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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gender #business

왜 공기업 유리천장이 민간 기업보다 높을까

EDITOR 김우정 기자

2019. 05. 13

우리나라 공기업에서 임원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스펙은 ‘남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35개 공기업 임원 중 여성이 단 1명이라는 수치가 이를 방증한다. 반면 민간 부문에선 견고했던 유리천장에 조금씩 균열이 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당시 성평등을 주요 화두로 내세우며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여성 관리자 비율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 취임 2주년을 앞둔 현재 공기업 여성 임원 비율은 여전히 밑바닥 수준을 맴돌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성동아’가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경영 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와 각 공기업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한 결과(4월 9일 기준) 35개 시장형·준시장형 공기업 전체 임원(기관장 및 상임이사) 1백63명 중 여성은 한국토지주택공사 장옥선 상임이사가 유일했다. 2017년 2명(1.2%)이던 여성 임원이 2018년에는 오히려 1명(0.6%)으로 줄어든 것이다. 임원 후보군인 1급의 경우도 여성 비율이 1.3%에 불과했으며 22개 기업은 그마저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4월 3일 취업 및 인사 정보 포털 사이트 ‘인크루트’ 발표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시가총액 기준) 전체 임원 3천4백57명 중 여성은 1백53명(4%)으로 공공 부문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1.8%보다는 턱없이 낮은 수치지만 소비재 및 유통업을 중심으로 여성 임원이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여성 임원이 눈에 띄게 증가한 회사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여직원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을 바탕으로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사내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으며 그룹 오너 등 경영진이 강한 의지를 갖고 여성 임원 비율 제고를 중장기 목표로 설정한 곳들이었다.

롯데·CJ·아모레, 여성이 성장할 수 있는 사내 생태계 조성

롯데그룹은 오너인 신동빈 회장이 사내 성별 다양성 증대에 적극적이다. 이미 2012년부터 그룹 차원에서 ‘WOW(Way of Women) 포럼’을 개최해 여성 리더십을 강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2015년에는 신 회장이 직접 ‘여성 공채 비율 40% 유지’와 ‘2020년 여성 간부 사원 30%’ ‘첫 여성 CEO 배출’ 등의 목표를 천명했다. 그 결과 2014년 4명(3%)이던 롯데그룹 여성 임원은 2018년 30명(9.8%)으로 늘었다. 같은 해 계열사인 롯데 롭스에 첫 여성 CEO 선우영 대표가 취임하기도 했다. 2019년 4월 10일에는 민간 기업 중 최초로 여성가족부와 ‘성별균형 포용성장 파트너십’ 업무 협약을 맺었다. 2022년까지 여성 임원 60명 달성, 선우영 대표에 이은 두 번째 여성 CEO 배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향후 여성 임원 비율 제고는 물론 질적으로도 여성 리더십을 기업 성장에 적극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이 여성 임직원 지원에 각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여성 임원 비율이 2014년 7.8%에서 2018년 14.3%로 약 2배 높아졌고 전체 여성 임직원 비율도 40%에 달해 ‘여성 친화적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여성 임원 비율은 21%다. 여성을 주 타깃으로 하는 화장품 업체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얻어진 결과는 아니다. 2017년 입주한 새 본사 사옥(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내에 있는 ‘AP-세브란스 클리닉’에서는 산부인과·가정의학과 진료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여성 리더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 임직원 역량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선배 여성 직원의 노하우를 전파해 조직 내 선순환을 가능케 하는 ‘사내 멘토링 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성차별 없이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내 문화에 따라 여성 임원 비율도 자연스럽게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딸들의 경영 참여가 비교적 활발한 삼성그룹의 경우 여성 임원의 비율이 6%로 평균 이상이다. LG그룹은 슬하에 딸만 둘을 둔 고 구본무 회장이 그룹 승계를 위해 조카인 구광모 회장을 양자로 들일 정도로 보수적이었으나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 연말 인사에서 7명의 여성 임원을 발탁했으며, 앞으로도 여성 임원 확대 기조를 이어나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민간 기업의 여성 임원 증가세가 특정 업종에 국한된 것은 한계다. 건설이나 중공업 관련 기업들이 대표적인 ‘금녀’의 구역으로 꼽힌다.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2018년 기준 재직 임원 중 여성은 단 1명도 없다. 업계 특성상 애초 여성 입사자가 적어 임원 중 여성 비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육체노동이 많은 생산직은 물론, 관리 및 연구 분야도 남성 비율이 높은 공과대학 출신을 많이 뽑는다”며 “여성의 경우 생산 현장이나 지방 근무를 꺼려 중도 퇴직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GM(Gender Mainstreaming) 연구본부장을 역임한 김양희 젠더앤리더십 대표는 공기업과 민간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 “총수 등 최고 경영진이 강한 의지로 여성 임직원 지원에 나선 일부 기업이 정부 정책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인다”며 “조직 내 성별 다양성 증대는 기업 경쟁력뿐 아니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만큼 정부와 기업이 여성 인재 육성과 보호에 더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
“여성 이사 있는 기업이 경영 성과와 투명도 높아”

최근 다양한 자료 분석을 통해 성별 다양성을 경영 평가의 중요 척도로 제시하며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기업 경영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 박주근 대표로부터 여성 임원 비율의 의미를 들어보았다.

성별 다양성이 기업 경영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 

이사회에 여성 이사가 있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경영 성과와 투명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아예 법을 정해 일정한 비율로 여성 임원직을 할당하고 있어요. 반면, 여성 임원이 적은 기업일수록 지배구조의 수준도 떨어집니다. 성별 다양성을 높여야 4차 산업혁명 시대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어요. 

민간 부문을 선도해야 할 공기업에서 오히려 여성 임원 비율이 낮습니다. 

공기업 조직의 관료주의적 특성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보통 공기업의 상근 임원 자리가 4~5명 정도로 적은데, 여성은 승진에 필요한 ‘로열 커리어’ 쌓기가 어려워요. 공기업이 사내 보육 시설이나 육아휴직 등 여성 친화적 정책이 잘 갖춰진 것은 사실이지만 승진상 기회의 균등이 보장되진 않습니다.
민간 기업은 사정이 좀 나은 거 같습니다. 

물론 민간 부문에서 여성 임원이 많은 업종도 있어요. 그런데 이들 여성 임원 중 절반 이상이 경력직 입사자들입니다. 1990년 기업들이 여성 사원 공채를 시작해서 지금쯤 내부 승진 임원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 조직 내부에서 여성을 키우는 문화가 정착되지 못했다는 이야기죠. 현재 여성 임원들도 기업의 남성 중심적 문화에 순응한 ‘명예 남성’이 될 것을 요구받고 있고요. 채용이나 인사 평가 등에서 다면적인 개선이 필요합니다. 

기업의 성별 다양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요. 


가장 급한 것이 여성 임원 수를 늘리는 것입니다. 우선 ‘톱다운’ 방식으로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근 임원직에 여성이 진출해야 합니다. 또한 육아나 출산 등으로 인한 경력 단절은 물론, 그에 따른 인사상 불이익을 없애는 등 인사제도를 실질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셔터스톡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롯데그룹 CEO스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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