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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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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정희 방치설 진실공방

글 두경아

2021. 12. 02

12년째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배우 윤정희. 그를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남편 백건우와 딸 백진희가 윤정희를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윤정희의 형제자매들과, “다툼의 본질은 윤정희의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남편이자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팽팽히 맞선 상태다. 

문희, 남정임과 함께 1960년대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꼽혔던 전설의 배우 윤정희(77). 그녀는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후 1960~80년대를 풍미했고, 1970년대 은퇴한 두 배우들과 달리 1994년 영화 ‘만무방’과 2010년 ‘시’ 등에 출연하며 현역 배우로 자리를 지켜왔다. 윤정희는 인터뷰 때마다 “90세가 되어도 영화를 계속할 것”이라며 배우 활동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일 정도였다. 또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75)의 아내로 늘 남편과 함께하며 종종 공식 석상에도 모습을 비쳐왔다. 두 사람은 1976년 결혼해 슬하에 딸 진희(44) 씨를 두고 있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 같았던 윤정희의 건강 이상 문제가 불거진 건 지난 2019년 11월, 백건우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백건우는 “아내가 10년째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이라며 “현재 심각한 상태”라고 고백했다. 그를 돌보고 있는 친딸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윤정희의 투병 소식은 다른 방식으로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올해 2월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외부와 단절된 채 하루하루 스러져가는 영화배우 윤정희를 구해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온 것이다. 윤정희의 동생으로 알려진 청원자는 “2019년 4월 남편 백건우와 딸이 서울에서 치료를 받던 윤정희를 파리로 끌고 갔다. 현재 윤정희는 본인의 집에서 쫓겨나 파리 외곽의 아파트에서 홀로 알츠하이머 및 당뇨병 투병 중”이라며, “백건우는 아내를 만나지 않은 지 2년이 훨씬 넘었고, 아내의 병간호도 못 하겠다면서 형제들한테 떠넘긴 지 오래”라고 주장했다. 윤정희는 6남매 중 맏이로, 5명의 손아래 형제자매들이 있다. 이와 함께 2019년 윤정희의 친동생 3명이 백건우와 딸 진희 씨에 대한 재산, 신상 후견인 지위 이의신청을 프랑스 법원에 제기했다가 패소한 사실도 알려졌다. 그해 9월 프랑스 1심에서 패소했고, 파리고등법원에 항소해 지난해 11월 최종 패소했다. 파리고등법원은 “손미자(윤정희의 본명)가 배우자 및 딸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재 그녀는 안전하고 친숙한 환경에서 안락한 조건을 누리고 있다”고 판단했고, “배우자와 딸이 그녀에게 애정을 보이지 않으며, 그녀가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고 금전적 횡령이 의심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법원은 최종적으로 딸 백진희와 후견협회 A.S.T를 공동후견인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백건우는 윤정희 형제자매 간의 분쟁에 있어서 공식적인 반박을 한 적은 없다. 다만 백건우의 공연기획사 빈체로는 “거짓이며 근거 없는 주장”이라면서, “윤정희는 딸 아파트 바로 옆집에서 가족과 법원이 지정한 간병인의 따뜻한 돌봄 아래 생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한 백건우는 올해 2월 공연을 위해 입국했을 당시, “윤정희 씨는 하루하루 아주 평온하고 평화롭게 지낸다”면서 “가정사로 떠들썩하게 해서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짧은 입장만을 밝혔을 뿐이다. 그랬던 그가 지난 9월 7일 방영됐던 MBC ‘PD수첩’ 1302회 ‘사라진 배우, 성년후견의 두 얼굴’ 방영 후, 이를 반박하는 공식 보도 자료를 내고 10월 28일 서울 서초구 흰물결아트센터에서 법률대리인 정성복 변호사와 함께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했다.


쟁점 1. 백건우, 이제야 입장을 밝힌 이유

10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아내 윤정희 방치설에 관한 입장을 밝힌 백건우.

10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아내 윤정희 방치설에 관한 입장을 밝힌 백건우.

