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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koreatrails #buyeo

강과 평원, 켜켜이 내려앉은 시간을 들추며 걸어간 길 부여

editor Choi Eun Cho Rong

2017. 09. 28

무시로 훌쩍 집을 나서곤 했던 그이를 마음먹고 따랐던 길에 부여가 있었다. 땅과 사람의 옛 시간을 그러모은 곳들에서 부여와의 긴 인연은 그렇게 첫 장을 넘겼다. 
부여는 별스럽다 싶으리만치 애틋함이 크게 다가온다. ‘부여’라고 낮게 부르면 긴 시간 남겨져 삭아버린, 낡아 바스락 소리가 나는 오래된 옷감이 떠오른다. 바라보기 아까워 손이라도 쓸어볼라치면 먼지로 풀어헤쳐져 흔적도 남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낡아빠지고 볼썽사나워진 무엇을 보는 느낌이 아니라 그 태가 바랜 모습까지 오래도록 눈길이 머무는 귀한 존재감이 전해지는 곳. 부여가 익숙하지 않다는 아나운서 조우종에게 길잡이를 자청했다. 1천4백 년의 길 위에서 만나는 오랜 돌덩이 하나, 그 위를 빌려 난 이끼 한 줌에 마음을 내어주는 사이 일상이라는 팽팽한 현이 어느새 느슨해져 있음을 느끼게 될 거라는 장담도 잊지 않았다.



버드나무 그늘 아래 바람의 휴식에 빠져든 왕의 호수,궁남지

신라 도성 아이들에게 동요를 부르게 부추겨 결국 아름다운 공주를 아내로 얻은 청년은, 훗날 백제의 왕이 된 후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을 만들고 그 위에 배를 띄워 아내와 함께했다. 6백34년 백제 무왕이 궁궐 남쪽 정원으로 지었다는 궁남지는 언제나 이 호방하고 애틋한 왕의 이야기가 있어 ‘역시 백제답다’는 미소를 머금게 했다.

그러나 정작 궁남지를 자꾸 찾곤 했던 이유는 딴 데 있었다. 꽃가루 사납다고 구박받으며 곳곳에서 베어지기 일쑤인 수양버들이 마치 연못을 호위하듯 예의 긴 초록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능청거리는 장관과, 어른 키만큼 훌쩍 자라 역시나 연못 주변을 넉넉히 두르는 연꽃 때문이다. 마침 바람이 길어 버들의 흔들림도 오래간다.



조우종의 손을 이끌고 버들가지가 발처럼 드리운 그늘 한가운데 서게 했다. 이런 풍경 참 오랜만, 이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가느다란 가지와 풍성한 잎사귀 뒤엉킨 바람 소리에 얹혀 전해졌다.




수줍고 소박함 속에 담긴 화려하고 뜨거운 성정, 부소산성과 신동엽생가문학관

“거창하고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요. 투박하면서 남성적인 듯 기백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속의 섬세함을 감출 수 없었던 그런 사람들이었나봐요.”

부소산성을 따라 낙화암으로 거닐던 조우종이 부여의 단상들을 찬찬히 짚어가며 말한다. 부소산성도 그런 곳이다. 모르고 걸었다면 산허리 둔덕쯤이라 여겼겠지만 이곳은 백제 의자왕이 마지막을 버텼고, 길 끝에 이르면 더 이상 발로는 디딜 수 없는 절벽을 앞두고 강으로 삶을 내던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석처럼 빛나는 백제의 마지막 요새였다. 어른 몸통 하나쯤은 우습다는 듯 자란 산성의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그 시간의, 그 장엄한 역사의 목격자일 게다. 두툼하게 돋운 껍질 틈에 귀라도 갖다 대고 싶은 심정이다.

뜨거움으로 들끓는 속내를 거칠되 섬세한 언어들로 터뜨렸던 시인에게서도 백제와 백제 사람의 잔영이 겹쳐진 듯했다. 껍데기는 가라며 외치고, 인사도 없이 지나친 인연을 죽는 날까지 간직하자던 시인 신동엽은 부여에서 태어나 시와 삶으로 세상에 저항하던 속 뜨거운 사람이었다. 짧게 툭툭 던진 듯한 시어는 어느 하나 흘려 담을 수 없이 아름답다. 그런 그의 시간도(백제가 그랬듯) 짧았다. 겨우 나이 사십이 되었을 때 시는 남고 시인은 떠났다. 뭐가 그리 다급했을까 황망스러움에 그가 살던 집 툇마루에 더 늑장 피우며 머물러 있었다.



손에 잡힐 듯 백제의 땅이 사방을 두른 절경,성흥산

성흥산에 오르는 동안 산허리를 휘감으며 지나는 안개가 신비로웠다. 안개는 소나무 가지 사이에 잔불이 난 듯 희멀건 기운을 피워내더니 이내 산 저편으로 자취를 감춘다. 그 안개를 뚫고 올라간 성흥산 정상은 너른 구릉 주변에 석성을 두른 천혜의 산성이다. 논산과 강경, 익산까지 맨눈으로 가늠된다. 그러고 보니 황산벌(논산)이 저만치다. 아마 옛날 그 하루, 계백이 군사를 이끌고 저 평원으로 진군하던 날 이 산성을 지키던 이의 억장은 어떠했을까 더듬어본다. 가슴이 먹먹해져 부여 최고의 절경을 만든 4백 살 된 성흥산 사랑나무에 잠시 기대어 숨을 고른다.



