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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는 왜 이미경 CJ 부회장을 미워했을까

editor 김명희 기자

작성일 | 2018.02.08

국정 농단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혐의 가운데는 강요 미수가 포함돼 있다. CJ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강요했다는 것. 박 전 대통령 재판이 마무리돼 가면서 지난 몇 년간 무성한 의혹을 낳았던 이 사건의 퍼즐도 맞춰져 가고 있다.
2012년 스위스에서 개최된
다보스포럼 당시 ‘한국의 밤’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미경 부회장(맨 오른쪽).

2012년 스위스에서 개최된 다보스포럼 당시 ‘한국의 밤’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미경 부회장(맨 오른쪽).

2014년 말 재계에는 이미경(60) CJ그룹 부회장이 갑작스럽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옥고와 투병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던 이재현 회장을 대신해 의욕적으로 그룹을 이끌어오던 이 부회장이 퇴진할 특별한 이유도, 사전 징후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CJ그룹 측은 “이 부회장이 앓고 있는 샤르코 마리 투스 질환이 악화돼 미국 캘리포니아에 머물며 치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부회장이 본인의 의지나 경영상의 이유와 무관하게 권력에 의해 밀려났다는 얘기다.


손경식 회장과 조원동 전 수석의 진실 공방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미경 부회장 사퇴 강요 미수 혐의 재판에 증인과 피고인으로 나온 손경식 CJ 회장(왼쪽)과 조원동 전 경제수석(오른쪽). 박 전 대통령은 건강 상의 이유로 재판에 출석하지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미경 부회장 사퇴 강요 미수 혐의 재판에 증인과 피고인으로 나온 손경식 CJ 회장(왼쪽)과 조원동 전 경제수석(오른쪽). 박 전 대통령은 건강 상의 이유로 재판에 출석하지않았다.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에는 CJ그룹 강요 미수혐의와 관련된 당사자인 조원동 전 수석과, 그로부터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 요구를 듣고 이를 이 부회장에게 전달한 손경식 CJ그룹 회장 등이 출석했다. 조원동 전 수석 역시 CJ그룹 측에 대한 강요 미수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이날 재판에서 나온 조원동 전 수석과 손경식 회장의 증언을 정리하면, 조 전 수석은 2013년 7월 4일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CJ가 걱정된다. 손경식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 회장을 그만두고 이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얘기를 들었다. 이에 조 전 수석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CJ그룹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이미경 부회장을 사퇴하게 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음 날 손 회장을 만나 자신이 이해한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했다. 

그런데 이날 두 사람의 만남에서 오간 대화의 구체적인 내용을 두고 손경식 회장과 조원동 전 수석의 증언이 엇갈린다. 손경식 회장은 법정에서 “이날 조원동 수석은 이미경 부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도록 하는 것이 VIP(박근혜 대통령)의 뜻이라고 밝혔다”고 증언한 반면, 조 전 수석은 “VIP를 언급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 것. 

어쨌든 조 전 수석과의 만남 이후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이 대통령의 뜻이라고 받아들인 손경식 회장은 이미경 부회장에게 이를 전달했다. 이에 이 부회장은 당황하며 “정말 대통령이 그렇게 말씀하셨냐”며 손경식 회장에게 다시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손 회장은 조원동 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이 부회장의 퇴진이 박 대통령의 지시인지 다시 확인해달라고 요청하면서 통화 내용을 녹음했다. 이날 법정에서 공개된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손 회장이 “VIP 말을 전하는 것이냐”고 묻자 조 전 수석은 “확실하다 . 

직접 들었다”고 확인해줬다. 여기에 덧붙여 조 전 수석은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이) 너무 늦으면 진짜 저희가 난리 납니다. 지금도 늦었을지도 모릅니다”라며 “그냥 쉬라는데요.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십니까. 좀 빨리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도 했다.


‘VIP’ 언급은 실수였나?

이날 법정에서 조 전 수석은 해당 통화 내용을 인정했다. 다만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고 있는데 손 회장이 두 차례나 전화해 집요하게 질문했기 때문에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를 적절히 섞어서 강한 어조로 말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조원동 전 수석의 주장을 요약하면, 손경식 회장과 직접 만났을 당시에는 ‘VIP’란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후 손 회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얼결에 ‘VIP의 뜻’이라 말하고 나서 본인도 당황했다는 것이다. 

손경식 회장은 조 전 수석과 만나고 사흘 후인 7월 8일 대한상의 회장직을 사임했고 이후 조원동 수석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CJ 일은 지시받은 대로 처리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7월 말 손 회장과 조 전 수석의 전화 통화 녹취록이 청와대에 보고되며 문제가 불거졌다. 누군가가 녹취록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이다. 이로 인해 조 전 수석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조사를 받은 데 이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CJ는 왜 그렇게 처리하셨어요?”라는 질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박 전 대통령 측은 이재현 회장이 없는 상황에서 이미경 부회장이 CJ그룹을 잘 이끌어 갈지 걱정된다는 말을 했을 뿐, 퇴진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여의도 텔레토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관여했는지 밝히는 것과 함께 왜 이미경 부회장이 타깃이 됐는지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미경 부회장이 박근혜 정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배경에는 CJ그룹이 제작한 방송 문화 콘텐츠가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원개혁위원회가 공개한 ‘국정원 적폐청산 TF’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2013년 8월부터 CJ그룹을 사찰한 뒤 ‘CJ의 좌편향 문화 사업 확장 및 인물 영입 여론’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는 tvN ‘SNL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패러디한 캐릭터 ‘또’를 욕설을 가장 많이 하고 안하무인의 인물로 묘사했다는 지적이 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있던 박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몹시 불편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CJ는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를 기획·제작해 당시 야당 대선 유력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에 제작비를 투자하기도 했다. 이에 당시 국정원은 이미경 부회장이 ‘친노의 대모’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CJ 측에 이를 시정하도록 경고하고 과도한 사업 확장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청와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농단의 핵심으로 알려진 최순실 씨도 이미경 부회장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차은택 감독은 지난해 특검 조사에서 “CJ가 만든 영화에 좌파 성향이 많아 최가 이 부회장에 대해 ‘XX년’이라고까지 말했다”고 전한 바 있다. ‘좌편향’ 콘텐츠로 인해 정권으로부터 큰 홍역을 치른 CJ는 이후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의 영화에 거액을 투자했고, 박 전 대통령은 이들 두 작품을 직접 관람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조원동 전 수석의 이미경 부회장 퇴진 강요미수에 대한 1심 판결은 2월 중 열릴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이미경 부회장의 컴백설도 제기되고 있다. CJ 측은 “이 부회장이 미국에 머물며 K-CON 등 해외 행사를 챙기고 있다. 국내 경영에 합류할지 여부에 대해선 결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designer 최정미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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