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YLE

#joelkimbeck #column

window dresser 쇼핑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들

조엘 킴벡의 칼레이도스코프

조엘 킴벡

2017. 12. 14

미국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의 윈도우 드레싱,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영국 셀프리지스 백화점의 윈도우와 전경.(왼쪽부터)

미국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의 윈도우 드레싱,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영국 셀프리지스 백화점의 윈도우와 전경.(왼쪽부터)

필자에게는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지금은 사라져버린 거대한 장난감 매장 ‘FAO 슈워츠’에 가서 선물을 직접 골랐던 것이다. 뉴욕의 중심 맨해튼 5번가에 위치한, 영화 ‘빅’에서 보았던 바닥에 커다란 피아노 건반이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장난감 가게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간다는 것 자체가 꿈만 같았다. 그 기억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자동차를 주차하고 대여섯 블록 정도를 걸어가는 동안 스쳐 지나간 백화점의 쇼윈도 때문이다. 그곳은 뉴욕을 대표하는 고급 백화점 중의 하나인 버그도프 굿맨이었는데,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데커레이션된 쇼윈도 안의 풍경은 그야말로 별세계였다. 그 시절 나의 눈에 비친 쇼윈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낯설지만 아름다운 세계와 동의어였다면 지금의 그것은 숨은 소비의 욕구를 자극해 구매라는 행위를 이끌어 내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다. 

한 평 남짓한 공간을 특정한 테마에 맞추어 환상적인 공간으로 재창조해내는 사람들을 ‘윈도 드레서(Window Dresser)’라고 부른다. 직역하자면 ‘쇼윈도에 의상을 입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처음 이 단어가 쓰였을 때는 그들의 일을 멋스럽게 표현한 언어유희쯤으로 여긴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윈도 드레싱이라는 학문을 가르치는 학교도 있고,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을 만큼 입지가 높아졌다. 

버그도프 굿맨의 윈도 드레싱을 20년 가까이 맡아 ‘킹 오브 버그 도프’라고 불리는 데이비드 호이는 윈도 드레서가 되기 위해서는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음악학도였던 그는 미국 댈러스에 위치한 니먼 마커스 백화점(버그도프 굿맨과 같은 계열의 백화점 체인)에서 근무하던 중 한 여성과의 만남을 통해 본격적으로 윈도 드레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여성이 바로 지금의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의 부사장인 린다 파고다. 

메이시스 백화점의 윈도 드레서로 커리어를 시작한 린다 파고는 1995년 뉴욕의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에 영입되자 과거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데이비드 호이를 불러들였다. 린다가 데이비드와 함께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남성관과 여성관으로 나뉘어 있는 버그도프 굿맨의 23개의 쇼윈도를 새롭게 꾸미는 작업이었다. 두 사람의 작업은 이전까지의 쇼윈도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도전으로 가득했다. 린다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젊은 시절 저는 판타지를 동경했고, 멀티미디어에 관심이 많았으며, 의상에도 조예가 깊었죠. 한마디로 의욕과 에너지가 충만한 젊은이였죠. 버그도프 굿맨에서 일하는 동안 백화점 구석구석까지 누비며 관찰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관심을기울였죠. 그런 호기심과 열정이 우아하면서도 위트 있는 버그도프 굿맨의 쇼윈도를 창조해내는 밑거름이 된 것 같아요. 물론 데이비드 호이라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훌륭한 조력자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고요.” 



버그도프 굿맨의 쇼윈도를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단순히 물건판매를 위한 차원을 넘어 한편의 예술 작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필자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 즈음에 세팅되는 쇼윈도는 형용하기 힘든 무언의 강한 파워가 있다. 혹자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리는 다양한 선물용 상품들을 매해 테마에 맞춰 세련미 넘치면서도 완성도 높게 전시를 해놓은 ‘작품’을 보면 없던 구매욕도 용솟음친다고 말하기도 했다. 

