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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동아 독자들에게 이라크 난민 캠프에서

editor 김지영 기자

작성일 | 2017.08.03

지금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한국을 대표하는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최근 이라크 북부 아르빌 난민 캠프를 다녀온 정우성이 말했다.
여성동아 독자들에게 이라크 난민 캠프에서

ⓒUNHCR/J. Matas

우리나라는 2012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지만 난민에 대한 이해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난민의 의미조차 제대로 아는 이가 많지 않다. 난민은 전쟁, 박해 등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고국을 떠나 해외로 탈출한 사람들이다. 최근 이런 난민의 고충에 새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세계 19명의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 중 한 명으로 활약 중인 배우 정우성(44) 덕분이다.

정우성이 유엔난민기구와 인연을 맺은 건 2014년 4월, 이 기구가 그에게 난민을 돕는 서포터 활동을 제안하면서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관계자는 “난민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할 적임자를 찾다가 인지도가 높고 데뷔 후 줄곧 큰 스캔들 없이 모범적으로 연기 생활을 한 정우성 씨에게 연락을 취했는데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바로 승낙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정우성은 1년간 비공식 직함인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로 활동하다 2015년 6월 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앞두고 친선대사로 임명됐다.

친선대사는 해마다 난민 캠프를 방문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2014년 명예사절로 네팔을 다녀온 그는 2015년 남수단, 2016년 레바논에 이어 지난 6월 초에는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있는 난민캠프를 찾았다. 이슬람국가(IS)의 주요 격전지인 아르빌에는 이라크 국내 실향민(집이나 통상적인 거주지를 탈출할 수밖에 없었으나 국제적으로 인정된 국경을 넘지 못한 사람들)과 시리아 출신의 난민들이 모여 사는 난민 캠프가 있다.

여성동아 독자들에게 이라크 난민 캠프에서

ⓒUNHCR/J. Matas

▼이라크 아르빌의 난민 캠프에서 어떤 활동을 했나요.
6월 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앞두고 이라크로 출국해 5일간 다녀왔습니다. 현지에서 수년간 거주 중인 시리아 난민들, 지난해 10월 시작된 모술 탈환 작전으로 집을 잃은 실향민 가족들을 만나고 세계 난민의 날 캠페인을 위한 영상 촬영, 유엔난민기구가 제작한 단편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 작업 등을 하고 돌아왔죠.

▼그곳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난민들의 실상을 보며 가슴이 아팠죠. 특히 IS의 거점인 이라크 모술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바로 얼마 전 전쟁으로 집이나 가족을 잃었기 때문에 정신적 외상이 심각했어요. 시리아 난민들은 피란 생활이 길어져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고요. 이라크에는 6만 명이 넘는 난민이 있고, 국내 실향민과 귀환민(고향이나 상주국으로 돌아간 국내 실향민이나 난민) 등 보호 대상자는 6백만 명이 넘습니다. 한국과 같은 나라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죠.(그는 6월 24일 자신이 내레이터를 맡은 다큐멘터리 〈경계에서〉의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바 있다. 〈경계에서〉는 그가 지난해 레바논에서 만난 시리아 출신 난민, 하산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난민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이라크 아르빌 인근의 하산샴 난민 캠프에서 선천적 청각 장애를 가진 열 살짜리 여아, 후다를 만났는데 IS 폭격으로 얼굴 한쪽에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런 후다를 보고 있는데 다른 또래 여자아이가 툭툭 치더라. 내가 쳐다보니까 이 아이가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시늉을 하며 ‘슈웅~ 쾅!’ 소리를 냈다. 그 짧은 설명이 어떤 말보다 가슴이 아팠다. 그런 감정이 폭발하지 않도록 애써 참으면서 그냥 후다를 안아줬다”고 털어놨다.)  

여성동아 독자들에게 이라크 난민 캠프에서

ⓒUNHCR/J. Matas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각자의 분야에서 인지도와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이 친선대사를 맡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의 국가와 지역 사람들에게 난민의 어려움과 유엔난민기구의 활동을 널리 알려 관심과 후원을 독려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저는 1년에 한 번 난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국가의 난민촌을 방문해 그들의 사연을 듣고 생활의 어려움을 확인하고 옵니다. 그게 제 ‘미션’이지요.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2014년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에서 제안을 해왔습니다.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잠시 주저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친선대사로 활동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많은 분쟁과 대립으로 인해 무고하게 집과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난민들의 숫자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상황을 접하면서 제가 과연 난민 구호 활동을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일기도 했지만, 지금은 잘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전에는 제 생에 개입시킬 수 없었던 새로운 관점이 생겨 개인적인 삶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난민 문제를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저 스스로도 성장할 수 있었거든요. 

