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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coverstory

Metaphor for yozoh life

요조의 메타포

editor_fashion 안미은 기자 editor_feature 정희순

2017. 08. 24

한동안 잔상이 남는다는 건, 오래도록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는 건 내가 아직도 당신이 궁금하다는 것.





끌려가기보다 앞장서는 삶. 그만큼 멋진 인생이 또 있을까. 그런 점에서 가수 요조(36·본명 신수진)는 참 멋진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지난 2007년 인디 뮤지션으로 가요계에 데뷔한 그녀는 통기타를 둘러멘 청순한 외모로 ‘홍대 여신’으로 불렸다. 고요한 가운데 울려오는 담백하고 청아한 목소리는 요조의 트레이드마크로, 요즘은 더러 ‘고막 여친’이라는 수식어로 그녀를 칭하기도 한다. 그녀의 인생을 멋지다고 평한 건 단순히 그녀가 작사와 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2015년 연예인으로는 처음으로 서울 북촌에 ‘책방무사’라는 독립 서점을 내며 책방 주인이 됐고, 이듬해엔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그림 동화책 〈이구아나〉를 펴냈다. 올해 5월엔 〈나는 아직도 당신이 궁금하여 자다가도 일어납니다〉(이하 〈나아당궁〉)라는 EP 앨범 발매와 함께 수록곡들을 엮어 단편영화를 제작해 감독으로도 데뷔했다. 지난 8월 3일 개봉한 영화 〈여자들〉에서는 책방을 운영하는 여자 ‘수진’ 역을 맡아 연기인지 실제인지 헷갈릴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력까지 선보였다. 데뷔 10주년을 맞은 가수이자 작가, 감독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요조를 만나고 싶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입추가 지나고 한껏 높아진 하늘 아래 그녀가 카메라를 응시했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선 그녀가 직접 쓰고 불렀을 곡들이 흘러나왔다. 10여 명의 스태프들이 있었지만 현장은 너무나도 차분하고 고요했다. 초가을의 하늘처럼, 요조의 목소리처럼. 촬영을 마친 뒤 인근 카페로 이동해 그녀와 마주 앉았다. “잠시만요” 하더니 그녀는 손거울을 보며 쓱싹쓱싹 메이크업을 지워냈다. 요조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마알간’ 얼굴을 하고는 이제 준비됐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지은 표정요, 영화 〈여자들〉의 수진이가 남자 주인공을 유혹할 때 지었던 표정 같은데요(웃음).
영화 보셨어요? 영화 속 수진이는 저와 비슷할 수밖에 없어요. 수진이가 제 본명인 데다 책방 주인이라는 점도 같으니까요. 영화를 연출한 이상덕 감독은 원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유명하신 분이라 저와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예요.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돼” 하고 말씀하셔서 저도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었죠. 수진이가 남자 주인공 ‘시형’이를 유혹하면서 그런 말을 하잖아요. “그냥 춤추는 거라고 생각해요”라고요.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표현한 게 참 예뻐 보였어요. 전에 어디서 들은 얘긴데 일본에서는 “달이 참 밝네요”라는 말이 ‘사랑한다’는 의미로 통용된대요. 제가 평소에 시를 참 좋아해요.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은유적인 표현들이 오래 잔상에 남는 것 같아서요.

지난 5월에는 직접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했잖아요. 앨범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을 텐데 왜 굳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요즘은 음악을 들을 때 앨범 단위가 아니라 음원 단위로 듣잖아요. 앨범을 만드는 사람 입장으로는 그게 참 안타까웠어요. 하나의 앨범을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고스란히 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영화라는 그릇에 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곡들을 순서대로 넣어서 영화를 만들면, 관객들은 결국 제 앨범을 정주행하는 셈이니까요. 또 그 순간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요. 생각은 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안 나서 3~4년 동안 고민하다가 맺은 결실이 〈나아당궁〉이죠. 운 좋게도 전주국제영화제 비경쟁 한국 단편 부문으로 상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만족스러운 경험이지만, 현실적인 제약도 많이 느껴서 앨범을 낼 때마다 영화를 만들긴 힘들 것 같아요. 공연을 하려면 영화 상영이 가능한 공연장을 찾아야 하는데 이 방법을 고수하자니 비용이 만만치가 않아서요.