백건우는 여러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에 앞서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윤정희 형제자매들이 그간 청와대 게시판을 비롯해 여러 방법으로 허위 사실을 주장해왔지만, 여러분이 가슴속에 담고 있는 영화배우 윤정희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며, “현재 윤정희는 매일 평화롭게 자신의 꿈속에서 살고 있다”고 전했다.



백건우가 기자회견을 마련한 계기는 MBC ‘PD수첩’ 보도였다. 그는 이 보도에 대해 “윤정희가 방치됐고, 가족들에게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왜곡 보도를 했다”면서 “윤정희의 삶을 힘들게 하는 이들은 윤정희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그리고 치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형제자매”라고 주장했다. 또한 “‘PD수첩’ 방송 이후 근거 없는 말이 너무 오랫동안 반복되고 파파라치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딸이 자유롭게 생활도 못 했다”고 하소연했다. 게다가 “윤정희의 부모와 남매들에게 오랫동안 많은 경제적 도움을 주었고, 첫째 동생이 자신의 돈을 빼돌린 사실을 알고 나서도 그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으며 또 외부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다”고 주장했다.

쟁점 2. 재산 싸움이 문제의 핵심?

백건우는 이 분쟁의 핵심을 재산 싸움으로 보고 있다. 정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발단은 (윤정희의) 첫째 동생 A 씨가 백건우의 한국 연주료 21억원을 무단 인출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A 씨는 1980년부터 백건우의 한국 연주료를 관리해왔는데, 잔고 내역을 속이며 21억여원을 무단 인출했다는 것이다. 또한 백건우의 계좌에서 A 씨, 셋째 동생 B 씨 계좌로 이체된 돈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1980년부터 2002년까지는 은행 계좌 내역을 확인할 수 없어 얼마나 더 많은 돈이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다고 했다. 백건우가 2019년 3월 28일 이런 사실을 알고 은행 계좌 비밀번호를 변경한 이후에는 A 씨와 연락할 수 없었다고 한다. 백건우는 이런 사실을 근거로 지난 10월 27일 A 씨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과 횡령 등의 혐의로 고소했으며, “윤정희 형제들이 여러 경로로 백건우의 명예를 훼손한 것에 대해서는 고소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윤정희의 넷째 동생 C 씨는 백건우 측의 기자회견 전날인 10월 27일 언론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백 씨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21억원이 무단 인출됐다는 백건우의 주장과 관련해서는 “그런 큰돈이 실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A 씨에 따르면) 백건우가 1년에 3〜4번 한국에 올 때마다 유로화로 바꿔 프랑스로 가져갔다고 한다”며, “백건우가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거짓으로 재산 문제를 계속 제기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A 씨가 1980년부터 한국 연주료를 관리하고 잔고 내역을 허위로 알렸다는 것에 대해서도 “A 씨는 당시 한국에 없었고, 1995년에야 입국했다. A 씨가 (연주료) 관리를 맡은 건 2005년경이며 그 전에는 어머니와 윤정희가 관리했다”고 반박했다. 또한 거액 인출을 문제 삼아 비밀번호를 바꾼 후 A 씨와 연락할 수 없었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연락을 끊은 당사자는 백건우”라면서, “형제들의 보살핌을 받을 당시 윤정희는 백건우에게 계속 전화했으며, 훗날 백건우는 집 전화 코드를 빼놓으라고까지 했다”고 말했다.

2019년 윤정희가 한국에 있을 당시 백건우가 연락을 받지 않았다는 내용은 ‘PD수첩’ 방송을 통해서도 제기된 의혹이다. ‘PD수첩’에서는 “(윤정희는) 남편을 찾으며 하루에 수십 번 전화를 걸기도 했습니다. 연결은 잘 되지 않았습니다”라는 내용이 방영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 백건우는 “알츠하이머 증세로 인해 전화를 건 사실을 몇 분 후 잊어버리는 윤정희는 계속 A 씨에게 전화를 걸게 해 하루에 50~60통의 전화를 걸었다”면서, “그런 날에는 연주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털어놓았다.


쟁점 3. 형제자매 교섭권 제한, 과도한 간섭?

