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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chef #interview #alterego

또 다른 박준우

editor 정희순

2017. 03. 07

셰프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혜성처럼 등장해 쿡방에서 활약하던 박준우는 요즘 TV를 ‘끊었다’. 그사이 그는 결혼해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고, 번듯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 디저트 카페의 사장님이 됐다. 박준우가 말했다. “이제야 제자리를 찾았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쟁쟁한 셰프들 사이에서 덥수룩하게 턱수염을 기르고 열심히 요리하던 박준우(34)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쿡방’의 원조 격인 일명 ‘셰프 오디션 프로그램’, 올리브TV 〈마스터셰프 코리아〉(2012)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요리 실력을 인정받았고 이후〈올리브쇼〉,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등 요리 관련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대중은 요리하는 모습을 기억하겠지만, 사실 그는 정식 셰프는 아니었다. 한국계 벨기에인인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족과 함께 벨기에로 건너가 대학에서 현대어문을 전공하고, 시인이 되고 싶어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등단을 준비했다. 하지만 문학도의 길은 녹록지 않았고, 결국 생업을 위해 작은 식음료 전문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그러다 출연한 프로그램이 바로 〈마스터셰프 코리아〉다. 벨기에에서 접했던 유럽 음식에 대한 감각과 전문지 기자로 활동하며 얻은 이론적 지식이 결합되어 그는 ‘전문 셰프 못지않게 유럽식 요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냉장고를 부탁해〉에 홍석천, 김풍 등과 함께 비셰프 출신으로 출연하면서 ‘쿡방의 수혜자’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그를 몇 차례 만났는데, 그때의 박준우는 셰프와 비셰프, 연예인과 비연예인의 경계선에 서 있었다. ‘요리를 잘하는 일반인’에서 하루아침에 스타 셰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명 인사’가 됐으니, 그조차도 자신을 한마디로 소개하기 어려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쿡방의 인기가 한풀 꺾일 무렵부터는 방송에서 그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작년 가을엔 그가 오랜 기간 교제해온 여자친구와 결혼한다는 소식만 연예 뉴스를 통해 전해 들었다. 그러던 중 올해 초 그가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한때는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이던 박준우가 결혼 후 어떻게 달라졌을지 근황이 궁금했다.

그를 만난 곳은 얼마 전 그가 새로 오픈했다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레스토랑. 기존에 서촌에서 운영하던 디저트 카페 ‘오 쁘띠 베르’와 와인 바 ‘오 그랑 베르’의 확장판이다. 한적한 주택가에 새로 들어선 건물 1층에는 디저트 카페 ‘오트뤼’가, 2층엔 유러피언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알테르에고’가 있는데 두 곳 모두 박준우가 직접 운영한다. 이전 서촌에서 운영하던 가게에 비해 10배쯤은 커 보이는 규모에 깜짝 놀라자, “건물을 샀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 월세!”라며 웃었다.






▼ 방송에서 통 안 보이던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지난해 10월까지 방영한 〈올리브쇼 2016〉을 마지막으로 TV 출연은 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라디오 프로그램 KBS Cool FM 〈박지윤의 가요 광장〉에서 ‘맛집 지도’라는 코너를 맡아 출연하고, 서울호텔관광직업전문학교의 특임교수로 가끔씩 강의도 하며 지내요. 간간이 문학 관련 행사 사회를 보기도 하고요. 가게 오픈을 준비하느라 요즘 바쁘게 지냈어요.

▼ 예능보단 교양에 집중하고 계신가 봐요.

맞아요. 제가 쿡방 예능의 수혜자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도 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김풍 작가 같은 경우는 방송 활동을 하면서 오히려 활력을 얻는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반대였죠.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려면 어느 정도 쇼맨십도 있어야 하고, 그걸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저는 그게 되레 스트레스였으니까요.

▼ TV 출연을 끊고 나니 가장 달라진 건 뭔가요.  

