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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수밖에 없는 월드 클래스 손흥민

EDITOR 양종구 동아일보 기자

입력 2019.07.01 17:15:18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간판 선수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손세이셔널’을 일으키고 있는 손흥민 집중 탐구.
사랑할 수밖에 없는 월드 클래스 손흥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월드 클래스 손흥민
6월 2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에서 리버풀에 0-2로 패한 뒤 눈물을 보인 잉글랜드 토트넘의 손흥민(27)은 한국이 낳은 금세기 최고의 축구 스타다. 비록 ‘빅 이어’(UCL 우승컵)를 들어 올리지 못했지만 손흥민은 2018~2019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UCL 결승전을 끝으로 막을 내린 2018~2019 시즌에서 20골(정규 리그 12골, UCL 4골, 리그컵 3골, FA컵 1골)을 터뜨렸다. 자신의 한 시즌 최다 득점(21골·2016〜2017 시즌)에 한 골이 부족했지만 명실상부한 최고의 시즌이었다. 유럽 최고의 무대인 UCL에서 이번 대회 4골을 포함해 통산 12골을 기록하면서 막심 샤츠키흐(우즈베키스탄·11골)를 제치고 아시아 선수 역대 최다 골 보유자가 됐다.


#스마일 보이 #울보 #걸어다니는 광고판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에이스 손흥민은 연간 1백억원 상당의 수익을 올리는 광고계 블루칩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에이스 손흥민은 연간 1백억원 상당의 수익을 올리는 광고계 블루칩이기도 하다.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쐐기 골(한국 2-0 승리),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 이어 UCL 준우승까지. 손흥민은 이런 활약 덕택에 생애 최고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의 인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TV 광고는 물론 건물 옥외 광고, 프린트물 광고 등 손흥민이 등장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최근엔 ‘신라면’과도 계약했다. 농심은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손흥민 선수와 신라면의 글로벌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져 광고 모델로 발탁했다”고 밝혔다. 2008년부터 후원받고 있는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까지 합치면 손흥민이 광고 모델인 제품은 12개나 된다. 올여름 10개 이상(최대 30개라는 소문도 있다)의 광고를 더 찍어야 한다고 한다. 광고계에 따르면 손흥민의 모델료는 업계 최고 대우인 6개월에 6억원, 1년 10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토트넘에서 7백28만 파운드(약 1백억원)의 연봉을 받는 그는 광고료 등만으로도 1백억원 가까이 추가 수입을 올릴 것으로 추정된다. 

손흥민의 ‘오늘’은 아버지 손웅정 씨의 고독하고 끈질긴 훈육에 힘입은 바가 크다. 손흥민은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에게 ‘개인 훈련’을 받았다. 매일 달리고 또 달렸다. 볼 리프팅(양발로 볼을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차기)과 드리블, 트래핑(오는 볼을 자기 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게 받아 안전하게 컨트롤하는 기술) 등 기본기 훈련을 지독하게 반복했다. 모두 아버지의 지도에 따른 것이다. 최근 빛을 발하고 있는 중앙, 좌우 등 위치를 가리지 않고 터뜨리는 골도 어릴 때부터 하루 수백 번씩 한 슈팅 훈련의 결과다. 페널티 지역 및 외곽의 중앙과 좌우, 골을 터뜨릴 수 있는 곳에서 오른발 왼발 한 발로 1백 회 이상 슈팅을 날렸는데 조금이라도 설렁설렁하면 어김없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슈팅 한 번을 해도 혼을 담아야 했다. 이런 훈련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8년 동안 이어졌다. 매일 2시간 30분씩 3백65일 계속됐다. 손웅정 씨는 “좋은 기술은 안정적인 기본기에서 나온다. 어릴 때는 기본기를 쌓고 축구를 즐기는 방법을 배울 때”라고 강조했다. 

손웅정 씨는 한때 잘나가던 축구 선수였다. 키는 168cm에 불과했지만 100m를 11초 초반에 주파하는 빠른 발을 이용한 돌파가 일품이었다. 춘천고(강원), 명지대, 상무를 거쳐 프로축구에 입성했고 한때 태극마크도 달았다. 하지만 1989년 5월 프로축구 일화 소속이던 그는 당시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대우와의 경기에서 아킬레스건이 파열돼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수술과 재활 치료를 받은 뒤 복귀했지만 부상 후유증으로 빠른 발은 무뎌졌고, 현란하던 드리블도 수비수에게 막히기 일쑤였다. 결국 1990년 한창 나이인 28세 때 은퇴했다. 은퇴 후 그는 강원도 춘천시에서 유소년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첫째 흥윤이와 둘째 흥민이도 아이들 틈에서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차고 다닐 때부터 장난감 공을 차고 놀았던 흥민이는 축구를 매우 좋아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직접 축구를 가르치면서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손씨는 “초등학생이었지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중량감이 있었다”며 “잘 가르치면 재목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문에 더욱 엄격하게 대했다”고 술회했다.




#아버지의 후회와 헌신 #탄탄한 기본기 #월드 클래스의 자신감

손흥민의 아버지이자 멘토, 손웅정 씨.

손흥민의 아버지이자 멘토, 손웅정 씨.

아버지는 손흥민이 자신처럼 되지 않기를 바랐다. 손씨는 선수로서 자신에 대해 “창피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빠른 발 때문에 그나마 버텼지 기술이 너무 부족했다”며 “나 같은 선수로 안 만들려고 흥민이에게 기본기 연습을 죽도록 시켰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손흥민에게 늘 “남과 똑같이 해서는 절대로 앞설 수 없다”고 말했다. 이를 실천하는 것은 오직 연습뿐. 이런 노력의 결과로 손흥민은 15세 때 강원도 원주 육민관중학교 축구부에 들어가면서 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육민관중 나승화 감독은 “타고난 유연성, 스피드에 탄탄한 기본기와 축구를 이해하는 머리까지 갖췄다”며 손흥민을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이후 그는 2008년 16세 이하 아시아선수권(4골), 2009년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 월드컵(3골)에서의 맹활약을 앞세워 그해 ‘차붐’ 차범근 선수가 누볐던 독일 분데스리가의 명문 함부르크에 입단했다. 

손흥민은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서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이적해서도 연습을 거르지 않았다. 

손흥민은 독일에선 ‘실전’을 배웠다. 유럽은 유소년도 연령별로 주말마다 국가별 리그를 벌인다. 주로 네덜란드, 벨기에 등 가까운 나라와 리그를 하지만 리그가 없을 땐 잉글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등 축구 강국 클럽팀들이 참가하는 국제대회도 틈틈이 열린다. 네덜란드에서 활약했던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유럽은 어릴 때부터 덩치 큰 선수, 기술이 좋은 선수들과 치열한 경기를 치르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경기 중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게 찬다. 손흥민도 많은 실전을 통해 ‘유럽 선수도 별 것 아니다’라는 자신감을 몸으로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흥민이라는 스타는 그냥 탄생한 게 아니었다.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시스AP 디자인 최정미




여성동아 2019년 7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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