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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깊어질수록 길은 또렷해지네

손미나의 우리 길 걷기 여행 수타사 산소길 공작산 생태숲

editor 손미나

2018. 07. 26



우연히 스페인에서 온 청년 장민을 보았다. 그는 TV 프로그램에서 한국이 처음인 스페인 친구들과 함께 전국을 여행하는 중이었다. 스페인이 내게 가진 특별한 의미 이상으로 그에게 한국은 정말 소중한 땅이었다. 아빠와 함께 한국의 숲길을 거닐었다는 옅은 유년의 기억을 맑은 생태숲의 초록으로 채워주고 싶었다. 그 마음이 통했을까. 아니면 시원한 숲의 유혹에 순식간에 넘어갔을까. 태풍이 지나간 뒤, 그는 약속 시간에 정확히 맞춰 강원도 홍천 공작산 생태숲에 나타났다. 

뜨거운 햇살에 머리 들기도 힘든 날씨였지만, 공작산 수타사 입구부터 깊은 숲을 이룬 나무들은 짜릿한 청량감을 선사했다. 땅에서 보면 개다래, 갈참나무, 물푸레나무, 잣나무가 장관이고, 하늘에서 보면 계곡이 공작 꼬리처럼 펼쳐져 있어 이름까지 공작산. 이곳 생태숲 치유쉼터는 숲을 둘러 걷는 수타사 산소길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광고에서 나온 유행어처럼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곳’으로 이보다 더 좋은 곳을 보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수타사(壽陀寺)로 이끄는 산소길. 수타사는 원효가 처음 세운 것으로 알려진 고찰로, 5백 년이 넘은 묵직한 단청과 팔작지붕의 선 하나하나에 장민의 놀라운 표정이 담긴다. 수타사의 보물을 전시한 성보박물관에서 ‘월인석보’를 그에게 설명하려니, 내가 우리 것을 완전히 알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월인석보’는 훈민정음 창제 후 처음 나온 불경 언해서인데, 실제로 보니 보존 상태가 좋고 글씨 형태가 아름다워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법당인 대적광전 앞에 서면 안정감 있는 절집들의 비례와 공작산과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장민에게 ‘한국적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주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었다.



우리가 숲을 찾아온 이유. 
원래 지구는 이렇게 알싸하고 맑은 공기로 가득한 별이구나.


수타사 산소길은 단 한순간도 수타계곡을 벗어나지 않는다. 용담에서 깊고 넉넉했던 물은 상류에서 바위를 지나며 힘차게 부서지고, 귕소에서 다시 모여 청명한 파열음을 낸다. 그 듣기 좋고 사치스런 ‘소음’을 함께 들으며 걸으면 누구와도 아주 오래 알아온 사이가 된다! 지치지도 않고 오래 숲길을 걷던 우리는 약속한 듯 의기투합, 계곡으로 내려가 물에 발을 담가보기로 했다. 간혹 고조된 감정을 외국어로 말하려고 애쓰다 보면, 관습적 표현과 감정을 뛰어넘어 아주 독창적이고 시적인 표현을 찾아내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장민이 딱 그랬다. 

“여러분, 물은 완연한 겨울이에요!”

아직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

산소길을 크게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길에 큰 상처를 안은 고목숲을 만났다. 일제강점기에 송진을 채취하느라 벗겨낸 흔적을 치료한 나무들이라고 한다. 이 계곡에 지어진 이름 ‘수타(壽陀)’가 불법으로 정화된 세상에서의 무량한 수명을 상징한다는데, 이 이름 덕분에 다친 나무들이 살아남아 우리에게 아직도 진한 산소를 채워주는지도 모르겠다. 홍천의 여름 풍경까지 두 눈에 담고 이제 도시의 여름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용기는 덤으로 얻는다. 그런데 장민에게 ‘덤’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수타사 산소길 공작산 생태숲 걷기에 기운을 북돋우는 맛

토종닭 백숙  
수타사 산소길 초입에는 여느 고찰이나 계곡들과 달리 음식점이며 가게 따위가 많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도 오래된 맛집에서 백숙과 더덕구이를 맛보는 최소한의 식도락은 허락된다. 수타계곡을 발아래 둔 평상에 앉아 장민에게 한국식 여름 보양식 즐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홍천여행 어디서나 또 다른 명물 옥수수도 맛볼 수 있으니 배가 부르다고 그냥 지나치지 말 것.

여행작가 손미나가 추천하는 수타사 산소길 공작산 생태숲

총 3.8km, 1시간 30분 소요
수타계곡 입구(숲 해설 안내소) - 수타사 - 생태연못 - 공작산 생태숲 - 귕소 - 귕소 출렁다리(반환점) -
용담 - 숲속 치유쉼터 - 숲 해설 안내소



손미나 작가와 장민은 수타사 산소길 공작산 생태숲 걷기에 두루누비(durunubi.kr) 사이트를 활용했습니다.

기획 김민경 기자 작가 남기환 사진 김성남 조영철 기자 동영상 연출_김아라 PD 전효임 디자인 김영화
제작지원 한국관광공사 매니지먼트 곽상호 스타일리스트 최소영 어시스트 마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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