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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editor’s pick

나만 못버린 추억템

EDITOR 안미은, 정희순, 한여진, 최은초롱, 강현숙, 김지영, 김명희 기자

2018. 05. 21

이유는 각양각색. 미니멀 라이프가 대세인 시대에 10년 넘게 버리지 못한 에디터의 소장템은 무엇일까.

1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대구 서문시장 끝자락에 붙어 있는 3.3㎡남짓한 작은 책방. 그곳은 언제나 열대야 같았다. 부연 먼지와 끈적거리는 땀 냄새, 종이 냄새가 공기 중에 진득하게 배어 있었다. 매대에는 일반 서점에선 구할 수 없는 온갖 희귀한 해외 잡지들이 가득했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허리가 굽은 주인 할머니가 코앞으로 불쑥 새로 나온 잡지 한 권을 내밀곤 했다. 나는 개중에서도 ‘갭 프레스(Gap Press)’란 잡지에 마음이 끌렸다.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 등 세계 주요 패션 도시에서 열린 컬렉션들이 기록돼 있었다. 전자 사전을 옆에 끼고 몇 줄 안 되는 프랑스어를 더듬더듬 읽어가며 디자이너들의 아리송한 정신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매달 사 모은 잡지만 50여 권. 대학 졸업 후 책방을 찾는 발길은 자연스럽게 끊어졌지만, 가끔씩 책장에 수북이 쌓인 잡지들을 꺼내어 지난날을 추억해본다. 나의 원대한 꿈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이제 그 시절의 나는 오직 나만 아는 사람이 됐다.
EDITOR 안미은 기자

2 연락 주세요

10년쯤 됐겠다. 지금도 침실 벽 한가운데엔 나를 그린 초상화가 걸려 있다. 고백하자면, 사실 그 초상화는 대학 시절 교제했던 첫사랑(은 아니지만) 오빠에게서 선물받은 그림이다. 미술학도는 아니었지만 그 복학생 오빠에게 그림이란 취미이자 특기였다. 그 무렵 이미 자신의 그림이 담긴 책을 출간한 진취적인 사람이었고, 각종 공모전에 참가해 받은 상금으로 여자 친구인 내게 깜짝 선물을 해주는 다정한 오빠였다. 그랬던 그 사람을 왜 뻥 차버렸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그 이후 여러(?) 오빠들을 만날 때마다 그 그림을 버릴까, 말까 몇 번이고 고민했다. 그럼에도 지금껏 버리지 못한 건 미련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냥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20대 초반의 내가 저렇게 예뻤던가’ 싶은 생각이 든다. 진짜 내가 예뻤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냥 그가 그려준 내 모습이 참 예뻐 보인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울 뿐. 특히 요즘처럼 꽃피는 봄엔 더 그렇다. EDITOR 정희순

3 내 마음속에 저장, 오래된 선글라스

한번 손에 들어온 물건은 웬만해서는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된 골동품이 가득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선글라스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하나 둘씩 구입한 선글라스가 스무 개도 넘는다. 대학 입학 선물로 받은 시커먼 베르사체 선글라스, 첫 월급을 받고 장만한 오드리 헵번 스타일의 모스키노 선글라스, 태국 카오산 길거리에서 한눈에 반해 구입한 빨간 선글라스…. 모두 추억과 사연이 있어 내 마음속 깊이 저장해두고 있다. 물론 마지막으로 언제 착용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언젠가 다시 빛을 발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올해 패션 트렌드가 1990년대 레트로라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그날이 올여름일지도. 철 지난 모스키노 선글라스를 오드리 헵번처럼 우아하게 착용한 모습을 기대해본다. EDITOR 한여진 기자

