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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power_woman3 #interview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독박육아반대 #성평등주의자 #혼술마니아

pbeditor@donga.com

입력 2017.12.28 16:55:53

2017년 7월 취임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30여 년을 역사학자 겸 시민운동가로 살아왔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합리적 사고방식이 몸에 밴 인물이다. 취임사에서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는 핵심 요소가성 등”임을 강조한 6개월 차 페미니스트 장관을 ‘파워우먼 릴레이 인터뷰’의 세 번째 주자로 만났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여성가족부는 여성을 특별 대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이는 영문(양성평등과 가족을 위한 정부조직·Ministry of Gender Equality & Family)에 더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게 대우받고, 가족이 행복한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여성가족부의 목표인 셈이다. 

여성가족부가 그동안 여성 정책에 집중해온 것도 상대적으로 차별받는 여성을 지원하여 성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2017년 7월 7일 여성가족부의 새 수장이 된 정현백(65) 장관은 그런 의미에서 ‘최적의 인물’로 평가받는다.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독일 보훔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30여 년간 대학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한국여성단체연합, 참여연대 등의 시민 단체에서 활동해왔다. 

여성운동과 시민운동에 몸담으며 호주제 폐지, 성매매특별법제정 등을 이끌어낸 그를 일부에선 ‘골수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학자로서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시민운동을 넘어 정책 현장에서 성 평등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 정현백 장관을 취임 5개월여 만인 2017년 12월 13일, 서울 광화문정부서울청사에 있는 집무실에서 만났다.


정현백 장관과 그에게 매일 아침상을 차려주는 것을 삶의 낙으로 여기는 92세의 어머니.

정현백 장관과 그에게 매일 아침상을 차려주는 것을 삶의 낙으로 여기는 92세의 어머니.

장관이 되고 다섯 달이 지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요. 

2017년 9월에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이 있었잖아요. 바로 이어서 강릉, 아산, 부천, 서울 등 여러 지역에서 여학생 폭행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심지어 가해자들이 폭행 장면을 찍어 피해자의 언니한테 계속 동영상과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어요. 그동안 피부로 느끼지 못하던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했어요. 그 사건들을 계기로 여성가족부가 학교 밖 청소년 문제 해결에 더욱 힘쓰게 됐죠. 

또 CJ문화재단이 초청해 외국 대사들과 ‘아이 캔 스피크’라는 영화를 함께 본 일도 잊히지 않아요. 여태까지 본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영화는 슬펐는데 그 영화는 달랐거든요. 

전반부에 웃음을 주다가 마지막에 슬픈 과거를 보여주며 메시지를 확실히 전해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여성가족부가하는 사업에도 그런 방식을 도입해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2년부터 꼬박 6년을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 대표로 활동하고, 2016년엔 ‘글로벌시대에 읽는 한국여성사’라는 책도 내셨습니다. 장관님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어떤 것인지요. 

2017년 ‘미리엄-웹스터’ 사전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했어요. 하나는 여성의 권리나 이익을 실현하는 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성의 정치·경제·사회적 평등에 대한 이론이에요. 후자는 여성가족부의 지향과 맥락이 같아요. 페미니즘이 여성만이 아닌 젠더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문제들 속에서 평등을 실현하려는 사상이라는 의미죠. 저는 이걸 풀어서 여성과 남성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이론을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해요. 외국에서도 최근 ‘남성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의해 남성들이 얼마나 고통 받는가. 그로 인해 얼마나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분석이 많이 나오고있죠. 이제는 페미니즘이 남녀가 같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지향할 필요가 있어요. 페미니즘으로 인해 남성이 손해본다는 인식을 여성가족부가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해요. 고개 숙인 아버지, 외로운 아버지의 문제도 여성가족부에서 다뤄야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페미니즘이 일종의 유행이 됐습니다. 이를 어떤 관점으로보는지요. 

