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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엔 봄, 바람이 불었다

손미나의 우리 길 걷기 여행

editor 손미나

입력 2018.02.28 16:28:44

강화도엔 봄, 바람이 불었다
걸으면 머리가 맑아진다. 글 한 줄 제대로 쓸 수 없을 때 늘 도시의 거리와 자연이 낸 길을 걷곤 했다. 잡념이 가라앉으면 몰랐던 많은 것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늘 마음만 먹으면 닿으리라 했던 강화도도 걸으면 달리 보인다. 더 풍성한 이야기가 자꾸만 말을 건네 미소로 반가움을 대신한다. 

바다와 역사가 바람결을 빌려 다시 보이는 그 길에 멕시코 청년 크리스티안 부르고스와 동행했다. ‘비정상회담’을 통해 알게 된 그는 모처럼 내게 에스파냐어로 실컷 수다를 떨었다. 길과 여행과 집에 대한 이야기. 오늘, 강화도는 그에게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싶어 발끝에 설렘이 내려앉았다.

이제는 다리로 연결된 강화도의 이웃 섬 석모도에 아침 일찍 도착하는 여정이다. 바다와 바람이 가장 아름다워 따로 ‘바람길’이라는 이름을 얻은 강화나들길 11코스 제방길을 함께 걸었다. 사계절 사진이 아름답게 나오는 걷기길로 SNS에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먼 바다에서 닿은 바람이 제법 뭉근하게 갈대를 건드리고 지나는 길이다. 봄을 미리 기대해보는 이 길에서 크리스티안도 살짝 들떴는지 기분 좋은 웃음이 더 환하다.




강화도엔 봄, 바람이 불었다
지난해 여름, 석모대교가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기 전까지 사람들은 배를 타고 가며 갈매기의 영접을 받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더 이상 승객도 갈매기도 오가지 않지만 부두는 조금 쓸쓸하게, 여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어부와 캠핑족, 조용한 순례자가 모이는 어류정항과 ‘무한도전’ 나온 미네랄온천
강화도엔 봄, 바람이 불었다
봄이 완연해지기 전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석모도 어류정항에서 함께 바다를 바라보았다. 겨울 바다에 정박한 배와 조업을 끝낸 어부들이 그물을 널고 그 옆으로 캠핑카가 즐비한 풍경. 여느 작은 항구들과는 또 다른 광경이 이곳에 펼쳐진다. 크리스티안은 계절마다 다른 풍경과 생기를 지닌 한국의 작은 항구가 뜨거운 햇살 아래 활기 가득한 고향의 항구들과 얼마나 다른 느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봄이 깊어지면 어류정항은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며, 먼 방파제를 건너온 바람을 마다 않고 한참 서 있었다. 

밤을 기다려 석모도 미네랄 온천을 찾았다. 아토피, 근육통 등에 효과가 있다는데, 노천탕에서 석양을 바라보면 마음도 가벼워질 것 같아서다. 최근 ‘무한도전’에 나와 사람들로 붐비니, 이 또한 신나는 풍경이다.


가족이 함께 걸어봐야 할 강화갯벌
강화도엔 봄, 바람이 불었다
강화도가 들려주는 바다의 이야기에 갯벌은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덧입혀 더 풍성해진다. 시간이 난다면 강화나들길 7번 코스에서도 세계 5대 갯벌 가운데 하나가 펼쳐지는 화도면의 강화갯벌센터를 들러보길 권한다. 밀물과 썰물이 오가며 만든 갯벌의 무늬와 아름다운 질감이 햇살을 반사시키며 아찔하고 장엄하다.


강화도엔 봄, 바람이 불었다
강화도의 시간을 따라 걷는 길
강화 문화 체험이 가능한 소창박물관.

강화 문화 체험이 가능한 소창박물관.

강화도가 숨겨놓은 보석을 발견한 반가움에 잠시 말을 잊었다. 석모도 선착장에서 조금 걷다 보면 나타나는 석포리 마을 들머리에서 노란 지붕과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19세기 말 영국 해군이 주둔하며 강화도와 석모도에 무려 12개의 성공회 성당이 들어섰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성모마리아성당이다. 교인 2명과 여사제가 올리는 미사가 일요일 아침 조용히 집전되고 있었다. 백 년이 되었다는 이 작은 성당에 그간 얼마나 많은 기도가 이어졌던 걸까? 미사 후 성당의 풍금으로 크리스티안의 연주를 듣는 행운도 얻었다. 어디서나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참 우리랑 비슷하다.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아 세상은 더욱 풍성해지고 우리의 걸음은 더 가벼워졌다.

강화도의 근대사는 섬 곳곳에서 시간의 이야기를 무시로 건넨다. 강화읍내의 소창박물관은 기저귀 감으로 많이 쓰이는 전통 면직물 소창과 더불어 전국적인 인기를 모았던 화려한 문양의 인견을 생산하던 옛 평화직물 자리에 문을 연 독특한 분위기의 체험관이다. 1939년 만들어져 일본풍이 더해진 근대 한옥에서 여행자들은 베틀에 앉아 자신만의 무늬를 짜 본다. 

