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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광화문 직장러의 점심 도시락 6개월 도전기

권유정 LG생활건강 마케터

2023. 02. 07

학창 시절 엄마가 싸주던 도시락을 내가 직접 쌀 줄 몰랐다. 긴 시행착오 기간을 지나 동료들과 포틀럭 파티를 하는 ‘도시락 만렙’이 되기까지. 반년간 싸 온 점심 도시락 이야기다. 

지난해 여름, 끝을 모르고 오르는 물가와 내 몸무게 때문에 도시락을 싸기로 결심했다. 처음 광화문에서 일을 시작할 땐 주변에 맛집이 많다는 사실이 좋았지만 갈수록 1만 원 한 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런치플레이션이 벅차게 느껴졌다. 엥겔지수와 함께 늘어나는 뱃살을 보며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Lev 1. 도시락 초보의 우당탕탕 밥하기

첫 각오는 대단했다. 도시락을 싸다니겠노라 결심한 순간 바로 네이버에서 ‘직장인 도시락통’부터 검색했다. 학생이 들고 다닐 법한 유치한 디자인은 피하고 싶었다. 적당히 모던하고 세련된 디자인이면서 가방에 쏙 들어갈 만한 콤팩트한 크기여야 했다. 당연히 집에도 도시락으로 적합한 용기가 있긴 했지만 예쁜 도시락이 있으면 더 열심히 싸서 다닐 거라고 생각했다.

도시락통 주문을 마친 뒤 마켓컬리에 들어가 장을 봤다. 평소에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관심 있던 식재료들을 왕창 샀다. 카드 결제 내역이 문자로 도착하고 나자 이미 도시락 라이프를 1년 정도는 한 것 같은 뿌듯함이 찾아왔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저거 얼마나 가겠냐”며 우려했지만 나는 “두고 보라”고 큰소리를 쳤다.

모두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본 도시락은 예쁘고 맛있어 보였지만 레시피가 그만큼 복잡했다. 퇴근 후 녹초가 돼 널부러져 있는 내게 많은 준비가 필요한 요리를 하거나, 개수대에 쌓인 조리도구를 설거지할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쟁여놓은 식재료는 냉장고에서 썩어갔다. 새로 산 예쁜 도시락통에 물기가 묻을 일은 없었다. “역시 1인가구는 밖에서 사 먹는 게 더 싸” 이렇게 스스로 합리화하기에 이르렀다.

Lev 2. 프로 도시락러로 레벨 업

도시락통을 찬장에서 다시 꺼낸 건 회사 동료들 덕분이다. 평소 운동과 식단에 관심이 많은 회사 친구들이 밖에서 사 먹는 대신 다 같이 도시락을 싸서 함께 먹자고 제안했다. 이미 실패의 쓴맛을 본 나는 조금 망설였지만 응하기로 했다. 친구들과 함께라면 재밌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지난가을부터 시작한 도시락 라이프는 현재진행형이다. 출근길 도시락을 챙기는 게 익숙해진 지 어느새 6개월, 이제는 꽤 스킬이 늘었다. 지속 가능한 도시락 라이프를 위해 몇 가지 팁을 소개한다.



첫 번째, 일주일 치 식단표를 짠 다음 장을 보는 게 좋다. 중요한 건 주문한 식재료가 남지 않도록 재료가 겹치는 메뉴를 선정하는 것. 예를 들면 닭 가슴살은 샐러드 재료로도 쓰일 수 있고, 식빵과 함께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토마토도 도시락에 적합한 식재료다. 밥과 달걀을 더해 볶으면 토마토 달걀볶음밥이 되고, 가지와 치즈를 더하면 라자냐를 만들 수 있다.

1인가구라면 한 번에 이것저것 다양한 재료를 샀다가 고스란히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넣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최대한 적은 재료로 여러 가지 요리를 구상해보도록 하자. 네이버나 유튜브에 식재료 이름을 나열해 검색하면 그 재료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레시피가 나온다.

구입처별 장단점을 파악해 알맞은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도 프로 도시락러에겐 기본이다. 마켓컬리는 특별한 식재료가 필요하거나 가공품을 소량으로 구매하고 싶을 때 이용하면 좋다. 대신 4만 원이 넘지 않으면 배송비가 붙는다. 쿠팡 와우 가입자라면 배송비 부담 없이 대부분의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 다만 쿠팡에서는 가공품은 대용량으로만 구매 가능하다. 냉동식품이거나 오래 보관이 가능한 식재료를 구입할 때 이용하자.

동네 마트도 소중한 구입처다. 특히 내일 당장 먹고 싶은 요리가 있거나 소량 구매가 필요할 때 용이하다. 평소 마트 구경을 즐겨 대략적인 물가를 파악하고 있다면 일부 품목은 인터넷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물론 침대에 누워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단점. 또 식재료에 따라 유명한 플랫폼이 있다. 훈제 연어 등 해산물에 특화된 곳이나 특별한 향신료와 소스를 구입할 수 있는 곳 등이다. 유명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맛있는 재료로 레시피에 특별함을 더할 때 이용할 것.

