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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woman

대통령의 재단사 손미현 페르레이 대표

오홍석 기자

2022. 06. 27

인터뷰 전날밤 9시 52분 손미현 페르레이 대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밤늦게 죄송하지만 이제 퇴근해서 질문지를 확인하려는데 파일이 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재단사로 알려진 그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차에서 내려 연단으로 걸어가는 윤석열 대통령을 먼발치에서 한 여성이 ‘매의 눈’으로 지켜본다. 윤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착용한 남색 양복을 만든 손미현(33) 페르레이 대표다. 손 대표가 운영하는 페르레이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당내 경선부터 대선 기간 입었던 양복 다섯 벌을 제작했다. 대선 결과 당선이 확정된 뒤 김건희 여사는 남편의 특별한 날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한 정장을 한 벌 더 주문했고, 윤 대통령은 그 양복을 입고 취임 연설을 했다.

취임식 이후 대통령의 옷을 만든 재단사가 30대 여성이라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대통령의 옷을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 고객으로 만난 대통령 내외는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싶어 그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손 대표를 만난 곳, 페르레이 공방은 서울 성북동 뒷골목에 위치해 있다. 손 대표에 따르면 양복점은 부자재 시장이 있는 동대문시장에서 멀리 떨어지기 어렵다고 한다. 스무 평(66㎡) 남짓한 이 공방이 손 대표를 포함한 직원 네 명이 장인정신을 불태우는 공간이다. 여느 공방과 달리 외주를 받지도 주지도 않고 철저하게 직접 상담을 통한 핸드메이드 비스포크(맞춤 정장)만을 고집하고 있다. 손바느질로 한땀 한땀 타협 없이 옷을 만들다 보니 한 달에 완성되는 옷은 열 벌 남짓이다. 미완성 옷이 어지럽게 걸려 있는 작업실 옆, 채도 낮은 조명이 설치된 상담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尹 취임식 양복, 사비로 제작”

김건희 여사가 손미현 페르레이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당시 검찰총장)을 찍은 사진.

김건희 여사가 손미현 페르레이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당시 검찰총장)을 찍은 사진.

대통령 재단사로 알려지면서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언론 인터뷰가 공개된 뒤 전화가 굉장히 많이 왔어요. 양복 제작이 아니라 윤 대통령의 개인사를 묻는 분들이 많았죠(웃음). 첫 보도보다, 제가 윤 대통령 옷을 제작한 후일담을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는데 그게 기사화된 이후 반응이 더 컸어요. 주문이 폭주하더라고요. 요즘에는 김건희 여사처럼 남편 옷을 맞추려고 오시는 고객들이 많아졌어요. 페르레이에서 남편 옷을 맞추면 윤 대통령처럼 잘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윤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입은 양복은 좀 특별하다고요.

당선되시기 전에 입은 양복은 제일모직 국산 원단으로 만들었어요. 대선 결과가 나오고 여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죠. “좋은 날인데 이날만큼은 남편에게 정말 좋은 슈트를 한 벌 선물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영국의 ‘스카발(Scabal)’ 원단으로 양복을 만들어드렸어요. 영국 황실에서 쓰는 최고급 원단이에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원단이기도 하고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 원단으로 만든 옷을 입어 화제가 되기도 했죠.



앞으로도 대통령 옷을 만드는 건가요.

그럴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자 하니 원래 대통령 의복을 전담하는 팀이 따로 있는데 저희는 김건희 여사가 개인적으로 연락해 사비로 제작을 의뢰한 케이스라서요. 치수도 다 알고 있어서 앞으로도 쭉 대통령 옷을 제작할 것 같습니다.

7월, 김건희 여사 오트쿠튀르 출시 예정

페르레이는 오는 7월 첫 번째 오트쿠튀르(haute couture·고급 맞춤 의상) 출시를 앞두고 있다. ‘Elegant Insight(우아한 통찰)’로 명명된 첫 번째 오트쿠튀르의 주인공은 김건희 여사가 될 예정이다. 손 대표가 윤 대통령을 마주한 건 그가 검찰총장 재직 시절 신체 치수 측정과 가봉(假縫·옷이 몸에 맞는지 보려고 마름한 천을 듬성듬성 바느질하는 것)을 위해 만났을 때 딱 두 번뿐이다. 손 대표는 “세부적인 조율은 김건희 여사와 논의하다 보니 둘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김 여사와 만나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오트쿠튀르의 영감을 얻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가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본 김건희 여사는 어떤 사람일까.

