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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사랑하는 도시어부 김래원

EDITOR 김지은

입력 2019.06.27 17:00:01

연예계의 소문난 낚시광 김래원. 고향 강릉에선 바닷물고기를, 최근 개봉된 영화에선 사랑을 낚는 그의 순수한 열정과 낭만에 관한 이야기.
영화를 사랑하는 도시어부 김래원
배우 김래원(38)이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6월 19일 개봉)으로 스크린에 컴백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의 대표작 ‘해바라기’(2006)를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2017년 추석 극장가에 흥행 신드롬을 일으켰던 ‘범죄도시’의 강윤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니 이번에야말로 걸출한 한국형 액션 영화 한 편을 제대로 보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예상은 처음부터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영화는 목포 최대 깡패 조직의 보스 장세출(김래원)이 변호사 강소현(원진아)에게 한눈에 반하는 데서 시작한다. 주인공 장세출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녀의 요구대로 모든 걸 내려놓고 착한 일, 좋은 일을 하며 고군분투하는 200% 순정남이다. 

“시나리오를 받고 첫 미팅 자리에서 감독님이 ‘어땠냐’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솔직히 멜로로 읽었거든요. 그런데 지인들도, 소속사에서도 그렇지 않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말씀을 드렸죠. ‘저는 멜로로 봤는데, 감독님은 어떠시냐’고요. 다행히 감독님께서 ‘제대로 본 게 맞다’ 하셨어요. 영화는 다양한 장르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감독님이 살리고 싶었던 것은 ‘멜로’였고, 결과적으로는 의도하신 면들이 작품에 잘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촬영을 하는 동안 걱정이 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비중으로만 따지자면 애정 신보다 액션 신이 훨씬 많았다. 시간과 공을 들인 것도 액션 신 쪽이었다. 스케일이 제법 컸던 버스 추락 장면에선 다급했던 상황의 긴장감을 살리기 위해 배우들은 물론 스태프들도 갖은 고생을 했다. 4층 높이의 배에서 뛰어내리는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때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와이어 줄을 손에서 놓을 만큼 혼신의 힘을 다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 모래사장에서의 격투 신에서는 추운 날씨를 견디느라 종일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런 반면 장세출과 강소현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기껏해야 서로의 숨결을 느끼며 키스를 망설이는 장면 정도. 촬영을 하는 동안에는 그것만으로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김래원의 눈빛이 다 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도시어부 김래원
안타깝게도 감독의 의중을 직접 들을 기회는 없었다. 강 감독이 갑자기 맹장염 수술을 받게 되는 바람에 언론시사회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사회 직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배우 최귀화가 밝힌 “김래원의 눈빛이 다 했다”는 말에는 누구나 공감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이 의도한 것이 무엇이든 사실이 그랬다. 다짜고짜 자신의 뺨을 때리는 여자에게 한눈에 반하고 마는 깡패의 감정선을 그 흔한 러브 신 하나 없이 눈빛 하나로 고스란히 끌고 간 23년 차 배우의 내공이 없었다면 어찌 이 얼토당토않은 설정에 2시간여를 푹 빠져들 수 있을까. 



“스토리 자체는 엄청 비현실적이고 동화 같잖아요. 조직의 보스가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도, 그 이유가 한 여자 때문이라는 것도. 그걸 2시간 안에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가장 어려웠던 거 같아요. 하지만 강윤성 감독님이니까 충분히 가능할 거란 생각도 했죠.” 

그는 시나리오를 받아든 날부터 촬영이 끝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강윤성 감독’에게 맡길 만큼 그를 신뢰하고 따랐다고 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영화의 모든 장면을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열어두는 강 감독 특유의 연출법에 화답하고픈 욕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겸손하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현장에서 감독님과 생각이 정말 잘 통했어요. 가령 세출이 버스 사고 후 주방으로 들어가는 신에서 원래는 젖은 셔츠를 벗는 장면이 있었어요. 제가 원래는 촬영에 들어가면 술을 입에도 안 대거든요. 이번 영화에서는 특히 몸이 드러나는 장면이 있을 수도 있어서 촬영 전에 식단 조절까지 하면서 식스팩을 만들었죠. 그러다 주방 신을 찍는데 감독님이 상의 탈의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이건 선택의 문제’라 하시기에 저는 ‘세출이의 캐릭터상 관객들에게 일부러 상의를 벗어 연출된 무언가를 보여주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했죠. 감독님도 그 대답을 기다리셨던 거 같아요. 그날 식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감독님이랑 매운탕에 소주를 한잔했습니다. 영화 시작하고 간이 들어간 음식을 먹은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어요.” 

영화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는 일, 그 모든 결정의 순간에 배우들의 판단을 1순위에 두는 강윤성 감독의 작업 방식은 배우 한 사람 한 사람 스스로가 영화 속 캐릭터가 되어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몇 달간 고생스럽게 지켜온 순도 100% 식스팩을 감상할 기회는 그렇게 싱겁게 날아가버렸지만 덕분에 김래원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새롭게 시작된 미니멀 라이프

4개월여 목포에서의 생활은 그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머릿속에 떠돌던 복잡한 생각과 고민을 떨치는 법을 깨우치게 된 것부터가 일생의 큰 변화다. 