윤정희의 형제자매들이 줄곧 주장해온 내용은 “백건우와 딸 진희가 동생들과의 만남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C 씨는 SNS를 통해 “현재 백건우 부녀와는 전혀 연락되지 않고, 극히 제한적이었던 윤정희와의 통화와 만남도 완전히 차단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백 씨 측은 “프랑스 고등법원이 윤정희가 동생들과 만나거나 통화하는 것을 제한한 데 따른 것이다. 딸이 후견인 권한을 남용한 것은 전혀 없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서는 프랑스의 공동 후견인 제도와 후견협회 A.S.T.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들은 피성년후견인(돌봄을 필요로 하는 성인)의 사생활 보호와 심리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둔다. 2020년 11월 17일 파리고등법원의 최종 판결문 중 면접교섭권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윤정희는 친인척을 비롯한 모든 제3자를 자유롭게 면접할 권리가 있다”고 했지만,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판사의 결정에 따른다”고 명시했다. 구체적인 판결은 다음과 같다.

“윤정희의 형제자매들이 그녀와 통화하거나 직접 방문해 그녀가 배우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영화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피성년후견인의 심적 불안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피성년후견인은 한국의 유명한 영화배우이며, 입원 중인 그녀의 모습을 촬영한 것과 관련해 사생활 침해로 고소가 제기됐다. (중략) 그러므로 A.S.T.는 동생들과 통화하거나 만남을 가질 때에도 피성년후견인의 정서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들의 불안을 초래하는 발언을 되풀이 할 경우 이를 후견판사에 제소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PD수첩’ 등의 매체가 취재를 위해 윤정희에게 접촉한 뒤부터 면접교섭권은 더욱 엄격해졌다. 라니쉬마른(lagny sur marne) 지방법원 결정문에 따르면 “2021년 10월 18일 심문에서 후견인들은 형제자매의 방문권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일시적으로 가상방문(화상전화 또는 전화)을 금지할 것을 요청했다. 백진희와 A.S.T. 협회는 분기별로 한 번씩 A.S.T. 대리인의 중재 하에 형제자매가 피성년후견인을 방문할 수 있도록 했고, 월별 전화 통화도 할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고 명시했다.


쟁점 4. 윤정희의 현재 상태는

알츠하이머 투병 사실이 알려지기 전인 2016년에 만난 윤정희.

알츠하이머 투병 사실이 알려지기 전인 2016년에 만난 윤정희.

윤정희의 현재 상태는 어떨까. 백건우는 “몇 분 내로 모든 걸 잊어버린다. 무슨 얘길 했든 누굴 만났든 몇 분을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알츠하이머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거 같다”며 “사실 옆에서 간호해보지 않으면 정말 알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또한 그는 “지금이 이상적인 생활이다. 알츠하이머 환자에게는 환경 변화가 좋지 않다. 가족 가까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윤정희는 2019년 9월 딸 진희 씨의 집 바로 옆에 거주할 집을 구해 이사했다. 몇 계단만 내려가서 밖으로 나가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딸이 매일 방문해 돌보고 있으며, 오전과 낮에 돌보는 간병인과 오후 티타임에 오는 간병인이 있다고 한다. 저녁 이후에는 세입자 오드리(기존 월세의 20%만 내고 살면서 오후 6시 이후 돌봄을 맡는 세입자)가 돌보고 있다. 간호조무사가 매주 2~3회 방문하고 간호사도 2~3개월에 1회 방문해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지병인 당뇨병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 약을 처방받는데, 윤정희가 파리에 온 후 안정과 평화를 찾아 혈당 수치가 낮아졌다고 밝혔다.

한편 기자회견장에 동석한 공연기획사 직원은 지난 9월 백건우와 함께한 자리에서 윤정희와 실제로 만났다고 밝히며, “상대가 누구인지는 기억을 못 하는 것 같았지만, 워낙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배우로 살아와서인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전했다.

현재 백건우는 10월 25일 언론중재위원회에 ‘PD수첩’을 상대로 정정 보도를 요청하는 한편, 총 11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조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PD수첩’ 측은 11월 해명 자료를 내면서 “이 방송은 성년후견제도의 문제점을 조명하는 공익적인 목적을 지닌 것으로, 객관적 사실에 어긋나지 않고 (중략) 이 사건 방송이 불법행위에 이른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한 상태다.

사진 박해윤 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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