페미니즘이 1990년대에도 유행했는데 그때는 일관된 목소리가 있었어요. 한국여성단체연합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워 정부 정책도 비판하고 호주제 폐지 운동도 벌이고 그랬는데 지금은 다른 것 같아요. 젊은 사람, 장애인 여성 등 다양한 주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세대 간의 의견 차도 발생하고 있어요. ‘영펨(Young Feminist)’과 ‘올드펨(OldFeminist)’ 사이에서요. 다양한 주체가 나오는 건 좋은데 연대도 필요해요. 다양한 주체들이 저마다 자기 얘기를 하지만 어느 면에서는 연대의 틀 속에서 함께해야 호소력이 커지거든요. 

여성이어서 사회적 불이익이나 차별을 받은 일이 있습니까. 


제가 차별을 받았다고 하면 의아해할 것 같아요. 대학 교수가 되기가 어렵지, 일단 교수만 되면 65세까지 절대 쫓겨나지 않고 충분한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들을 하더군요. 그런데 실제로는 불평등을 겪었어요. 보이지 않는 차별이 항상 있었죠. 여제자가 해외에서 학위를 따갖고 오면 학부 강의를 못 받았어요. 이유를 물으면 “남자애들 기죽일 수 없다”고 했다더군요. 신문사에 들어간 대학 동기는 40대를 못 넘기고 사표를 냈고, 고등학교교사였던 다른 친구들도 정년까지 있지 못했어요. 불평등을 겪은 거죠. 저도 결혼을 했더라면 학문이나 시민운동 중 하나는 포기해야 했을 거예요. 예나 지금이나 혼자 사는 여성은 특이하고 예외적인 존재라는 인식이 늘 있었어요. “언제 결혼하냐?”는 질문을 60세까지 계속 받았거든요. 무척불편했죠. 

정 장관은 결혼하지 않았다. 자발적 미혼을 의미하는 비혼(非婚) 신봉자는 아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는 “결혼을 아예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없다. 늘 ‘못한 것’이라고 얘기한다”고 했다. 10년 전부터 그는 경기 성남시의 단독주택에서 92세인 어머니, 63세인 남동생 가족과 함께 살고있다. 정 장관과 어머니는 1층과 2층 절반을, 2층 나머지와3층을 동생 가족이 사용한다. 

남동생 가족,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느끼는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을 꼽는다면요.
불편한 점이 많아요. 이런 얘기를 해도 될까 싶은데, 동생네가 치우지를 않아요. 게다가 재미로 농사를 짓고 있어서 어수선한것들이 많아요. 그렇게 어질러놓고 사는 걸 “부르주아처럼 살길 거부해서”라고 합리화하는데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같이 못 살아요. 같이 사니 그런 게힘들어요. 주말에나 보는데도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게 쉽진 않거든요. 그래도 급한 일이 있을 때 서로 도움이 돼요. 

예를 들면 갑자기 약이 필요하거나 뭐가 고장 났을 때요. 음식을많이 하면 서로 갖다 주고요. 불편함과 좋은 점이 공존하는데, 저는 불편함에 길들여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우리 사회가 지금 너무 편안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독일에서 친구들이 오면 좀 과하다는 얘기를 해요. 충분히 걸어다닐 거리를 왜 마을버스를 타고 가냐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굉장히 많이 걷거든요. 에코 페미니스트인 독일인 친구는 제가 SM3를 운전해서 공항에 마중하러 갔더니 보자마자“ 너, 속물 부르주아가 됐구나” 하더라고요. 실용성을 추구하는 나라여서 현지인들이 주로 마티즈 사이즈의 차를 타거든요. 

평소 ‘혼술(혼자 술 마시기)’을 즐기신다면서요. 

독일 유학 시절에 생긴 버릇이에요. 유학 가기 전에는‘통행금지’가 있었어요. 술 마시다가도 자정이 되기 전 헐레벌떡집에 오거나 자정을 넘겨 유치장 가서 하루 자야 했죠. 유학을 갔을 때 무엇보다 통행금지가 없어서 좋았어요. 동료들과 밤마다 모여 새벽 2~3시까지 술을 마셨어요. 이러다 학위를 못 끝내겠다는 불안감이 들어 사교계 탈퇴를 선언하고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죠(웃음). 혼술을 하게 된 또 다른 이유도 있어요. 독일에 가면 동양 여성의 70~80%가 저혈압이 된대요. 