넉넉한 땅에 뿌리내린 믿음은 또 하나의 역사로 남다, 무량사와 금사리성당


땅의 넉넉함을 닮은 사람들이
절대자에 마음을 맡겼던 곳들에도
부여의 역사가 배었다.


땅이 넉넉하고 살림살이가 풍요로우면 사람들은 먹고사는 고민 덜어낸 대신 마음의 여유를 절대자에게 의지하곤 했다. 금사리성당과 무량사에서 부여의 넉넉함이 새삼 떠올랐던 것도 이 때문이었나 보다. 진한 숲 향 가득하고 가을이 익으면 단풍이 제법이겠다 싶은 산길을 잠시 걸어 만난 무량사는 시간이 묵직하고 불심이 든든히 내려앉은 절사다. 탑신의 이끼와 돌 무늬 틈틈이 끼어 있는 시간의 태에 눈길이 한참 머문다.

그리고 그 너머 2층 누각을 올린 극락전의 장엄함과 마주한다.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만든 절사를 2층으로 올려야 할 만큼 큰 부처와 보살이 그 안에 있다는 의미다. 과연 극락전 안에서 만난 아미타불과 관세음의 숨막히는 ‘큰 미소’에 우리는 탄성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생육신인 매월당 김시습이 여생을 보낸 곳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으니 휴 하는 한숨이 새어 나온다.

동행했던 이가 딱 1백10년 전에 프랑스인 사제가 지었다고 일러준 금사리성당은 부여의 이야기가 백제와 통일신라의 것들뿐일 거라고 지레 넘겨짚는 이들에게 보란 듯이 붉은 벽돌과 종탑을 올린 이국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역사는 두말 할 것 없고 종교와 문화까지, 어디에 촉각을 곤두세워도 풍부한 이야기가 풀어 헤쳐지는 곳. 부여가 원래 그렇다.



돌담과 마을과 한참을 이야기하며 걷는 길 반교마을


휴휴당 툇마루에 앉아 쉬었다.
그렇게 쉬니 마음이 열려 웃음이 잦아진다.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이 소박하게 휘돌아 나간 돌담의 곡선에 놀라 절로 손뼉을 쳤다. 억지로 맞춰서 쌓은 것이 아닌, 언제 쌓았는지 몰라도 늘 그랬다는 듯 이렇게 자연스러운 돌담으로 마을 길을 낸 풍경이 얼마 만인지. 마침 돌담 너머 대추며 감, 밤이 푸짐하게 열매를 키워가고, 돌담 위로 호박 넝쿨이 푹신한 이불처럼 덮였다. 담 아래로 질 수 없다고 야생 나팔꽃이며 야생화가 안간힘을 쓰며 피어 있다. 애초에 워낙 돌이 많았을 반교마을이었고, 밭에서 돌을 고르고 캐는 고된 수고 끝에 이런 근사한 돌담이 세워졌을 텐데, 마을 풍경을 보노라면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전 문화재청장이자 미술평론가 유홍준도 이 풍경에 반했다. 그는 아예 친구 승효상에게 부탁해 마을 끝자락에 집을 마련했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으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겠다.

돌담길 거닐면 자꾸만 돌 하나에 무슨 이야기가 담겼을지 궁금해서 말을 걸고 싶어진다. ‘넌 몇 살이나 되었니?’ 라고 물으면 몇억 년의 답이 되돌아올까 상상하며 웃어도 본다. 돌담 위에 무시로 빨래를 널어 말리던 옛 풍경도 떠올려본다. 이 작은 마을에 며칠을 머물러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산책 끝, 지난 1년간 일이 있든 없든 긴장을 좀체 떼어놓지 못했다는 조우종을 불러 유홍준의 쉼집인 ‘휴휴당’에서 마음 좀 놓고 가라고, 속 풀고 가라고 주저앉혔다.



긴 역사를 만들어간 사람들의 손길을 따라 부여 체험 여행

부여에서의 시간을 듣던 누군가가 하루이틀 정도면 충분하냐고 묻길래 어림도 없을 거라고 웃어넘겼다. 하루동안 휘휘 둘러보고 그 1천4백 년도 훨씬 전의 역사를 헤아리기란 어차피 말이 안 될 법하지만, 그 이유가 아니라도 손수 해보고 둘러볼 것들이 지천이어서다. 뭘 고르고 가리고 할 마음이 내키지 않아 다 욕심부리려면 며칠을 머물러도 턱없을 것이다.

