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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연의 용기, 그리고 진심

EDITOR 조윤

입력 2019.09.02 17:00:01

KBS 대표 아나운서에서 예능인과 연기자를 넘나드는 방송인으로, 최근에는 카페 사장님으로 변신한 오정연. 상처 뒤에도 “늘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진심 어린 이야기.
오정연의 용기, 그리고 진심
“뭐 드시겠어요?”라고 묻는 그는 영락없는 ‘사장님’의 모습이었다. 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서울 신촌 서강대 인근의 한 카페. 지난 5월부터 오정연(36)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그는 매장의 페인트칠을 수차례 해야 했던 일, 제빙기가 부족해 인테리어 공사까지 다시 해야 했던 일, 믹스커피만 마시던 입맛 때문에 국제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취득한 일 등을 말하며 눈을 동그랗게 떠 보였다. 직접 개발한 메뉴를 자세히 설명해놓은 메뉴판도 눈에 띄었는데 그는 이걸 ‘직업병’이라고 표현했다. 늘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아나운서로서의 경력 때문이라는 것.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선 “혹시 놓치는 말이 있을까봐…”라며 휴대전화에 적어온 메모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아직 곳곳에서 직업병이 읽히긴 하지만 오정연은 그간 감춰왔던 끼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2006년 KBS 아나운서로 입사한 뒤 9년 만인 2015년 프리랜서로 전향했고, 이듬해 MBC 드라마 ‘워킹 맘 육아 대디’ 주연으로 1백20부작을 소화했다. 이후 진행뿐 아니라 다양한 예능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한국무용에 기반한 춤극을 선보이기도 했다. 인터뷰 당시엔 9월 1일까지 공연되는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로 연극 무대 데뷔를 앞두고 연습이 한창이었다. 연극은 투자에 실패한 중년 남성, 여고생, 젊은 부부 등의 옥상 자살 소동극이다. 자살을 위해 옥상에 모인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생의 의지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에 출연 중인 김승현과 부부 연기를 펼치는 오정연은 매일 다섯 시간씩 이어지는 연습 강행군에도 ‘도전’이라는 글자 앞에서 즐거워했다. 

인터뷰 이틀 뒤인 8월 1일 가수 강타와 레이싱 모델 우주안의 열애설이 터지자 오정연은 그 이튿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두 사람의 이름이 오른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캡처해 올리고 2년 전 연인의 배신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사실을 털어놨다. 글이 세간에 크게 화제가 되자 그는 게시물을 삭제하고 ‘…ing’라는 문구와 함께 ‘여성동아’와의 인터뷰 당시 찍은 사진들을 게재했다. 오정연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슈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라 더 말씀드리긴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그는 힘든 시간을 지나며 숨지 않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ing일 그의 도전과 용기가 담긴 이야기를 공개한다.


오정연의 용기, 그리고 진심
카페 ‘사장님’으로서의 삶은 어떤가요. 

손님들이 다 가고 텅 빈 가게를 바라보면 뿌듯하고 든든한 마음이 들어요. 책임감도 커졌죠. 아르바이트생과 직원이 모두 10명이나 되는데 이 공간과 그들을 제가 책임져야 하니까요. 매출도 마음에 영향을 주더군요. 하하. 장사가 저조할 때는 기분이 달라지기도 해요. 그래도 좋은 건 고마운 분들을 모셔서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저만의 공간이 생겼단 거예요. 연락이 뜸했던 지인들도 여기에 제가 늘 있으니 많이 놀러 와요. 프리랜서가 되면서 인간관계가 많이 좁아졌는데 그리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어서 생활도 활기차졌어요. 

오정연 씨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팬이라고 하면서 선물도 갖다 주시고, 지방에서 찾아오는 분들도 계셨어요. 어제 저녁에는 2007년에 KBS에서 카메라 보조로 일했던 분이 제가 늘 밝게 인사해줘서 기억에 남았다며 이야기도 안 하고 찾아와 무척 반가웠어요. 방송국에서 일할 때는 그쪽 사람들만 만났는데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인연들이 생기면서 사람 사는 재미를 느낀달까요.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로 연극 무대 데뷔도 앞두고 있어요, 연극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김승현 씨와 한 번 방송을 같이한 적이 있는데 몇 달 전 건너 건너 연락처를 물어 전화가 왔더군요. 혹시 연극을 해볼 생각이 없냐면서요. 그냥 제가 잘할 것 같다고 생각했대요. 내가 왜 잘할 것 같았냐고 물어보는 것도 이상해서 질문은 안 했죠(웃음). 시나리오를 보고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부부로 출연하는 김승현 씨와의 호흡은 어떤가요. 