그래서 의사가 밤에 적포도주를 마시고 자라고 했어요. 의사가 공인해줬기 때문에 밤마다 적포도주를 마시고 잤죠. 독일은 술이 싸고 다양해서 매일 종류를 바꿔마시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지금도 혼술 잘해요. 적포도주와 막걸리를 즐겨 마셔요. 

어머님이 지금도 살림하시고 아침밥을 차려주신다죠. 

평생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주셨어요. 연로하셔서 이제는아침을 간단히 먹었으면 하는데 관철이 안 돼요. 어머니는 아침밥을 차려주는 게 당신의 역할이라 생각하세요. 집안일도 너무 많이 하셔서 저희 남매는 어머니의 건강이 염려돼 스트레스를 받아요. 가사 도우미가 사나흘 오면 해결될 일을 직접 하시니까요. 대안을 강구하려고 토론도 해봤는데 어머니 뜻대로 하시도록 두는 게 정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죠. 억지로 제 삶의 방식에 끌어들일 수는 없으니까요. 어쩌면 어머니에겐 그게 하나의 즐거움일 수 있으니 그 덕분에 더 건강하신지도 모르죠. 가만히 계시면 체력이 더 빨리 떨어졌을 수도 있고요. 

공동체 생활이 1인 가구의 노후를 위한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공동체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해선 서로 훈련이 필요할 것 같아요. 독일의 공동체 생활 패턴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그 구성원들은 서로 요구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의 경계를 서로 명확히 알고 있었어요. 1인 가구 넷에 2인가구 하나가 공동체 생활하는 데를 가보니, 가사를 가구별로 번갈아 맡더라고요. 구성원 6명이 그날그날 해야 할 일들을 서로 효율적으로 분담하는 점도 인상적이었죠. 유럽은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공동체 문화가 발달했어요. 제 친구가 신문사 기자였는데 독일에선 언론사 편집국장이나 사장이라는 이유로는 주차권을 받을 수 없어요. 집이 먼 사람부터 주차권을 배정해주거든요. 멀리 사는 사람은 출근길에 덜 멀리 사는 사람을 태워 오고요. 또 제가 아는 핀란드 대사는 스웨덴 북경대사관에 총영사로 있는 아내와 육아휴직을 번갈아가며 세번씩 했대요. 그럼에도 아무런 불이익도 당하지 않고 능력을 인정받아 대사가 됐죠. 당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우리 사회에도 그런 문화가 정착돼야 저출산, 경력 단절,성차별 등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수평적 관계가 일상적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독일은 누군가 특별히 많이 일할 필요가 없는 문화가 일상화돼있어요. 거기서 지내며 일상적인 민주적 관계가 조직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독일에 교수로 두 번 가서일하고 왔는데 당시 제게 비서가 있었어요. 이 비서는 오전 8시 정각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했어요. 저녁 6시에 연구소 교수들끼리 회의가 있는 날에도 바게트 빵에 치즈랑 버터를 발라서 랩으로 싸놓고 칼같이 퇴근했어요. 회의할 때도 연구소장이 직접 커피를 끓여왔고요. 비서의 권한을 존중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룰 속에서 생활하며 독일에서 배운 합리적사고와 경험이 한국에서 일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 

국회의원 출신의 전 장관들과 차별화된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학자이기도 했지만 여성운동과 시민운동을 쭉 했기 때문에 현실 문제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소통을 통해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해왔어요. 그런 점이 저만의 경쟁력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현 정부가 강조하는 것도 소통이고요. 실제로도 장관으로서 여성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나 여성들과의 소통을 강화해나가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것도 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시민단체 간사들, 대표들과 늘 같은 눈높이에서 토론을 통해 의사를 결정하고 상대를 배려하려는 노력을 항상 해왔어요. 

여성운동에 대한 이론과 실무 경험을 모두 가진 장관이어서 정부나 국민이 거는 기대가 큽니다. 자신의 경험을 어떤 식으로 정책에 녹여내실 계획인가요. 

