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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tar #interview

예술가 구혜선이 나아가는 방식

적막

EDITOR 조윤

2019. 07. 12

배우 구혜선이 화가 데뷔 10년 만에 열세 번째 전시회를 갖는다. 반려견을 잃은 슬픔, 배우로서의 강박,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한 심정 등이 ‘적막’이라는 주제 속에 조심스레 담겼다.

영화감독, 작곡가, 소설가, 화가 등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예술 작품을 선보여온 배우 구혜선(35)이 다시 한 번 작가 이름표를 달고 대중 앞에 섰다. 그가 직접 그린 작품 20여 점을 선보이는 개인전을 앞두고서다. 전시의 타이틀은 ‘니가 없는 세상, 나에겐 적막’. 그가 직접 지은 제목에는 작품을 준비하던 중 반려견을 잃은 슬픔이 반영됐다. 구혜선은 앞서 남편인 모델 겸 배우 안재현과 tvN ‘신혼일기’에 출연해 여러 반려견과의 일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워낙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면모를 자주 드러냈던 그이기에 반려견의 죽음이 작품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스스로의 설명이다. 

이번 전시는 그가 작가로서 선보이는 열세 번째 그림 전시다. 앞서 구혜선은 연기 활동 틈틈이 그려온 추상화와 자작 소설 ‘탱고’에 삽입된 일러스트를 모아 2009년 소설과 동명의 첫 개인전으로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잔상’ ‘두 도시 이야기’ ‘다크 옐로우’ 등 일곱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특히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無(0)’를 주제로 한 전시 ‘구혜선 초대전’에서는 인간 내면의 깊은 감정을 추상적인 선과 색채로 담아낸 작품 25점을 공개했는데, 전시회 오픈과 동시에 출품작이 완판되며 작가로서의 실력과 인기를 증명했다. 구혜선은 작품 판매 수익금을 자신이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한국미술협회에 기부했다. 이 밖에도 그는 올 3월부터 5월까지 열린 ‘국회 남북미술전’을 비롯해 ‘아시아 컨템포러리’ ‘서울아트페어’ ‘KAPA국제아트페어’ 등 단체전에도 참여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간 기하학적인 추상과 인물을 주로 그려온 그의 작품 특징은 이번 전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각·삼각·원 등 거대한 도형과 직선·곡선의 움직임만으로 인간 내면을 표현했다. 하양과 검정 외에 어떠한 색깔도 없는 것은 또 다른 특징. 흑백의 대비가 오히려 인간 심리의 파장을 극명하게 표현한다. ‘적막1’부터 ‘적막12’까지 모든 작품이 같은 이름을 공유하고 있지만 굵고 가는 선과 흑백의 명암만으로도 전혀 다른 적막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다. 

올해는 2009년 첫 개인전 이후 10주년이 되는 때. 7월 28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을 앞두고 서울 마포구 합정동 진산갤러리에서 구혜선을 만났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적막’을 표현하는 듯 하얀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올 블랙의 롱 원피스 차림이었다.

반려견을 잃은 슬픔이 작품에 반영됐다고 들었어요. 그림엔 반려견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데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요. 

인생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들이 제 안에서 습관화되어 그림으로 표현된 것 같아요. 그렇게 작업을 하는 와중에 반려동물을 잃었고, 어두운 감정들이 그림에 반영됐죠. 가는 선은 미래와 희망에 대한 제 안의 강박을, 블랙의 어두운 색은 눈앞이 캄캄했던 현실을 표현한 거예요. 



그림을 그리면서 좀 치유되는 부분이 있었나요.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하지만 반려동물도 우리의 가족이었기 때문에 다른 가족 구성원 모두 2~3주는 앓아누웠어요. 저는 약을 먹는 등 병원의 도움을 받을 정도로 힘들었죠. 하지만 남은 반려동물들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엄마’로서 이겨냈어요.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슬픈 저의 감정보다는 떠난 그 아이에게 집중하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그림에서 선과 원, 삼각형, 사각형 등 도형을 많이 썼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도형을 그린 건 인생의 균형이나 질서를 의미하는 제 안의 틀이라 볼 수 있어요.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그 안에 가는 선들은 제가 자유롭게 생각하고 나아가는 습관들이죠. 균형과 질서를 유지하려는 의지와 그 속에서도 자유롭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거예요. 

