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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벌써 지쳐버린 당신의 마음을 달래 줄 인문학 책 6

문영훈 기자

2023. 02. 08

새해 첫 주, 종합 베스트셀러 리스트에서 담담한 위로와 삶에 대한 찬사를 전하는 인문학 서적을 골랐다.

인생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면

지난해 연말부터 베스트셀러 순위를 장악하고 있는 두 에세이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은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박사가 마흔 살이 된 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하는 책이다. 그는 마흔 살까지 인생을 숙제처럼 살았다고 고백하는데, 마흔세 살에 파킨슨병에 걸리며 모든 게 달라졌다. 파킨슨병은 뇌 속 도파민계 신경이 파괴되면서 움직임에 장애가 나타나는 질환이다. 저자는 코앞의 화장실을 가는 데도 5분 넘게 걸리는 생활에 절망하다가도, 이렇게 삶을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니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투병기만을 담은 이야기는 아니다. 30년간 현업에서 일해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답게 일상의 많은 고민에 대한 해답을 준다. 왜 시험기간에 공부를 제외한 다른 것들에 의욕이 넘치다가 일순간 그 욕구가 사라지고 기존의 삶을 반복하는지, 왜 우리는 과거의 불행이나 좌절에서 벗어나기 힘든지 같은 궁금증을 해갈해준다.

두 번째 에세이 역시 인생에서 중요한 변곡점을 지나본 이가 쓴 책이다. 누구나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는 무위의 삶을 상상해보지만 현생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저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스물여섯 살에 다국적기업에서 최연소 임원으로 지명됐지만 사직서를 내고 태국으로 향한다. 그는 책에 태국에서의 수도 과정, 17년간의 수양을 마치고 스웨덴으로 돌아와 전한 가르침, 2018년 루게릭병을 진단받고 4년 뒤 죽음을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이 책은 모두가 인생의 진리를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어떤 방식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위로하는 힐링 에세이는 아니다. 책의 제목은 저자가 태국에서 만난 첫 번째 주지인 아잔 파사노 스님에게서 받은 가르침에서 따왔다. 스님은 저자에게 ‘마법의 주문’을 알려주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 박미경 옮김 / 다산초당
(예스24 2위, 교보문고 12위, 알라딘 10위)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지음 / 메이븐
(예스24 1위, 교보문고 2위, 알라딘 3위)


문학이 주는 위로와 해학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4년 만에 발표한 신작에서 시를 꺼내 들었다. 25편의 시에 대한 이야기와 평이 담긴 ‘인생의 역사’다. 그의 말을 빌리면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예술”이다. 시는 사실 어디에나 있다. 시민들이 쓴 시가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에도 붙어 있고, 친구가 보낸 문자 한 구절에 감동받는다면 그것 또한 시다. 하지만 ‘한국어의 달인’인 저저가 꼽은 시는 다르다. 아니, 그 전에 그가 차려놓은 목차부터 5연 25행으로 된 시 같다. 고통과 사랑, 죽음과 역사, 그리고 인생을 주제로 다섯 챕터를 만들었다. 각 챕터 아래엔 각각 5개의 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저자는 글 사이사이에 어떤 순간 각각의 시를 읽으면 좋은지를 써두었다. “언어에 대한 환멸이 심해질 때마다 약을 구하듯 돌아가며 읽는 책이 몇 권 있다”며 릴케의 시선집 ‘두이노의 비가’를 소개한다. “세상 혹은 자기와 싸우다 패배하여 자책과 회한의 날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는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를 추천한다. 기자의 추천은 윤동주의 시에 관한 챕터. 한국인이라면 모르기 힘든 유명한 시인이지만, ‘서시’ 말고는 그의 작품이 번뜩 떠오르지는 않는다. 이 챕터를 읽고 나면 윤동주가 친구 강처중에게 써 보낸 ‘사랑스런 추억’이라는 시를 새롭게 알게 될 것이다.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한다. 전직 빨치산이자 일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다 죽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벌어지는, 사흘과 아버지에 대한 회상을 딸의 시점에서 쓴 소설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떠오르는 비장한 시작에 거부감이 생겼다고 해서 물러서면 후회한다. 바로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유머가 빗발친다. 쏟아지는 질척한 전라도 사투리 속에서 정말 크게 웃을 수도, 울 수도 있는 작품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빨치산 아버지가 농사일에 지쳐 고작 2시간 고추밭을 매다 맥주 컵에다 소주를 따라 원샷한 스토리 같은 ‘웃픈’ 이야기의 향연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 정운창은 실제로 2008년 세상을 떠났다. 감히 짐작해보건대, 이 책이 14년이나 지나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슬픔을 해학으로 승화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의 역사
신형철 지음 / 난다
(알라딘 16위)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예스24 6위, 교보문고 9위, 알라딘 2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2022년 2월 ‘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던 이어령 선생이 타계했다. 어느덧 1주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김지수 조선비즈 기자가 그와 가진 16번의 만남과 대화를 기록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여전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라가 있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선생의 말은 자신 앞에 다가온 죽음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해 예술, 글과 언어, 철학과 기호학으로 뻗어나간다. 기자는 주말 아침 개운한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이 책을 꺼낸다. 서울 평창동 자택의 소파에 앉아 조곤조곤 말을 건네는 이어령 선생과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선생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김지수 기자를 상상하면 마음이 청명해진다. 타계 전 이어령 선생은 김 기자를 다시 자택으로 불렀다. 그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은 “글로 써주게. 사람들에게 너무 아름다웠다고, 너무 고마웠다고”였다.

대학 시절,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듣고는 호기롭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샀다가 50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책장 안으로 넣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굳이 니체의 원전을 읽을 필요가 있겠는가. 니체 전집 21권을 모조리 섭렵한 장재형 세렌디피티 인문학 연구소 대표가 일목요연하게 사후 123년이 지나도 여전히 회자되는 니체의 정수 25개를 꼽아 떠먹여 준다.

책 ‘마흔에 읽는 니체’ 25개의 장은 이렇게 구성돼 있다. 니체의 저서 ‘이 사람을 보라’ ‘아침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등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골라 냅다 던진 뒤, 니체가 당시 이 책을 쓸 때 처해 있던 상황과 그의 가르침을 요약하는 것. 마음을 관통하는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면 역으로 니체의 원전에 도전해보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이 책을 읽고, 먼지가 쌓여 있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책장에서 꺼내고 싶어졌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지음 / 열림원
(예스24 44위)


마흔에 읽는 니체
장재형 지음 / 유노북스
(교보문고 14위)


#베스트셀러 #2023년 #새해첫주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난다 다산초당 메이븐 열림원 유노북스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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