여성운동을 할 때도, 장관이 돼서도 여성가족부의 주요 현안인 일과 가정 양립을 강조하고 있어요. 근데 일과 가정 양립을 실현하려면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겠더라고요. 저는 이걸 가능하게 만들려면 단순히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수준의 활동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서 여성가족부가 어떤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지를 좀 더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있어요. 여성가족부가 선정한 ‘가족친화인증’ 기업의 직원들과 최근 간담회를 열었는데,“사장님은 성평등 의식이 높은데 팀장이 싫어해서 저녁 6시가돼도 퇴근을 못한다. 그래서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를 제때 데리러 가지 못 한다”는 거예요. 사실 한국의 성평등 제도가 굉장히 정교하게 발달했는데, 이처럼 법과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큰 게 문제예요. 그 간극을 좁히려면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 반대예요. 지금은 무엇보다 성평등 문화를 확산하는 일이 시급해요. 이를 위해 여성가족부는 독박 육아나 전투 육아 등 성평등에 대한 담론을 계속 만들고 그걸 창조, 확산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어요. 

근래 논란이 됐던 한샘 여직원 성폭력 사건이나 성심병원 섹시댄스 논란, 몰카 범죄 등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한 사건과 범죄가 끊이지 않습니다. 해결책이 있습니까. 

한샘 사건의 피해자가 2차, 3차 피해를 당한 건 사회 전반의 성평등, 성범죄에 대한 감수성이 너무 낮기 때문이에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젠더 감수성이 굉장히 낮아요. ‘술집에서 하는 성희롱은 성희롱이 아니다’ 식의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우리 사회의 성희롱에 관대한 문화를 깨는 역할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얼마 전 발효한 공공 부문 성희롱 방지 대책에서도 알수 있듯이 처벌을 더 강화하지 않을 수 없어요. 성희롱이 형법에 저촉되는 범죄라는 인식이 있어야 예방 효과가 있거든요. 신종젠더 폭력에 대한 법안도 지금 범부처 공동으로 준비하고있어요.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문화 캠페인도 진행해야 하고요. 아울러 가장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지원을 병행할 거예요. 몰카로 찍은 나체 사진이 사이버상에 뜨면 이걸 내리는 데 시간이 걸리고 많은 돈이들어요. 여성가족부가 그 비용을 부담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같이 그걸 신속하게 내리도록 조처할 거예요. 그 비용에 대한구상권을 가해자에게 행사하고 피해자가 상담이나 소송을 무료로 할 수 있는 무료 맞춤 법률 서비스도 실시할 계획이에요.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피해자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퍼뜨리는 사람도 당연히 처벌할 거고요. 다시 강조하고 싶은 건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져야 하고, 그걸 관용하는 문화가 사라져야해요. 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성차별이나 성범죄에대한 감수성이 왜 중요한지, 몰카가 왜 문제인지,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를 계속 알려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가족부가 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무엇입니까.


지금 가장 시급한 건 저출산 문제 해결이에요. 그동안 정부가 막대한 재원을 투자한 저출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여성 일자리의 질’이 개선되지 못한 것에 주요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력공사가 있는 전남 나주시와 정부세종청사가 있는 세종시의 출산율이 국내에서 가장 높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큽니다. 직업의 안정성이 높아야 아이를 낳게 된다는 거죠.직업의 안정성은 성평등 문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돼야 높아질 수 있어요. 결국 저출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성평등 의식이 정부 모든 정책에 반영돼야 하죠. 여성 일자리문제, 성별 임금 격차 등 성차별적 노동 구조와 장시간 근로문화, 여성의 독박 육아 등이 성평등의 관점에서 시정돼야합니다. 여성가족부는 여성이 일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돕기위해 보건복지부, 교육부와 함께 아이돌봄 서비스도 실시하고있어요. 그럼에도 보육 시설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틈새나 사각지대를 메꾸는 일이 시급합니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낙태(임신중절)죄 폐지’에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낙태죄가 폐지되면 저출산 문제가 더 심각해질 거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것이, 독일은 통일된 후 낙태죄를 폐지했는데 출산율이 증가했어요. 낙태죄를 폐지한 동독이 이를 허용한 서독보다 출산율이 높았고요. 동독은 사회주의국가여서 모든 여성이 직장에 다니고 보육 시설이 완전히 국유화돼서 출산에 대한 부담이 적었던 거죠. 낙태죄에 대한 논란은 찬성과 반대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접근하기보다 불법낙태 시술로 여성들이 건강을 해치는 사례가 굉장히 많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낙태 수술을 한 후 난임이나 불임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거든요. 지금은 불법 낙태 시술로인한 안전권과 건강권 침해 문제로 접근해서 들여다보는 게 중요할 것 같고, 그 실태 파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에요. 이후 기초작업을 통해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현백 장관은 여성가족부의 가장 시급한 현안인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평등 문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현백 장관은 여성가족부의 가장 시급한 현안인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평등 문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학자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많은 걸로 압니다. 최근 그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유보됐는데 앞으로 이를 포함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계획인가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보류 결정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2019년 등재 여부에 대한 재심의가 열릴 예정이어서 여성가족부의 2018년도 예산에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지원 사업을 확보해놨어요.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루트로 등재의 필요성을 알리는 민간 단체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려고 해요.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연구소를 만들어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과 활동, 그림 등 흩어져 있는 관련자료들을 모아 정리하는 작업을 할 겁니다. 그게 나라다운나라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라고 생각해요. 군 위안부 문제는 더 이상 한일 간의 문제가 아니에요. 글로벌 스토리의 한 요소가 됐어요. 전쟁과 폭력, 내란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여성의 인권침해가 심각하거든요. 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석사 논문이유럽에서 엄청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그것도 다 모아야 합니다. 

