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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소확행 반대, 하고 싶은 일 해야죠”

정치 논객 전여옥, 아들의 ‘자동차 정비사’ 꿈을 이야기하다

EDITOR 김명희 기자

입력 2018.08.06 17:00:02

17,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보수 진영의 대표 정치 논객 전여옥(59). 여의도를 떠난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정치에 깊이 발을 들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블루칼라로 살아갈 한 아들의 엄마로, 여성으로 그리고 권력의 민낯을 본 증인으로.
“청년들의 소확행 반대, 하고 싶은 일 해야죠”
채널A 정치 토크쇼 ‘외부자들’을 보면서도 느낀 건데, 정치를 할 때보다 얼굴도 좋고 건강해 보이세요. 

저는 적극적으로 건강하게 나이 들고자 해요. 훌륭한 선생님께 PT를 받고 있고, 건강에 대한 책도 많이 읽어요. 저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책을 먼저 읽어요. 운전을 배울 때도 그렇고, 외국어를 배울 때도 이론으로 기초를 닦아 놓으면 그다음은 쉽거든요. 현대사회에서 늙어 보인다는 것은 초라하고 돈이 없다는 표시라고, 책에서 그러더라고요. 나름 일리 있다고 생각해서 일 년에 두 번 정도 보톡스도 맞아요. 저희 아버지가 굉장히 훌륭하신 분인데 몇 가지 왜곡된 가치관을 갖고 저를 교육한 부분이 있어요. ‘머리가 빈 여자들이 꾸미고 다닌다’거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외모에 신경 쓴다’는 거였어요. 아주 잘못된 시각이죠. 외모도 경쟁력인데. 

얼마 전 ‘외부자들’에서 하차하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MC 남희석 씨가 하차한 이후 저도 ‘이제 떠날 때’란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던 소중한 시간이었죠. 

이제 직함을 어떻게 소개할까요. 

작가도 좋고, (정치) 코멘테이터도 괜찮을 거 같아요. 말하자면 어떤 사건이나 사안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해설자인데, 일본에는 실제로 그런 직업이 있어요. 

정치 논객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비슷하죠. 그런데 지금 정치 논객은 사실상 방송에서 특정 정당 또는 정부 입장을 대변하거나 실드를 치는 역할에 가깝잖아요. 코멘테이터는 조금 더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요즘 안형환 전 의원과
팟 캐스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저와 안 전 의원은 진영을 떠나 보수와 진보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일에 관심이 많아요. 특정 정당이나 세력을 대변하는 데서 벗어나 자유롭게 (방송을) 해보려고 해요. 

우리 사회 많은 분야에 유리 천장이 존재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가장 비대칭적인 분야 중 하나가 정치 논객인 것 같아요. 왜 여성 논객이 별로 없을까, 예전부터 궁금했어요. 

이 방송국 저 방송국 돌아다니면서 맨땅에 헤딩하는 거친 일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정치인이 정교수라면 논객은 보따리 시간 강사라고 할까요. 그렇지만 시간 강사 중에도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많이 요구하고 있어요. 1995년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라는 책을 쓰면서 여성 문제에 대해 많이 공부했는데, 너무 억압된 상황에서 그걸 바꿀 힘이 없으니까 테러를 하는 거예요. 지금 혜화역 시위를 하는 여성들의 심정이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부당함에 저항하는 그들의 방식인 거죠. (혜화역 시위에서 나온)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같은 건 과격하다고 생각하지만 거리로 나서야만 하는 여성들의 울분은 이해합니다. 

오늘(7월 11일) 자유한국당이 여의도에서 영등포로 당사를 이전하고 홍준표 전 대표가 미국으로 떠났어요. 어떻게 보면 보수 정당의 한 시대를 마감하는 상징적인 날인데,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어떤 생각이 드세요. 

당사를 이전했다고 하지만 여의도에서 영등포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홍준표 전 대표가 미국에 가서 뭘 할까요? 교포들 만나고 골프 치고 그럴 거예요. 워낙 골프를 좋아하는 분이니까. 당사를 이전하고 대표를 바꾸는 건 쇼윈도 유리를 바꾸는 것에 불과해요. 자유한국당이 진정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뼈를 깎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유배시킬 필요가 있어요. 

‘유배’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시는 건가요.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 전원이 다음 총선에 안 나가겠다고 선언해야 해요. 그 정도 책임은 져야 상처 받은 보수 지지자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어요. 그리고 역량을 키워서 다음 선거에서 다시 선택을 받아야죠. 그게 올바른 태도예요.


