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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주지훈

EDITOR 김지영 기자

입력 2018.09.06 17:00:02

현재 극장가 흥행 1, 2위를 달리는 두 작품에서 주연을 맡은 주지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까칠남인 줄 알았는데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인형 눈알을 붙였다는 고백도 거침없이 털어놓는 솔직남이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주지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지훈(36·본명 주영훈) 하면 2006년 방영된 드라마 ‘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 드라마 덕분에 그는 배우 전업 2년 만에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모델 출신 배우가 드물었기에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외모에 까칠한 매력을 지닌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신인치고는 연기도 자연스러워 더욱 호감이 갔던 그때처럼 그를 인터뷰이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을 최근 극장에서 만났다. 8월 8일 개봉된 윤종빈 감독의 신작 ‘공작’이 그것. 

이 영화는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린 안기부 블랙 요원(황정민)이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스파이로 투입돼 남북 고위층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실화 바탕의 첩보극이다. 주지훈은 야심가에 다혈질인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과장 정무택으로 등장해 흑금성과 북의 고위 간부 리명운(이성민) 사이에서 끊임없이 긴장감을 조성한다.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에 이어 ‘공작’에서도 그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캐릭터를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자연스럽게 소화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이끌어냈다. 8월 1일 개봉된 ‘신과 함께-인과 연’은 ‘신과 함께-죄와 벌’(이하 1편)보다 빠른, 개봉 보름 만에 1천만 고지를 넘었고, ‘공작’은 개봉 12일째인 8월 19일 4백만 관객을 돌파했다. 올해 영화계에서 가장 큰 수확을 거둔 배우로 주지훈이 첫손에 꼽히는 이유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주지훈
본인의 주연작 두 편이 현재 박스오피스 1, 2위에 올랐어요. 기분이 어떤가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합니다. 사실 ‘신과 함께-인과 연’을 1편과 같이 찍어 내심 불안했어요. 다들 1편이 잘돼 걱정 없을 거라고 했지만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부담감이 컸어요. ‘공작’은 주제 의식이 가볍지 않으니까 이 이야기를 길게 풀어냈을 때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관객이 공감할 수 있을지 걱정됐고요. 근데 시사회 반응이 좋더라고요. 다행이다 싶었죠.

‘공작’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윤종빈 감독의 팬이에요. 황정민 형과 이성민 형의 팬이기도 하고요. 영화 ‘아수라’(2016)를 찍으며 정민이 형에 대한 신뢰가 쌓였는데, 형이 ‘공작’에 출연한다는 얘기를 듣고 더욱 끌렸죠. 같은 이야기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방향성과 결이 달라지거든요. 

정무택은 예리한 듯하면서도 빈틈이 많았어요. 충성스러운 군인이지만 몰래 뒷돈을 챙기기도 하고요. 혹자는 그를 악동의 장난기와 악당의 섬뜩함을 모두 갖춘 인물로 평했더군요. 

윤종빈 감독이 원래 캐릭터를 정형화하지 않고 관객이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비트는 걸 잘해요. 누구나 일정 부분 정무택 같은 빈틈을 갖고 있으니까요. 저도 부모님에게 격의 없이 말할 때가 있지만, 그분들을 싫어하거나 무시해서 그런 건 아니거든요. 

실제 성격은 어떤가요. 

기본적으로 유쾌한 성격이에요. 뭐든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해요. 심각한 일도 가볍게 웃어넘기려고 하고요. 

정무택 캐릭터에 접근하기 힘들지 않았나요. 

정무택처럼 돈을 빼돌리는 군인을 실제로 본 적이 있어요. 책으로 간접경험도 많이 했고요. 제가 놀기만 할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론 책도 많이 읽거든요. 하하하. 게다가 어릴 때부터 모델 일을 하며 국내외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 별난 캐릭터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편이에요. 근데 영화는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니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게 어려워요. 그동안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모습과도 차별화해야 하고요. 

책을 많이 읽는다고 했는데, 주로 어떤 책을 읽나요. 

촬영 현장에선 무협지, 여름엔 판타지, 가을엔 감수성 돋는 책이 제격이죠. 저는 지적 호기심을 위해서라기보다 읽는 과정 자체를 재미있어하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책을 봤냐는 질문을 받으면 금방 답이 떠오르지 않는데,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갑자기 책의 한 구절이 떠올라요. 독서가 제 삶의 방향성에 영향을 주는 건 분명해요.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졌던 사안도 책을 보며 이해하게 될 때가 많거든요. 

그동안 코미디, 멜로, 막장 등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고 뮤지컬(2009년 ‘돈주앙’과 2010년 ‘생명의 항해’)에도 출연한 적이 있어요.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편인가요. 

의식적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건 아니에요. 가풍의 영향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저희 가족은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두 분과 같이 살았어요. 되게 작은 방 두 개짜리 집에서요. 저희 할아버지는 삼시 세끼 돼지족탕만 드셨어요. 본인이 직접 끓여서요. 저희 엄마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집 청소를 싹 하고 새 밥을 지으셨어요. 저녁 7시면 방에 들어가 공부를 하셨고요. 엄마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게 한이 돼서 몇 년을 공부해 전문대 졸업장까지 받으셨죠. 제가 아침에 눈뜨면 엄마는 인형 눈알을 붙이고 계셨어요. 그렇게 번 돈으로 저한테 피아노를 사주셨고요. 저는 드라마로 써도 작위적이란 생각이 들 만큼 그런 생활을 실제로 겪으면서 자랐어요. 그래서 새로운 경험이나 도전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은 것 같아요. 