버그도프 굿맨과 더불어 뉴욕을 대표하는 바니스 뉴욕 또한 쇼윈도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백화점이다. 버그도프 굿맨의 쇼윈도가 글래머러스 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격조를 유지하고있다면, 바니스 뉴욕의 그것은 재기 발랄한 발상을 기본으로 하는 혁신적인 데커레이션이 주류를 이룬다. 바니스 뉴욕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유니크한 쇼윈도를 창조해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워온 주인공은 바로 ‘크리에이티브 앰배서더’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사이먼 두넌이다. 영국 출신의 사이먼 두넌이 미국으로 건너온 이유는 LA에 자리한 멀티 브랜드 숍인 맥스필드의 쇼윈도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1986년 바니스 뉴욕과 처음 인연을 맺은 이래 그곳 쇼윈도 역사의 살아 있는 증인으로 자리매김 해왔으며, 2010년 ‘어느 윈도 드레서의 고백(Confessions of aWindow Dresser)’이라는 책을 발간해 이 직업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한 그는 “패션은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 패션이라는코드에 유머와 위트를 접목시켜야만 비로소 최상의 쇼윈도가 탄생한다”고 피력했다.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의 윈도 드레싱은 판매를 위한 차원을 넘어 풍부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문화적 유산에 가깝다.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의 윈도 드레싱은 판매를 위한 차원을 넘어 풍부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문화적 유산에 가깝다.

그렇다면 윈도 드레싱을 하기 위해선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 미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백화점 체인인 삭스 피프스 애비뉴의 윈도드레싱 총책임자였던 줄리오 고메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삭스 피프스 애비뉴의 경우 적어도 2~3주에 한 번씩은 쇼윈도의 디스플레이를 바꿨어요. 달리 말하면 끊임없이 샘솟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죠. 실제로 삭스 피프스애비뉴의 윈도 드레싱 팀에 소속된 많은 인원들을 살펴보면 출신 학과가 천차만별이에요. 이곳에는 딱히 인테리어를 전공했거나 공간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에요. 다양한 전공자들이 결국 하나의 귀결점으로 윈도 드레싱이라는 직업을 갖게 된 거죠. 물론 기본적인 손재주와 눈썰미 정도는 필요하겠지만요.” 

영국 런던의 대형 백화점인 셀프리지스의 윈도 드레서를 역임하다 최근 휴고 보스의 글로벌 윈도 디렉팅을 맡고 있는 폴 체임버스도 “윈도 드레서로 성공하고 싶다면 먼저 풍부한 상상력과 응용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간 디자인적인 감각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은 비주얼 머천다이저와 분담이 가능해요. 윈도 드레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콘셉트나 메시지를 상상력으로부터 솟아오른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풀어내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구현해내는 능력이죠.” 

미국이나 유럽의 대형 백화점들과 달리 한국의 백화점들은 아직 상시적인 윈도 드레싱 팀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윈도 드레서가 새로운 전문 직종으로 각광받을 가능성이 있다. 백화점 운영이나 매장 구성 방식이 우리와 비슷한 일본에서도 최근 윈도 드레싱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가 운영하는 멀티 브랜드숍 엘르토프 테프의 총괄 VMD(Visual Merchandiser)를 맡기도 했던 히에 코지는 “백화점 내 매장 아이덴티티 구성을 위한 공간 디자인이 주 업무인 VMD와는 달리, 엘르토프 테프와 같은 단독 멀티 브랜드 숍의 경우는 윈도 드레싱이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마치 한 폭의 액자 같은 쇼윈도를 통해 잘 구성된 신을보여주고, 동시에 그것을 통해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소싱과 기획력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밝혔다. 

앞서 언급한 바니스 뉴욕의 크리에이티브 앰배서더 사이먼 두넌은 자신의 책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우디 앨런 감독을 존경한다. 그는 자신을 ‘광대’라고 스스로 빈정거릴 줄 아는 진짜 우리 시대의 감독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내 자신을 ‘윈도 드레서’라고 부른다. 바니스 뉴욕의 디렉터라 불리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나답다.” 

윈도 드레싱을 순수예술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광고 산업과마찬가지로 현대의 물질주의가 만들어낸 상업주의의 표본일지도 모르지만,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물욕(物慾) 넘치는 세상을 대변하고 있는 또 하나의 진화된 예술 장르가 바로 윈도 드레싱이 아닐까?


조엘 킴벡


● 뉴욕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줄리아 로버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현재 브랜드 컨설팅 및 광고 에이전시 ‘STUDIO HANDSOME’을 이끌며, 브랜드 컨설팅과 광고 만드는 일을 한다. 〈레드 카펫〉을 번역하고 〈패션 뮤즈〉를 펴냈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에 칼럼을 기고한다.

director 김명희 기자 designer 최정미
사진제공 조엘 킴벡, 각 백화점 인스타그램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