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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woman #issue

2018 대한민국의 문제적 젠더 감수성

EDITOR 김명희 기자

2018. 11. 01

여성들의 삶을 숫자나 통계상으로 보면 과거보다 나아진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여기 우리 사회가 남녀평등에 관한 한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있다.

gender

얼마면 돼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출산주도성장 발언

소득주도성장, 통계주도성장, 세금주도성장. 요즘 정치권에서는 주도성장이란 단에 앞에 00을 붙여 어젠다로 삼거나,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것이 유행이다. 이 중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들고 나온 ‘출산주도성장론’은 아이를 낳을 때마다 2천만원의 장려금을 지급하고 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1억원을 지원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김성태 원내대표는 막대한 예산을 쓰겠다고 제안하고도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개인적이고 자율적이어야 할 여성의 출산을 국가 성장의 도구로 여기며 돈으로 해결하려는 발상 자체가 문제. 학교 무상 급식 반대, 월 10만원 아동수당 반대 등 그간 자유한국당이 보육 정책에서 보여준 행보와도 배치된다. 김 원내대표는 “돈 줄 테니 아이 낳으라”고 하기 전에 아이를 낳고 싶어도 왜 낳지 못하는지 먼저 들여다봤어야 했다.

“금수저도 딸들은 서럽다”
기업 승계 과정에서 드러난 재벌의 남아 선호

우리나라는 1990년 상속법이 개정되면서 장남과 장남이 아닌 아들, 결혼하지 않은 딸, 결혼한 딸이 상속에서 모두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됐다. 하지만 재벌가에서는 여전히 장남, 아들을 우선시하는 관습이 남아 있다. 재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안이라고 평가받는 LG는 구인회 창업주⇀구자경 명예회장⇀구본무 회장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장자 승계 원칙을 지켰다. 슬하에 아들 없이 딸만 둘을 두고 있던 고(故) 구본무 회장은 2004년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을 양자로 들였다. 그가 구본무 회장 타계 후 지난 7월부터 LG그룹을 이끌고 있는 구광모 회장이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4대 기업 가운데 지금껏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곳은 LG가 유일하다. LG의 사회적 기여 1위가 무색할 정도. LG는 경영에 참여하는 오너 일가가 많기로도 유명하지만 딸이나 며느리는 예외다.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1남 3녀 중 막내딸 구지은 씨가 2015년 아워홈 부사장에 오르며 이런 불문율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있었지만 이듬해 구자학 회장이 딸을 보직해임하고 그동안 경영에 참여하지 않던 장남 구본성 씨를 대표이사 부회장에 앉히면서 전망이 빗나갔다. 구지은 씨는 현재 아워홈 자회사인 캘리스코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성차별 기업이라고 돈 써서 홍보하는 통신사
아들·딸 차별하는 광고

“아들, 어디 가서 데이터 굶지 마.” vs.“딸아, 너는 데이터 달라고 할 때만 전화하더라.” 국내 최대 통신사 SKT가 지난 8월 가족끼리 스마트폰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T플랜 요금제를 홍보하며 이 같은 광고 카피를 내세워 딸들의 분노를 샀다. 예전 같으면 우리 엄마가 말하는 것 같네, 라고 무신경하게 넘길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젠더 감수성이 시대적 교양으로 자리 잡은 최근의 기준으로 보면 이 카피는 한참 함량 미달이다. 한 네티즌은 자신의 SNS에 해당 광고 문구 사진을 공유하며 “아들은 ‘혹여나 밥 굶을까 걱정되는 안쓰러운 존재’로, 딸은 ‘부모 등골 빼먹는 이기적인 존재’로 프레이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얼마 후 SKT는 여성용 호신 기기를 홍보하며 ‘현대판 은장도’라는 표현을 사용해 또다시 물의를 빚었다. 은장도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성폭력 피해자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가부장적인 문화의 상징과 같은 오브제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성차별적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더라도 남성이 소파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동안 여성은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사 노동’에 대한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한다거나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는 광고는 여전히, 너무나 많다. 이에 맞서 지난 7월부터 SNS 상에서는 성 차별적인 광고, 비싸고 질 낮은 여성용품을 판매하는 기업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매월 첫 번째 일요일 일체의 소비를 중단하는 #여성소비총파업 캠페인이 시작됐다.

김비서는 왜 그래야 할까?
채용 시 외모 따지고 ‘결남출’ 묻는 기업들

지난 6월 신한은행은 본점 안내 데스크 직원 채용 공고에 ‘키 163cm 이상, 승무원 출신 우대’라고 명시해 논란이 일었다. 채용 시 이렇게 대놓고 외모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다. 채용 조건에서 드러나는 명시적인 차별도 문제지만 면접관들이 여성들에게만 던지는 질문에도 성차별적 요소들이 많다. “이력서에 붙은 사진과 실물이 왜 다르냐”는 질문은 약과.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 8월 ‘구직 과정에서 이런 말까지 들었다’라는 주제로 여성들에게 제보를 받은 결과 “남자 친구는 있나” “여자 나이 20대 후반은 취직할 때가 아니라 시집갈 때다” “결혼하면 아이는 몇이나 낳을 계획이냐” “술은 얼마나 하나, 회식 때 잘 놀 수 있나” “기혼인 줄 알았으면 안 뽑았을 거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취업을 앞둔 여성들 사이에선 ‘결남출’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결남출은 여성들이 면접 시 자주 받는 질문인 ‘결혼’과 ‘남자 친구’ ‘출산 계획’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한 여성은 “결혼할 남자 친구가 있지만 면접에서 불리할까 봐 당분간 결혼 생각이 없다고 했다가 면접관으로부터 결혼과 출산의 중요성에 대한 장광설을 듣고 결국 탈락했다”며 억울해했다.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결남출 질문은 여성을 직장에서 배제하거나, 직장 안에서 배치부터 승진까지 계속 차별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며 “채용 성차별 방지를 위한 기업들의 자성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인스타그램(@umji.letter)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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