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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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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지금 화두는 ‘성장’ 아닌 ‘생존”

김현미 기자

2022. 11. 28

취임 100일 만에 중소벤처기업부를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할 제1 부처로 만들겠다고 당차게 선언한 여성 장관. “중기부 행사는 다 재밌다.” 소문난 잔치에 기업도 소비자도 행복하게 만드는 마법. “장관님 ‘크리스마스 마켓’은 또 뭔가요?”

“아, 내가 좋아하는 ‘과학동아’!”

이영(53)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빼앗긴 것은 ‘과학동아’ 포스터였다. 소녀 시절 이영은 순정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 대신 ‘로보트 태권V’에 열광했다. “빰빠바 빰빰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로 시작하는 만화영화 주제가를 들으면 지금도 가슴이 뛸 만큼. 한 달에 한 번 발간되는 ‘과학동아’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외계 생명체나 우주 탐사에 관한 기사가 있으면 책장이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읽었고, 과학 잡지 단골 부록인 태양계 대형 브로마이드로 벽면을 채웠다.

유난히 큰 키로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또래 남자아이들도 거뜬히 이기는 출중한 운동 실력에, 새로운 일에는 늘 앞장서며 온갖 푼수짓과 농담으로 배꼽을 잡게 만드는 그의 주변에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수학과 과학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물리학과에 진학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물리학상을 받겠다는 야심만만한 소녀는 거칠 게 없었다. 하지만 고교 진학 후 건강 문제로 1년을 휴학하면서 스텝이 꼬였다. 친구들이 먼저 졸업해버린 학교를 다니며 말수가 준 대신 생각이 많아졌다. 투병 생활로 약해진 몸을 감안해 수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이것이 신의 한 수였다. 수학을 전공한 덕분에 암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됐고, 암호학은 디지털콘텐츠 보안 솔루션 기업 ‘테르텐’ 창업(2000년 7월)으로 그를 이끌었다.

중소기업에서 소상공인까지, 발에 땀나는 중기부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비례대표 초선의원 이영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낙점했다. 1세대 여성 벤처기업 창업가이자 벤처기업인 출신 첫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탄생. 5월 16일 장관 취임사에서 그는 “4차 산업혁명, 융합의 시대에 중소벤처기업과 소상공인이 신산업 창출과 경제성장의 당당한 주역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제 모든 역량과 경험을 쏟겠다”고 했다. 8월 20일 취임 100일을 맞아서는 “중기부가 정부 직제상 열여덟 번째 부처가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할 제1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저력과 가능성을 확인한 기간”이라며 “성과와 결과로 보여드리는 일들을 현실로 증명해낼 것”이라고도 했다. 취임 6개월을 맞은 이영 장관을 만났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17년 7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외청인 중소기업청에서 부로 격상된 신생 부처인데, 지난 6개월간 경험한 중기부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과장이 아니라 중소벤처기업부가 하는 일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비가 오면 침수될까 걱정, 폭풍이 오면 공장 지붕이 무너질까 걱정, 금리가 오르면 기업 신용도가 떨어져 대출 못 받고 직원들 월급도 못 줄까 걱정. 그 와중에 혁신기업들을 글로벌 마켓으로 보내는 것도 저희 임무죠. 오전엔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을 위한 행사(중기부가 지원한 ‘벤처창업기업 아카데미’ 첫 수료생과 기업 간 매칭 행사)에 다녀왔어요. 소프트웨어라고 하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일이라고 생각할 분도 있겠지만 요즘은 모든 기업이 디지털 소프트웨어 인력을 필요로 해요. 그리고 3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 중인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연말 종료) 상황 점검차 영세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대표들과 간담회를 하고 왔어요. 기업인들은 코로나19로 외국 인력 입국 규모가 줄어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까지 종료되면 마땅한 대책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 급격한 금리 상승, 고환율, 고물가 등 복합 위기를 겪고 있는 중소벤처기업과 소상공인의 금융 애로 청취 및 정책 지원 방안을 논의하는 간담회도 열었습니다.



중소기업(자산 총액 5000억 원 미만 기업)부터 1인기업까지, 전통시장 소상공인부터 스타트업까지 중기부가 담당해야 할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 업무 파악도 쉽지 않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중소기업이든 벤처기업이든 소상공인이든 하나의 공통점이 있어요. 돈을 벌어야 한다. 직원들 급여를 줘야 한다. 경기가 둔화되고 악화되면 힘들어진다. 금융이 먼저 조여온다. 그 와중에 판로를 개척해야 한다. 기본 공식은 똑같아요. 중기부는 그런 기업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곳이죠.

새 정부 출범 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광장에서 열린 첫 행사가 ‘2022년 대한민국 중소기업인 대회’(5월 25일)였고, ‘여성기업주간’ 개막식(7월 5일)에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등 중기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소문입니다. 특별히 중기부에 당부한 과제는 무엇입니까.