▼그동안 여러 지역을 다녀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을 것 같아요.
현장에서 만난 난민들과 직원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언제 만났는지 한 명 한 명 기억에 남고, 또 몇 년이 지난 후에 다시 떠올라 더 깊이 각인되는 난민들도 있어요. 레바논에서 만났던 시리아 난민 가족의 얼굴이, 이라크의 국내 실향민 가족을 만나며 떠오르기도 합니다. 난민들의 사연은 저마다 다르지만, 고향을 잃고 떠돌고 있다는 아픔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남수단 주바 지역을 방문했을 땐, 평지에 약 2만 명이 생활하는 캠프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고 그 규모에 깜짝 놀랐습니다. 남수단의 이다 지역 식량 배급소에서 식량을 배급받던 사람들의 모습도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캠프 내에 마련된 임시 분만실도 기억에 남고, 모든 아이들의 눈빛과 모든 아버지, 어머니들의 눈빛 하나하나가 다 기억에 남습니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난민 구호 활동을 하며 힘든 점은 무엇입니까.
열악한 환경이고 현장에서 많은 일정을 소화해야 하지만 육체적으로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유엔난민기구의 친선대사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보다는 난민들과 대화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힘들 때가 있는데 이런 면을 조절하려고 노력합니다. 난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이들을 대변하는 과정에서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난민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대중에게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저의 궁극적인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보람된 순간은 언제인가요.  
‘미션(난민 캠프 방문)’을 수행한 후 해당 지역의 난민 관련 보도가 많아졌다거나 후원이 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보람을 느끼죠. 미션을 수행하는 기간이 아니어도 유엔난민기구의 한국대표부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제가 어떤 식으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는지 늘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난민 구호 활동을 2014년부터 시작했는데, 그때보다 난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됐길 바라며 앞으로 꾸준히 더 좋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여성동아 독자들에게 이라크 난민 캠프에서

정우성이 지난 6월 초 이라크 북부 아르빌의 난민 캠프에서 만난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UNHCR/J. Matas

▼연기자들은 작품이 끝나면 그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때가 있다고 하더군요. 난민 구호 활동을 펼치고 나서 그런 후유증을 경험해봤습니까.  
삶의 난관에 직면한 난민들이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모습은 후유증으로 남기보다 배우로서, 한 사람으로서 제가 살아가는 데 긍정적인 여운으로 남습니다.

▼난민의 수는 어느 정도인가요.
2016년 말 전 세계 강제 이주민의 수는 6천5백60만 명으로 전년에 비해 3만 명이 늘어났어요. 영국의 총인구(약 6천4백만 명)보다 많은 규모죠. 이들 가운데 국경을 넘은 난민은 2천2백50만 명에 이릅니다. 전 세계 1백13명당 1명은 난민이나 국내 실향민 혹은 난민 신청자(국제적 보호를 구하는 개인)인 셈이고, 3초에 한 명꼴로 누군가 집을 잃고 있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전 세계 난민의 절반 이상이 어린이예요. 전체의 80%가 넘는 난민을 보호하고 있는 국가들이 빈곤국들이고요. 얼마 전부터 언론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시리아 난민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선진국의 보호를 받는 난민은 여전히 극소수입니다. 대부분은 전쟁 등 위험이 해소되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며 인접국에 머무르죠.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절실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지속적인 관심입니다. 지속적인 관심이 후원으로 이어지고, 후원이 난민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니까요. 특히 한국처럼 난민발생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의 경우 난민에 대한 관심이 계속 이어지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성동아 독자분들께서 난민들에게 관심을 갖고 이들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난민을 왜 우리가 도와야 하느냐”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답합니까.
난민은 일시적으로 집을 잃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많은 한국인들도 한국전 당시 집을 잃은 피란민이었고요. 오히려 제가 묻고 싶네요. 어째서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돕지 말아야 합니까. 돕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친선대사 활동을 얼마나 더 하실 계획입니까. 안젤리나 졸리 같은 글로벌 특사(세계 난민 구호 활동을 하면서 중대한 난민 문제에 적극 개입해 전문가들과 함께 난민 관련 국제사회의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 직책)가 되고 싶은 생각도 있나요.
진급이나 승진의 개념이 아니라서, 친선대사를 오래 한다고 글로벌 특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또 이런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직책이나 타이틀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요. 그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발생하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인간으로서 외면하지 않고, 공감하고, 나누자는 취지에서 이 일을 하는 겁니다. 언제까지 할 거라고 정확히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다만 유엔난민기구에서 저를 필요로 한다면 난민 구호 활동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그와의 인터뷰는 그의 스케줄이 여의치 않아 서면으로 진행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여성동아 독자들에게 다음의 후원 정보를 꼭 전해달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난민 후원 문의는 유엔난민기구 홈페이지(www.unhcr.or.kr)나 전화(02-773-7272)로 하면 된다.

사진제공 유엔난민기구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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