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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이승연, 시간에서 배운 것

editor 김명희 기자

2017. 02. 20

자신의 나이를 사랑하는 건 쉽지 않다. 청춘도 노년도 이래저래 아프니까. 그래서 지금 나이가 참 좋다는 이승연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그녀는 지금 지천명이다.


“옛날에는 어떻게 했더라?”(이승연)

“언니가 옛날 사람이잖아요. 새삼스럽긴.”(장영란)

장영란의 돌직구에 이렇게 저렇게 포즈를 잡아보던 이승연이 등짝 스매싱을 날린다. 여긴 KBS Drama  채널 〈타임슬립 연예사(史) 주간TV〉(이하 〈주간TV〉) 포스터 촬영 현장이다. 매주 목요일 밤 11시에 방영되는 〈주간TV〉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연예가 이슈를 소재로 MC 이승연과 김일중, 조영구, 김태훈, 장영란, 이준석, 홍종선 등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연예계 이야기가 중심이긴 하지만 스타들의 뒷담화 같은 자극적인 내용 대신 “그땐 그랬지!” 하면서 추억을 떠올리고 슬며시 웃음 지을 수 있는 착한 예능을 지향한다. ‘강력한 한 방 없이 프로그램이 되겠어?’란 시각도 있었지만 2차례 파일럿 편성에서 시청자들의 높은 호응을 얻어 정규 편성을 확정지을 만큼 경쟁력을 검증받았다.

연예 주간지 표지 콘셉트로 진행된 포스터 촬영에서 이승연은 헤어밴드를 소품으로 들고 나왔다. 1997년 드라마 〈신데렐라〉에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템이다. 벌써 20년 전이라 드라마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이승연이 헤어밴드를 하고 나온 다음부터 손수건 크기의 작은 스카프를 머리에 묶고 다니는 여성들이 눈에 띄게 늘었던 건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1990년대 후반 연예계는 이승연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귀가 시계’라 불리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모래시계〉부터 20년째 시청률 넘사벽(65.8%)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첫사랑〉 그리고 트렌드 교과서 같았던 〈신데렐라〉까지, 그녀가 출연하는 작품은 모두 화제가 됐다. 스튜어디스 출신의 미스코리아 그리고 배우. 20대 후반의 그녀는 날개를 달고 고공비행을 했으나, 여러 사건에 휘말리며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모두 경험한 그녀는 웬만한 일에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을 만큼 단단해져 있었다. 타인에게 쉽게 곁을 내주진 않지만 단단한 방어막을 뚫고 들어오는 ‘내 사람’은 살뜰하게 챙기는 의리녀이기도 하다.





리즈 시절보다 좋은 지금

이승연을 무장 해제시키는 또 한 명의 존재가 있다면 딸 아람이다. 그는 얼마 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람들이 엉망으로 막 살까 봐 고심 끝에 신들이 보험으로 들어놓은 게 자식이래요! 보험이 엄청 비쌈. 늘어진 턱선, 다크서클, 두꺼워지는 허리, 맛 간 관절, 비싼 보험. 그래도 네가 있어 행복해. 엄마가 다 그렇지 뭐 힘내요’라는 글과 함께 아홉 살 난 딸 아람이의 사진을 공개했다. 아이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에 자동으로 미소가 번지는 딸 바보. 이승연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람이는 그녀가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잘 견디고 이만큼 왔다는 걸 보여주는 증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딸과 함께 TV조선 가족 예능 프로그램 〈엄마가 뭐길래〉에 출연 중인 그녀는 과거 프로포폴 사건을 언급하며 “아이에게 모자라지만 좋은 엄마이고 싶다. 왜 그런 일이 있었고 무엇 때문에 그랬든, 어찌 됐든 간에 잘못한 거다. 더 나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반성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 〈주간TV〉를 진행하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아요.

방송에서 다루는 내용이 제가 한창 일할 때 이야기고 추억을 돌아볼 수 있어서 재미있어요.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것도 좋지만, 그런 걸 떠나서 가족이 함께 방송을 보면서 엄마가 딸에게 ‘서태지는 지금 엑소보다 더 인기였어!’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 방송이 되면 좋겠어요.

▼ 파일럿 방송에서 1996년 연예인 CF 소득 순위가 나오더라고요. 김지호, 박중훈 씨에 이어 3위던데.

그러게 말이에요. (돈을) 번 기억은 나는데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웃음).

▼ 그때 인기가 대단했었죠.