실제로 만나본 윤 대통령, 김 여사 내외는 어땠나요.

집에 들어가기 전에 뉴스에서만 보던 사람을 실제로 마주하려니 떨렸죠. 막상 집 안으로 들어가서는 편안한 차림의 대통령을 보고 놀랐어요. 대화를 나누는 두 분 모습이 너무 평범해서 또 놀랐고요. 보통 출장 가면 저희한테 격식 차려서 대하시는 고객들이 많거든요. 두 분은 정말 평범한 부부 같더라고요. 덕분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일했네요.

대통령과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됐는데 사진은 누가 찍어준 건가요.

김건희 여사가 나중에 회사 홍보에 쓰라고 먼저 말씀하시면서 찍어주셨어요(웃음). 제가 대통령과 너무 어색하게 있으니까 팔짱을 껴보라고도 하시고 웃으라고도 하시고.

이렇게 고객을 공개하는 건 이례적인 거죠.

저희가 이렇게 고객의 정보를 노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법조인, 정치인, 기업 임원, 운동선수, 연예인 등 유명하신 분들이 고객으로 오신 적 있지만 같이 사진 찍거나 누군지 외부에 노출한 적은 없어요. 이번이 특이한 케이스죠.

누가 왔다 갔는지 알려주실 수는 없나요.

(웃음) 추후에 공개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네요.

옆에서 본 김 여사는 어떤 사람인가요.

대통령이 기존에 입던 옷을 살펴보려고 옷방에 갈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두 분 옷이 함께 보관돼 있더라고요. 그런데 여사님 옷장이 생각보다 굉장히 단출해서 놀랐어요. 대부분 모노톤 계열로 딱 필요한 옷만 갖춰져 있더라고요. 원래 옷을 잘 입는 사람 옷장은 의외로 심플하거든요. 여사께서도 워낙 안목이 높으셔서 본인 취향에 맞는 몇 가지 옷만 착용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또 제게 “고맙다” “잘하셨다”는 말씀을 굉장히 자주 하셨어요.

김건희 여사가 한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저희가 만든 옷을 보시더니 제게 “옷을 보니까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고 말씀하셨어요. 타협하지 않고, 고객 한분 한분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저희의 노력이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죠. 그 말씀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네요.

패스트패션 시대에도 손바느질로 옷을 만드는 이유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페르레이 공방.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페르레이 공방.

33세의 나이에, 그것도 여성 재단사가 남성 정장을 만드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는 밑바닥부터 도제식으로 옷을 배운, 테일러링 업계에 몇 없는 희귀한 경우다. 업계에서 발이 넓다고 자부하는 손 대표도 자신이 아는 어린 여성 재단사는 그가 가르쳤던 한 명뿐이라고 한다.

현재 패션 시장은 소수의 하이엔드 브랜드, 1년에 24번 신상품을 쏟아내는 SPA 브랜드, 클릭 몇 번으로 주문이 가능한 온라인 패션 플랫폼이 주름잡고 있다. 거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가 우직하게 손으로 만드는 클래식 정장을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클래식 정장은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된 건가요.

패션 학교를 다니다 생각한 것과 달라 6개월 만에 그만뒀어요. 방황을 하던 중 우연히 친척 할아버지가 총괄책임자로 계시는 공방에 놀러 갔죠. 할아버지 재단사분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진짜 패션이구나’ 싶었어요. 마침 할아버지가 한번 일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셔서 하겠다고 했죠. 그렇게 시작했어요.

공방에 처음 들어가면 무슨 일부터 하나요.

흔히 ‘시다’라고 하죠. 시장 가서 부자재 사오고 선생님들이 시키시는 심부름이 업무의 대부분이에요.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옷을 매개로 고객을 만나 대화하는 게 좋더라고요.

