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actress #interview

I’m Soo Jung

식물성 배우

EDITOR 김명희 기자

2018. 05. 10

근래의 임수정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비건(Vegan)과 독립 영화다. 그녀는 자신만의 속도와 온도로 정글 같은 연예계에 뿌리 내려가고 있다.

4월 19일 개봉한 영화 ‘당신의 부탁’은 사별한 남편의 아들을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다. 상업 영화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자극적인 요소, 이를테면 의붓엄마와 사춘기 아들의 극한 갈등이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 출생의 비밀을 추적하는 스릴 같은 건 이 영화에 없다. 그저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을 떠나보내고 상실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여성이 죽은 남편의 아들을 키우며 엄마가 되고 가족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가까운 친구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듯 조곤조곤 들려줄 뿐이다. 

배우 임수정(39)은 사고로 갑자기 남편을 잃고 작은 학원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서른두 살의 여성 효진 역을 맡아,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쉽지 않은 관계들로 빼곡한 상황에서의 감정을 안정적으로 연기해내며 극을 탄탄하게 이끌어간다. 

임수정의 최근 행보는 독립 영화에 가까이 닿아 있다. 2007년부터 미장센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단편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지난해 김종관 감독의 ‘더 테이블’과 이번 이동은 감독의 ‘당신의 부탁’에는 직접 출연을 했다. 이동은 감독은 영화 시사회가 끝난 후 기자간담회에서 “규모가 크지 않은 영화라 임수정 같은 배우와 함께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은 임수정이 마음에 들어 해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며 그녀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임수정이 독립 영화에 관심을 갖고 출연하는 건 비건(우유·달걀 등 일체의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그녀가 채식 전문 식당을 찾아다니며 음식 사진을 찍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려 식당 홍보 활동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오래도록 살아남아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 

이동은 감독은 김혜리 기자와 임수정 씨가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듣다가 임수정 씨의 목소리가 좋아서 캐스팅했대요.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효진과 잘 맞을 것 같았다고. 임수정 씨는 왜 이 작품을 선택했나요. 

대사가 좋았어요. 얇은 책 한 권을 읽는 것처럼 훅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서른두 살 여성이 열여섯 살짜리 아이를 아들로 받아들이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닐 텐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점점 효진의 결정에 공감이 갔어요. 이런 작품이 어떻게 내게 왔을까 궁금했고, 시나리오를 쓴 감독님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죠. 감독님과 만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잘 통했어요. 15년 넘게 영화를 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런 작품이 어떻게 내게 왔을까”란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데요. 

다른 훌륭한 배우들이 많은데, 제게 손을 내밀어준 제작사와 감독님께 감사하단 의미예요. 배우들은 변신을 해야 할 시기가 있는데, 돌이켜보면 저는 그때마다 늘 좋은 작품을 만났던 것 같아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도, 저는 그 배역을 도저히 못 할 것 같았는데 감독님께서 “수정 씨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씀해주셔서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제가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정인처럼 그렇게 말을 많이, 빨리 할 수 있다는 걸 그 영화를 찍으면서 처음 알았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엄마 역을 맡았어요. 

제 나이가 30대 후반이고 아이가 있는 친구들도 많아서 현실적으로 그런 상황이 어색하진 않아요. 물론 이번 역할 이후로 로맨스물의 주인공이나 싱글 여성 역할을 다시는 못 한다고 하면 망설였을 텐데, 저는 아직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임수정 씨라면 효진과 같은 선택을 했을까요. 사별한 남편의 아들과 함께 사는 거요. 

지인들과 이 영화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분이 아이를 낳고 싶진 않지만 어떤 상황이 돼서 아이가 생긴다면 키워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혈연 중심이던 우리 사회에도 입양이나 재혼 등으로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생겨나고 있잖아요. 감독님이 그리고 싶었던 것도 조금 다른 형태로 차가운 현실에서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저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가 ‘돌싱’일 수도, 아이가 있을 수도 있겠죠.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해선 지금부터 생각해보려고 해요. 

최근 2년간 독립 영화에 잇달아 출연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요. 

그동안 크고 작은 장·단편 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여러 작품을 보게 됐고, 훌륭한 감독과 배우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 그런 그 분들이 인정을 받기 위해선 이를 소비할 수 있는 관객층이 형성돼야 해요. 상업 영화에서 활동하는 배우들, 감독과 제작자들이 시선을 돌려 독립 영화에 참여한다면 한국 영화계의 상업성과 예술성이 균형을 찾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기회가 오면 독립 영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해요. 

임수정 씨가 채식 전도사로 유명하다고 들었어요. 

3년 전 컨디션이 잘 회복되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동물성 단백질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이후로 채식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환경이나 동물 복지 측면에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되면 채식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거나 출연해보고 싶어요.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명필름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