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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tar_family #interview

엄마, 인터뷰해요 홍석천

EDITOR 이혜민 기자

입력 2018.12.03 17:00:01

대한민국 커밍아웃 1호 스타, 이태원 골목을 바꿔놓은 요식업계의 성공한 CEO, 그리고 조카들을 입양해 훌륭하게 키워낸 아빠. 홍석천 뒤에는 아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따뜻하게 응원해준 어머니가 있다.
엄마, 인터뷰해요 홍석천
홍석천(47)의 삶은 편견에 대한 도전 그 자체다. 2000년, 방송인으로 한창 주가를 올릴 무렵 선언한 커밍아웃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사람들은 마치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그를 몰아붙였고, 어릴 적부터 꿈꿔온 방송인으로서의 삶도 끝난 듯 보였다. 하지만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성애자가 됐고, 사업에서도 당당히 성공했으며 두 조카를 입양해 어엿하게 키워냈다. 얼마 전 종영한 tvN 예능 프로그램 ‘엄마 나 왔어’를 보면, 그가 남다른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세상의 편견에 맞설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니 김순겸(82) 여사의 지지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엄마 나 왔어’는 독립한 스타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 부모와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 홍석천은 방송 중 과거 커밍아웃 시절의 이야기가 나오자 “그때 엄마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밥밖에 없다고, 나 굶을까 봐 밥 해줬었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도리어 “엄마한테 효도하느라 애썼다. 우리 아들 사랑한다”면서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 시청자들을 눈물짓게 했다. 

서로에게 살아갈 힘이 돼준 아들과 어머니를 만나 가족의 의미를 물었다. 인터뷰 장소는 그가 몇 달 전 이사 왔다는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홍석천은 “10여 년 전 분양받은 이 집의 전세금을 밑천 삼아 사업을 해왔다. 이제는 일이 안정 궤도에 올라 이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충남 청양에 사는 어머니는 방송 촬영과 ‘여성동아’ 인터뷰를 위해 서울에 올라왔고 곧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가족과 함께 방송에 출연해보니 어떠셨나요. 출연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홍석천 엄마가 연세가 많으신데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출연을 결심했어요. 처음엔 엄마가 촬영을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엄청 재미있어하셨어요. 인터뷰도 저보다 더 적극적으로 하시고요. 

엄마 내가 가게에서 일만 하고 살았으니까 교양이 별로 없어요. ‘촬영이란 건 진짜 똑똑한 사람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출연을 망설였지요. 그런데 촬영차 우리 집에 왔던 박수홍 씨가 “저희 엄마도 처음에는 촬영하는 걸 어려워했는데 지금은 재미있어하신다”면서 용기를 주더라고요. 

덕분에 추억을 만드셨을 것 같아요. 아드님이 이렇게 유명한 방송인으로 성장할 줄 아셨나요. 홍석천 씨가 어릴 때부터 재능이 남달랐는지 궁금해요. 

엄마 재능이야 많았지만 우리가 지원해주지는 못했어요. 셋방살이하면서 4남매를 키웠거든요. 비단 장사를 했어요. 그때는 사람들이 옷감을 사다가 옷을 만들어 입었거든요. 특별히 뭘 해주지도 않았는데 석천이가 대여섯 살 때 간판에 적힌 글씨를 읽더라고요. 학교 선생님이 통지표에 석천이 칭찬을 가득 써서 주셨고요. 영리하고 통솔력과 창의력이 좋고 친구들한테 친절하다고요. 석천이는 나한테 기쁨과 즐거움을 준 아들이에요. 

홍석천 아, 우리 엄마 정말 자랑 너무 많이 하시네(웃음). 

그럴 만하니까 그러시는 거겠죠(웃음). 어머니가 바쁘셨다고 했는데요. 그럼 누가 홍석천 씨를 키워줬나요. 

홍석천 엄마, 내가 알아서 되게 잘 크지 않았어? 큰누나가 키워준 것 같기도 한데. 

엄마 얘가 리더십이 있어서 친구들하고 잘 어울렸어요. 별다른 장난감이 없어도 마당에서 잘 뛰어놀았지요. 그때는 다들 몇 남매씩 낳아서 키울 때라 동네에 애들이 많았거든요. 땅에 돌로 칸칸을 그려 그 안에 숫자를 써놓고, 거기에 돌을 던지고 뛰고 그러더라고요. 얘가 하여간 머리는 발달했어요. 동네에서도 귀염둥이, 집안에서도 귀염둥이 막내였지요. 

홍석천 한마디로 자랑하시는 거예요(웃음). 