부여와 익산, 군산을 오가며 근현대사의 흔적을 모아 가득 채운 박물관과 맛깔스러운 한 상 차림이 좋았던 백제원에서 스스로 ‘미쳤다’고 할 만큼 끈기 있고 우직한 한 수집가의 감동적인 열정을 만났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이 모든 걸 꾸려가며 그야말로 ‘역사’를 남기고 있는 이였다. 여전히 발로 녹로를 돌려 빚은 그릇을 송진 가득 품은 소나무를 때는 가마에 넣어 백제의 검은 토기로 완성한 백제요의 장인도 그랬다.

역사란 선택받은 누군가의 거창한 사건만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삶이 감동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새끼를 꼬듯 모아낸 흔적이구나 싶다. 그리고 백제인들의 이상향을 담은 백제금동대향로와 마주하고 그들의 의복을 갖추는 동안 시간을 건너온 옛사람들의 삶과 조금 더, 또 한 번 가까워지고 있었다.



부여의 맛

오랜 시간을 품은 도시는 맛도 깊다. 유행을 놓치지 않음을, 기량이 뛰어남을 자랑하는 일도 없고 언젠가 들렀을 때처럼 그냥 제 맛을 내며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정직하다. 정직하게 오래 했더니 사람들이 찾고, 절로 이름을 타게 되었다.

굳이 전통을 따져가며 먹는 음식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대충 좀 오래되었다 싶으면 30년, 40년 내력은 일도 아닌 내공 깊은 곳들이 있어 부여 여행은 놀라움과 만족감의 즐거운 감정 기복을 경험하게 한다.


 대동국수 


60년간 같은 자리에서 국수를 만들어온 은산면의 대동국수에서 마침 면발을 만들어 너는 날을 맞았다. 발처럼 늘어뜨린 국수를 햇살과 자연 바람에 말려 쫄깃하기 이를 데 없다고 부여 사람들 칭찬이 자자하다. 덜 마른 국수 면발의 무게를 직접 감당해본 조우종은 그 긴 시간 국수를 뽑고 널어온 주인 내외에게 무한한 존경을 보냈다.




은혜식당 


무량사 일주문 근처는 여느 이름난 사찰들과 달리 식당이 적어 한적한 편이다. 대신 30년간 산채정식을 만들어온 은혜식당의 손맛이 있어 허전함을 달래준다. 직접 기른 채소와 담근 장, 동네에서 난 버섯으로 꾸린, 절로 입맛 당기는 담백한 한 상을 받았다.





나경식당 


부여는 높은 산은 없으나 숲이 울창하고 깨끗하다. 그런 숲은 버섯이 잘 자라고 또 향이 좋다. 부여의 별미 중 버섯을 주재료로 한 음식이 적지 않은데, 버섯전골은 누구나 반길 개운한 맛이 인상적이다.




시골통닭 


세련된 맛과 모양의 요즘 프라이드치킨이 아닌, 옛날 가마솥에서 통째로 튀겨낸 ‘통닭’ 한 마리가 접시에 올랐다. 역시나 기교 부리지 않고 신선한 닭과 과자처럼 바삭한 튀김옷만으로 승부를 걸었고, 사람들은 기꺼이 손을 들어줬다.




솔내음


궁남지 주변 못을 가득 덮은 연잎 덕분에 역시나 부여의 대표 별미는 연잎밥이다. 궁남지 인근, 백마강 구드래나루터 초입, 군청 주변 등마다 솔내음을 비롯해 연잎밥을 만들어 내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백제당 


동네 빵집의 정겨움에 이끌려 들어갔다. 그런데 빵 맛이 만만치 않다. 촉촉하게 잘 반죽한 빵에서 오랜 솜씨를 가늠할 수 있고, 젊은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다는 수제 쿠키도 달콤하다. 두 손 가득 빵을 담아온 대신 계속 이 자리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남기고 왔다.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세계유산도시 부여


1박 2일 코스
만수산무량사 → 반교마을 → 백제문화단지 → 궁남지 → 숙박 → 정림사지오층석탑 → 부소산 → 국립부여박물관 → 능산리고분군

2박 3일 코스  

만수산무량사 → 반교마을 → 성흥산사랑나무 → 송국리유적지 → 숙박 → 능산리고분군 → 백제원 → 백제문화단지 → 백마강수상관광  → 숙박 → 부소산  → 신동엽문학관 → 궁남지 → 국립부여박물관 → 정림사지
부여에 대한 추가 정보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국내 여행 정보 포털 사이트. 추천 테마 여행, 관광 명소,교통, 숙박, 맛집 등 지역 관광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korean.visitkorea.or.kr


후원


〈여성동아> 10월호 ‘강과 평원, 켜켜이 내려앉은 시간을 들추며 걸어간 길 부여’ 기사에 실린 사비길을 걷고 ‘두루누비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durunubi.kr)’에 후기와 인증샷을 남겨주시면 추첨을 통해 5분께 프로스펙스 워킹화를 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두루누비 페이스북을 참고하세요.



designer Kim Young Hwa writer Nam Ki Whan photographer Kim Sung Nam, Jo Young Chul video Lee Il Hoon, Yang Gab Yeol
제작지원 한국관광공사  취재협조 부여군청 스타일리스트 류시혁 어시스트 이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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