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coverstory

ON OFF

editor_fashion 최은초롱 기자 editor_interview 정희순

2016. 11. 23

인터뷰를 하고 나서야 해답이 풀렸다. 채시라가 다 가진 여자처럼 보이는 이유.




이번 달 표지의 비주얼 작업을 담당한 패션에디터와 포토그래퍼는 배우 채시라(48)에 대해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던 배우 1위’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줄곧 여성들의 워너비로 군림하며 30년 전부터 잡지 표지를 장식해온 그녀는 한마디로 잡지 역사의 산증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담당한 에디터로서는 그 점이 오히려 걱정됐다. 고심해 던진 질문들도 그녀에겐 너무도 평범한 일상일 테니까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촬영장은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수수한 차림으로 촬영장에 나타난 그녀는 먼저 ‘쓱’ 하고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꼭 잡은 손에서, 활짝 웃는 미소에서 그녀의 활력이 그대로 전해졌다. 흔히 말하는 ‘여배우의 까칠함’이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며 김밥과 만두를 먹으며 소리 내어 웃었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느끼는 일상의 소소한 기쁨들을 이야기했다.

인터뷰에 앞서 그녀에 대한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며 느낀 건 그녀가 참 ‘모범 답안’ 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 배우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 남자의 아내로서도, 두 아이들의 엄마로서도 그렇다. 결혼 전 한 결혼 정보 회사에서 진행한 조사에서 ‘결혼하고 싶은 여자 연예인 1위’에 꼽힐 정도로 1등 신붓감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녀는, 지난 2000년 가수 겸 배우로 활동하던 김태욱과 결혼했다. 이듬해 큰딸을 낳은 후에도 배우로서의 성과는 화려했다. 작년엔 드라마 로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 연기상까지 수상했다. 그런 그녀가 최근 2년 새에는 몇몇 작품의 내레이션을 맡는 것 외에는 뚜렷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엄마로서 할 일이 많아서”란다. 그녀는 중학교 3학년인 딸의 고등학교 입시와 손이 한창 많이 갈 나이인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돌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했다. 감사하게도 딸은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고, 아들도 건강하고 씩씩하게 크고 있다며 최근의 근황을 전했다.

“촬영장에선 모든 스태프들이 저 하나만 바라보고 있잖아요. ‘오늘은 피곤하니까 여기까지만 하자’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도 괜찮겠지’ 라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거죠. 바삐 사는 삶이 몸에 배어서인지 주부로 살 때도 그런 성격이 그대로 나타나더라고요. 엄마로만 사는데도 엄청 바빠요”





그녀는 대개 오전 5~6시쯤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남편을 출근시킨 후에야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는데, 그땐 보통 신문이나 책을 읽는다. 그때에도 항상 머릿속에는 ‘이따 이 주제로 아이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이 책은 딸과 함께 읽으면 좋겠네’ 하는 식의 생각이 떠나질 않는단다.

“제가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엄마가 된 지 벌써 16년이 지만, 어떻게 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지를 지금도 고민하죠. 가끔 어떤 엄마들은 ‘부모가 아이들의 인생을 정해줄 순 없어. 나는 내 인생을 살면 돼’ 하고 말하지만 저는 생각이 달라요. 엄마의 노력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게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일보다 가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거예요.”



일찍 방송 일을 시작한 그녀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특별하다. 당시만 해도 연예인 매니지먼트라는 직종이 전무했을 때라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의 소속사 대표 겸 매니저 역할을 했다. 자연스레 그녀는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사춘기를 그렇게 심하게 겪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울적해서 괜히 눈물 흘리는 정도였으니까요. 그럴 때면 부모님이 한강에 데려가 유람선도 태워주시고 핫도그도 사주시곤 했는데, 그러고 나면 또 금방 풀리더라고요(웃음). 유람선과 핫도그가 절 위로했다기보다, 부모님이 제 마음을 먼저 알아주시고 위로해주셔서 그 시기를 잘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런 엄마가 되려고 노력 중이죠.”  