어릴 때도 지금처럼 피부가 까무잡잡했나요. 

지금은 많이 하얘진 거예요. 어릴 땐 웃으면 치아밖에 안 보였어요. 엄마가 큰고모의 파밭에 품앗이를 가곤 하셨어요.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어요. 거기서 종일 뛰어놀다 생파를 불에 구워 먹곤 했죠. 정말 맛있어요. 그런 경험이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아 있죠. 

서울 태생 아닌가요. 

서울 강동구 암사동, 천호동에서 자랐어요. 버스를 타야 할 일도 별로 없었고 사람이 많은 유흥가에 놀러 간 적도 거의 없는데, 우연한 기회에 모델이 돼서 강남을 들락거렸죠. 

길거리에서 캐스팅됐나요. 

엄마와 친한 피아노 학원 원장님이 “키가 크니까 모델 한번 해볼래?” 하고 제안하셨어요. 공부도 잘하지 못했고, 뭘 해야 할지 몰라 고3 올라가는 게 무서울 때였어요. 중학교 시절 신문 배달을 해서 받은 돈이 월 15만원이었는데 모델을 해서 20만원을 벌었죠. 제겐 정말 큰돈이었어요. 원장님이 제 프로필 사진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친구들에게 옷을 빌려 입고 한겨울에 사진을 찍었죠. 그러곤 그 사진을 같은 반 짝꿍에게 보여줬더니 2장만 달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친구가 저도 모르게 잡지사에 제 사진을 보낸 거예요. 그 일을 계기로 매거진 개념이 전혀 없던 아이가 갑자기 사진을 찍고, 카메라 앞에 서고, 하루아침에 세상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게 돼요. 데뷔작이나 다름없는 드라마 ‘궁’이 1화 때부터 잘됐으니까요. 연기를 정말 못했는데, 발연기라는 혹평은 안 하시더라고요. 낯선 현장에서 제가 느끼던 어색함과 딱딱함이 극의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주지훈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운 줄 알았어요. 

모델 활동을 하면서 연기 학원에 몇 번 갔었어요. 그러다 오디션을 보고 5분짜리 ‘한뼘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그때 연출자가 황인뢰 PD님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당시 매니저가 황인뢰 PD님과 친해 별생각 없이 같이 만나러 갔는데 PD님이 느닷없이 드라마 출연 제의를 하셨어요. 그 작품이 ‘궁’이었죠. 처음에는 PD님이 너무 무서워 안 하겠다고 거절하다가 결국 출연하게 됐죠. 지금은 그분께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키가 훤칠한데 누구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건가요. 


부모님이 두 분 다 장신이에요. 할아버지도 키가 크고요. 아버지 신장이 184cm예요. 

할아버지가 실향민이라고 들었어요. 

맞아요. 그래서 언젠가 북한군 역을 하게 될 줄 알았어요. 제가 북방계 얼굴이잖아요. 남방계와 북방계의 표준 얼굴이 있어요. 쌍꺼풀 없는 눈, 튀어나온 광대뼈가 북방계 얼굴의 대표적인 특징이에요. ‘공작’ 시나리오를 보면서 이제야 올 게 왔구나, 싶었죠. 하하하. 

모델 출신이라 패션에도 관심이 많을 것 같아요. 스타일링 노하우가 있나요. 

원래 제가 옷을 잘 입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옷을 정말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분이 아니라면 그나마 괜찮은 스타일링 방법은, 디스플레이된 상태를 그대로 사서 입는 거예요. 전문가들이 고심을 거듭해 스타일링한 거거든요. 그리고 유행에 연연하지 않고 사이즈에 맞는 옷을 사는 게 중요해요. 저는 이번 작품을 위해 운동을 하다 보니 두 사이즈 큰 옷을 입게 되었어요. 원래 ‘미디엄’이었는데 지금은 ‘엑스라지’가 맞아요. 예전을 생각해 미디엄 사이즈를 입으면 어울리지 않아요. 눈을 돌려보니 이 몸에 맞는 옷들이 있더라고요. 

이제 연기가 천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나요. 

저는 경쟁심을 자극하는 게임엔 손을 안대요. 하면 이겨야 하고, 지면 너무 화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게 싫어서 안 하게 되더라고요. 연기도 게임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고통스럽거든요. 그럼에도 그 과정을 피하지 않고 현장을 다시 찾는 제 자신을 보면 ‘이것이 내게 잘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삶의 지표로 삼은 좌우명이 있다면요. 

어릴 때는 ‘나에겐 최후까지 싸울 용기와 의지가 있노라’였는데 지금은 바뀌었어요. 그동안 전투적으로 살아서 이제는 ‘평화롭고 여유롭게 서로 좋은 방향으로 가자. 그 안에서 서로를 좀 더 배려하자. 아름답게 가자’는 생각을 자주 해요. 예전에는 제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했어요. 근데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제 의사를 표시하니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러려면 상대를 더 정성스럽게 바라보고 좋아해줘야 할 것 같아요.
 
‘궁’처럼 가슴 설레는 멜로물을 다시 하고 싶진 않은지요.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정말 말랑말랑한 멜로는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하고 있더라고요. 하하하. 저는 일을 쉼 없이 하고 있으니 캐스팅 기회가 오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제가 해야 할 일을 무사히 잘해내는 것만도 벅찹니다. 

다들 아는 사랑이 끝났어요. 또 다른 사랑을 찾았나요. 

요즘 ‘공작’과 사랑하는 중입니다. 심지어 ‘신과 함께’와 양다리예요. 난봉꾼이네요. 하하하.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여성동아 2018년 9월 6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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