신산업 육성과 소상공인의 완전한 회복 2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중소기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허리다. 디지털 대전환의 시기에 벤처기업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한 만큼 벤처기업, 스타트업이 신산업을 이끌도록 하라. 둘째, 코로나19 시기 3년을 관통하면서 소상공인들이 입은 피해를 최소화해 재기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 일단 대통령께서 소상공인에 대해 애정이 많으세요. 특히 전통시장을 좋아하셔서 여러 차례 모시고 갔는데 그때마다 전통시장의 디지털화, 현대화를 강조하셨습니다.

장관이 되자마자 첫 미션이 ‘소상공인 손실보전금’ 지급이었는데 이틀 만에 대부분 지급이 완료돼 벤처기업인 출신 장관은 역시 다르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손실보전금이야말로 소상공인의 완전한 회복과 새로운 도약을 뒷받침하는 새 정부 1호 국정과제였죠. 이번에 371만 개 사업체에 23조 원을 지급했는데 2020년 이래 7차례 지급된 재난지원금 총액의 73%에 해당하는 역대 최고 규모였습니다. 일부에서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앞당겨 지급한다고 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시기를 늦추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앞서 7차례 지급하면서 시스템 장애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아서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면 여론만 나빠진다는 우려에서였죠.

그러나 지난 3년을 버텨온 소상공인들의 고통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해 “중기부가 책임지겠다”고 하고 5월 30일부터 신청을 받았습니다. 신청 후 3시간 안에 입금인데 시스템 장애 한 건 없이 이틀 만에 17조 원이 지급됐고, 6월 2일까지 약 20조 원이 지급됐습니다. 취임 2주 만에 한 일이니까 운도 따랐다고 봐야죠. 다만 시스템의 동시접속과 부하 문제는 철저히 점검했습니다.

9월 첫째 주에 진행된 ‘7일간의 동행축제’가 엄청난 매출을 올려 놀랐다고 합니다. 비결이 뭡니까.

이 행사의 취지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제품의 판로를 열어준다는 건데, ‘동행세일’이라고 하면 그저 그런 제품을 싸게 파니 사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그럴 필요 없다는 거죠. 원래 7월에 열리는 행사인데 위약금 물어주면서 취소하고 콘셉트부터 다시 잡았어요. 중소기업·소상공인 제품만으로는 브랜드파워가 약하니 대기업들과 컬래버(협업)를 하자. 이게 성공하지 않으면 매출은 안 일어난다고 했어요. 명칭을 ‘동행축제’로 바꾸고 22개 대기업과 플랫폼 기업들을 설득해 행사에 들어오게 했죠. 그리고 그들의 유통망을 활용해 중소기업 제품을 널리 알리고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 ‘소비’라는 엔진이 멈추지 않도록 함께 나누는 진정한 상생의 장으로 만들었죠. 소비자 반응이 엄청나게 좋았어요. 일주일 만에 온오프라인에서 22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고 그와는 별개로 온누리상품권 3000억 원어치가 팔렸어요. 그 상품권이 언젠가는 전통시장에서 쓰일 테죠. 동행축제에 참가한 한 청년 창업가가 하루 만에 마카롱 1000만 원어치를 팔았다고 하더군요.

중기부가 대기업과 손잡고 행사를 한다는 발상이 흥미롭습니다.

처음엔 중기부 내에서도 저항이 있었죠. 중소기업·소상공인 제품을 팔아주기 위한 행사인데 대기업 제품이 섞이면 순수하지 않다는 거죠. 제 생각은 달라요. 중소기업 제품을 더 많이 팔 수만 있다면 대기업이 아니라 해외 기업도 들어오게 해야 한다고 했죠. 이런 취지에 제일 먼저 롯데그룹이 적극 공감해주셨고, 행사가 끝난 뒤 대기업과 플랫폼 기업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많이 팔렸다’였어요. 이것이 진정한 상생이죠. 내년엔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겁니다.

12월에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도 동행축제와 같은 흥행을 기대해도 될까요.

지난해까지 홍대 거리에서 열리던 행사를 올해는 전국 주요 KTX 역 등과 협업해 전 국민 소비 축제로 기획했습니다. 즉, 기차 역사가 앵커숍이 되고 나머지는 대형 유통 채널을 통해 파는 거죠. 크리스마스 시즌이어서 바자회도 함께 열립니다. 경제인 단체, 여성 기업인들에게 두루 연락해 자발적 동참을 요청하고 있고 소상공인들도 참여 의사를 밝히면 현수막과 휘장 등을 제공합니다. 소비자가 기꺼이 지갑을 열 만큼 매력적인 제품들을 구성해서 그날(12월 16~25일) 벼르고 별렀다가 사게끔 할 겁니다. 사주는 게 아니라 사고 싶은 행사로 만들자는 거죠. 제가 (물건을) 팔아봤잖아요.