“작품을 하다 보면 늘 캐릭터를 통해 배울 점이 있더라고요. 그런 부분은 자연스럽게 흡수를 하곤 했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도 장세출이란 인물을 통해 많은 걸 배웠어요. 저는 무언가를 할 때마다 늘 생각이 많고 머릿속이 복잡한 편이거든요. 반면 장세출은 한번 무언가에 꽂히면 고민하거나 돌아보지 않고 목표를 향해 직진하는 스타일인데, 초반에는 ‘이런 내가 어떻게 하면 단순한 돌직구 스타일의 장세출을 잘 연기할 수 있을까’를 엄청나게 고민했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겠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체가 장세출의 모습이 아니라는 걸. 그때부터 많이 내려놓았어요. 복잡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던 것들을 단순화하는 법을 조금씩 터득하게 된 거죠. 그러고 나니 마음이 많이 편해졌어요.” 

끈끈한 동료애가 무엇인지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특히 장세출의 오른팔과 왼팔 역할을 맡았던 배우 최재환과 차엽은 촬영 내내 그에게 둘도 없는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주었다. 

“숙소에서 넉 달을 함께 생활하다 보니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현장 상황이 수시로 바뀌어도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던 것도 두 사람 덕분이었어요. 제가 낯가림도 좀 있고, 그렇게 다정다감하게 후배들을 챙기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저한테 너무나 살갑게 잘 대해주었어요. 촬영 시간 외에도 내내 붙어 지내면서 식사를 같이하고, 매일 서로의 방을 오가며 새벽 3~4시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냥 식구처럼 되어버린 거예요. 심지어 어느 날은 셋이서 같이 등장하는 신을 촬영하는데 감독님께 ‘저희는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하고 있으면 되죠?’라고 말씀드린 적도 있어요. 특별한 설정을 하는 게 오히려 어색할 정도로 서로 편한 사이가 되었거든요.”


다시 강태공의 삶으로

영화 촬영이 끝난 후 그는 평소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강태공의 삶으로 돌아갔다.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은 그의 취향과는 맞지 않는 일이다. 그가 인터뷰나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몹시 인색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작품을 선택할 때는 제가 잘할 수 있나 없나를 먼저 봅니다. 재미가 있나 없나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무언가 제 안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도전할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때 결정적인 매력을 느끼는 거 같아요. 낚시도 그래서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뭐가 잡힐지 모르고, 못 잡을 수도 있고. 영화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저 혼자 잘한다고 될 것도 아니고 저 혼자 못한다고 해서 잘 안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 그가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결심했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가 선택한 프로그램은 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이하 ‘도시어부’). 이번 영화에 출연한 배우 최재환도 동행했다. 

“이번이 기회인가 싶었어요. ‘도시어부’ 출연은 1년 반 전부터 계속 제안을 받아왔었거든요.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계신 바다낚시의 달인 박진철 프로는 개인적으로 같이 낚시를 다니는 사이기도 하고요.” 

인생에서 연기를 빼면 낚시만 남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김래원은 연예계에서 소문난 낚시광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낚시를 지금의 10분의 1 정도로 줄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하는 그는 아예 낚시를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의 못 말리는 낚시 사랑에 국내 최고의 계류낚시 명인인 아버지의 영향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그의 아버지는 오히려 어릴 적 그가 낚싯대에 손을 대는 것조차 싫어할 정도로 염려가 크셨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낚시에 관해 배운 건 하나도 없었어요. 제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을까 봐 그러셨던 거 같아요.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가도 일부러 고기 안 잡히는 데서 하라고 하시곤 했거든요.”


이상형은 사랑이 많은 여자

올해로 만 서른여덟 살. “결혼도 해야 하는데, 낚시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큰일”이라는 너스레에 또다시 사랑 이야기를 꺼냈다. 목포 사투리를 쓰는 무뚝뚝한 조직의 보스, 하지만 노래방에서는 담백한 목소리로 김동률의 노래를 부르는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한 장세출의 사랑법은 배우 김래원과 어떻게 다를까. 

“음…. 저는 세출이에 비하면 좀 더 다정다감하고, 표현을 잘하는 편이에요. 작품을 하면서 캐릭터의 장점을 어느 정도는 흡수하는 편인데, 이전에 달콤한 역할을 하면서 조금은 달콤한 면을 갖게 된 것 같거든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바로 실천에 옮기는 세출이의 매력을 일부 흡수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 그가 밝힌 이상형의 모습은 장세출이 한눈에 사랑에 빠진 여자 강소현과도 얼핏 닮아 있다. 

“마음이 넓고 사랑이 많은, 그리고 그 사랑을 주변에 두루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물론 그런 걸 바탕으로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할 이야기가 많지만요. 하하.” 

그에게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지난밤 그가 만나고 왔다는 푸른 밤의 파도가 떠올랐다. 인생을 반추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근사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배우와 캐릭터 사이, 영화를 통해 또 한 걸음 성장한 배우 김래원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기획 김지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여성동아 2019년 7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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