전시 제목인 ‘니가 없는 세상, 나에겐 적막’에서 ‘너’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제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의미해요. 가족, 친구, 가까이 지내는 사람 등 사랑하는 모든 존재요. 그들과 이별하거나 죽음을 목격할 때마다 적막감이 들죠. 제목은 그걸 아울러 표현한 거고요. 

다양한 인물을 스케치한 그림들도 눈에 띄어요. 

인물 그림은 예전에 했던 스케치들이에요. ‘적막’을 주제로 한 작품은 숫자가 많지 않아서 인물 그림을 곳곳에 함께 배치했죠. 주로 소설을 쓰면서 그린 작품 속 캐릭터들이에요. 이번 전시 주제와는 맞지 않지만 저의 표현 방법을 보여주고 싶어서 함께 넣었어요. 

그림 작업을 하는 시간이나 패턴은 어떤가요. 

새벽에 작업하고 낮에 자는 올빼미 생활을 했어요. 주로 저녁에 집중하는 편이죠. 밤에 작업을 하다 보니 잡생각이 많이 드는 반면 고요해지기도 해요. 팟캐스트도 많이 듣고, 종교는 없지만 불교방송을 들으면서 그리기도 했어요. 하하. 한 작품 그리는 데 요새는 한 달 정도 소요돼요. 이전에는 더 오래 걸렸는데 많이 단축됐어요. 

지난해 파리에서 연 개인전에서 25개 작품이 완판됐고 그 수익금을 전액 기부했어요. 이번 전시 그림도 벌써 몇 작품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또 기부 계획이 있나요. 

그림이 완판된 경험도 있지만 안 팔린 것들이 더 많아요. 집에 잔뜩 쌓여 있죠(웃음). 이전엔 그것들이 짐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이젠 이것들을 지키고 나누고 이런 것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 그림이 얼마나 판매될지 모르겠지만 프로젝트가 반려동물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쪽 분야에 수익금이 쓰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만능 엔터테이너의 빛과 그림자

서울 마포구 진산갤러리에서 열리는 구혜선 개인전. 그녀는 대중의 부정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힘이 됐다고 말한다.

서울 마포구 진산갤러리에서 열리는 구혜선 개인전. 그녀는 대중의 부정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힘이 됐다고 말한다.

구혜선은 화가뿐 아니라 영화 제작자·감독, 작곡가, 소설가 등으로 끊임없이 이름표를 바꿔 달며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왔다. 특히 2008년 첫 제작·연출을 맡은 단편영화 ‘유쾌한 도우미’가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이후 ‘요술’ ‘복숭아나무’ ‘다우더’ 등 세 편의 장편영화와 ‘미스터리 핑크’ 등 네 편의 단편영화를 더 내놓으며 영화감독으로서 입지를 굳혀나가고 있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직접 작곡한 영화음악 등을 모아 두 장의 뉴에이지 앨범을 내놓기도 했으며, 중학교 때부터 작곡한 곡과 ‘신혼일기’에서 선보인 피아노·기타 곡을 모아 악보집을 선보이기도 했다. 10년 전 낸 첫 자작 소설 ‘탱고’는 출간 일주일 만에 3만 부가 팔리며 주목받았다. 

이렇게 전천후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에게는 아직 ‘예술가’라는 타이틀은 도전의 영역이다. 스타 구혜선이 한다고 하면 늘 환영받을 듯했으나 곧 ‘하나도 제대로 못 하는데 일을 벌인다’라는 비난이 따랐다. 그럼에도 그는 올해 전시를 포함해 또다시 소설책을 출간하는 등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꼭 뭐가 되지 않아도 생긴 그대로 사는 사람”이 그의 삶의 목표란다.

지난 5월 ‘눈물은 하트 모양’이라는 소설도 출간했어요. 여기엔 실제 경험담도 담겼다고요. 