“청년들의 소확행 반대, 하고 싶은 일 해야죠”
자유한국당도 혁신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나름대로 자구책 마련을 하고 있는데요. 

자구책이 아니라 미봉책이죠. 혁신비대위원장 후보를 1백1명 추천했다는데, 1백1마리의 달마티안도 아니고 시대의 코미디죠. 다음 선거에서 자신들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그들을 이용하겠다는 건데, 이용당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전여옥이 생각하는 보수의 가치는 어떤 건가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책임감, 법을 기반으로 합리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거예요. 보수는 오랜 역사 속에서 늘 책임지고 올바른 선택을 위해 자기 변화를 해왔어요. ‘보수(保守)’는 ‘보수(補修)’한다는 말이 거기에서 나온 거예요. 저는 보수의 가치를 통해 부와 지위를 축적한 사람들이 위선을 떨어서는 안 되고, 마찬가지로 진보도 비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 친한 민주당 권리당원을 만났는데 ‘왜 보수가 난민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고 하는 거예요. 좌파의 논리로만 보자면 난민에 우호적이어야 하지만 막상 난민을 받아들이는 건 싫고 불안하니까 보수들이 촛불 시위라도 했으면 하고 바라는 건데, 그건 너무 비겁한 거 아닌가요? 

그러고 보면 난민 문제가 기존 진보와 보수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온 측면이 있어요. 진보를 지지하지만 난민 문제에서만큼은 보수적인 사람도 많아요. 

난민 문제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원칙을 갖고 나아가느냐의 문제예요. 난민들에게 집과 음식, 일자리를 주는 것을 넘어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돼야 해요. 저도 보수주의자이지만 진보의 가치를 갖고 있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는 여성에게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건 국가적인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보수와 진보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서로 눈치 보고 배려하면서 가야 해요. 

17대 국회의원이던 2005년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을 보좌하다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라이벌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 캠프로 옮겨 화제가 됐어요.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측과 결별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당시 박근혜 대표가 보수 정당의 재건을 위해 애쓰는 거라 생각했지, 대통령을 목표로 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하고 거기에 맞게 목표를 세우잖아요. 국회의원 하기에도 벅찬 사람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하는데, 이건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도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박근혜가 대통령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에 이명박 지지 선언을 했는데, 사람들에겐 그게 굉장히 의외였나 봐요. 

국회의원 시절 보좌했던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모두 수감 중이에요. 

참담한 일이죠. 보수 전체가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해요. 

지도자를 보필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보필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지도자에게 훌륭한 인재를 발탁하는 안목이 있어야 해요. 전 개인적으로 보좌관을 뽑을 때 저보다 탁월하게 나은 점이 있는지, 저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봤어요. 그래야 제가 도움을 받고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으니까요. 그게 절대로 안 됐던 사람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에요. 자신에게 무조건 충성하는 돌쇠 같은 사람들만 뽑아서 곁에 뒀잖아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어땠나요. 

건설 회사 출신이라 그때그때 현장에서 필요한 사람들과만 일해서인지 인간에 대한 동지애가 없었던 점이 유감스러워요. 자신이 그러니까 주변에도 알바 뛰는 것 같은 사람들만 모였어요. 노무현·문재인 대통령 주위에는 철학을 공유하고 어떤 경우에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리더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화법에 대해 ‘베이비 토크’라고 표현하셨어요. 어휘와 콘텐츠가 함량 미달이었다는 얘긴데, 문재인 대통령의 화법이나 연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굉장히 잘 짜인 각본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매우 훌륭한 액터라고 생각해요. 

‘액터(Actor·배우)’란 표현을 쓰셨어요. 

‘어떻게 배우가 대통령이 되냐’고 하니까 이제는 고인인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그랬어요. ‘그럼 배우 역할도 못 하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냐’고요.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인상이 굉장히 좋으시잖아요. 선량하고 사심 없어 보이고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며 청와대를 경험한 게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대통령의 딸 혹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며 청와대를 경험한 것과 비서실장으로 청와대를 경험한 건 많이 다르죠. 

기자와 방송인, 작가 등으로 활동하다가 2004년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정치에 입문하셨어요. 정치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당시 노무현 정부가 시장 경제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시장이 우리 사회에서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장이고, 흙수저에겐 평등보다 공정한 경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두 평등하자는 건 다 같이 흙수저가 되자는 얘기예요. 저 역시 공정한 시장 경쟁을 통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재능을 키우고, 그걸로 먹고살고, 때로는 폭삭 망한 친정도 부양할 수 있었죠. 그런 것들이 굉장히 자랑스러운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렇게 하기가 힘들어요. 

