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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배우 박은빈과 ‘우영우’의 필연적 만남

윤혜진 프리랜서 기자

2022. 07. 19

배우 박은빈이 연기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변호사 우영우는 한없이 사랑스럽고 당당하다. 제작진이 박은빈을 캐스팅하기 위해 1년 넘게 기다렸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신생 채널이나 마찬가지인 ENA에서 0.9%의 미약한 시청률로 시작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회를 거듭할수록 무서운 기세로 상승 중이다. 세계 최대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 집계에 따르면 방영 2주 만에 비영어권 드라마 시청 시간 1위를 기록하는 등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유럽, 남미권 언어로도 속속 공개되고 있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돌풍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이에 방영 초반부터 해외에서 리메이크 러브 콜이 쇄도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동시에 가진 우영우가 업계 2위 법무법인 한바다에서 다양한 사건들을 해결하며 진정한 변호사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우영우는 서울대 로스쿨 수석 졸업생이지만 회사 건물 회전문을 통과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의뢰인으로부터 우영우를 변호인단에서 제외해달라는 굴욕적인 요청을 받기도 한다. 산 넘어 산인 현실에 부딪힐 때마다 우영우는 창의적인 발상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그런 우영우의 순수한 매력에 시청자들이 푹 빠졌다.

자폐 이론 공부한 배우, 1년 넘게 기다린 제작진

워낙 캐릭터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우영우를 연기한 박은빈(30)의 진심이 담긴 덕분이다. 박은빈은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처음 대본을 읽는데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어요. 섣불리 선입견을 갖고 다가갈 순 없잖아요. 이런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괜찮은 건지 의문도 생겼고요. 그래서 제가 찾은 해답은 연기를 한다기보다 영우의 진심을 먼저 알아봐 주는 거였어요. 영우의 진심과 내 진심을 더해 보는 분들이 영우의 마음을 느껴주셨으면 좋겠다는 게 기본 바탕이 됐어요.”

장애를 소재로 다룬 작품은 많다. 최근만 해도 다운증후군을 가진 정은혜 작가가 출연해 울림을 준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있고, 자폐 장애 진단을 받은 의사가 주인공인 KBS ‘굿 닥터’도 2013년 방영 당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자폐의 정확한 진단명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이고, 스펙트럼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자폐인은 천차만별”이라는 극 중 우영우의 대사처럼 기존의 캐릭터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박은빈은 일부러 다른 작품을 참고하지 않았다. 대신 자문 교수를 직접 만나며 자폐 이론을 공부했다. 서강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박은빈은 평소에도 캐릭터에 접근할 때 인물의 내면에 집중하는 편이다.

“미디어를 통해 구현된 바 있는 캐릭터나 실존 인물을 은연중에 기억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하게 될까 봐, 내 연기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될까 봐 신중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텍스트로 공부했는데,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네 가지 진단 기준이 도움이 됐어요. 저보다 감독님과 작가님이 오랜 시간 준비하셨죠. 모두가 불편하지 않게 심사숙고해주신 결과물이 대본에 담겨 있었어요.”



박은빈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칭찬의 공을 제작진에게 돌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영화 ‘증인’의 문지원 작가가 대본을 쓰고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유인식 감독이 연출했다. 문 작가와 유 감독의 뚝심이 없었다면 박은빈은 ‘우영우’라는 인생 캐릭터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작품 대신 KBS 드라마 ‘연모’ 출연을 결정한 박은빈을 캐스팅하기 위해 제작진이 1년 넘게 기다렸기 때문.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어느 하나 거슬리지 않고 잘해낼 수 있을지 두려워 여러 번 고사했다”는 박은빈을 제작진은 기다렸고, 박은빈은 그 믿음에 연기로 보답했다.

제작발표회 당시 유인식 감독은 박은빈에 대해 “정돈하고 준비해서 연기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수줍고 사려 깊은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돌변하더라”며 “번뜩이는 직관력을 박은빈 배우에게서 봤다”고 칭찬했다.

2009년 MBC ‘선덕여왕’에 출연한 아역 배우 시절의 박은빈.

2009년 MBC ‘선덕여왕’에 출연한 아역 배우 시절의 박은빈.

아역 배우 출신인 박은빈은 인생의 대부분을 카메라 앞에서 보냈다. 1996년 만 네 살에 아동복 모델로 데뷔해 2년 뒤 SBS ‘백야 3.98’로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했다. 이후 KBS 드라마 ‘무인시대’,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와 ‘선덕여왕’ 등에서 기본기를 닦았다. 2002년 전 국민적 인기를 얻은 KBS 예능 ‘개그콘서트’ ‘수다맨’ 코너에서 “도와줘요 수다맨”을 외치던 바로 그 소녀이기도 하다.

박은빈이 본격적인 성인 연기자로 등장한 시기는 TV조선 드라마 ‘프로포즈 대작전’이 방영된 2012년. 이후 MBC 드라마 ‘구암 허준’, SBS 드라마 ‘비밀의 문’을 거쳐 2016년 JTBC 드라마 ‘청춘시대’의 ‘송지원’ 역할로 ‘박은빈의 재발견’이란 평가를 받았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KBS ‘연모’까지 3연타를 기록한 박은빈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쐐기 홈런을 날렸다.

그야말로 거침없는 상승세다. 인기를 느낄 틈도 없이 바쁘다는 박은빈이 이러다 지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면 그건 기우다. 과거 인터뷰에서 박은빈은 연기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연기는 나의 소통 방식이다. 에너지를 뺏기기도 하지만 연기를 통해 에너지를 다시 채우고 비우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답한 바 있다. 그래서 일을 안 할 때는 방전된 배터리처럼 전원을 끄고 철저한 집순이가 되어 삶의 균형을 맞춰나간다고.

무엇보다 박은빈은 연기에 진심이다.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바이올린 전공 늦깎이 음대생 역할을 보다 실감 나게 연기하기 위해 6개월간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연습한 박은빈은 이 작품으로 2020년 S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수상 소감을 전하는 자리에서 박은빈이 한 말은 “고생이 많았다”가 아닌 “다섯 살에 연기를 시작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내가 연기를 굉장히 많이 사랑하고 있구나’를 깨달았다”였다.

덕분에 당분간 박은빈의 전원은 계속 켜져 있을 듯하다. 다양한 작품들이 ‘대세 배우’에게 쏟아지고 있다. 이 중 박은빈은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로 로맨틱코미디를 꼽았다. 이유는 “지금 나이에 보여줄 수 있는 예쁜 역할을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어서”다. ‘우영우’ 역할로 박은빈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배우인지는 증명이 됐고, 매번 인생 캐릭터를 경신해온 박은빈이 또 어떤 연기를 선보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박은빈은 볼수록 낯설어지는 이상하고 특별한 배우다.

#이상한변호사우영우 #박은빈 #자폐스펙트럼장애 #여성동아

사진제공 MBC 태왕사신기 JTBC 청춘시대 캡처 나무엑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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