7, 8년 전 쓴 영화 시나리오인데 20대 때 했던 미친 연애담을 담았어요. 그걸 결혼한 후에 소설로 쓰는 게 좀 그렇긴 한데(웃음)…. 집 앞 계단에서 사랑했던 사람을 오래 기다린다거나 하는 부분이 경험담이에요. 영화화되지 않아 소설로 작업하게 됐죠. 그때의 감정은 지금은 나오지 않는 것들이라 쓰면서 재미있었어요. 

그림 외에도 영화 연출, 소설 집필, 작곡 등 폭넓은 예술 활동을 하는 이유가 있나요. 

모든 예술 활동은 그 당시 감정을 표현하는 일인 것 같아요. 답을 찾아가기보다는 지난 시간의 감정을 관객들과 소통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예술 활동을 하고 있어요. 사실 정작 작업할 때는 너무 괴로워요. 끝나면 몸살을 앓기도 하고요. 하지만 괴롭기 때문에 움직이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음악을 만들고 나면 ‘다신 음악 안 해’ 하고, 그림을 그리고 나면 ‘그림도 다시 안 해’ 이런 마음이 들죠. 그런데 슬프면 다시 또 이걸 하고 있어요(웃음). 춤을 추고 싶지 않은데 계속 추게 되는 ‘분홍신’이라는 동화가 있잖아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하기 싫은데 손이 움직이는 내 자신을 보면서 그 동화가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화가로 활동한 지는 10년이 됐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벌써 10년이 지나갔네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림을 다시는 안 그리려 했는데 또 그리고 있구나, 생각했어요(웃음). 전시를 할 때는 아무래도 ‘작가 구혜선’이고 싶어요. 배우라기보다는 그냥 작가로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바람이 있죠. 

‘예술가 구혜선’에 대한 편견은 없어졌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대중에 부정당하는 힘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 같아요. 예술 활동을 인정받지 못하는 감정이 되레 큰 힘이 된 거죠. 그림 그리면서 스스로 치유를 받고 싶었는데 치유가 다 되진 않았지만 좋아지고 있는 중이에요. 

부정당한다고 생각했을 때 심정은 어땠나요. 

20대 때는 저의 실력이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게 슬펐어요. ‘내가 나쁜가? 잘못했나?’ 생각했는데 지금은 저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돼요. 대중의 부정이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거죠. 냉정하게 돌아봤을 때 나라도 내가 싫었겠다 싶은 중용의 마음을 갖게 됐다고 할까요(웃음). 부정의 힘으로 작가가 되려고 했고, 되고 있는 과정에 놓여 있단 생각이 들어요. 

안재현 씨도 이번 전시를 응원해줬나요. 

오늘은 뭘 하러 가는지 말을 안 해서 모를 거예요(웃음). 안재현 씨가 요즘 작품 준비와 운동으로 바빠 얼굴 보기도 힘들어요. 전시에 관해선 특별히 이야기한 게 없어요. 

이번 전시는 무료 관람인 만큼 많은 사람이 찾을 듯한데 그들과 무엇을 공유하고 싶나요. 

관람객은 자신의 생각을 그림에 투영해서 본다고 생각해요. 이곳에 즐거운 마음을 갖고 찾아오면 즐거움을 투영할 것이고 슬픈 감정으로 온다면 그림에서 슬픔을 더 많이 볼 거예요. 그냥 느끼는 대로 즐겼으면 좋겠어요. 

14년간 몸담았던 YG엔터테인먼트에서 파트너즈파크로 소속사를 옮긴 지 1년 4개월 만인 올 5월, 다시 남편이 속해 있는 HB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겼어요. 

회사를 옮긴 건 안재현 씨의 영향이 작용했어요. 결혼 후에는 저만 생각할 수 없고 남편의 상황을 고려하게 되니 조심스러워지더군요. 제가 하는 일이 남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단 바람이 있었죠. 또 연기 활동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적하게 됐어요. 

배우로서 활동 계획은요. 

배우 활동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제 마음과 상황이 다 맞아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역할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고 있고, 작품도 검토하고 있어요. 기존에 해봤던 것 말고 새로운 걸 하고 싶어요. 1년 반 동안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아 배우로서의 모습을 보여드리려 했는데 그사이에 또 (그림) 작품으로 찾아뵙게 됐네요. 이번 전시가 끝나면 다시 배우로서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홍태식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진산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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