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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원 들고 상경해 단독 주연까지, 기적을 만드는 배우 조우진

글 이현준 기자

2021. 06. 23

무명 배우에서 명품 조연을 거쳐 단독 주연까지. 조우진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연기자로 자리매김했다.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종횡무진해온 그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가 펼쳐지는 듯하다.

1999년 20세 청년이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쓴 채 단돈 50만원을 들고 상경했다. 연극 무대에 올라 배우 생활을 시작하고 광고 에이전시와 영화사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붙인 음료수를 돌렸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배우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생계를 위해 물류창고에서 물품을 옮기고 포장하는 일, 편의점 알바, 사무 보조, 아파트 경비, 공장 노동자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작은 연극, 뮤지컬 무대를 오갔다. 그렇게 10년이 넘어서야 연극 데뷔작이 뒤늦게 평단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비로소 상업 영화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건 엑스트라와 단역뿐. 빛은 아직 멀기만 했다. 그러나 2015년 그는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연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끝에 충무로의 빼놓을 수 없는 ‘신 스틸러’로 등극했다. 이후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종횡무진하다 데뷔 22년 만인 올해 마침내 영화의 단독 주연을 거머쥐었다.

이 영화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은 바로 배우 조우진(42)이다. 조우진은 1999년 연극 ‘마지막 포옹’으로 데뷔해 오랜 무명 생활을 거친 끝에 ‘내부자들’의 조 상무 역을 통해 일약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배우 이병헌은 ‘내부자들’ 촬영 당시 무명이었던 그의 가치를 단번에 알아봤다. 이병헌은 한 방송에서 그때를 회상하며 “영화가 잘될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이 배우 하나는 크게 회자되리라는 직감을 느꼈다”고 밝히기도 했다. ‘내부자들’에서 “여! 썰고, 여 하나 썰고… 거기 말고 여 썰으라고!”라며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안상구(이병헌)의 팔을 자르는 그의 연기는 가히 화면을 썰어버렸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후 조우진은 드라마 ‘도깨비’(2016), ‘38 사기동대’(2016), ‘미스터 션샤인’(2018)과 영화 ‘국가부도의 날’(2018), ‘봉오동 전투’(2019), ‘도굴’(2020) 등 드라마와 영화 사이를 넘나들며 활약, 대체 불가의 명품 조연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올해 6월 23일 개봉 영화 ‘발신제한’에서 처음으로 단독 주연을 맡았다.
‘발신제한’은 부산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액션 스릴러로 2016년 개봉한 스페인 영화 ‘레트리뷰션: 응징의 날’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은행 센터장 성규가 아이들을 등교시키던 출근길 아침 협박범 진우(지창욱)로부터 “차에서 내리면 폭탄이 터진다”는 의문의 발신 번호 표시 제한 전화를 받으면서 위기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조우진은 성규 역을 맡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절박한 아버지를 연기했다.

6월 13일 한 방송에서 조우진은 드라마 단역을 맡아 촬영장에 도착 후 분장까지 마쳤지만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자신의 배역을 다른 사람이 하게 된 일화를 밝히며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졌다. 집에 돌아가서 불을 다 끄고 소주 2병을 마셨다”고 고백했다. 이런 무명 시절의 설움을 겪은 그이기에 이번 영화는 그에게 더욱 남다르게 다가온다. 조우진은 6월 16일 시사회에 이어진 간담회에서 “팬카페에 ‘1999년 50만원을 들고 상경한 나로서는 기적’이라는 글을 썼다. 오늘 영화가 시작될 때 ‘기적이 일어나고 있구나’ 싶더라”며 감개무량한 마음을 드러냈다. 시사회 후 그의 연기에 대한 반응은 호평으로 가득하다. 첫 단독 주연 영화의 첫걸음은 성공적인 셈이다.

6월 18일 기적을 일궈낸 배우 조우진을 마주했다. 그는 주연으로서 하는 첫 인터뷰에 다소 상기된 듯했다. 주인공 반열에 등극했지만 여전히 연기에 대한 절박함과 치열함이 느껴지는 그에게서 22년 만의 기적은 저절로 빚어진 게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주연 영화 포스터 보고 눈물 흘려

영화 ‘발신제한’

영화 ‘발신제한’

단독 주연 영화가 개봉됐어요.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순간일 텐데 소감이 궁금합니다.

개봉 전보다 더 살 떨리고, 긴장되고, 부담되는 거 보니까 이제 슬슬 (제가 주연을 맡았다는) 실감이 나요. 멀리 있던 것이 점점 가까워지는, 그런 느낌이에요.