신기했던 게, 저는 이 일을 하게 될 거라곤 감히 상상도 못 했어요. 미스코리아가 되고 나서 구직 활동을 하다 보니 어쩌다 연예계에 발을 딛게 됐죠. 지금은 이 일을 좋아하지만 그땐 준비가 덜 됐었고, 많이 얼떨떨했던 것 같아요.

▼ 헤어밴드를 보니, 〈신데렐라〉 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때 유행을 이끌겠다거나 그런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요.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스타일리스트와 의상부터 귀고리, 목걸이 같은 소품까지 다 의논해서 결정했는데, 시청자분들이 좋아해주셨어요. 감사한 일이죠.

▼ 만약 타임 슬립이 가능하다면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나요. 아무래도 리즈 시절이겠죠.

아뇨. 어디로도 다시 가고 싶지 않아요. 물론 그때도 좋았지만 한 번 거쳤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드라마 재방은 재밌지만 인생 재방은 별로예요. 그리고 저는 지천명(知天命)이라는 제 나이가 좋아요. 욕심도 내려놓게 되고 내 것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무엇보다 엄마, 아내로 사는 게 행복하고요.



▼ 딸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 〈엄마가 뭐길래〉에 나온 걸 봤어요. 얼굴에 ‘딸 바보’라고 쓰여 있던데요.

모든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아이가 정말 보석 같아요. 한번은 길을 가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보곤 제 뒤로 숨었다가 “엄마, 내가 이렇게 숨으면 실례지?”라고 묻더라고요. 제 소원이 반려견을 키우는 건데, 아람이가 반대해서 못 키우고 있어요. 자기가 돌봐줘야 하는데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거예요.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고 책임감도 있어서, 제 딸이지만 그런 점은 참 예쁘다 생각해요.

▼ 엄마 이승연은 좀 남다른 면이 있나요.

평범해요.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늦어서 슬리퍼를 신고 간 적도 있어요. 사교육 욕심 같은 것도 별로 없고요. 유치원도 안 보냈어요. 담임 선생님이 “아람이는 학원에 안 다니는 것치곤 공부를 잘해요” 하시더라고요. 생후 2개월 때부터 지금까지 도우미 아주머님이 함께 살면서 아람이를 돌봐주시고 있는데 아이에겐 할머니나 다름없죠. 학교에서 소원을 물었는데 “할머니가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고 했대요. 좋은 분을 만난 것도 아이 복이란 생각이 들어요.

▼ 아이가 엄마처럼 연예인이 되고 싶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자기가 방송에 나오는 걸 좋아하고 재밌어하더라고요. 지금 저와 함께 방송을 하는 건 괜찮지만 아이가 단독으로 뭔가를 한다면 열일곱 살은 넘어서 시작하면 좋겠어요. 가끔 노래하는 걸 들으면서 “아유, 우리 딸 나중에 가수는 하지 말자” 그러는데, 또 모르죠. 나중에 어떤 재능이 있을지.

▼ 아람이가 늦둥이라서 더 각별한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 나이 들어서 아이를 갖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신의 장난이죠. 지금의 깨달음에, 젊을 때 체력을 주셨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까 아이에게 뭘 물려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는데, 아이가 나중에 힘든 일에 부딪혔을 때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떠올릴 수 있도록, 좋은 영향을 많이 주고 싶어요.   

▼ 사람들이 막 살까 봐 신들이 보험으로 만들어놓은 게 자식이라는 말, 같은 부모로서 공감이 되더라고요.

원래 서양 속담에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창조했다’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아람이를 키우면서 보니, 부모가 자식에게 버팀목이 되기도 하지만 또 자식이 부모 삶의 길잡이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그랬고, 자식이 절대 부모 마음대로 자라는 건 아니잖아요. 아이는 가르침보다는 부모가 사는 모습을 보면서, 배우는 게 더 많죠. 그래서 아람이를 잘 키우려면 저부터 착하게 살아야겠다 싶어요.

▼ 과거에 있었던 안 좋은 일들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말로만 잘못했다고 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진정한 반성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 일로 많은 걸 잃었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도 결코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 거라고는 못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죠.

▼ 곧 이영애, 고소영, 김희선 등 또래 연기자들이 드라마로 컴백을 앞두고 있어요. 이승연 씨도 드라마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감사해요. 배우라는 직업은 제게 정말 고마운 일이고, 잠시 쉬는 기간은 있어도 평생 은퇴는 없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되면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고 싶어요.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KBS drama
디자인 최정미
장소협조 퍼니피디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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