정치를 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뭐였나요. 

아이 문제였죠. 정치를 하는 8~9년 동안 아이와 거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어요. 같이 살지 않았다면 차라리 핑계라도 댈 수 있었을 텐데 저는 같이 살면서도 엄마 노릇을 잘 못 했죠. 

요즘 ‘아들바보’로 소문이 자자해요. 스스로를 ‘꿀단지 엄마’라고 칭하기도 하고요. 

지나고 보니 ‘엄마의 돌봄 총량제’란 게 있더라고요. 제가 아들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썼고 그것 때문에 아이가 많이 힘들었어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전문대에 진학했고 지금은 자동차 정비 일을 하고 있어요. 제가 걔 때문에 많이 울었어요. 상담도 받았고요. 인터넷을 보니 저처럼 고통 받는 엄마들이 많더라고요. 언젠가 ‘아이가 학교에 안 가고 집에만 있는데, 출근길에 가방을 메고 학교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하염없이 울었다’는 한 엄마의 글을 보면서 저도 같이 울었어요. 그 엄마들에게 제가 얘기할 수 있는 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믿음이 있으면 아이는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거예요. 물론 (아이와) 싸울 때는 치열하게 싸워야죠. 저는 아이와 몸싸움도 했어요. 강인하게, 그러면서도 엄마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면 아이는 결국 엄마에게 돌아와요. 요즘 저와 제 아들은 굉장히 잘 지내요. 영어 단어 공부하다가 팔이 아프다고 하면 주물러주기도 하고, 치맥을 사이에 놓고 토론도 하고 그래요. 

아들이 다른 아이들처럼 정규 교육 과정을 마쳤으면 하는 아쉬움은 없었나요. 

사람들은 가방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자기 아이는 다 대학 가기를 원하잖아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간을 꼽자면 대학 시절이에요. 그런데 우리 아들은 캠퍼스도 없는 전문대학에 다니면서 그런 기쁨을 만끽하지 못해서 가슴이 아파요. 그래서 ‘너는 대학을 가지 않았지만 아이를 낳으면 꼭 대학에 보내면 좋겠다’고 했더니, 자기도 무슨 생각에서인지 ‘응. 그럴 거야’ 그러더라고요. 바이크 수리하는 데 관심이 많아서 외국에 가서 연수도 받고 싶대요. 그래서인지 요즘 토익 공부를 열심히 하더라고요. 

얼마 전에 펴낸 ‘흙수저 연금술’이란 책은 아들과 비슷한 청년들에게 경제와 재테크에 관해 알려주기 위해 쓴 것이죠. 

이 사회에서 블루칼라로 살아갈 아들에게, 또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에게 돈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어요.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돈’에 대해서,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에 대해서 잘 알면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들에게 했던 실전 재테크 에피소드를 하나 알려주세요. 

해외여행을 가면서 6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야 할 때 저는 비즈니스석에 앉았지만 아이는 이코노미석에 앉혔어요. 그러다 한번은 급하게 귀국해야 하는데 이코노미석이 없어서 아이도 비즈니스석에 앉혔더니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에게 ‘이게 네 인생의 마지막 비즈니스석이 아니길 바란다. 열심히 일해서 네 스스로 누릴 수 있는 자격을 만들라’고 했죠. 

아들 또래의 요즘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저는 정치 권력이든, 기업이든 부모로부터 세습을 받는 건 반대예요. 아들이 아버지 지역구를 물려받고, 능력도 안 되는 사람이 기업 경영을 좌우하며 갑질을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이런 것들은 고쳐나가야겠지만, 그런 구조적인 문제와 별개로 우리 청년들이 너무 나약하다는 생각도 해요. ‘나 이렇게 힘들어’ 그러면, 공감하고 위로하고 ‘나도 그래’ 하면서 ‘포기해도 괜찮아’ 이건 아니라는 거예요. 인간은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올바르게 자기 꿈을 펼칠 책임이 있어요. 요즘 ‘소확행’이란 말을 많이 하던데, 왜 꼭 소소한 것에서만 행복을 찾아야 하나요. 이왕이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지.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처절하게 단련할 필요도 있어요.


사진 조영철 기자 디자인 김영화 장소협조 일민미술관


여성동아 2018년 8월 6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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