Lev 3. 주변 자산 이용해 ‘도시락 만렙’ 되기

권유정 씨가 평소 챙겨 다니는 점심 도시락(왼쪽). 회사 동료들과 함께 포틀럭 파티를 열기도 한다.

권유정 씨가 평소 챙겨 다니는 점심 도시락(왼쪽). 회사 동료들과 함께 포틀럭 파티를 열기도 한다.

이제는 스스로 ‘도시락 만렙’이라고 자부한다. 도시락 라이프에 익숙해졌다면 응용 스킬로 나아갈 차례다. 우선 회사에 전자레인지가 있다면 좀 더 편하게 도시락을 먹을 수 있다. 메뉴를 따뜻하게 즐기는 것은 물론 바쁠 때 사실상 원재료에 가까운 음식들만 챙겨와서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가령 아침에 냉장고에서 냉동 밥과 닭 가슴살만 후다닥 꺼내올 수 있다면 편의점 김치에 전자레인지 스킬을 더해 ‘탄단지(탄수화물·단백질·지방)’를 고루 갖춘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원칙은 점심 도시락에도 적용된다. 도시락 동료가 있다면 함께 포틀럭(potluck) 파티를 열어보자. 내 경우에 처음 시도한 메뉴는 비빔밥이다. 나를 포함한 회사 동료 4명과 양푼, 밥, 나물, 달걀프라이를 각자 준비해와서 비벼 먹었다. 첫 시도는 대성공. 너무 맛있어서 여분으로 준비한 밥까지 탈탈 털어 비벼 먹었다. 메뉴는 점점 더 진화해 동료들과 월남쌈을 싸 먹기도 하고, 다른 종류의 샌드위치를 싸와 나눠 먹기도 했다. 메뉴를 정한 뒤 할 일을 분배하고, 각자 맡은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을 사진을 찍어가며 공유하는 그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 혼자 준비하기 어려운 다양한 식재료와 메뉴를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도 누리면서 말이다.

아직도 도시락을 시도해볼지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도시락 전후로 달라진 삶을 공유하고 싶다. 우선 식비가 절감된다. 요즘 점심을 밖에서 해결하려면 한 끼에 1만 원에서 1만5000원 정도의 예산을 잡아야 하지만 도시락은 한 끼에 4000원 정도의 식재료로 해결할 수 있다. 하루만 생각하면 적은 돈이지만 모이면 꽤 쏠쏠하다. 직접 구매한 좋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기 때문에 건강도 챙길 수 있다. 도시락을 싸다닌 뒤 몸도 훨씬 가벼워졌고 점심시간이 끝나면 찾아오는 기분 나쁜 배부름과 졸림에서도 해방됐다.

마지막으로 비건과 친환경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잘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비건에 관심을 가졌지만 점심 외식을 하며 이를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도시락을 싸다니면서 비건 만두, 비건 소스와 같은 식재료를 구매해 도시락을 만든다든가 일회용 식기류 사용을 줄이는 식으로 조금이나마 친환경을 지향하고 있다. 이제 도시락은 나에게 식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건강한 나를 만들어가겠다는 약속이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추억이고, 내 삶과 세상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이다. 이제 내일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러 가야겠다.

#직장인칼럼 #도시락 #권유정 #여성동아

난이도별 건강하고 맛있는 도시락 레시피

초급 두부면 라구 파스타
준비물 | 비건 라구 소스 1팩, 두부 면, 삶은 달걀
① 라구 소스, 두부 면, 삶은 달걀을 함께 챙긴다. ② 비벼 먹는다.

중급 아보카도 낫또 계란밥
준비물 | 밥 1인분, 아보카도 1/2개, 달걀·낫토 1개씩, 간장 1작은술
① 아보카도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달걀은 부친다. ② 밥 위에 낫토, 아보카도, 달걀프라이를 얹어 도시락통에 담는다. ③ 간장을 뿌려 비벼 먹는다.

고급 가지 라자냐
준비물 | 토마토·가지 2개씩, 마늘 8개, 양송이 3개, 피자치즈 적당량
① 토마토, 양송이, 가지, 마늘을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② 토마토에 마늘을 더해 물기가 사라질 때까지 자작하게 볶는다. ③ 슬라이스한 가지와 양송이는 에어프라이어에 5분 정도 굽는다. ④ 가지, 토마토 볶음, 양송이 순으로 2층으로 쌓은 뒤 피자치즈를 뿌린다. ⑤ 치즈가 노릇해질 때까지 에어프라이어에서 15분 정도 굽는다. ⑥ 도시락통에 담는다. ⑦ 데워 먹는다.


권유정
LG생활건강 뷰티사업부 6년 차 마케터.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다. ‘작심한달’이 잦은 편이지만 비교적 꾸준히 실천하는 건 필라테스, 도시락 그리고 술.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권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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