전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어머 셰프님, 왜 지하철을 타세요” 하면서 사인해달라, 사진 찍어달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럴 때면 “저 그냥 요리하는 일반인이에요” 말하곤 했죠. 그런데 요즘은 마을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해도 사람들이 잘 못 알아봐요. 그럴 때 방송 출연의 영향을 실감하곤 하죠. 편하기는 한데 가끔 아쉬울 때도 있어요. 일단 안정적인 수입원이 사라지니까요(웃음). 그래도 마음은 편해요. 이제야 나를 찾은 느낌이랄까요.

▼ 지난해 10월엔 결혼도 했죠. 오래 연애한 사이라고 들었어요. 아내는 어떤 사람인가요.

플로리스트예요. 서울 마포구 망원동 쪽에서 플라워 아틀리에를 하고 있죠.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어요. 만나고 얼마 후에 제가 벨기에로 떠나면서 편지나 전화 통화를 하며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우게 됐어요. 연애 기간이 16년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놀라는데, 멀리 떨어져 지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웃음). 결혼식 때는 많은 분들 도움을 받았어요. 주례는 푸드 칼럼니스트인 박찬일 셰프님이 맡아주셨고, 사회는 김도훈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편집장님이 해주셨죠. 축시는 김민정 시인이, 축가는 가수 성시경 씨와 테너 이상준 씨가 도와주셨고요. 덕분에 정말 멋진 결혼식이 됐던 것 같아요. 참 감사하죠.

▼ 신혼 생활은 어때요.

원래 살던 집에 살림을 꾸렸어요.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으면 좋은데, 레스토랑 마감을 하고 자정쯤 집에 들어가면 아내는 꽃 도매 시장에 가요. 엇갈린 신혼을 보내고 있는 셈이죠(웃음). 그래도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게 큰 힘이 되더라고요. 가족이 주는 안정감이 이런 거구나 싶어요. 주변에 몇몇 솔로 남자들이 “결혼하니까 좋냐”고 많이 묻는데, 그때마다 “움켜쥐고 있는 한두 가지 포기하면 다 좋아”라고 답해요.



▼ 꽃을 다루는 아내와 요리하는 남편이라니, 집엔 꽃향기와 음식 냄새가 가득하겠어요(웃음).

원래는 꽃을 별로 안 좋아했는데, 요즘 많이 좋아하게 됐어요. 아무래도 아내가 플로리스트다 보니 집에 가면 종종 꽃향기가 나더라고요. ‘이래서 사람들이 꽃을 사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집에서 요리는 주로 아내가 해요. 저는 한식을 잘 못하다 보니 평소 아침엔 아내가 준비한 한식을 주로 먹고, 가끔 저는 양식이나 디저트를 내는 식이죠.

▼ 방송 활동을 안 하게 된 것에 결혼도 영향을 미쳤나요.

어느 정도 그런 셈이죠. 조금 더 방송을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도 같았는데, 그렇다고 그 일을 계속 더 하면 개인의 삶은 사라져버릴 것 같은 시기였어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노를 젓다 보면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게 대서양으로 떠밀려 가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죠.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놓고 나니 이제는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 방송 활동은 접고 결혼에 가게 오픈까지, 작년 한 해가 박준우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된 셈이네요.

2016년을 시작하면서 김풍 작가와 다짐했던 것이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자”였어요. 문학이니 철학이니 따지면서 고고한 척하지 말고, 돈에 솔직해지자는 게 모토였죠. 그런데 결국 전 ‘에고’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더라고요. 같이 글 쓰던 동생들, 같이 요리하던 사람들은 “너는 방송 물을 먹어도 안 변하는구나”라고 말해요. 발전이 없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이 말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돈을 많이 못 버나 봐요(웃음).

▼ 아무리 월세라지만,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니에요?(웃음)

무리했죠(웃음). 서촌에서 운영하던 오 그랑 베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긴 했지만, 8평(26m²)에 14석밖에 없는 공간의 제약이 늘 아쉬웠어요. 마침 마음이 맞는 동업자를 만나 이곳 연희동에 레스토랑을 열게 됐죠. 이연복 셰프님은 공간을 보시더니 “열심히 해야겠다”고 하셨고, 김풍 작가는 저더러 “어서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시오”라며 돌직구를 날리더라고요(웃음).

