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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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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에

editor 안미은 기자

2016. 10. 26

반짝이는 네온사인 불빛을 따라 걸었다. 왕빛나가 있어 이 밤이 더 눈부시다.

밤하늘의 별처럼, 애써 무언가를 더하지 않아도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 있다. 왕빛나는 그런 신비로운 빛을 가졌다. 카메라 앞에 선 그는 눈빛과 몸짓 그리고 감정으로 자신만의 오라를 빚어냈다. 색색의 네온사인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출 때면 형언할 수 없는 색으로 반짝였다.  

왕빛나의 시간은 숨 가쁘게 흘러왔다. 2001년 드라마 〈새엄마〉의 단역으로 데뷔해 16년 동안 무려 30편에 달하는 작품을 소화해냈다. 그에게 작품의 역할이나 분량, 캐릭터는 중요하지 않았다. 인기에 대한 욕심도 없었다. 오직 하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가 되길 원했다. 그는 2006년 드라마 〈황진이〉로 대중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데 성공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왕빛나를 황진이의 맞수, 부용으로 기억한다. 그가 보여준 부용은 시리도록 차갑고 쓸쓸한 동시에 묘하게 관능적이었다.  

배우로서 인기의 가도를 달리던 2007년에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뒤로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결혼한 여배우의 한계를 깨고,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남자를 믿었네〉 〈심야병원〉 〈두 여자의 방〉 등 드라마 활동을 왕성하게 이어가며 배우의 진면목을 각인시켰다. “지금이 생애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말하는 왕빛나. 그가 어떤 얼굴과 빛깔로 우리 앞에 설지,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 괜히 미안해지네요. 쌀쌀한 밤에 밖으로 불러내서(웃음). 촬영은 어땠어요.

하하. 괜찮아요. 매번 청순한 분위기의 화보를 찍었던 터라, 이런 콘셉트의 화보도 해보고 싶었어요. 매니저에게 부탁해서 무리하게 스케줄을 조정했어요. 오랜만에 거리로 나와서 촬영하니까 신나고 재미있어요.

▼〈여성동아〉 커버 모델로 4번 넘게 촬영했어요. 정글 같은 연예계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며 살아남은 비결이 뭔가요.

그런가요? 비결이라면, 주어진 작품에 충실했던 것 아닐까요? 신인 시절에는 하루에 드라마 오디션만 몇 개씩 보러 다녔어요. 2005년 드라마 〈하늘이시여〉도 오디션을 보고 이예리 역을 따냈어요. 드라마가 끝나자 작품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죠. 매년 1~3편 정도 드라마 작품을 해왔어요. 작품이 끝나갈 때쯤 다음 작품이 정해지지 않으면 마음이 조급해져요.

▼ 드라마 〈아이가 다섯〉이 끝나고 어떻게 지냈나요.

촬영이 8월 말에 끝나고 포상 휴가를 다녀왔으니까 한 달 정도 쉰 셈이에요. 대부분의 시간은 가족들과 보냈어요. 그동안 드라마 촬영으로 남편과 아이들에게 소홀한 것 같아 미안했거든요. 또, 남는 시간엔 다음 작품 모색도 좀 하고요.  



▼ 다음 작품이 혹시 드라마 〈다시, 첫사랑〉인가요.

맞아요(웃음). 당장 11월부터 방송 예정이에요.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두 남녀가 8년 만에 다시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예요.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아, 저는 극에서 갈등을 고조시키며 사각관계를 이루는 백민희 역할을 맡았어요.

▼ 또다시 ‘악역’이네요. 배우 왕빛나 하면 뭐가 떠오를까요.

나쁜 여자? 악녀? 주로 악랄한 캐릭터를 연기해와서요(웃음).  

▼ 나쁜 여자에겐 예뻐야 한다는 조건이 붙나봐요.

그래서 부담스러워요. 피부와 몸매 관리를 게을리 할 수 없거든요.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면 따로 관리할 시간이 없잖아요. 그럴 땐 잘 먹고 잘 자는 게 최고예요. 수시로 물을 마시고 대기 시간엔 차 안에서 팩을 하고 주변을 많이 걸어요. 이것만 지켜도 어느 정도 관리 효과를 볼 수 있어요.   

▼ 배우가 한 가지 이미지에 갇히는 건 독일 수도 있어요.