부모님의 교육 철학은 채시라에게도 대물림 됐다. 연예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거실에는 TV가 없다. 아이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다. 아이가 숙제를 할 때 옆에서 수학 문제를 풀고, 아이와 같은 책을 읽으며 눈높이를 맞춘다.

“직업이 배우인데도 드라마 본방 사수는 거의 못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집에 있을 시간이니까요. 그래도 작년에 을 찍을 땐 모니터링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중학생인 딸과 함께 시청했어요. 드라마가 ‘15세 관람가’라 아들에겐 보여주지 않았죠(웃음).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 종종 아이들이 엄마 이름을 검색해보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그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나누진 않아요. 전 아이들에게 있어 엄마일 뿐 집에서도 배우는 아니니까요.”

지난 주말엔 시댁 어른들과 시누이 내외까지 모여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족 구성원들의 생일을 한 번에 치르는 자리였다. 그렇게 외식을 하는 날이면 그날의 마무리는 항상 그녀의 집에서 이루어지는데, 대미를 장식하는 건 ‘채시라표 라면’이란다.

“제가 끓이는 라면은 1인 1냄비를 원칙으로 해요. 취향에 따라 각자 라면 종류와 스타일을 고를 수 있죠. 달걀을 넣고 안 넣고는 기본이고, 그걸 휘저을 건지 반만 익힐 건지까지 철저하게 계산하는 식이에요. 지난주엔 짜장 라면 주문이 들어와서 고생깨나 했다니까요(웃음).”

남편 김태욱은 채시라표 라면을 두고 ‘채시라~면’이라 부른단다. 가족과의 즐거운 추억을 회상하는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타고난 외모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그녀도 곧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다. 축구 경기로 따지자면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시기다. 그러다 보니 생각도 많아진다. 내가 잘 살아온 걸까, 앞으로 어떻게 살면 될까. 고민 끝에 그녀가 얻은 해답은 ‘그래, 이것보다 어떻게 더 잘해’다.  

“미래의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현재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제가 지금껏 살아온 방식이에요. 중학교 시절 광고 모델로 일을 시작했을 땐 제가 배우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어요. 그저 하루하루 제가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성실하게 한 것이 몇 달이 되고, 몇 년이 되고, 인생이 된 거예요.”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그녀에게 딱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다음에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운명처럼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됐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왔어요. 제 연기를 보신 분들이 ‘드라마 잘 보고 있어요’ ‘채시라 씨 연기에 속이 다 시원해요’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 배우로서 가장 뿌듯했던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이 그만큼 다른 이들에게 행복과 웃음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니까요. 아이들도 저를 보며 그렇게 자라줬으면 좋겠어요.”

온통 가족 생각뿐인 그녀지만, 아쉽게도 올해의 마지막은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없게 됐다. 작년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해 올해엔 시상자로 또다시 무대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 여행이라도 가볼 요량이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그녀의 그런 투정이 얄밉지가 않다. 인터뷰를 마친 그녀가 스위치를 올린다. 배우가 되어 카메라 앞에 서기 위한 그녀 안의 버튼이다. 촬영을 마치면 다시 그 스위치를 내리고 엄마의 자리로 돌아갈 거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채시라는 언제나 온·오프가 가능한 여자니까.


사진 김외밀  
디자인 김영화
제품협찬 미네타니(02-3443-4164) 미스지컬렉션(02-548-9026) 소니아리키엘 렉토(02-3446-7725) 오즈세컨(02-546-7109) 우바 엘페 진도(02-850-8390) 쥬세페자노티 스튜어트와이츠먼 오브제(02-3444-1730) 커밍스텝(02-6911-0796) 페이우(02-2254-0036) 해일(010-2680-1930)
헤어 한지선
메이크업 민새롬
스타일리스트 장지연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