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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0g'에 도전하는 남자들

EDITOR 조윤

입력 2019.06.10 17:00:01

남성 현대무용수 4인이 중력에 대항하는 강인한 신체의 힘을 보여준다. 그들에게서 표현되는 우아한 몸짓은 더 이상 어려운 예술이 아니다. 우주와 인간을 연결하는 유일한 물질인 몸 이를 통한 우리들의 이야기다.
중력
고고한 발레와 자유분방한 행위예술의 중간쯤, 그 무언가를 상상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애크러배틱 같기도 하고 운동선수의 움직임 같기도 하고 어느 패션잡지에서 본 모델의 포즈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섞어놓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네 명의 남성 무용수들은 바닥에 밀착해 힘을 겨루듯 서로를 끌어당기기도 하고 한 명을 높이 들어 올렸다 떨어뜨리기도, 원을 그리며 빙빙 돌기도 한다. 어느 순간 불끈 솟는 근육에서는 강한 힘이 느껴지다가 공기 속에 풀어지듯 휘어지고 젖혀지는 몸에서는 전혀 다른 긴장감이 전해진다.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지구의 중심으로 향하는 중력과 그것을 거스르는 공중으로의 비상. 이 독특한 현대무용 작품의 제목은 ‘0g’. 무중력 상태를 의미한다. 

6월 14일부터 사흘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공연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인 네 명의 남성 현대무용수들을 만났다.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정철인(32)과 류지수(29), 전중근(27), 문경재(26)는 한성대 무용학과 동문으로 지난해 예술의전당에서 ‘0g’을 선보인 데 이어 올해도 함께 무대를 꾸린다. 현대무용에 대한 심리적 진입 장벽이 높은 일반 관객들을 위해 정 안무가에게 우선 ‘무중력’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쉽게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작품의 발상은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 이야기에서 시작됐어요. 교활하기로 유명한 시시포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 저승에 가게 되자 저승의 신 하데스를 속이고 장수를 누리죠. 하지만 그 대가로 끊임없이 떨어지는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에 처해져요. 이 신화는 현대인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에 자주 비유되죠. 돌이 떨어지는 반복적 낙하의 모습을 인간의 움직임으로 표현하고자 했어요. 낙하는 인생의 실패와 좌절,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걸 실패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했죠.” 

한 사람의 팔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또 다른 사람이 받치면서 위로 올리는 동작이 반복된다. 낙하를 받아들이지 않고 중력을 거스른다고 볼 수도 있고, 지속적인 낙하를 위해 팔이 완전히 떨어지는 것을 거스른다고 볼 수도 있다. 

“작품을 보면서 인간 피지컬의 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도 있고 살기 위한 처절함을 엿볼 수도 있고 단순히 남성 무용수들의 멋진 모습에 감탄할 수도 있으실 거예요. 감상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에요. 0의 의미도 무게뿐만 아니라 어떤 시작이나 끝, 혹은 또 다른 시작이나 어떠한 기준점이라고 다양하게 생각하셔도 좋아요.”(정철인)




남성 무용수의 세계… 댄서·운동선수 출신도

중력
네 명의 무용수들은 일주일에 5일 이상 하루 서너 시간씩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한 동작을 완성하는 데만 두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중력이라는 물성을 표현하는 이 작품에서는 피지컬의 힘이 강조되는 바, 무엇보다 강인한 근육의 움직임이 돋보였다. 무용수들은 모두 마른 몸매일 거라고만 생각했다는 기자의 과문함을 고백하자 그들은 “현대무용은 주제에 따라 힘과 유연함을 다 갖춰야 한다. 중성적인 것을 표현해야 할 때도 있고, 심지어 대사가 있는 공연도 있다”며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품의 특성이 다채로운 만큼 무용수들의 면모도 흥미롭다. 남성 무용수들 중에는 택견 같은 무술이나 운동을 전공한 이들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류지수 무용수는 스트리트 댄서 출신이다. 