김승현 씨는 방송에 나오지 않을 때도 연극을 오랫동안 계속하셨더라고요. 방송계 대선배이시니 연기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고, 인간적으로도 겸손하고 정말 수더분해요. 부부가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많은데 각자 캐릭터가 잘 맞는 것 같아요. 

원래 연기에 대한 욕심이 있었나요. 

‘워킹 맘 육아 대디’를 연출한 PD님께서 제가 출연한 여행 프로그램을 보시고 “끼가 많은 것 같다”며 먼저 제안을 해주셔서 첫 드라마에서 주연까지 맡았죠. 그땐 연기를 하고 싶다기보단 아나운서라는 틀에서 벗어나 뭐든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때가 서른세 살이었는데 그 나이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게 무척 기뻤죠.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는 밤을 새우는 날도 많고, 아나운서 출신이 배우들 사이에 있는 게 낯선 데다 누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이 컸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건 다 잊힐 만큼 무척 재미있더군요. 이후 카메오로 드라마에 여러 번 출연했고요. 

연극은 방송 연기와는 또 다른 도전일 텐데요. 

언론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처음엔 방송 전공을 선택했다가 연극영화로 바꿨어요. 이제 그 전공을 본격적으로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온 셈이죠. 연극은 드라마와 달리 대사도 더 많고 무대 동선도 외워야 해요. 연극인들은 정말 열정적이에요. 그 열정을 옆에서 느낄 수 있어 좋고, 7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관객들과 가까이 대면하는 것도 설레요. 카메라를 거치지 않는 것이라 어떻게 봐주실까 더 떨리긴 하지만요. 

‘자살하기 위해 옥상에 모인 사람들’이라는 설정이 독특해요. 이 연극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바가 있나요. 

요즘의 사회는 온전한 정신으로 한결같이 살기 어려운 것 같아요. 누구나 살면서 살기 싫단 생각을 한 번쯤 하잖아요.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말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옥상으로 올라가 죽으려 하다 번개가 치니 살겠다고 피하기 바쁜 상황을 묘사했어요. 본능적인 반응이죠. 괴로운 현실을 피해 죽으려 했지만 사실 죽고 싶은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내 것만이 아니에요.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공동 소유라고 할 수 있죠. 그들을 위해서라도 주어진 인생을 잘 살아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방송국 소속 아나운서에서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삶이 크게 달라졌을 듯해요. 

회사에 다닐 때는 아나운서라는 이미지도 생각해야 하고 공영방송을 대변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부담감이 있었죠. 아나운서 오정연과 인간 오정연은 다른데 전자에만 맞추는 삶을 살았어요. 예능 프로에 나가서도 윗분들이 싫어하시진 않을까 걱정하면서 행동했어요. 회사는 조직이니 튀는 것보다는 조직원으로서 성실하게 생활한 거죠.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인간 오정연으로서 솔직한 제 모습 그대로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젠 숨은 끼를 발산해야 하는, 전혀 다른 위치에 선 셈이네요. 

그게 처음부터 잘되진 않더군요. 프리랜서 5년 차가 되면서 좀 자유로워졌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그간 해오던 게 있고, 또 대중은 아나운서 오정연으로 계속 바라보니 그 이미지를 깨는 게 쉽지 않았죠. 일부러 모습을 꾸미려는 생각은 없어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솔직한 방송인이 되고 싶어요. 무조건 튄다고 해서 특별한 건 아니니까요. 

KBS 재직 시절 9년간 한 번도 휴가를 내지 않을 만큼 열정적이었다고요. 그런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뭔가요. 

동기들이 모두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저만 남았을 때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였어요. 새로운 자아실현의 욕구가 생기더군요. 마침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 방송이 활성화되면서 창의적인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타났죠. 여러 연예기획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어요. 나를 원하고 내 가능성을 믿어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용기를 내게 됐어요. 