▼ 가게 인테리어가 멋져요.

세계적인 셰프 알랭 뒤카스의 레스토랑 ‘플라자 아테네’ 인테리어를 하셨던 분이 이곳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아주셨어요. 제가 주문한 건 딱 세 가지였는데 하나는 인테리어에서 유럽적인 감성이 느껴지면 좋겠다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클래식과 모던이 잘 어우러지면 좋겠다는 것, 마지막 하나는 위트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이 세 가지 원칙은 메뉴를 짤 때도 마찬가지였죠.



▼ 어쩌다 연희동에 자리를 잡았나요.

강남, 여의도, 연희동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최적의 공간은 이곳이라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이연복 셰프님의 레스토랑 ‘목란’도, 정호영 셰프님의 ‘카덴’도 이 동네에 있다는 점에 가장 끌렸죠(웃음). 믿고 따라온 거예요.

▼ 가게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둘 다 불어인데 ‘오트뤼(Autrui)’는 ‘타인, 남’이라는 뜻이고, ‘알테르에고(Alterego)’는 ‘절친, 또 다른 자아’ 라는 뜻이에요. 타인이 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하는 거고, 내가 존재해야 남이 있는 법이잖아요. 조금 어렵죠? 조금은 낯설겠지만 가게 이름에도 이런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며 키워왔던 문학도의 꿈을 여기에 반영한 거죠.

▼ 메뉴는 어떻게 짰나요.

오트뤼엔 오 쁘띠 베르의 인기 메뉴였던 레몬타르트와 과일타르트, 마들렌 등의 디저트를 업그레이드해서 가져왔어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인 알테르에고의 메뉴는 시즌별로 달라지죠. 2월까진 굴과 관자, 송어 알, 아귀 등을 쓰는 메뉴를 냈는데 3월부턴 봄 콘셉트에 맞춰서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주꾸미, 넙치류 등으로 식재료에 변주를 주려고 해요. 여름엔 또 바꿀 거고요. 메뉴를 구성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와인 리스트예요. 벨기에에서 지내다 1년간 프랑스로 건너가 와인 공부를 했던 적이 있을 정도로 제가 와인 애호가거든요. 알테르에고의 와인 리스트는 미국이나 칠레의 와인보다는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의 와인들로 꾸렸어요. 프랑스 와인은 미국이나 칠레 와인에 비해 가격은 좀 비싼 편인데 그만큼 깊은 맛이 있어요. 특히 부르고뉴 지방을 중심으로 한 와인들로 준비할 예정이에요.

▼ 앞으로 계획이 있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저 역시 ‘빚 청산’이 목표죠(웃음). 글 쓰는 일을 하다가 요리로 넘어간 저처럼 아내 역시 일반 회사를 다니다가 꽃을 다루는 일을 하게 된 사람이에요. 남들보다 조금 늦게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하게 됐다는 공통점이 있죠.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벌여놓은 일도 많다 보니 아직 2세 계획은 없어요. 지금은 둘이 지내는 게 좋기도 하고요.


파인 다이닝이란 품격 있는 코스 요리와 최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급 식당을 의미한다.
박준우가 운영하는 파인 다이닝 ‘알테르에고’에선 가볍게 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는 런치 메뉴와 유럽식 정찬을 즐길 수 있는 디너 메뉴가 준비돼 있다.

런치 메뉴는 레제(LE´ger), 클래식(Classique), 꼬삐유(Copieux)로 나뉘어 있고
가격은 2만9천~4만5천원 수준. 저녁 메뉴는 레제(LE´ger), 클래식(Classique), 구르망(Gourmand), 프레스티지(Prestige)로 구분되며 가격은 8만8천~18만원 선. 프레스티지 메뉴는 방문 3일 전에 예약이 가능하다.

사진 조영철 기자
디자인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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