나도 크리스티안도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강화 화문석까지 짜 보겠다고 나섰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 SNS스타가 된 섬 교동도
강화도엔 봄, 바람이 불었다
교동도는 뱃길로 드나들던 때부터 강화도에서 만나는 가장 이색적인 여행지로 유명했다. 북녘과 지척이어서 오랫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던 교동도는, 되레 그렇게 정지된 수십 년 전의 모습이 반가워 여행자들을 불러 모았다. 잊었던 소읍의 풍경과 나무 문틀의 점포가 이어진 시장, 그 공간을 살아가는 교동도 사람들을 읍성 성벽을 지나 만나러 간다.


올라갈 만한 이유가 있는 오르막길의 끝, 보문사
강화도엔 봄, 바람이 불었다
바람길 11코스의 종점인 석모도 보문사는 낙가산 자락에 온갖 영험한 시간을 가득 남겨두었다. 이 길을 따라 일주문을 지나니, 먼 바다를 향해 무사와 풍어를 기원했던 이곳 사람들의 바람으로 천년을 지나며 완성한 오백나한상과 석굴사원, 와불과 눈썹바위 마애관세음보살이 어느 것 하나 지나칠 수 없는 장관으로 어우러진다. 33명의 관음보살이 아로새겨진 탑신 주위, 바다를 바라보는 오백나한에게서 크리스티안은 눈을 쉬 떼지 못한다.
“보세요! 오백 불상들이 저마다 표정이 다 달라요. 저마다 기도와 이야기, 의미를 다 달리하고 있는 듯해요!”


강화도엔 봄, 바람이 불었다
강화도엔 봄, 바람이 불었다
강화도엔 봄, 바람이 불었다
강화도는 우아한 낙조로 유명해 매일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비지만, 동서를 마음껏 넘나드는 다이내믹한 해안선 덕분에 일출(사진 위)과 일몰(사진 아래)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8코스에서 한 걸음 비켜서 있는 작은 섬 동검도의 동검북돈대에서 아침에 맞이한 해를 7코스 최고의 낙조 조망지인 장화리에서 보내주는 것이다. 그러니 하룻밤 머무는 걷기 여행이 딱 좋다. 강화도는 길을 부지런히 걷는 자에게 하루를 꽉 채운 감동을 선물하는 땅이다.


강화도의 맛
강화도엔 봄, 바람이 불었다
강화도엔 시장이 많고 규모도 크다. 특히 매월 2일과 7일 열리는 강화읍 풍물시장에서는 강화에서 나는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는데, 순무 김치를 담가 파는 가게가 많다. 매운 음식을 한국인보다 잘 먹는 크리스티안은 아주머니들이 내미는 순무 김치를 주는 대로 먹었다.


강화도엔 봄, 바람이 불었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을 피해 온 임금에게 진상한 유래 때문인지 강화도 음식은 간이 세지 않고 재료의 맛을 살리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새우젓과 돼지갈비를 맑은 전골로 끓인 젓국갈비, 가을의 꽃게탕, 게장백반이 유명하고, 봄에 꽃구경한 여행객은 밴댕이회무침을 꼭 먹고 간다. 갯벌장어는 일부러 찾아와 먹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인기 있다. 강화도의 맛에 지역적 특징이 잘 간직된 이유를, 이 섬을 천천히 여행해보면 깨닫게 된다.


일출과 일몰, 육지와 바다가 바닷바람으로 이어지는 섬, 강화
강화도엔 봄, 바람이 불었다
손미나와 크리스티안이 추천하는 강화나들길
강화도엔 봄, 바람이 불었다
제11코스(석모도 바람길 16km, 도보 5시간)
석포여객터미널-성모마리아성당-어류정항-민머루해변-제방길-보문사 

제9코스(교동도 다을새길 16km, 도보 5시간)
월선포선착장-교동읍성-대룡시장-교동향교-월선포선착장 

제7코스(낙조 보러 가는 길 20.8km, 도보 6시간 40분)
화도공영주차장-내리성당-일몰조망지-북일곶돈대-갯벌센터-마니산수련원-화도공영주차장 

*화도공영주차장에서 갯벌센터까지 걷고 제20코스-제8코스로 이어 걸어도 좋다. 일출은 제8코스에서 가까운 동검북돈대에서 볼 수 있다.


강화도엔 봄, 바람이 불었다

손미나 작가와 크리스티안은 강화나들길 걷기에 두루누비(durunubi.kr) 사이트를 활용했습니다.



director 김민경 기자 writer 남기환 photographer 김성남 조영철 기자 동영상 연출_김현우 PD 조연출_강지원 PD designer 김영화 제작지원 한국관광공사 취재협조 강화군청 문화관광과 매니지먼트 곽상호 스타일리스트 김기만 어시스트 이연성


여성동아 2018년 3월 6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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