엄마 내가 시집와서 딸만 내리 셋 낳았거든요. 셋째도 딸을 낳으니까 시부모님이 굉장히 서운해하시더라고요. 그때는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업고 마실을 다녔는데, 우리 시어머니는 셋째 손녀는 업어주지도 않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남의 손자는 그렇게 예뻐하시는 거야. 그걸 보니까 내가 얼마나 열이 나겠어요. 근데 동네 어르신들에게 내가 꾼 태몽을 말씀드리니까 다들 “이번에는 확실히 아들을 낳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떤 꿈을 꾸셨는데요. 

엄마 태몽을 두 번 꿨어요. 한 번은 아주 크고 빛깔도 고운 벼들이 잘 정돈된 상태로 우리 집을 에워싸고 있더라고요. 벼 알곡이 얼마나 잘 영글었는지 지금도 눈에 선해요. 또 한 번은 프라이팬 위에 강냉이 한 주먹을 넣고 살살 저으니까 그것이 톡톡 튀어서 목화송이가 되더라고요. 얼마나 깨끗하고 좋은 솜이 만들어지는지, 목화송이가 만들어지는 대로 다 담았어요. 석천이가 배우가 된다고 했을 때 쟤가 (태몽에서 본 목화송이처럼) 튀긴 튀겠구나, 그랬지. 이런 태몽을 꾸고 아들을 낳으니까 집안에서 대우가 달라지더라고요. 

홍석천 아들을 낳으니까 할머니가 정말 잘해주셨어? 

엄마 너 낳고는 그래도 대우를 받았지. 시어머니가 손녀 셋을 봤을 때는 냉랭했는데, 손자를 보니까 좋아서 어쩔 줄 모르시는 거예요. 구정 새벽에 석천이를 낳았는데, 시어머니가 그 추운 겨울에 시냇물 얼음을 깨고 빨래까지 해오시더라니까요. 그동안 시어머니가 쌀쌀맞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보니까 영 다른 분이더라고요. 

홍석천 씨가 학창시절엔 어땠어요. 사춘기를 심하게 겪진 않았는지요. 


엄마 몸이 약해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도 형편이 넉넉지 못해서 약 한 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어요. 날 닮아서 차멀미를 많이 하는데, 수학여행 가고 그럴 때 걱정도 많이 했지요. 얘가 부모 걱정을 덜어주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학교에서 상장도 많이 받고, 장학금도 여러 번 받아오고. 

홍석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뭐라도 하고 싶었거든요. 어린 제가 할 수 있는 건 학교에서 상을 받아오는 것뿐이더라고요. 놀고 싶은데도 더 못 놀았지(웃음). 

끼가 많아서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았을 것 같아요. 

엄마 중학교 때 체육 시간이면 전교생들 앞에서 에어로빅을 했어요. 나는 그걸 몰랐는데 체육 선생님 부인이 “석천이가 무용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학교 부근에 사는 사람들이 그 무용을 보러 구경을 가는데 석천이 엄마도 한번 가보세요” 해서 가보니까 진짜 잘하더라고요. 동네 사람들이 그때 “석천이가 예능에 소질이 있다”고 얘기했지요. 

홍석천 나는 그때 엄마가 보러 오셨는지도 몰랐네. 에어로빅 체조라고 학교에서 진행하는 건강 체조였는데요. 조회시간마다 다른 친구랑 둘이 구령대에 올라가 전교생 앞에서 시범을 보였거든요. 제가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재능도 있고 체육도 잘했어요. 

엄마 석천이 아버지가 학창 시절 씨름 선수였는데 한번은 14명을 넘어뜨리고 우승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수영을 잘해서 청년일 때는 한강을 가로질러서 건넜다고 하고요. 


엄마, 인터뷰해요 홍석천
홍석천 씨가 연기를 공부한다고 했을 때는 어땠나요. 흔쾌히 허락하셨나요. 

엄마 한양대 연극영화과는 석천이가 원해서 간 거죠. 우리 세대는 이런 일을 하는 걸 별로 반기지 않잖아요. 글재주가 있으니까 대학 교수나 그런 걸 할 줄 알았지. 애들 아버지가 석천이가 배우가 된다고 하니까 라디오를 던지면서 화를 내며 반대했지요. 그 일이 있고 나서 학교 선생님하고 상담을 해보니까 “석천이가 잘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허락해줬어요. 

홍석천 처음에는 부모님이 반대하실까 봐 신문방송학과에 가려고 했는데, 연기를 공부하고 싶으니까 그 과를 가야겠더라고요. 부모님이 제 결정을 이해해주셔서 감사했죠. 

이번 방송을 통해서 홍석천 씨가 이혼한 셋째 누나의 자녀들을 입양해 키운 사실이 더 널리 알려졌어요. 방송에서 딸도 공개했고요. 공식적으로 입양 절차를 밟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홍석천 아이들 아버지가 본인의 권리를 주장하면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지 못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법적인 조치를 취한 거예요. 