처음 ‘발신제한’ 출연을 제안받았을 때 거절했다고 들었어요.

시나리오가 나빠서 그런 건 전혀 아니고, 겁이 났어요. 해내기 쉽지 않은 감정선을 가진 인물이라 제가 잘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컸죠. 하지만 김창주 감독님의 뜨거운 열정에 감탄했어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보는데, 손을 잡을 수밖에 없더라고요(웃음).

첫 주연 영화라 부담감이 컸나 봐요.

굉장한 긴장감과 공포감, 당혹스러움과 부담감을 안고 촬영에 임하다 보니 자다가 경기를 일으키며 깬 적도 많았고 악몽도 자주 꿨어요. 현장에서는 ‘이 정신이 진짜 내 정신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고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었어요. 누가 잡아주지 않으면 털썩 주저앉아버릴 것 같더라고요. 이런 긴장감 때문에 혈압이 높아져서 아직까지도 혈압약을 먹고 있어요.

이번엔 차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극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 됐을 것 같아요.

‘이러다 정신병에 걸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난감한 순간이 매 테이크마다 오더라고요. 그래서 평소보다 준비를 더 많이 했어요. 입에 최대한 대사를 붙여놓아야 긴박한 상황에도 대사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거든요. 보통의 영화는 대본 리딩할 때 출연진이 모두 모여 호흡을 맞춰보는데, 이번에 저는 상대 배우 한 명 한 명과 대본 리딩을 따로 해보며 완성도를 높였어요. 감독이 원하는 ‘찰나의 순간’에 맞는 적합한 호흡과 연기를 담아내려 끝없이 고민했고요. 지금까지 이렇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차 안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는 걸 까먹을 정도로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부담감에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나요.

도망치면 큰일 나죠(웃음). 저는 모든 작품에 주인 의식을 갖고 임합니다. 특별 출연, 카메오, 단역 등 비중이 적은 역이라 해서 ‘이건 감독, 주연의 영화야’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특히 이번엔 단독 주연이었기에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버텼습니다.

그 덕분인지 연기에 대해선 호평이 자자해요. 조우진 씨 스스로는 만족하나요.

사실 제 연기에 대한 만족감은 없었어요. 앞으로 연기를 하며 개선해야 할 것, 고민해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봤어요. ‘저 때는 왜 연기를 저렇게 했나’ 후회도 되고요. 좋은 평가는 너무나 감사해요. 정말 기적인 것 같아요. 다 기적입니다. 정말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지금보다 더 좋은 반응이 쏟아지면… 전 도망가고 싶을 것 같아요(웃음).

영화 개봉을 앞두고 팬카페 ‘우진인사이드’에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쓰셨는데, 포기하지 않고 배우의 길을 걸어온 스스로를 칭찬해도 좋을 듯합니다.

칭찬해주고 싶지 않아요(웃음). 저는 스스로에게 굉장히 냉정해요. 주변의 지인들이 “자학에 가까워”라며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그저 스스로에 대한 잣대를 좀 높이고 싶고 아직 고치진 못하고 있어요. 평가는 보시는 분들이 해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조우진이 얻은 인기의 시작점은 ‘내부자들’의 조 상무다. 조우진이 원래 오디션을 본 역할은 조 상무의 수하였다. 첫 오디션을 보고 난 후, 그를 눈여겨본 조감독은 조우진에게 최종 오디션을 조 상무로 볼 것을 권유했다. 조우진은 최종 오디션을 보고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에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합격이라는 전화를 받고 마음의 파도가 깊게 이는 기분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 인기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조 상무 역을 제의받았을 때와 이번에 단독 주연을 제의받았을 때 중 언제가 더 감격스러웠나요.

조 상무로 발탁됐을 때가 더 감격스러웠죠.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1백원 갖고 있던 사람이 1천원을 가지게 된 것과 한 푼도 없다가 1백원이 생긴 건 다르잖아요. ‘내부자들’ 캐스팅 때를 생각하면 딱 코흘리개 시절 주머니에 1백원을 넣은 기분이었어요. “이것으로 50원은 사탕 사 먹고 50원은 오락실 가야지”라며 들뜬 것처럼.

조 상무를 맡은 후부터 다작을 하고 있잖아요. 역할마다 어떤 차별화를 주려 노력하나요.

