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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joelkimbeck_kaleidoscope 조엘 킴벡의 칼레이도스코프

Luxury in Scents 손안의 작은 사치

2017. 01. 03

화장품의 질적 성장이나 브랜드 수의 증가만큼 드라마틱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으나 지난 수십 년간 화장품의 유통 채널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동네 화장품 가게와 ‘화장품 아줌마’로 불리던 방문 판매가 성업하던 시절을 지나 1990년대에 들어서는 백화점이 화장품 판매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특히 고객들이 패키지부터 제품력까지 한눈에 비교하고 체험할 수 있는 백화점 1층은 코즈메틱 브랜드들의 격전지이자, 화장품을 미용 상품에서 럭셔리 아이템으로 격상시킨 성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사이 화장품 시장에서 백화점의 위상을 위협하는 커다란 변화들이 일어났다. 바로 단일 브랜드 숍의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백화점 못지않은 매출 신화를 기록하는 로드숍들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한국의 화장품 문화 전체가 바뀌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엔 로드숍 제품의 퀄리티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국산 화장품이면 대체로 믿을 만하다는 신뢰가 쌓였다. 백화점이냐, 로드숍이냐는 개인의 취향이나 선호도의 문제일 뿐, 기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브랜드의 콘셉트만 잘 정립돼 있다면 백화점이든 로드숍이든, 고가든 중저가든 상관없이 얼마든지 소비자의 지갑을 공략할 수 있는 사실상 ‘무한 경쟁의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없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제품이 나와 있는 뷰티 시장에서 새로운 창조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세분화되고 있는 사람들의 취향에 부응하는 것일 것이다. 요즘 코즈메틱 브랜드들이 새로운 마켓으로 삼고 있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향수 시장이다. 기존 향수들보다 좀 더 세련되고 독특하며 남과 겹치지 않는 자신만의 향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니치 향수와 향초, 디퓨저, 헤어 퍼퓸, 텍스타일 퍼퓸 등이 그것. 니치 향수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생산되는 세탁 세제나 섬유 유연제 등도 주목받고 있다.  

‘샤넬 백을 드는 대신 샤넬 립스틱은 바른다’는 건 과거에는 몇 백만원에서 몇 천만원까지 하는 샤넬 백을 살 형편이 못 되기에 몇 만원대로 구매할 수 있는 립스틱이라도 바르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요즘 패션 업계의 트렌드인 다양한 취향의 스펙트럼으로 재해석해보자면, ‘샤넬 백은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샤넬이라는 브랜드의 정수가 담긴 립스틱은 하나쯤 발라줄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옷과 가방에 이어 가구와 이불까지 베르사체나 펜디 혹은 미소니로 통일하는 것은 너무 과하거나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침구나 커튼에 뿌리는 섬유 전용 향수인 패브릭 프래그런스 혹은 텍스타일 퍼퓸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분짓는 취향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마트에서 손쉽게 구매하는 세탁 세제 대신 해외 직구를 통해 니치 향수 브랜드의 조상 격인 ‘르 라보(LE LABO)’와 럭셔리 세제 브랜드인 ‘더 런드레스(The Laundress)’가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발매한 세탁 세제를 구매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국내 판매가 급증하자 르 라보는 최근 서울 가로수길과 이태원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작은 차이를 통해 자신만의 만족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증가함에 따라 이와 관련된 시장도 성장하는 추세다. 앞서 말한 더 런드레스는 고급 호텔 등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니치 향수 브랜드 메종 프란시스 커정은 자신들의 시그니처인 아쿠아 유니버설 향을 넣은 섬유 유연제를, 조 말론은 섬유에 직접 뿌리는 텍스타일 퍼퓸을 발매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딥티크 역시 ‘오 플루리엘르’라는 텍스타일 퍼퓸을 선보였는데, 출시 직후 국내 판매 1위를 차지할 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 딥티크가 인수한 스웨덴 니치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는 프랑스어로 ‘리넨’을 뜻하는 ‘뚜왈’이란 이름의 텍스타일 퍼퓸을 출시하며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 브랜드의 텍스타일 퍼퓸들은 기존의 향수에 비해 약 30% 정도 저렴한 가격이라 선물용으로 각광받을 뿐 아니라, 니치 향수의 세계에 입문하려는 이들을 위한 엔트리 제품으로도 인기가 높다.  





나는 특별하다, 고로 존재한다 

또 다른 작은 사치로 향초를 빼놓을 수 없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뉴욕과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헤어스타일리스트 미즈노 카노코가 론칭한 랜드 바이 랜드(LAND by LAND)라는 브랜드다. 카노코는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에 부티크를 오픈할 계획을 세우던 중 공간을 채울 특별하고 독특한 향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기존의 향으로는 자신만의 느낌을 표현해내기 힘들 것 같다는 판단에 직접 향을 만들기로 했다. 처음에는 유니크한 향 자체를 생각했지만, 실제로 향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공기 중에 분사하는 타입이 좋을지 아니면 고체 형태가 좋을지 등 제품 형태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는 자신만의 향을 표현해냄과 동시에 부티크의 분위기도 고조시킬 수 있는 센티드 캔들(Scented Candle)을 만들어 내기로 했다. 이렇게 탄생한 랜드 바이 랜드는 론칭 6년째를 맞은 현재 바니스 뉴욕을 비롯해 프랑스의 콜레트, 영국의 셀프리지, 일본의 이세탄 그리고 한국의 분더샵까지 전 세계 유명 백화점과 편집숍에서 판매하는 유명 향초 브랜드로 성장했다. 랜드 바이 랜드가 짧은 기간  급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향초는 특정 공간에 두고 사용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여행지에서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른바 ‘포터블(Portable)’ 향초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가벼운 소재의 금빛 알루미늄 캔에 들어 있어 1주일 이하의 짧은 여행에 알맞은 향초는 ‘트래블(Travel)’로, 10일 이상의 긴 여행을 위한 향초는 ‘버케이션(Vacation)’으로 명명해 여태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의 향초를 선보이며 소비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거기에 기존 향초들에 비해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우연히 매장에 들렀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결론적으로 랜드 바이 랜드의 향초는 일상에서 벗어난 럭셔리한 기분을 선사함과 동시에 구매에 큰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 편이기에, 말 그대로 손에 쥐어지는 작은 사치를 구현한 제품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제품들은 일반적인 세탁 세제나 향초에 비해 많게는 30배 이상의 가격 차가 난다. 절대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내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해지는가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접근 가능한 가격이기도 하다. 이것이 사람들이 ‘손안의 작은 사치’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Joel Kimbeck

뉴욕에서 활동하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줄리아 로버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현재 ‘pertwo’를 이끌며 패션 광고를 만들고 있다. 〈레드 카펫〉을 번역하고 〈패션 뮤즈〉를 펴냈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에 칼럼을 기고한다.

기획 여성동아
사진제공 르 라보
디자인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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