어머니는 이런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엄마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석천이 할머니(시어머니)가 대를 잇는 걸 얼마나 바라셨는데…. 그런데도 얘는 “장가를 안 가고, 조카들을 입양해서 가르치고 키우겠다”고 그러더라고요. 조카들을 미국 보스턴으로 보내서 가르치는데 유학비가 만만치 않아요. 큰아이는 대학을 졸업했고, 둘째는 이제 대학에 들어가야 하거든요. 석천이가 누나를 살렸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아들이 안쓰럽지요. 돈 버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잘 아니까.
 
홍석천 엄마는 안쓰럽게 보실 수 있지만, 저는 자식을 낳을 생각이 없고 조카들은 아버지 노릇을 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서로를 위해 좋은 결정을 내린 거라고 봐요. 

홍석천 씨는 이태원을 상징하는 레스토랑 사업가이기도 합니다. 지금 몇 개의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신가요. 

홍석천 많이 할 때는 10곳도 운영했는데 지금은 정리해서 4, 5곳만 하고 있어요. 

엄마 요즘은 손녀(홍석천이 입양한 큰딸)가 가게를 맡아서 해요. 손녀가 “삼촌한테 많이 고마운데도 아빠라는 소리가 입에서 안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부분도 있어요. 엄마가 이혼하고 나서 애들이 가게로 오면 “너네는 집으로 가지, 왜 할머니네 가게로 오냐. 손님들 오시니까 시끄럽게 놀지 말라”면서 싫은 소리도 여러 번 했는데 그 일이 지금까지 많이 걸려요. 

홍석천 다 이해했을 거야 엄마. 애들이 참 착해요. 철이 일찍 들어서 잘 자라줬어요. 

얼마 전 방송을 보니, 가족이 함께 청양 체육대회에 가셨던데요. 홍석천 씨를 본 고향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정말 오랜만에 고향에 갔다고 들었거든요. 

엄마 촬영을 위해 수십 명의 스태프가 청양으로 같이 내려오는 바람에 동네에 우리가 방송에 나간다는 소문이 다 났어요. 그래선지 “아들이 출세해서 좋겠다”며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나한테 “오래오래 살아서 아들 잘되는 거 봐야 한다” “아들이 점점 잘되니까 얼마나 좋냐”고 그러고요. 한때는 참 힘들었거든요.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했던 당시를 말씀하시는거죠? 

엄마 그래요. 그때 정말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않았지요. 얘가 어려서부터 진짜 착실하게 잘 컸으니까요.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좋은 꿈을 꾸고 낳은 아이인데, 쟤가 주저앉지 않을 거다.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거다’ 하는 생각이 많았어요. 

커밍아웃하고 나서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요즘은 어떠신가요. 


엄마 ‘무슨 일이든 세월이 약이고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소리가 맞아요. 그때는 살지 못할 것 같았지. 진짜 나를 되게 기쁘게 해주고 내게 소망을 갖게 해준 아들이 그렇다니 충격이 너무 컸지. 아이고 참 눈물이…. 나는 사람들에게 부탁을 좀 하고 싶어요.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가요. 

엄마 사람들이 자꾸 그 문제(커밍아웃)를 거론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 일이 있고 나서 20여 년이 흘렀는데도 자꾸 방송에서 그런 내용을 내보내는 게 싫어요. 얘의 현실 생활에 대해서 좋은 얘기를 좀 해주면 좋을 텐데…. 쟤도 마음이 안 좋을 것 같아요. 

홍석천 저는 그런 제 모습이 흠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어머니는 걱정하시는 것 같아요. 저란 사람 자체가 커밍아웃을 빼놓으면 설명이 안 되는 걸 잘 알거든요. 커밍아웃도 제가 원해서 했고, 제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서 지금껏 열심히 살고 있고요. 

이렇게 노력하며 열심히 사시는데 좋은 일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한 말씀씩 해주세요. 

엄마 첫째 딸(홍석천의 큰누나)이 중학생 때 병이 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거든요. 간 지 벌써 41년이 됐는데도 딸 생각이 많이 나요. 엄마가 장사해서 바쁘니까 밥 해놓고 동생들 돌봐주던 착한 딸인데 허망하게 가버렸어요. 내 자식 중에 걔처럼 예쁘고 착한 애는 없었거든. 살결이 백옥 같고 키도 크고…. 남은 우리 가족이 건강하게 잘 살면 더 바랄 게 없어요. 

홍석천 저도 그래요. 가족 모두가 자신의 길을 찾아 행복을 느끼면서 살길 바라요(웃음).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여성동아 2018년 12월 6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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