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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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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신 스틸러, 재벌 오너들

알고보면 결정적인 순간들

EDITOR 김명희 기자

2018. 10. 25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재계 젊은 오너들의 평양 2박 3일 리뷰.

백두산 천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기업인들. 오른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구광모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 모두 한국에서 공수한 K2 등산복을 입었다.

백두산 천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기업인들. 오른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구광모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 모두 한국에서 공수한 K2 등산복을 입었다.

지난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의 주연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라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한 재계 총수들은 신 스틸러라 불릴 만하다. 역대 대통령의 방북 일정에 기업인들이 동행한 적은 있지만 이번 평양 방문에는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58) SK그룹 회장, 구광모(40) LG그룹 회장 등 대기업 오너 경영인들이 포함돼 그 어느 때보다 중량감이 높았다. 방북 기간 동안 사진과 영상으로 공개된 이들의 소탈한 모습도 화제다. 직접 짐가방을 들고 끌어서 버스를 타는 모습, 서로 인증샷을 찍어주는 모습, 백두산 천지에서 ‘엄지척’ 포즈로 단체 사진을 찍는 모습 등은 재벌 회장 하면 떠오르는 ‘엄근진’(엄격 · 근엄 · 진지)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남북 관계의 전환점을 맞아 새로운 시험대에 오른 젊은 기업 총수들이 방북 기간 동안 보인 인상적인 장면을 포착했다.

재벌 ‘막내’ 구광모 LG 회장의 공식 데뷔전

평양행 비행기에 오르는 기업인들. 구광모 LG회장(오른쪽 세 번째)은 이번이 첫 대외 공식 일정이다. (위) 옥류관 테라스에서 기념사진을 촬영 중인 이재용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평양행 비행기에 오르는 기업인들. 구광모 LG회장(오른쪽 세 번째)은 이번이 첫 대외 공식 일정이다. (위) 옥류관 테라스에서 기념사진을 촬영 중인 이재용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평양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성남공항에서 포착된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청년의 얼굴과 다부진 체격에 훈훈한 슈트 핏으로 재계 특별수행원들 가운데 단연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했다. 지난 7월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구 회장에게 이번 방북은 대외적으로 공식적인 데뷔 무대와 다름없었고 자연스레 많은 관심이 쏠렸던 터. 하지만 구 회장은 기존 LG가 경영인들과 마찬가지로 튀지 않는 행보를 보였다는 평이다. 방북 경제인 중 가장 막내였던 그는 손에 작은 수첩을 들고 신입 사원처럼 수시로 메모를 하는 등 현지 상황을 꼼꼼히 챙겼으며 방북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하차할 당시에는 엄청나게 많은 취재진을 보고 살짝 당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구 회장은 다음 날 서울 여의도 LG 본사로 출근해 임원들에게 북한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경제 상황을 자세히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애티튜드

이번 방북을 계기로 이재용 부회장은 남북 경협의 밑그림을 구상하게 된 점 외에도, 불편한 관계에 있던 집안 어른들에게 깍듯한 태도를 보인 사실이 사진과 목격담으로 전해져 ‘젠틀맨’의 이미지를 얻게 됐다. 

방북단에는 이 부회장의 외삼촌인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자격으로 동행했다. 그간 재계 안팎에선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 이 부회장과 홍 회장 사이가 서먹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중앙그룹의 계열사인 jtbc가 삼성의 정유라 승마 지원 의혹을 비롯한 국정 농단 관련 기사를 연이어 보도했고, 이 사건으로 이 부회장이 구속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북 기간 두 사람이 옥류관에서 다정하게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불화설이 과장됐거나, 사실이더라도 전략적 화해 모드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해졌다. 이 부회장은 북한에서 돌아올 때는 손경식 CJ그룹 회장의 가방을 들어주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손 회장은 고(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손복남 여사의 동생으로, 이 부회장에겐 사돈어른이 된다. 이 부회장은 백두산 천지에 올랐을 때는 학창 시절 은사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다가가 “대학교 1학년 때 교수님의 교양영어 강의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기억을 못 하시겠지만”이라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는 목격담도 전해진다. 이 부회장은 서울대 동양사학과 87학번으로, 같은 학과 동문들에 의하면 학창 시절 상당히 성실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계간지 ‘창작과 비평’ 창간인인 백낙청 교수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한 축을 담당한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이다.

‘디카 요정’ 최태원 SK 회장

사진 촬영 삼매경 중인 최태원 SK 회장.

사진 촬영 삼매경 중인 최태원 SK 회장.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 재계 막내로 방북단에 합류, 선배 경영인들의 사진 촬영을 도맡아 ‘디카 회장님’으로 불렸던 최태원 회장의 카메라 사랑은 이번에도 여전했다. 11년 전 일본 캐논의 아날로그 카메라를 들고 왔던 그는 이번에는 삼성전자의 디지털카메라를 챙겨 와 일행들의 기념사진을 찍어주는가 하면 종종 셀피를 찍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북한에 휴대폰 반입은 안되지만 디카 휴대는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북한 유경험자’의 노하우였다. 이재용 부회장과 홍석현 회장의 ‘옥류관 화해 컷’을 촬영한 주인공도 최태원 회장이다.



K2·삼다수·파리바게뜨 PPL로 화제!

오너가 이번 방북단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자사 제품이 언론 등을 통해 노출되면서 뜻밖의 PPL 대박을 터트린 기업이 있다. K2와 삼다수가 대표적이다. K2는, 9월 20일 백두산 천지 방문 당시 남북 정상을 수행하는 수행원들이 모두 이 회사의 바람막이 재킷을 입고 단체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도돼 광고 효과를 제대로 봤다. K2에 따르면 통일부는 9월 19일 오후 5시 회사 측으로 연락해 재킷 5백 벌을 급하게 주문했고, K2는 신속하게 제품을 준비해 이날 오후 10시에 성남공항을 통해 통일부 측에 전달했다. 가격은 단체 할인이 적용돼 정상가보다 40% 정도 저렴했다고. K2는 2016년 2월 개성공단이 폐쇄되기 전까지 그곳에서 공장을 운영했다. 삼다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가방에서 페트병을 꺼내 천지에 물을 반 정도 쏟아내고 그곳 물을 다시 병에 담는 장면이 포착돼 화제를 모았다. 삼다수의 취수원은 제주도 한라산이다. 

이외에 SPC그룹은 문 대통령 일행의 방북 기간 동안 서울 동대문 DDP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파리바게뜨 부스를 운영하며 취재진에게 빵과 음료수를 무상 제공해 화제가 됐다. 여기에는 실향민 출신으로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바라는 허영인 회장의 각별한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회사 고위 임원이 2박 3일간 프레스센터에 상주하며 부스 운영을 총괄했다는 후문이다.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디자인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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