책방들이 다 없어지는 마당에 연예인으로는 처음으로 책방도 냈어요. ‘망하지 말고 무사히 살아남자’는 뜻의 ‘책방 무사’(웃음).
마음 놓고 책을 읽는 게 오랜 꿈이어서 시작했어요. 제가 좋아하고 읽고 싶은 책들을 모아놓은 취향 집합소죠. 서울 계동에서 ‘무사’히 2년간 운영한 책방을 이번 가을에 제주로 옮기려고요. 제주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래전부터 했는데 드디어 제주로 이사를 갔고, 책방도 저를 따라 와야 해서요. 책방이 서울에 있을 땐, 지나가다가 잠시 들르는 사람들도 꽤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문을 여는 곳은 주변에 초등학교 말고는 특별히 뭐가 없는 동네예요. 그곳에 사는 사람도 많지 않고요. ‘굳이’ 찾아야만 닿을 수 있는 장소에 자리하게 된 셈이죠. 그래서 다른 책방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책들이나 대형 서점에서 쉽게 눈에 띄는 책들은 지양하려고 해요.



책방무사엔 주로 어떤 책들이 많나요.
제가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관련 서적들도 많은 편이에요. 지난번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홍보대사를 맡은 배우 한예리 씨가 페미니즘 관련 책을 소개해달라고 하셔서 여러 권을 권해드렸어요. 함께 워크숍도 열었고요. 언젠가 한번은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 찾아온 적도 있어요. 페미니즘에 대해 1도 모르는데 사회문제로 떠오른 여성 혐오에 대해 이해하려면 페미니즘을 공부해야겠다 싶더래요. 독립 서점 중에 제 서점에 페미니즘 서적이 많은 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책을 추천해달라더라고요. 그때 제가 추천해준 책이 〈2016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예요. ‘아이즈’라는 웹진에서 현재 연예계에 여성 혐오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썼던 연재 기사를 엮어서 낸 책인데, 페미니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제격이라고 생각했어요.

작년엔 동화책도 냈다고 들었어요. 어떤 내용인가요.
네 살 때쯤이었나. 자다가 새벽에 깼는데 집에 부모님이 안 계신 거예요. 어린 마음에 ‘나는 버려졌다’는 공포감에 엄마 옷을 입은 채 혼자 펑펑 울다가 결국 기절해버렸죠. 다음 날 아침에 깨어보니 엄마가 “우리 수진이 왜 엄마 옷 입고 잤어?” 하고 해맑게 물으시더라고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제 딴에는 그게 트라우마였나 봐요. 바쁘게 살다가도 그때 일이 문득 떠오르면 엄마에 대해 울화가 치밀어서 눈물을 쏟곤 했으니까요. 어른이 된 후 그때의 이야기를 엄마에게 힘들게 꺼낸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아, 그때? 너 재워놓고 아빠랑 동네 호프집에서 한잔 하고 왔던 거야. 되게 자주 그랬었는데 몰랐니?” 하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어린 시절에 느낀 저만의 기억을 모아 낸 책이 〈이구아나〉 예요. 

책을 쓰고 나니 그때의 상처가 치유되던가요.
치유받겠다고 작심하고 책을 쓴 건 아니었는데, 막상 책을 만들고 나니 마음이 평온해지더라고요. 사람마다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이 있다고 들었는데 제 경우엔 그게 책이었나 봐요. 책을 사신 분들만 들을 수 있는 곡도 담았어요. 가사는 굉장히 직설적이에요. ‘얘들아 모여서 엄마 욕하자’ 이런 식의 가사거든요(웃음). 부모님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신 편이라 엄마와는 띠동갑이에요. 흔히 ‘엄마’ 하면 헌신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저희 엄마는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엄마도 저처럼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세요. 같이 있으면 꼭 언니와 동생 사이 같죠. 간혹 제가 엄마 옷을 꺼내 입으면 “너 왜 내 옷 입어?” 하고 옷장 앞에서 티격태격할 정도로 가까워요(웃음). 엄마도 책을 보시고는 그제야 제 상처를 알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잘 팔리면 좋은데… 실적은 저조하네요.

