말로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오디션 때 마음을 비우고 대본 리딩을 했는데 막상 캐스팅이 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얼떨떨했어요. 어쨌든 PD님이 제게 캐릭터를 주시고 책임을 맡기신 거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고민이 있거나 자신감이 떨어질 때 PD님께 털어놓으면 언제나 쉽게 답을 주셨어요. 그런 모습에서 ‘믿고 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작품을 해보니 왜 다들 감독님과 작업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이번 작품을 위해 그녀는 긴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 태어나 지금까지 짧은 머리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선뜻 스타일을 바꾸기 쉽지 않았을 법도 한데, 오히려 그녀는 쿨했다. 

“단발머리는 PD님이 먼저 제안해주신 거예요. 이미지를 바꿔주고 싶으셨나 봐요. 다행히 밝고 씩씩한 지호랑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오히려 긴 머리였으면 지호다운 느낌이 나지 않았을걸요.”


#얼음공주 #제시카 #f(x)

정수정 슬기로운 생활
“잘 웃는데?” 

‘슬기로운 감빵생활’ 오디션 당시 신원호 PD가 그녀에게 툭 던지듯 한 말이다. 데뷔 초, 무표정한 얼굴로 춤을 추고 노래하던 그녀의 모습은 신비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차갑고 도도해 보였다. 그녀에게 따라붙은 ‘얼음공주’란 별명은 지금까지도 그녀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사람들의 선입견을 키워왔다. 

외국인 학교를 나와 친한 친구들은 모두 해외로 유학을 가고,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발을 들여 또래와 어울릴 기회가 없었던 것도 그런 이미지가 굳어지는 데 일조했다. 게다가 그녀는 지독한 ‘집순이’다. 2009년 f(x)의 멤버로 데뷔한 그녀는 10대에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바쁘게 보냈기에 성인이 되고 나선 언니, 엄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즐겁고 소중하다. 

“일곱 살 때 기획사에 캐스팅이 됐어요. 언니(‘소녀시대’ 전 멤버 제시카)가 소녀시대로 데뷔하기 전, 연습생으로 있던 때여서 저에겐 그런 것들이 당연하게 이어진 끈 같았죠. 4~5년 후 저도 자연스레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고, 갑자기 데뷔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런가 보다’ 생각했죠.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연예계 생활을 하게 된 거예요. 당시에 언니가 ‘너 정말 데뷔할 거니? 데뷔 전까지 몇 개월 시간이 있으니 잘 생각해봐라’ 했었는데, 중학교 2학년생이 뭘 안다고 인생의 대단한 결정을 할 수 있었겠어요. 그렇게 그냥 시간이 흘렀고, 데뷔를 했죠.”

그래도 연습생 생활은 재미있었다. ‘노래해봐’ ‘춤춰봐’ ‘연습해’ ‘녹음해’ 같은 주문들이 싫지 않고 달콤한 자극으로 느껴졌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책임감까지 더해지자 욕심도 생겼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지만 어쩌면 타고난 끼가 없다면 감당하지 못할 생활이었을 것이다. 

이번 드라마는 그녀의 연기력을 훌쩍 성장하게 해준 계기가 됐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과 호흡하며 간접적으로나마 다양한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드라마에서 함께 연기한 출연진은 드라마 밖에서도 그녀에게 좋은 선생님이자 선배, 친구가 돼주었다. 

“저에게 정말 필요했던 부분이었어요. 회식 자리 같은 데만 가도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아, 세상엔 이런 일을 겪는 사람들도 있구나, 이런 세상도 있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죠.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요즘엔 일부러 집 밖으로 자주 나오려 해요. 사실, 제 친구들은 지인들에게 절대 자기가 ‘크리스탈의 친구’란 얘길 안 하거든요.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소개시켜달라, 만나게 해달라 할까 봐 저를 배려하는 거죠. 그래도 이젠 조금씩 사람들도 만나고 밖으로 나가보려고요.”


#아날로그 #숙맥 #집순이

데뷔한 지 올해로 10년째. 그동안 그녀는 뭘 이뤘을까. 

“어렸을 때부터 뭔가 거창한 목표를 세우거나 대단한 꿈을 가진 적은 없었어요. 그냥 저를 흘러가는 대로 둔 것 같아요. 지금도 제가 뭔가 대단한 걸 해낸 건 아니고요. 다만, 저를 보고 힘을 얻는 팬들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그런 존재라고? 내 존재가 저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이런 생각들을 하면 스스로가 신기하기도 해요. 어쨌든 일반적인 경험은 아니니까 그런 것들이 제 인생에서 이룬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제는 그런 것들에 대해 책임감도 느껴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힘겨웠던 시절도 있었다. 악플이 두려워 인터넷을 멀리하기도 했고,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애쓴 적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게 되고, 또 자신에게 사랑을 보내는 팬들의 소중함도 알게 되면서 세상의 시선에서 오히려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마음속 부담이 차지하던 자리를 책임감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숙맥이다. 팬들의 사랑이 당연하게 여겨질 법도 하건만 지금도 여전히 팬들이 보내는 사랑 앞에 어쩔 줄 몰라하며 얼굴이 빨개진다. 

사랑한다는 말을 말로 하기보단 손편지를 써서 전하는 것이 더 좋고, 애틋한 순정파이기도 하다. 지금도 여행을 떠날 때면 여행지에서 구매한 예쁜 엽서에 마음을 담아 가족에게, 멀리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또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에게 보내곤 한다.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그녀 역시 그가 정성스레 쓴 손편지를 받아보고 싶단다. 남자친구가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도 자연스레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녀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이었다. 미래를 궁금해하기보다 옛것에 더 애착을 갖고 마음을 두는 점도 그랬다. 자신이 태어나기 훨씬 전 영화들을 보고, 옛날 음악을 들으며 어떻게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 흘러왔나, 자신이 부르는 노래와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 같은 것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나, 그런 것들에 더 관심이 간다고 했다.
 
약속된 인터뷰 시간이 끝났다. 어느덧 차갑고 도도해 보이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눈앞에는 내면이 한껏 무르익은 스물네 살 여배우만이 남아 있었다.


director 김지영 기자 designer 김영화
사진제공 SM엔터테인먼트


여성동아 2018년 2월 6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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