4 덕밍아웃 하겠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사느라 바빠서(?) 나의 불같은 과거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MBC ‘무한도전 토토가3’를 통해 17년 만에 한 무대에 선 H.O.T.를 보고 열렬한 팬질로 끓어오르는 청춘을 바친 중 · 고딩 시절을 되돌아보게 됐다. 나는 H.O.T. 중에서도 토니 오빠의 팬이었다. 사생팬까지는 아니었지만 클럽 H.O.T. 회원이었고, 부모님의 감시망을 피해 우비를 입고 흰 풍선을 흔들며 공연장에 가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하필 마감 기간에 딱 걸려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무한도전 토토가3’ 공연장에 간 친구의 자랑질을 생중계로 들으며 어찌나 부럽던지. TV로 방송을 보면서 카톡으로 토니 오빠 팬질을 함께하던 친구들과 정모 아닌 정모를 했고, 마지막에는 엉엉 울어버렸다. 현장에서 흰 풍선을 같이 흔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아 창고에 들어 있던 추억 상자를 꺼내보았다. ‘캔디’ 시절의 귀여운 귀마개와 장갑부터 오빠들의 굿즈는 전부 모아두었었는데, 거의 다 없어지고 이제 조금만 남아 있다. 토니 D.N.A 카드는 지금 봐도 대박.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음 무대는 꼭 함께해야지. EDITOR 최은초롱 기자

5 딸과 함께 입는 그날을 기다리며

파릇파릇 어리고(?) 예뻤던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나는 여성미 뿜뿜 풍기는 패션 아이템에 열광했다. 특히 사랑한 브랜드는 바로 레니본으로, 소공녀를 연상시키는 로맨틱하면서 페미닌한 디자인의 재킷류를 많이 구입했다. 나이가 들면서 입기 부끄러운 아이템들은 대부분 정리했지만 스카이블루 컬러에 네크라인에 레이스 장식이 달린 재킷은 옷장 속에 고이 모셔두었다. 비싸게 사기도 했고, 따스한 봄날 가끔씩 입어주면 기분 전환도 되기 때문. 옷 소재도 좋아 보관만 잘하면 나중에 딸에게 물려줘도 될 것 같다. EDITOR 강현숙 기자



6 화장대에서 장식장으로 이사한 안나수이 향수병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쯤, 친한 뷰티 기자의 권유로 안나수이 론칭 행사에 동행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향수를 ‘득템’했다. 화사한 핑크빛이 감도는 사람 모양의 용기에 담긴 향수였다. 향을 채 맡아보기도 전에 예쁜 케이스에 반하고 말았다. 게다가 향도 적당히 달콤하고 은은하며 지속력도 뛰어났다. 이후 기분 전환이 필요하거나 중요한 만남이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안나수이 향수를 뿌리고 나갔다. 그렇게 애정하다 보니 향수를 다 쓰고 난 뒤에도 용기를 쓰레기통에 무심히 던져버릴 수 없었다. 몇 년 전 이사하며 쓸모없어진 물건들을 죄다 버릴 때도 요 녀석만큼은 용케 살아남았다. 어느새 화장대에서 책상 위 진열대로 자리를 옮긴 안나수이 향수병!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는 듯한 요 녀석을 앞으로도 두고두고 보게 될 듯하다. EDITOR 김지영 기자

7 옷장 밖은 위험해! 애매한 가죽 재킷

매 시즌 옷장을 정리할 때마다 몇 번씩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게 되는 아이템이 있다. 신혼이던 15년 전쯤(벌써 그렇게 됐다!) 남편이 선물해준 가죽 재킷이다. 당시 남편은 50만원 가까이 하는 그 옷을 선물하느라 속이 좀 쓰렸을 텐데, 정작 자주 입지는 못했다. 칼라 부분에 털이 부착돼 있어 봄가을엔 좀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한겨울에 입기엔 보온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년 지나다 보니 왠지 유행에 뒤처지는 듯해 옷장에 붙박이로 남게 됐다. 그럼에도 버릴 수 없었던 이유는 남편이 내게 선물한 처음이자 마지막 옷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그와 비슷한 색상의 가죽 재킷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는 걸 보니,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을 실감한다. 어쩌면, 어중간한 길이를 조금만 수선하면 이번 가을에 다시 입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추억의 가죽 재킷은 과연 옷장 밖을 나올 수 있을까. EDITOR 김명희 기자

기획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셔터스톡 디자인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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