상상도 못 했을 만큼 많은 기회가 찾아왔죠. 어떻게 그리 많은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다 주위에서 이끌어주신 덕분이에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시고요. 하루에 세 편을 찍은 적도 있어요.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나씩 찍는 식으로요. 하지만 그때마다 ‘어떤 식으로 차별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감독님이 저에게 바라는 연기를 현장에 도착해서 소화했죠. 화려한 기술을 부린 건 아니지만 그만큼 집중력을 높여 몰입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

조우진이 오랜 무명 생활을 버텨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가족의 힘이 컸다. 2018년 조우진은 11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그는 연인과의 사이에 돌이 지난 딸이 있다 고백하기도 했다. 빛을 보기까지 어려운 시절을 함께해준 아내에 대한 그의 마음은 각별하다. 결혼 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연인에 대해 “일반인이고 정말 소중한 친구라 보호하고 싶다”며 언급을 자제하는 등 애정을 드러냈고, 2018년 ‘국가부도의 날’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을 때 소감으로 “집에 있는 두 여자에게 이 상을 바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트로피를 전해 받은 아내 역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아내에 대한 사랑이 큰 만큼 딸에 대한 사랑도 지극하다. 조우진은 ‘발신제한’ 시사회에서 “현장에서 나를 버티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은 딸이다. 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털어놨다. 이러한 가족에 대한 사랑은 ‘발신제한’에서 고스란히 연기로 녹아들었다.

이번 영화에선 원작과 어떤 차이를 주려 했나요.

부성애만은 꼭 담아내자, 생각했어요. 한국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내면에 가지곤 있지만 잘 표현하지 못하는 가족과 딸에 대한 마음이요. 성규의 딸 혜인 역을 맡은 이재인(17) 양과 부녀지간의 케미를 보이기 위해 노력했어요. 함께 호흡을 맞추며 제 딸이 많이 생각났어요.

성규는 딸과 다소 서먹한 사이인데, 조우진 씨는 어떤 아버지인가요.

딸 바보를 넘어 똥멍충이입니다(웃음). 딸에겐 늘 미안하고… 고마워요. 저는 딸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득해요. 보통의 아버지가 다 이렇게 생각할 테고, 그래서 밖에 나가 일을 하잖아요. 그런데 ‘딸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지’ 마음먹는 순간 그때부터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더라고요. 딸과 자주 놀아주질 못해요. 오늘도 나오는데 딸이 “아빠, 오늘은 조금만 일하고 와”라고 하더라고요. 일하고 오면 자신이 자고 있거나 자기 직전이니까.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미안해요. 죄 짓고 나와서 죄 짓고 들어가는 느낌이죠. 이런 마음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재인 양과 부녀간 호흡을 조율하는 데 많은 영감을 줬죠. 어떻게 보면 성규라는 인물에 임하는 저의 정체성은 제 딸이었을 거예요. 딸은 제가 무슨 작품을 하든 원동력이 되고 영감의 원천이에요.

코로나19로 영화계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지만 조우진은 여전히 ‘열일’ 중이다. 많은 영화의 개봉이 늦춰지거나 취소되고 있지만 ‘도굴’ ‘자산어보’ ‘서복’에 이어 ‘발신제한’까지 지난해부터 개봉한 영화 중 조우진이 출연한 작품은 4편이나 된다. 그에게 ‘열일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팬데믹 시대임에도 조우진 씨가 출연한 영화가 4편이나 개봉됐어요.

어떤 선배님이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네가 출연한 영화만 계속 개봉한다”고요(웃음). 제가 무슨 운을 타고난 건지… 감개무량하죠. 그렇지만 이것도 일이다 보니 더 많은 분이 극장에 와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요. 훌륭한 작품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는 게 목표지만 영화란 많은 사람이 피와 땀을 흘려 만든 결과물이거든요. 결국 가장 큰 보람은 관객 수예요. 이런 보람을 찾기 어려운 시국이라 마음이 항상 무겁죠. 극장에 방문하신 지 오래된 분들이 많을 거예요. ‘발신제한’은 영화관에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한 영화예요. 극장에서 볼 때만 느낄 수 있는 긴장감과 스릴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발신제한’은 조우진 씨의 첫 단독 주연 영화라 더 마음이 가겠어요.

‘발신제한’은 저에게 그저 ‘기적’입니다. 다른 의미는 차차 찾아봐도 되지 않을까요(웃음).

무명에서 명품 조연, 그리고 단독 주연까지 달려왔어요. 앞으로의 모습도 기대돼요.

꿈과 동경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고 지금까지 버텨왔어요. 영화는 저한테 꿈이에요. 앞으로도 그 꿈을 꾸고 싶어요. 또 ‘열일의 아이콘’ ‘명품 조연’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제가 맡은 작품과 역할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고요. 앞으로도 주어진 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영화로 제가 주연 배우가 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보는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사진제공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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