남들이 봤을 때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일을 원래 잘 벌이는 타입인가요(웃음).
재미있잖아요(웃음). 돌이켜보면 어릴 땐 무모함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공부를 되게 잘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일으키는 타입도 아니었죠. 손들고 발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그냥 자기 세계 안에서 조용히 지내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스물일곱 살 무렵 사고로 동생을 떠나보낸 후 삶에 대한 책임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강박이나 부채 의식 같은 게 있어요. 전에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늙으면 언젠가 닥칠 일 정도로 막연하게만 생각했다면, 이제 죽음은 언제든, 누구에게든, 아무런 이유 없이 맞닥뜨릴 수 있다는 걸 알아요. 어쩌면 그래서 더 후회 없이 살겠다고 생각하나 봐요. 지금은 ‘더 늦기 전에 빨리 해보자’ ‘더 무모하게 살자’ 하고 다짐하죠.



20대의 요조와 지금의 요조가 많이 다르다는 걸 언제 가장  많이 느끼나요.  
20대 때 읽은 책을 30대 때 다시 읽었을 때 그걸 많이 느꼈어요. 일본 소설 〈인간 실격〉이 그 예죠. 20대 초반에 그 소설을 읽고 남자 주인공에 매료됐는데, 그때 그 캐릭터의 이름이 ‘요조’였거든요. 겉으로는 익살스럽게 굴지만 자존감이 낮아서 결국 퇴폐적인 삶을 살다가 나중에 자살을 선택하는 인물인데, 그땐 그 모습이 꼭 저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저 역시도 속으로는 우울하고 슬프면서 겉으로는 실없는 이야기, 우스갯소리를 해대는 스타일이었거든요. 처음에 요조라는 이름을 닉네임으로 사용하다가 이걸로 데뷔까지 하게 됐죠. 그런데 30대가 돼 다시 이 책을 읽어보니 주인공 요조가 그렇게 답답하고 ‘찌질’해 보일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이런 사람을 왜 좋아했지, 싶었어요. 소설 속 요조는 그 모습 그대로인데 아마도 제가 변했으니까 다르게 읽힌 거겠죠. 하지만 제가 변했다는 사실만 인지했을 뿐, 뭐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좋지 않은 내면을 가진 캐릭터인데 제가 그 인물에 예전만큼 이입이 잘 안 된다는 건, 지금의 제가 그때의 저보다 행복한 내면을 가졌다는 긍정적인 해석을 해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 시절엔 왜 내면과 외면의 괴리를 느꼈을까요.
음, 20대 초반에 잠깐 래퍼로 활동하며 힙합 음반을 낸 적이 있어요. 3개월짜리 프로젝트 팀을 만든다고 해 얼떨결에 참여했는데, 그때 래퍼 메이(MAY)라는 이름으로 음악 방송에도 나가고 그랬죠. 회사에선 힙합 가수라면 응당 외모도 강해 보여야 한다는 심산이었는지 저를 뽀글뽀글 파마에 진한 화장까지 시키고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만들더라고요. 그땐 그게 너무 싫어서 대기실에서 혼자 펑펑 울기도 했어요. 결국 얼마 못 가 그만뒀어요. 그런데 얼마 전 중고 서점에 갔다가 그때 냈던 제 사인 CD를 5천원에 팔고 있기에 사서 엄마에게 드렸어요(웃음).

삶에서 가장 큰 도전을 꼽으라면 뭘 고를 건가요. 추구하는 음악 장르를 바꾼 거, 아님 영화를 만든 거, 어쩌면 책방을 낸 것일까요.
아직은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나중에 진짜 큰 도전을 할 거라서요.  

▼요조 씨처럼 다채롭게 살고 싶어요.
어떻게 살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어떤 삶도 점수를 매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멋진 삶, 좋은 삶에 대한 답은 없어요. 지금 산다는 것 그 자체가 100점이에요.


사진 김참 디자인 김영화 제품협찬 더센토르(02-517-9017) 마티아스(010-5053-6562) 보브(1644-4490) 부리(02-2201-8321) 비비안웨스트우드(1899-6407) 알도(1688-5501) 자라(02-3445-6165) 제이쿠(02-511-2017) 지컷(1644-4490) 코스(02-3446-4820) 타라자몽(02-771-2500) 푸시버튼(02-797-1258) H&M(1577-6347) 헤어 오종오 메이크업 이숙경 스타일리스트 박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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