청년들이여, D랭귀지와 수학으로 승부하라

지난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 스타트업 서밋’의 주요 성과는 무엇입니까.

한국과 미국의 창업 생태계를 연결해 K-스타트업이 미국에 진출할 발판을 마련하자는 취지였는데 사전 작업을 좀 했습니다. 원래는 스타트업 서밋, 한류 콘서트, K-브랜드 엑스포가 따로 개최될 예정이었는데 이 행사를 뉴욕 한자리로 모았어요. 한류 콘서트 보러 온 사람이 기다리다가 중소기업 제품도 구입하고, 엑스포에 온 바이어가 스타트업 서밋 피칭(스타트업이 자신의 사업 아이템을 소개하는 것)도 보고요. 미리 삼성 출신 기업가들의 모임인 ‘엑스삼성’을 통해 해외 바이어들을 유치하고 VC(벤처 투자가)까지 소개받아 우리 중소기업이 현장에서 투자 확약을 받는 실질적 성과도 거뒀습니다. 참여 기업 38개 사가 IR·피칭을 진행했고 VC·대기업과의 미팅도 48건이 이뤄졌습니다.

한미 스타트업 서밋이 윤 대통령의 미국 뉴욕 순방 중 열려 직접 참석을 기대했으나 무산된 점을 아쉬워하셨는데요.

대신 대통령께서 귀국 후 참여 기업인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해외 순방 때마다 기업인들을 자주 모시고 함께 나가겠다. 제가 중소벤처기업의 세일즈맨이 되겠다”고 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참여 기업인들이 한목소리로 “이번 행사는 정말 가볼 만했다”“희망이 생겼다” “짧은 시간 안에 매우 많은 바이어랑 네트워크를 확산할 수 있었다” “다음에도 중기부가 무슨 행사 한다고 하면 1차로 가겠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중기부도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해외 네트워크를 계속 확대해갈 예정입니다.

지난 7월 여성기업주간이 열렸는데 여전히 ‘여성’을 앞세운 행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가 차라리 여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싶어요. 여성 장관이 여자만 챙긴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요. 그럼에도 자원이 사람밖에 없는 우리나라에서 100%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자원은 여성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요즘 남녀 불평등이 어디 있냐고 반문하는 남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요. ‘1박 2일 지방 출장, 누구랑 가시겠습니까?’ ‘4박 5일 외국 출장, 딱 둘만 가야 하는데 누구랑 가시겠습니까?’ ‘미혼의 젊은 여성에게도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저는 이것을 ‘산소 같은 불평등’이라고 불러요. 보이지는 않는데 어디에나 존재하는 산소 같은 기회의 불평등. 우리 세대에서 해결해야죠.

내년 상반기 중기부의 당면 과제는 무엇입니까.

누구도 입에 올리기 두려워하지만 지금 가장 큰 화두는 ‘생존’이에요. 가장 무서운 상대는 강한 적이 아니라 ‘불확실’이라는 적이에요. 금리, 환율, 원자재 가격 상승, 경기침체, 대전환. 하필 이 모든 어려움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는데 기업들은 사업 전환까지 요구받고 있는 불확실의 시대죠. 대출금리 인상에 따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고,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고, 중국 중심의 수출 시장 다변화도 해야 합니다. 제가 기업을 해봤잖아요. 지금은 성장 시나리오보다 플랜 B, 플랜 C를 가동해야 합니다. 내년 상반기가 경기 저점일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맞기를 희망하며 하반기에 상승세를 탈 수 있도록 생존과 성장에 대한 원초적 정책들을 점검하고 추진해갈 계획입니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창업과 관련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기업인들끼리는 “갑오경장 이후 경기가 좋은 적은 없다”는 농담을 해요. 지금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디지털입니다. 이것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가장 잘하는 분야 중 하나이고 청년들이 잘하는 분야입니다.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예요. 본인이 하고 싶은 것, 공부든 취미든 창업이든 기술개발이든 혼신의 힘을 다해 하루하루 매진하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겁니다.

끝으로, 수학을 전공한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까.

많은 사람이 수학을 계산이라고 생각하지만 사고력 훈련입니다. 석사 과정에 들어가면 N차원에서 방정식을 풀어요. 3차원에서 사는 사람이 N차원에서 방정식을 푼다는 것은 다양한 사고력 훈련을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영어를 잘하면 먹고살았지만 디지털 대전환의 시기에는 D랭귀지(디지털 시대 언어)를 하는 사람이 살아남습니다. D랭귀지를 구사하면 어떤 새로운 변화가 오든 적응력을 높일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미래에 기회를 잡고 싶다면 부전공이라도 수학을 하라고 권합니다.

#이영 #중기부장관 #대전환의시대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중소벤처기업부 헤어&메이크업 박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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