이쯤에서 이들이 몸을 단련하는 방법이 궁금해졌다. ‘0g’은 특히 인간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근육을 많이 필요로 하는 만큼 체지방을 제거하기 위해 유산소 운동과 복근 운동을 주로 한다고 했다. 정 안무가는 ‘번지 요가’라는 독특한 운동을 소개했다. 번지 로프를 천장에 매단 뒤 줄에 의지해 움직이는 일종의 플라잉 요가다. 그는 올해 공연에서 번지 로프를 사용한 무대도 연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무용수들 간의 신체 접촉이 많은 것도 남성 무용수들로만 이루어진 ‘0g’의 큰 특징 중 하나다. 네 남성이 서로를 끌고 당기고 들어 올리며 끊임없이 신체를 맞대는 데서 극대화되는 강렬한 에너지는 이 공연에서 느낄 수 있는 스펙터클의 원천이다. 그들의 몸에 붉게 올라온 핏기가 눈에 띄기도 했다. 문경재 무용수는 “엄청난 근력이 필요한 공연이다. 우리이기에 가능한 공연”이라며 웃었다. 정 안무가는 야구의 포지션에 빗대 남성 무용수들 간의 ‘케미’를 강조했다. 

“야구로 치면 저는 연출을 하면서 출연도 하니 감독 겸 투수라고 할 수 있겠네요. 류지수는 피지컬이 좋고 중심을 잡는 역할이니 포수, 문경재는 날아오르고 뛰는 역할을 많이 하는 재주꾼인 만큼 도루를 잘하는 주루 플레이어, 전중근은 집중력이 좋은 1번 타자에 비유할 수 있죠.” 

남성 무용수들에 대한 호기심은 이내 현대무용을 향한 궁금증으로, 몸에 대한 대화는 생각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모든 것을 자신의 신체로 표현해야 하는 무용수들은 평소 어디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고, 어떻게 생각을 발전시켜나갈까. 무용수들은 안무가의 생각을 그대로 따를 수도 있지만 스스로 창작을 해야 하는 경우도 여럿이란다. 네 사람의 무용수가 여러 가지 움직임을 만들면 안무가가 그것을 다듬으면서 동작을 함께 완성해나가고 있다. 문경재는 “‘낙하’라는 주제가 주어지면 몸을 떨어뜨려보기도, 물건을 직접 낙하시켜보기도 한다. 평소에는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데,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보면서 작동 원리를 깊이 상상해보고 몸으로 표현해보려 한다”고 했다. 정 안무가 역시 관찰을 강조했다. 대상은 영화와 전시 등 타 분야 예술에서부터 주변의 사람들까지 경계가 없다. 

“현대무용에서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건 상상한 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거죠. 하늘을 난다는 걸 보여준다면, 날기까지의 과정을 세심하게 표현해 관객의 상상과 중첩되고 관객들로 하여금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있게 해야죠. 평소 사람들이 보여주는 움직임의 특징을 자세히 관찰해요.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건 재미가 없으니 어떻게 이걸 비틀어 흥미롭게 다룰지 고민하고요. 사실 안무가로서 몸을 쓰는 일보다 머리로 표현법을 구상하는 데 쏟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죠.”


불친절한 예술이 주는 뜻밖의 재미

강인한 신체 에너지를 표현한 무용극 ‘0g’의 무용수 문경재, 정철인, 류지수, 전중근(왼쪽부터).

강인한 신체 에너지를 표현한 무용극 ‘0g’의 무용수 문경재, 정철인, 류지수, 전중근(왼쪽부터).

‘0g’은 국립현대무용단이 지난해 처음 시작한 안무 공모 프로젝트 ‘스텝업’의 공연 가운데 하나다. 초연 후 아쉽게 주목받지 못한 작품을 재발굴해 지속적인 레퍼토리로 이어갈 수 있도록 창작과 공연을 지원한다. 2017년 첫 번째 공모에만 총 69명이 응모했는데, 국내 현대무용가 거의 모두가 응모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정 안무가는 2014년 처음 선보인 ‘자유낙하’를 ‘0g’으로 재탄생시켜 지난해 공모에서 선정됐고, 올해 선정된 두 작품과 함께 재연을 하게 됐다. 심사에는 해외 유명 프로그래머와 일반인이 고루 참여했다. 

