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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actor #interview

연기 본좌의 이중생활 김명민

editor 김명희 기자

2018. 03. 07

TV에선 11년 전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하얀거탑’의 UHD 리마스터링 버전이 방영되고 있고, 스크린엔 7년 전 첫 시리즈를 시작한 ‘조선명탐정’ 3탄이 걸렸다. 믿고 보는 배우 김명민의 두 번째 전성시대가 초고화질로 펼쳐진 것이다. 

화려한 프린트로 시선을 끄는 필립 플레인의 맨투맨 티셔츠에 비스듬히 스냅백을 쓴 남자. 뒷모습만 보면 영락없이 스트리트 룩의 정석을 구사하는 트렌드세터다. 하마터면 그에게 이렇게 물어볼 뻔했다. “매니저시죠? 김명민 씨는 아직 도착 안 했나요?”라고. 짐작했겠지만 이 스타일리시한 룩의 주인공은 배우 김명민(46)이다. 슈트나 턱시도,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의사 가운이 어울릴 것 같은 그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다. 인터뷰 당일 사진촬영을 진행하지 않은 탓에 그의 이런 면을 글로밖에 전달할 수 없는 점이 아쉬울 정도다. 

“어쩔 수 없이 슈트를 입을 때도 있지만 이게 평소 제 스타일이에요. 스냅백은 이렇게 비스듬하게 써야 제 맛이죠.” 

김명민은 ‘연기 본좌’라는 진중한 수식어로 불려온 배우다. ‘불멸의 이순신’(2005)의 이순신에 이어 ‘하얀거탑’(2007)의 장준혁과 ‘베토벤 바이러스’(2008)의 강마에까지, 출연작마다 인생 캐릭터를 경신하는 과정에서 붙은 별명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비정치적이었던 영웅 이순신과 신성한 병원을 냉정한 비즈니스의 현장으로 바꾸는 외과 의사, ‘똥덩어리’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까칠한 지휘자로 모습을 바꿔가며 보는 이들에게 신선함을 안겼다. MBC 드라마 ‘하얀거탑’이 11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UHD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다시 선보이는 배경에는 얼굴 근육부터 손끝의 미세한 떨림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그의 연기를 고화질로 다시 보고 싶어하는 시청자들의 바람이 있었다. 

앞선 작품들이 진지함 쪽으로 무게 추가 기울었다면 2011년 첫선을 보인 영화 ‘조선명탐정’의 허당기 가득한 탐정 김민은 맨투맨 티셔츠와 스냅백이 어울리는 가볍고 유쾌한 김명민의 실제 모습과 닮아 있다.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김민과 서필(오달수)의 코믹 연기는 보는 내내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조선명탐정’ 시리즈가 ‘각시투구꽃의 비밀’ ‘사라진 놉의 딸’에 이어 세 번째 버전인 ‘흡혈괴마의 비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힘이기도 하다.

TV에서 ‘하얀거탑’이 다시 방영되고 있어요. 오래전 자신의 모습을 보는 기분이 어떤가요. 

부끄럽고 민망해서 제 작품을 잘 못 봐요. 대부분의 배우들이 그럴 거예요. 자신의 작품을 보면서 “잘했네” 하고 감탄하는 것도 웃기잖아요. 이번엔 UHD 버전이라 화질이 얼마나 좋을지 확인하려고 슬쩍 봤는데, 제 연기는 미숙한 부분이 있었지만 명작은 명작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올해 시작이 좋은데요. 드라마와 영화가 동시에 화제가 되고 있으니까요. 

나쁘지 않아요. 과거 방송됐던 드라마가 공중파 메인 시간대에 풀 버전으로 다시 방영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행운이고 영광이죠. 어디선가 엄청난 기운이 저를 향해 몰려오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직접 만나기 전까진 왠지 무겁고 까칠한 성격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보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간 드라마에서 보인 캐릭터 때문일 거예요. 지금은 좀 다른데, 예전엔 선배님들도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실제론 김민처럼 허당기도 있고, 무게를 잘 못 잡는 성격이에요. 

‘조선명탐정’ 첫 편을 보기 전엔 김명민 씨가 코믹 연기를 하리라곤 상상을 못 했어요. 

출연 제안을 받고 갈등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좀 웃기는 일이긴 한데, 당시엔 ‘언젠가 내가 대중에게 재미있는 면을 보여주고 싶긴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모험을 하는 심정으로 출연 결정을 했고, 그래서 1편을 찍고 난 후의 성취감이 더 컸죠. 지금은 배우 김명민의 가장 편안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1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는 속설도 있어요.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그만큼 배우들의 부담감이 더 커질 것 같은데.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전편보다 더 재밌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죠. 1탄 때는 이전에 쌓아놓은 까칠한 이미지가 있어서 코믹한 김민과 진중한 김명민의 간극에서 오는 거부감을 줄이려고 노력했고 2탄에서는 거기서 조금 더 나가는 연기를 했다면 3탄에선 갈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연기했어요. 이제 관객들도 학습이 돼서 제가 다 내려놓고 놀아도 무리 없이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조선명탐정’이 롱런하는 비결은 뭘까요. 