저는 일본군 위안부 연구소를 통해 사실상 전쟁과 여성 관련한 이슈의 메카 역할을 우리나라가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일에 여성가족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성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여성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습니까. 


최근 서울대 강연에서도 한 이야기인데, ‘여성이어서 힘들 때 침묵하지 마라, 주변을 향해서 크게 소리를 질러라. 그러면 지원할 수 있는 여러 단체도 있을 거고, 정부가 운영하는 시설도 있을 거고, 안 되면 주변 사람에게 당당하게 도움을 청해라. 아이를 낳는 게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이를 기르는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이 책임져야 할 사안이 아닌 것 같다. 아프면 소리쳐라. 함께 연대하고, 함께 사회를 바꿔가자’고 하고 싶어요. 여성이 자신의 고충을 주변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문화가 조성되려면 남성과 사회에 말걸기를 시작해야 해요. ‘너희도 독박 육아하면 안 돼!’ ‘아이를 같이 기르자!’ ‘옆 사람이 힘들면 도와줘야 돼!’ 하고요. 서로 여성 혐오, 남성 혐오로 전선을 그을 게 아니라 말 걸기를 하고 함께 책임지자는 얘길 해야 한다는 거죠. 지금 이 시점에서아이 낳는 사람은 ‘82년생 김지영’같이 될 각오를 하고 아이를 낳는 건데, 사회가 책임을 져줘야죠. 

여성가족부 장관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은 뭔가요. 

먼저 학교 밖 청소년,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피해자, 한부모가족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고 고통 받는 국민이 자립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고 싶습니다. 임기 중 꼭 가시적 성과를 내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저출산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려면 사회구조를 바꿔야 하기에 제가 있는 동안은 크게 개선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완벽하게 개선되지는 않더라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캠페인이 그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밖에도 획기적인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해 여러 구상을 하고 있는데, 최근 발표된 ‘공공 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 5개년 계획’은 과거처럼 전체 기관장 인원의 몇 %를 여성으로 하겠다는 식이 아닌 부문별 목표치를 연도별로 지정해서 상당히 진전된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판단됩니다. 성평등 사회 구현을 위해 여성 대표성을 높이는 게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가족부는 이 계획이 연도별로 잘 추진되고 있는지 점검해 흐지부지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겁니다. 또 여성가족부에 ‘성평등보이스’라는 남성 조직이 있어요. 사회 각 분야의 남성45명으로 구성됐는데, 그들과 같이 성불평등과 성차별 문제해결에 선도적으로 나서는 남성들의 움직임을 확대하는 일도제 임기 중에 하고 싶어요. 일본군 위안부 연구소를 성공적으로 출범시키는 것도 장관으로서의 소망 중 하나예요. 관련 자료를 모으는 일이 간단치 않지만 우리의 아픈 역사가 국가와 이 땅의 후손들에게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photographer 조영철 기자 
designer 최정미


여성동아 2018년 1월 6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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