패션도 여러 분야가 있잖아요. 왜 하필 클래식 정장에서 매력을 느꼈나요.

클래식 옷보다 더 고급 옷은 없어요. 공정만 봐도 그렇죠. 이런 옷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클래식 양복 제작에는 최고의 원단만 쓰이고 시중의 다른 옷과 완성도 면에서 차이가 커요. 또 제가 여성이지만 클래식 스타일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체형이 특이해서 맞춰 입어야 편하거든요. 안 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여성 재단사라는 점이 차별점이 되기도 하나요.

고객과 대화가 수월해요. 고객이 원하는 옷을 만들려면 취향과 생각을 알 수 있게 대화가 잘 통해야 하거든요. 남자 재단사와 남자 고객과는 다른 케미스트리가 생기죠. 고객들이 아무래도 저한테는 좀 쉽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클래식 정장의 미래는 밝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넥타이 의무 규정을 없애자 에르메스가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이야기. 지난 5월 슈트와 타이의 명가 에르메네질도제냐의 최고경영자(CEO)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슈트는 살아남았지만 넥타이는 죽었다”는 말을 해 화제를 모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사람들의 옷차림이 전반적으로 캐주얼해졌다. ‘원 마일 웨어’라고 불리는 트레이닝복은 팬데믹 기간 동안 불티나게 팔렸고 정장이 드레스 코드인 직장은 이제 구식이 돼버렸다. 이는 곧 격식을 갖춘 클래식 정장은 더욱 설 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는 손 대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옷차림이 편해졌잖아요. 그래도 클래식의 인기는 여전한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한 옷차림을 선호하게 됐지만 그래도 꼭 클래식을 입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회적으로 저명한 분들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분들이 대개 그렇죠. 대통령부터 정치인들, 법조계 종사자들, 기업에서도 어느 정도 중진급이 되면 주말이 아니고서야 넥타이까지 다 차려입어야 하죠. 원래 맞춤 양복은 최상위층의 전유물이었는데 다시 그렇게 돌아가는 흐름인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젊은 재단사들이 적은 건가요.

저야 할아버지 밑에서 일했고, 처음부터 ‘사장 마인드’로 일을 배우다 보니 버텼지만 대다수의 젊은 분들에게는 쉽지 않은 과정이에요. 교육이 도제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밑에서부터 배워야 하는데 종사자 대부분이 나이 많은 할아버지들이거든요. 이분들 사이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아요. 또 일의 특성상 굉장히 꼼꼼해야 하니 적성에 맞는 사람이 정해져 있어요. 경험상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은 1년에 한 명도 만나기 힘든 것 같아요.

앞으로도 클래식 웨어는 경쟁력이 있을까요.

실제로 옷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느낄 거예요. 코로나19 이후로 선생님들이 적잖이 은퇴하셨고, 대체로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돌아가신 분이 많아요. 저랑 같이 일하는 선생님도 저렇게 기술이 좋으신데 아드님 따님을 연구원으로 키우셨어요. 말씀을 들어보니 당신에게 이 기술은 밥벌이 수단이었지 옷이 좋아서 시작하신 일이 아니었던 거죠. 당시에는 기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 했고, 자긍심을 갖고 배우는 분들이 없다 보니 대가 끊긴 거죠. 한 사람만을 위한 옷을 만들 수 있는 기술자들이 얼마 없어요. 그래서 오히려 비스포크는 더욱 고급화되고 하나의 예술품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것 같아요.

페르레이가 만드는 옷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중용(中庸)’ 23장 구절을 되게 좋아해요. 요약하자면,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러워지고 겉으로 드러나 남을 감동시키고 세상을 변하게 한다는 내용이에요. 페르레이에서 같이 일하는 분들이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옷을 만들고 있어요.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였으니까요. 좋은 옷은 재단, 봉제, 피니셔가 삼위일체를 이뤄 합이 맞아야 나오거든요. 이 업(業)을 하는 분들이 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건 아니더라고요.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기에 페르레이의 옷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손미현대표 #페르레이 #대통령재단사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제공 손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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