흔히 코미디극이라고 하면 다들 억지로 쥐어짜낸 웃음을 예상하시지만, ‘조선명탐정’은 웃음을 강요하는 영화는 아니에요. 계산된 코믹 코드가 있지도 않고요. 다만 느닷없이 웃기는 지점이나 슬랩스틱들이 분명 있으니까, 현실의 짐을 내려놓고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건 장담해요. 저희 영화를 보시는 시간만큼은 파헤치고 분석하기보다는 편안하게 즐기셨으면 해요. 

영화의 주된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김민과 서필의 케미스트리인데, 실제 촬영장에서 두 분의 호흡은 어떤가요.

달수 형은 상대 배우의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배우들에겐 더없이 좋은 파트너죠. 그런데 처음 만나서 친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해요.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밀어내는 ‘밀당요정’이거든요. 그래서 7년 전 처음 만났을 때 오픈카를 타고 드라이브도 다니고 마치 연애하는 사람들처럼 서로 친해지는 데 공을 들였죠. 지금은 편안한 부부 같아요. 

촬영장 분위기는 어때요. 

‘조선명탐정’ 촬영 현장에 가면 힐링이 돼요. 감독과 배우들이 서로 배려하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다른 스태프들도 함께하고 싶어하는데 빈자리가 없어서 못 받는대요. 이번 영화에 처음 합류한 막내 스태프가 4탄을 하게 되면 다른 일 다 제쳐놓고 달려오겠다고 말할 정도예요.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들 열심히 준비해오기 때문에 NG도 별로 없어요. 덕분에 이번에 촬영한 3탄도 예상보다 제작 기간이 많이 단축됐죠. 개인적으론 좀 아쉽기도 해요. 

한 달 여행을 준비하고 떠났다가 보름 만에 끝난 기분이랄까요.

김명민은 초등학교 때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처음 연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앞에 펼쳐진 길은 탄탄대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할 땐 집안 반대로 우여곡절이 많았고, 1996년 SBS 공채 탤런트로 연기에 입문한 후엔 오랜 무명 생활을 겪었다. 단역만 하다가 처음 주연을 맡아 촬영 현장에 갔다가 배역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사실을 알고 좌절하기도 했고, 기껏 촬영한 영화의 개봉이 무산된 적도 있으며 2002년 영화 ‘스턴트맨’ 촬영 땐 큰 부상을 입고 배우 생활을 접을 뻔했다. 2004년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 이후 작품 섭외가 끊기자 집도, 차도 팔고 뉴질랜드 이민을 계획하기도 했다. 아내가 임신 중이었는데, 태아가 자라지 않는 게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괴로웠던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 순간 그를 붙잡은 작품이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다. 그때 아내의 배 속에 있던 아이는 어느덧 중학생이 돼 아빠와 연기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가 됐다. 

2004년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더라면 어땠을까요. 

지금쯤 재벌이 돼서 대저택에 살고 있을 거예요(김명민은 군 제대 후 스키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당시 판매 실적이 좋아 정직원보다 월급이 더 많았을 정도로 사업 수완이 뛰어나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돈만으로 살 수 있나요? 한번 포기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럼에도 이루지 못한 연기의 꿈 때문에 가슴 한쪽이 늘 허전했을 거 같아요. 

연기 말고 좋아하는 일이 있나요. 

가끔 책도 읽고, 등산도 하고, 마라톤을 좋아해요. 마라톤을 완주하는 분들을 보면 젊은 사람들보다 40~60대가 많아요. 마라톤을 뛰다 보면 지나간 인생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데, 그 기억이 사점(운동을 할 때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순간)을 극복하는 힘이 되거든요. 저는 달릴 때마다 처음 학예회에서 연극을 했던 일, 부모님 반대를 꺾으려고 가출을 했던 일, 단역 배우를 전전하던 시절, 오디션을 봐서 주연을 따냈던 일, 영화 3편이 내리 엎어졌던 일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런 기억들이 마라톤에서도, 배우 생활에서도 힘든 걸 알면서 계속 도전하는 에너지가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요. 

엘리트인데 살인자라든가 하는 양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다중인격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조선명탐정’ 3탄이 화제가 되면서 한국형 시리즈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어요. 4탄, 5탄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저는 힘닿는 데까지 계속하고 싶어요. 하지만 배우나 제작자가 원한다고 해서 가능한 건 아니고, 관객들이 얼마나 사랑해주시느냐에 달려 있죠. 어릴 때 성룡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자랐는데, ‘조선명탐정’ 시리즈가 그런 영화가 되면 좋겠어요.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을 주고,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고, 때가 되면 기다려지는 영화요.

designer 김영화
사진제공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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