‘0g’처럼 이미 선정된 작품 역시 스텝업의 지원을 받아 내용을 계속 업그레이드해 무대를 선보인다. 지난해에는 공연을 세 부분으로 구성해 중력에 저항하다가 이후 거부하지도 않고 떨어지는 움직임을 반복, 마지막엔 무중력 상태로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하지만 정 안무가는 “이 같은 흐름이 너무 교과서적이었다”며 “이번에는 설명을 덜고 좀 더 불친절해지겠다”고 말했다. 불친절함이 작품을 더 어렵게 느껴지게 하진 않을까. 이에 대해 정 안무가는 “불친절함이란 의외성에서 빚어지는 창의성 혹은 재미”라고 부연했다. 

“예를 들면 사과는 물에 씻은 뒤 껍질을 벗겨 조각을 내어 먹죠. 이런 순서가 친절함이라 한다면 불친절함은 한입 먼저 먹고 ‘사과가 쓰네?’라고 느낀 다음 씻어요. 그다음 쪼개서 먹어보고 그 뒤에 껍질도 까보는 거예요. 이렇게 뒤바뀐 순서들이 의외성을 띠고 그게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다는 거예요. 미술 작품도 보이는 사물을 비틀어 표현할 때 관람자가 흥미를 느끼는 것처럼요. 무언가를 순서대로만 표현하면 일반 관객과 전문가 모두 흥미를 느끼지 못할 거예요.”
 
여전히 현대무용을 어렵게 느끼는 일반인들이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에 대해 전중근 무용수는 “현대무용은 결코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많은 사람이 현대무용을 보기도 전에 두려움을 느낀다며 영화를 보러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대해달라고 당부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눈앞에 펼쳐지는 걸 그대로 보면 돼요. 영화를 볼 때 깊이 파고들지 않아도 자연스레 빠져들듯이 말이에요. 물론 집중하기 어렵거나 난해한 작품도 있죠. 하지만 영화 관객들은 재미가 없어도 이게 왜 재미가 없지? 이 장면에선 왜 이렇게 넘어가지? 하고 생각하면서 재미없는 이유까지도 분석하고 모르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찾아보잖아요. 한 영화가 재미없다고 다른 영화를 안 보는 것도 아니고요. 현대무용 역시 그렇게 다가와주시면 좋겠어요.”
 
공연에 등장하는 사과나 신발과 같은 일상의 오브제는 작품을 한결 편안하게 느끼게 한다. 신발 끈을 잡고 원심력을 이용해 신발을 돌릴 때 나타나는 잔상들로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간단한 물리적 원리를 안무에 적용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밴드 뮤지션 ‘쾅프로그램’과의 협동 공연을 올해 새롭게 선보인다. 대중가요 같은 보편적인 곡과 사물의 소리를 형상화한 실험적인 곡들이 어우러져 색다른 공연의 재미를 줄 걸로 기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 안무가는 무용수와 안무가가 설 자리가 많아지길 바란다는 소망도 전했다. 이를 위해서는 현대무용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도 호소했다.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젊은 무용수, 안무가들이 나오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실패를 해도 괜찮은 환경이 조성돼야죠. 설 무대가 없으니 경연에 많이 나가게 되는데 1등을 목표로 해야 하는 자리니 모두가 비슷한 관점으로 무용에 접근하죠. 그럴수록 개인의 발전은 오히려 늦어진다고 봐요. 저도 지난번 공연을 반복한 게 아니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이니 이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많은 분들이 현대무용에 흥미를 가지시길 바라며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겠습니다.”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김도균 디자인 김영화




여성동아 2019년 6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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