오정연의 용기, 그리고 진심
지금의 삶에 만족하나요. 

프리랜서의 삶은 장단점이 분명해요. 이제는 방송이 끝나면 집으로 가도 되고, 재충전과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죠. 훌쩍 떠날 수도 있고, 카페를 운영하듯 다른 일을 병행해도 되고요. 조직에 얽매이지 않으니 확실히 방송할 때도 더 편해졌어요. 반면 늘 함께하던 동료들이 없어 외롭기도 해요. 또 바쁠 때는 잠을 못 잘 정도로 바쁜데 일이 없을 땐 일주일 내내 아무 스케줄이 없어서 그 괴리를 이겨내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쓸모없는 인간이 된 듯했죠. 매일 출근하는 곳이 있으면 힘든 마음이 깊어지다가도 끝이 나는데 이젠 막기 어렵더군요. 힘든 걸 잘 안 털어놓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얼마 전 방송에서 슬럼프에 빠지고 이를 극복해낸 경험을 이야기해 화제가 됐어요. 

2년 전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너무 큰 상처를 받았어요. 이전까지는 늘 모범적으로 살았고 주위 사람들 속 썩이지 않으려 노력해왔는데 그런 모습을 다 잃고 어둡고 냉소적인 사람이 됐어요. 자존감이 바닥을 쳤죠. 세상을 등지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런 상황이 1년간 지속됐어요. 하지만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던 것 역시 사람들 덕분이었어요. 지칠 만도 한데,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저를 끌어내겠다고 박신영 아나운서와 코미디언 전영미 언니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왔어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긴 터널을 나올 수 있었죠. 그 일이 있은 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어요. 그 전까진 ‘난 끝이다’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까지 된 원인을 살펴보니, 그동안은 불만이 있어도 속을 드러내지 않고 참기만 하면서 지낸 거예요. 화병이 난 거죠. 이제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해요. 예전에는 궁금한 게 있어도 이상하게 보일까 봐, 그런 걸 왜 물어보나 생각할까 봐 참았는데 이제는 어린아이처럼 다 물어보고요. 사람도 저한테 해로울 것 같으면 아예 만나지 않아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려고 하죠.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실천해가고 있다고요. 

내가 행복해야 타인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단 걸 깨닫고 나선 원하는 걸 하며 지내려고 해요. 작년에 프리다이빙과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땄어요. 욕심을 부려 강사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연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강사 과정도 이수했고요. 지금은 연극에 몰두하느라 잠시 쉬고 있지만 디제잉도 배우고 있어요. 일상 나눔을 주제로 유튜브 채널도 곧 오픈해요. 봉사 활동도 시작했죠. 카페를 하면서 중소기업사랑나눔재단의 소상공인 대표로 이사직을 맡았어요. 이제 타인에게 제 것을 베풀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아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조금씩 움직이다 보면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도 다른 것들이 찾아오더군요. 인정받은 다음에 뭘 하려고 할 게 아니라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살펴보면 할 게 정말 많아요. ‘이만큼 화려했던 과거가 있는데 초라한 일을 하면 주위에서 어떻게 볼까’ 하는 두려움도 있겠지만 스스로 중심을 잡고 있으면 타인들도 우습게 안 보거든요. 저도 한참 힘들 때는 방송이 들어와도 못 하겠다 했는데 조금씩 움직이니 그런 것이 화제가 되고, 살찐 걸로도 화제가 되고요(웃음). 작년 이맘때만 해도 정말 암울했는데 말이에요. 인생은 타인이 약간 밀어주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제대로 움직이는 건 자기 의지에 달렸어요. 열정을 가진 모습 자체로 아름답다고 믿고 실천하면 길이 보일 거예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 

전 방송이 천직인 것 같아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방송에 도전하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는 게 보람돼요. 일상에서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경험하고 느껴야 그걸 대중 앞에서 보여드릴 수 있는 내실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아요. 하루하루 충실히 살다 보면 내가 다져지고, 그랬을 때 대중의 사랑도 따라오는 게 아닐까요. 앞으로 지켜봐주세요.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김도균 디자인 김영화




여성동아 2019년 9월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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