20대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너무 차가운 이미지로 굳어지는 거 아닌가 걱정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저한테 잘 맞는 옷 같아요. 악역은 원하는 것을 위해 언제든 싸울 준비가 돼있는 사람이에요. 누구나 한 번쯤 욕망에 솔직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연기를 하면서 감정 해소가 되는 부분이 있어요.  

▼ 대중은 배우에게 늘 새로운 캐릭터와 연기를 원하잖아요. 거기서 오는 부담감은 없을까요.

왜 없겠어요. 작품을 하면서 슬럼프가 크게 온 적이 있어요. 촬영이 끝나고 집에 오면 베개를 뒤집어쓰고 울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내 삶부터 새로워져야겠구나, 하고요. 저 같은 경우는 여행에서 새로움을 찾아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세상을 만끽하죠.

▼ 오늘, 드라마 〈다시, 첫사랑〉의 첫 대본 리딩이 있었죠? 명세빈, 김승수, 박정철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청춘 스타가 한자리에 모였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땠어요.  

화기애애했어요. 저한텐 동경하던 선배들과 함께 작품을 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기쁨이에요. 특히 명세빈 선배는 첫 리딩에 대본을 거의 다 외워 와 혀를 내둘렀을 정도예요. 리딩이 끝나자 모두 엄지를 치켜들었어요. 전 작품의 질보다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호흡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저만 잘하면 될 것 같아요.

▼ 누가 가장 잘해주던가요.

다들 너무 잘해줘요. 김승수 선배는 드라마 〈그래도 당신〉에서 한 번 호흡을 맞춰본 사이라 더 편해요. 제가 나이나 연차로 따지면, 삼형제 중에 둘째 정도 되거든요. 둘째가 가지는 편안함이 있다고 할까? 어렵게 생각했던 선배들이 편안한 동료처럼 느껴지고, 후배들은 마냥 예뻐요.


▼ 오늘 촬영해보니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일 것 같아요.

보기보다 흥이 많아요. 함께 ‘으쌰으쌰’ 하면서 즐겁게 일하자는 주의거든요.
드라마는 대기 시간이 긴데, 스태프들과 장난도 많이 치고 시끌벅적하게 놀아요.

▼ 왕빛나 씨에게 이런 친근한 면이 있다는 게 놀라워요. 아까 야외 촬영할 때도 반대편에서 차가 달려오자 스태프 팔을 확 끌어당기는 걸 봤어요.

어느 순간부터 현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저보다 어려지더라고요. 모두 동생 같은 친구들이라, 동네 친한 언니처럼 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챙기는 게 당연하게 됐어요.     

▼ 만약에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어요.

다시 돌아가도 그만, 안 돌아가도 그만이에요. 지금 첫사랑과 살고 있잖아요. 하하.

▼ 그러고 보니 결혼한 지 벌써 9년 차네요. 결혼이 천지가 개벽할 일은 아니지만,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던 여배우에겐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아요.

주변에서 많이 말렸었죠. 당시 연예계는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잖아요. 이것저것 재지 않고 마음가는 대로 했어요. 남편과 신나게 연애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헤어지기 싫고 한집에 살고 싶어지더라고요.

▼ 이제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됐죠? 여자로서 결혼과 출산, 육아의 경험이 연기로 확장되기도 하나요.

물론이죠. 여배우가 30대 초 · 중반의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유부녀나 아이가 있는 엄마 역할을 맡게 되잖아요.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은 공감 지수부터 다르다고 봐요. 직접 경험한 것은 기억이 아닌 추억을 만들거든요. 그런 점에서 배우는 많은 경험과 되새김질이 필요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기가 어렵지 않나요.

저는 이 둘을 시소라고 생각해요. 어느 한쪽으로 무게가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야 해요. 그러려면 중심축인 저부터 건강해야 하고요. 가끔은 흔들릴 때도 있는데, 그럴 땐 남편이 옆에서 잡아주죠.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생기면서 오히려 전보다 더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어떤 배우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이거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에요. 사실 배우라는 직업을 어떤 테두리 안에 가둬놓고 싶지 않거든요. 그냥 때마다 작품의 역할에 맞게 잘 재단되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아직 보여주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요.



사진
김외밀
디자인 김영화
제품협찬 듀이듀이(02-547-0110) 모니카비나더(02-562-9278) 손정완(02-548-0832) 앤디앤뎁(02-2205-4715) 에이피엠모나코(www.apm.mc) 오앨(070-4206-0522) 와이씨에이치(02-6911-0717) 자라(02-3453-9495)
헤어 윤성호
메이크업 공혜련
스타일리스트 엄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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